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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고 외치라 - 이사야서 풀이2
글쓴이 : 바보새 날짜 : 2013-09-10 (화) 12:02 조회 : 2457
두려워 말고 외치라
「이사야서」를 중심으로,II
 
 
앓고 난 자국의 민족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여호와께서 오신다.
사막의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로 만들고, 비탈진 산골 길은 넓혀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보리라.
여호와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
 
앞에서 말하던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평화를 선포해버리는 겁니다. 이제 싸움 그만뒀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가장 불행한 것은 이렇게 전시상태로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본래 오랜 동안 고난에 부대껴오는 거예요. 태평세월이라는 것이 별로 없이 늘 전쟁 전쟁, 전쟁도 국내에서 하는 전쟁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래 오다가 해방이 됐는데, 해방 후에 나신 분도 있겠군요. 해방 후에 나신 분은 모를 거요. 철이 안들어서 해방을 맞은 분들은 못 잊을 겁니다. 나는 늘 하는 소린데, 나는 몇 번 경험하는데, 맨 처음 것은 3.1절이고 헤는 나이로 19살 때 맞은 거고, 그 다음 45살 때 해방을 본 거고, 그 다음은 60대에 4.19,그런게 다 큰 귀절인데,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비교적 행복스럽게 자라났다고 그럴 수 있어요. 아주 시골구석이니까, 저 평안북도 서북 끄트머리니까 거기는 정치세력이 미치지 않아요. 뭐 전혀 없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때 나라가 망해서, 내가 나서 9년 있다가 나라가 망하게 되는 건데, 그거는 형식상에 나타난 거고 사실상으로야 벌써 나라가 다 망하게 돼 있지 않았어요.
 
그랬는데 난 곳이 아주 외진, 다른 데도 아니고 평안도이니까, 평안도는 차별대우 받지 않았어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참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렇지만, 양반정치하는 사람들이 계급으로 그러니까, 평안도 사람 꽉꽉 눌러둬야 한다고 그래 그랬을 거요. 본래 삼국시대 때 고구려가 패하고 신라가 주권을 쥐었으니까 신라가 통일한 다음에 우리나라에 본래 있던 그 판도가 다 들어오는 거 아니지. 그 후에 절반도 못되는 한강 이남이지. 그러다가 그 후에 조금 올라가서 함경도 쪽으로, 함흥 그런데 가서 진홍왕비도 선 게 있기는 있지요. 있긴 있지만, 사실상 판도라는 건 조그마한 거고, 그러니까 그만 지금과 달라서, 지금 사람은 교통도 편하고 하니까 어디가 피난할 때 도망을 간다 그럴 수도 있지만, 옛날엔 그렇지 못했을 거예요. 나라가 망하면 거기서 대부분이 죽든지, 살아남으면 또 거기에 들어오는 정치, 제 민족이거나 남의 민족이나 간에, 그 정치 밑에서 복종해 살고 그랬을 거요. 평안도 함경도 지방은 그런 지방, 고구려가 망한 유지니까 그렇고, 또 지금도 전라도 자꾸 차별합니다마는, 전라도 기질도 있기야 있겠지, 그래서 지난해 뭐이지? 특질곤가 그것도 그다지 그럴 것도 없지, 없지만 어쨌거나 일반 사회에서 또 문제가 난 게 사실이니까, 난건 난대로 알아야 하지. 물론 생각이 미비해서 났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리 심하게 할 것도 아닌데, 우리가 보기에도 젊은이들이 그런 말 안할 것 같다 하는 분들도 굉장히 분개해 말하고 그랬어요. 그런 것도 역사적으로 까닭이 있단 말이야.
 
그거야말로 우리의 비참한, 앓고 난 자국인데, 앓고 난 자국이라는 이걸 될수록 잘, 이렇게 상처가 없어지도록까지 해야 해. 아무리 다 나아도 앓고 난 허물까지 없어지긴 참 어려운 겁니다. 어릴 때 된거는 잘하면 허물도 없어지긴 없어지지만 죽을 때까지 허물이 남아 있는 것도 있어요. 그건 아까운 일이지요. 더구나 하나가 잘라져서 불구가 됐다든지 그런담 참 문제요. 나는 이따금 무섭습디다. 이거 하나 없어지면 어떡하지? 불구된다는 것, 어떻게 될까봐 참 아깝던데, 뭐 다 있으면 어떻고 더러 없으면 어떻겠어요. 다른 사람 경우엔, 불구 된다고 해서 어떻게 한다, 나 그런 생각 없어요. 그건 사실입니다. 본래 천연으로 성격을 타고 나길 그러니까 그럽니다.
 
내 것이란 없다
내 말 곁가지로 잘 나가요. 그래도 그 말 중요한 말이니까 들어두세요. 사람에게 내 거라는 거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야 옳은 거고, 있다고 해도 내 거라는 거, 내가 생각한 거, 고것밖에는 내 거라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번에도 필리핀 여자가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했더니 공정하게 안해 줬다고 집에 가서 울고 아버지보고 야단했다는 글이 났습니다만, 그 얼굴이 제 얼굴이야? 아버지 어머니가 낳아줬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또 맘대로 난거야?
그래서 내가 우스운 얘기지만 여기 눈썹에 장난질하고 손톱에 장난질하는 건 ‘민족반역자’라고 한 건 그래 그래요. 민족이 낳은 건데 뭘 제 임의대로 고쳐보겠다고 그래. 소견이 나빠도 제 소견이 나쁘지 민족 편에서 보면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지. 동산에 가서 꽃을 보시요……. 제 거란 아무것도 없어요.
내거라 그러기 때문에 자꾸 자랑하려고 그러고, 내세우려고 그러지. 내거 아무것도 없는데……
내거가 있다면 지극히 작은 부분, 요거 옳으냐? 그르냐? 요짝으로 할까? 요짝으로 할까? 고르는 요것이 내거. 몸에 보시오. 몸에 내거랄 것 어디 있나? 숨도 제대로 쉬지, 내가 쉬는 게 아니에요. 피도 제대로 돌아가지, 내가 돌리는 거 아니지 않아요? 신경도 제 힘으로 하 지 내 힘으로 하나요? 나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뭐이 있어요? 그러게 사람이라는 것 몸부터가 대부분은 제가 걱정 안하고 하나님의 하시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서, 어느 부분만을 택해서 고것 네가 해봐라, 밥을 한 숟갈 더 먹으려면 더 먹고 안 먹으려면 안 먹는 거는 내게 있어. 그것만은 내가 하게 하지 직접 안하세요. 공기도 필요한대로 넉근히 줬고, 물도 필요한 대로 넉근히 주었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에 부족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럭하고는 사람에게서 어떤 거는 제가할 수 있도록, 이것을 생물진화에서 보면 이것을 차차 진화해 오는 동안에 생각하는 힘이 나기 시작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이랬다, 그렇게 설명을 할 수 있지만 그걸 크게 종교적인 견지에서 보면, 사람이 하나님에게서부터 본래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필요한 것을 넣어줬는데 스스로 한다는 것도 지극히 한정된 것, 내 몸의 체질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고, 그건 적어도 종족적으로 결정이 되는 겁니다. 한국은 한국적으로 결정이 되는 거고 일본은 일본적으로 결정이 되는 거지, 내가 못하는 거. 개인이라는 소리 못하게 하느라고 유전인자가 있어놔서, 유전인자는 꼭 같잖아요. 여기서 나갔거나 저기서 나갔거나 간에, 그건 영구불변하는 건데, 사람이 그걸 바로 안다면 겸손해야 옳을 거예요. 대부분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늘이 했고, 자연이 해서 이렇게 놓고 그중에 조그만 내가 어디 생각해 봐, 먹는 것은 한 숟갈 더 먹을까 말까 배 짐작을 해가면서, 요럭하면 내게 해가 되고 요럭하면 내게 좋게 되더라, 그것 좀 해봐 하는 거.
또 본다면 어둡다 밝다, 지성이 있어 가지고 구별을 해서 보인다 안 보인다, 들린다 안 들린다, 지극히 한정된 거지만 그걸 하는 동안에 내가 옳다고 할 수 있고 아니라고 할 수 있고, 그런 거나 알라고 그런 거니까. 지성이라고 해도 한정된 거, 감정이라고 해도 지극히 한정된 거, 의지라고 해도 지극히 한정된 거. “천하에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몰라서 그런 소리하지, 어디 아는 사람이 그래요.
 
힘에 도취가 되면 힘을 써보니까 제거 같아서 나폴레옹이 “천하에 불가능이란 없다.” 인간으로서 교만했다면 이렇게 교만한 소리 어디 있어요? 한데 반대로 아주 잘나기로, 참 서양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 아는 거 없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 한 가지도 없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모른다는 것 한 가지 낫다고 그럴까” 그랬다고 하는, 지성이란 알아들어 갈수록 자기가 형편 없는 것, 내거라고 할 것 아무것도 없어요.
물을 먹고 힘을 내지만 물이 내 거 아니에요. 이 천지에 있는 걸 날 주니까 먹었지, 물을 내가 마셨다고 할 수가 없어. 본래 날 때부터 물마시면 이렇다고 하는 것 선천적으로 아는 거지, 내가 그 물이 사람에게 좋은 줄 알아서 마신 건 아니야.
열매를 보면 먹음직해서 먹었지만, 내가 손가락을 넣어서 따는 것쯤은 내 손으로 하는 거지만 본 다음에 저것은 양분이 될 것 같다, 좋은 것 같다, 하는 거는 내 판단이 하는 게 아니야. 내 속에 있는 나보다도 깊은 것이 하는데, 그 깊은 게 반드시 다 옳은 거냐? 그대로만 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아요. 심리학에서 잠재의식이라고 그러고 무의식이라 그러고 그럽니다. 인도에서 말한다면 그걸 ‘프라크리티’ 라고 그러고 ‘구나스’라고 요새『바가바드 기타』에서 하는 얘깁니다마는, 내가 한거 아니야. 내가 한거 아닌 줄을 알면, 그때 비로소 지혜가 조금 생기기 시작이 돼.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내가 했지” 부모가 날 길러줘서 몸 튼튼해진 것인데 “내가 힘을 써서 됐지, 내 힘으로 됐지” 그러는 것은 힘의 도둑질이야.
 
『열자』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어떤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데 장이라는 사람 잘사니까 가 물어봐. “당신은 어떻게 돼 잘 살지?” 그 사람이 묻는 것이 좀 어리석으니까 가르쳐주느라 그랬겠지. “도둑질해 잘 살지.” “어떻게 도둑질해 잘삽니까?” 그러니까 “첫해 도둑질을 했더니 어려운건 면하겠더라. 둘째 해 도둑질했더니 살아가는 데 충분하더라. 삼 년을 도둑질했더니 그담엔 아주 참 남고 넉넉해 부해지더라” 그래요. 그래 이녀석이 들은 얘기대로 남의 집 담구멍 뚫고 도둑질하다 잡혀서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고 징역살이하고 나왔어요. 화가 나서 그 사람보고 가서 “이 사람아, 자네 때문에 나 이렇게 됐단 말이야.” “어떻게 도 둑질 했어?” 그러니까 “아 이렇게 했지.” 남의 집 담구멍 파고 들어갔던 얘기를 하니까 “하하 이 사람 어리석게 했군. 그런 거 아니야, 내 도둑질하는 것 들을래? 나 봄이 오면 봄 도둑질해 심는단 말이야. 여름이 오면 여름 도둑질해서 김 맨단 말이야. 가을이 오면 가을철 도둑질해서 열매 거뒤들인단 말이야. 땅을 도둑질해서 물 파 마시고, 금을 캐내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해요. 점점 이 사람이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선생님한테 갔어. “선생님, 저놈이 날 속여서 내가 이렇게 됐는데 저놈 이 아직도 이럽니다.” 그러니까 “야, 이놈아, 네 몸부터가 도둑질한 거 아니야? 천지간에 요소라는 거는 다 모아놓고, 그거 도둑질한 거지 네 거라는 게 어디 있냐?” 그건 벌써 이천 년 전에 열자라는 사람, 장자보담 조금 후인지 전인지 그럽니다마는 그때 사람도 벌써 그런 생각 있어서 한거 아니에요.
 
‘그랬다더라’의 종교
그러니까 사람이 내 것이 뭐인지. 정말 따지고 들어가면 내거라는 것 어디 있어요. 종교에서 어떤 종교에든 공동으로 하나 믿는 거가 “버려야 된다.” 내거라는 것 없어져야 된다고 하는, 내거 내거해서 마지막에 내 이름, 나란 생각까지도 없어지는 것, 그 자리에 가야 된다고 하는, 말은 쉬운데, 말은 쉬워. 처음에는 참 좋다, 거 참 좋다, 나 미처 생각 못했는데 좋은 생각이다, 날 버려야 된다, 그 다음부터 일어서서 설교를 해요. 버리지도 못했는데 말이 좋으니까 설교를 들렸다해요. 종교가 이렇게 돼서 잘못되는 거예요. 적어도 내가 남을 보고, 나도 죄인 중의 하나지만, 그래도 나잇살이 들었으니까 그런 점은 지금도 많이 생각하느라고 그래요. 내가 남 앞에서 말을 할려면 내가 체험이 되고야 하겠는데, 듣기에 좋았다고 해서 그렇지, 나도 이제 다 알았다 그래 천만에! 천만에!
아까 우리가 인도의 사종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거 참 이해하기 어려운 거예요. 아직 채 없어지진 않았어요. 적어도 법적으로는 없어졌어요. 그건 참 잘된 거야. 아닌게 아니라 거기 간디의 힘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야. 간디의 힘이 있으니까 됐지. 그러나 지금 봐도 없어졌는가 하면 안 없어졌어. 그건 인도로 가봐야 알아. 그러니까 자신 있게 말할려면 인도 가보지 않고는 말 못하는 거예요. “너 어떻게 아냐?” 그러면 “나 책에서 보니까 그래.” 그렇게 되면 그만 말에 힘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이 나라의 기독교도들의 아주 근본 결점이 뭐냐 그러면, ‘그랬다더라’의 종교라고 그래. 이건 그랬다더라의 종교인데, 종교는 ‘그렇다!’의 종교지 ‘그랬다더라’의 종교가 아니에요. 사람은 내가 없다, 나는 아니다,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아니라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어디서 들었냐? 바울한테서 들었지, 요한한테서 들었지 그래요. 그러니까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조금 나아요. 하지만 그게 말이 잘못 만들 때는 크게 잘못 만든단 말이야.
 
이게 젊었을 때는 그 생각이 잘 안들어가요. 부대껴보고 부대껴보고, 말했다가 창피도 당해보고, 욕도 먹어 보고, 좋은 뜻으로 해줬는데 저기서 나무람을 당해도 보고, 나는 아는 것 같아서 했는데 반대에 부딪쳐 대답도 못하고 혼도 나보고, 이제 이런 게 있게 돼야 조금 삼가서 “오라, 내가 밝히 알기 전에는, 내가 몸으로 체험하기 전에는 이거 못하는 거로군!” 그러는 거예요.
기독교가 한 백 년 전에 들어왔는데, 목사님들이 목사님이 채 못됐어. 누구들 말대로 하면 본질로는 유교대로 있고 불교대로 있고 샤머니즘대로 있는 사람들이 신학교 나와서 안수받았다고 목사됐다고 하는데, 속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런데 어디 체험이 됐겠어요. 그 목사가 서양사람 선교사한테 들어가지고 했지. 또 우리는 그 목사한테서 들어가지고 했지. 그래 그걸 받아들일수록 뭐라고 그러겠어요. 세컨핸드(second hand, 中古).
우리 종교는 세컨핸드 종교야. 내가 가서 붙잡아져야 이게 정말 내건데, 내가 낡은 책 사가지고 보는 모양으로 우리의 성경이 세컨핸드북인 경우가 많아. 낡은 책, 남에게 얻어듣고 하는 소리. 그래도 옛날보다 성경을 맘대로 보게 된 것 참 고마워요. 그래도 루터가 그랬으니까 그렇고 더구나 영국의 유명한 킨델 같은 사람은 “나는 이제 이 성경을 소 먹이는 애들까지도 다 보게 만들겠다.” 참 좋은 말이야. 핍박받아 죽으면서까지 그런 일을 했으니까 오늘날 개방이 돼서 이만큼 된거지 내가 잘 나서 됐다는 게 어디 있어.
그런데 일체 못쓰게 만든 건 내가, 나는 내가 내 의견이 그렇다, 따지고 들어가면 내 의견이란 아무것도 없어요. ‘내’ 라고 하는 건 자기가 체험을 해봤어야지. 그래 장개석이 깐에 그랬다 그러지 않아요. “당신들 대포 밑에 서봤어?” 그랬다는 거예요. 자기는 그래도 황포군관학교 졸업생으로서 칠절팔절 많이 겪었으니까, 장개석이도 욕도 먹고 그러다 죽을 사람이지만, 그래도 생각이 좀 있는 사람이거든. 지내봤으니까 혁명 어쩌고 그러면 “당신들 대포 밑에 서봤어?” 대포 밑에 실제로 나가 서보지 못하고 뭘 어쩌고 그러느냐 거야.
의사도 풋내기 의사가 사람 잡는 것, 무당 노릇도 익숙해지면 몰라도 선무당이 사람잡고 만단 말이야. 그러니 고귀한 것으로서, 학문일수록 설었으면 걱정이고, 종교가 설었으면 더 안된겁니다.
이제 이런 말을 하고 이담에 내가 한 말 때문에 내가 심판을 받을거요. 가서 어느만큼 뚫어보는 하나님이 보시고, 아주 죽을 죄로 결정을 하겠는지 그건 모르지, 하지만 말하면서 그런 생각 이 시간에 안할 수가 없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몸으로 지내보는 것이 급해. 십년이 들어서도 내가 해본다는 것, 사과를 내가 입으로 먹어보지 못했으면 사과 얘기 하지 말라 그 말이오. 먹어나 본 다음에 사과 맛이 이렇더라, 먹어도 못 보고, 학자가 설명을 잘 하면 제법 긴 것 같지만 그게 실지가 아니야. 실지에서 멀어. 바울의 말을 들어가지고 그대로 하나님의 뜻을 아나? 안 그래. 바울의 말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한테 가게 하는 중가운데 소개자리,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이지. 예수님조차도 네가 나를 선한 사람이라고 그러냐, 선한 사람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는데 왜 날더러 선하다고 그러냐? 그게 정말 진짜 말이오.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라고 그러지.
 
우리 하나님이 저기 오신다
40장 3절부터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야훼께서 오신다” 하는 말 우리도 나가서 말할 수 있지요. “하나님이 이제 오십니다” 그럴 수가 있지만 그 말이 이제 나가서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한 힘이 있냐, 그러면 거 못 그렇다 그 말이야. 왜? 말은 그 말인데 그것은 소리만이지 그 속에 영의 힘이 들어 있지 않아. 그런데 이 이사야가 할 때에는 그는 자기 속에서 체험을 해 한거니까, 이것이 많은 것에 결정이 돼가지고 “하나님이 오신다”, 말이 쉽지만 하나님이 오신다고 어떤 놈이 감히 잘라 말할 수가 있어요? 어디를 온단 말이야. 서울 온단 말이냐, 이북으로 온단 말이냐, 이 시간에 온단 말이냐, 다음 시간에 온단 말이냐? 그걸 신중하게 생각한다면 이 말을 누가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걸 보고도 그러면 그거는 어떻게 하지, 2천 6,7 백 년 전에 이사야보고 이랬지만, 오늘날 내가 읽을 때는 한국에,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오신다고 그럴 자신이 있냐? 없냐?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이 오신다고 그럴 자신이 있냐? 없냐? 우리 있는데는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고 그런 일반적인 얘기로 하면 여기 계신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고 아주 구체적으로, 여기, 지금, 이 시대에, 지치고 지쳐서 다 죽게 된, 나라가 망하고 포로까지 돼가고 한 그것을 보고, 앗시리아 사람들한테 짐승대접 받고 이집트 사람들한테 그렇게 갖은 압박을 받은 사람들보고, 이제 “야훼는 오신다” 그럴 때 그게 그 사람들한테 체험이 돼. 실감이 되도록 하는 말이에요.
 
사막에 길을 내라.
우리 하나님께서 오신다.
 
이거는 팔레스타인을 가봐야 알아요. 안 가보고는 또 모르는 거예요. 얼마나 불모지인가. 우리 여기 이런 데 같으면 하나님이 무슨 사막으로 오신다, 빈 들로 오신다, 그건 무슨 소리야? 그럴 거예요. 거기는 눈을 들어 턱 보이는 땅은 그저 사막 아니에요? 그저 돌만이고 그래. 나는 예루살렘을 가보고야 예수님이 시험받으실 때 “이 돌을 명해 떡이 되게 해라” 그랬겠다, 그적에야 알았어. 왜 그런고하니 눈에 뵈는 건 돌 밖에 없어요. 그 나라에서는 돌이 떡만 된다면 자동적으로 다 살거야. 다 잘 살거야. 뭐 사업가 신세질 거 없어요. 산이 왼통 돌이요 길가에도 돌인데 말이오, 그걸 어떻게 조금 치워놓고 감람나무도 심고 그랬지. 우리나라는 거기다 비하면 조각조각이 옥토예요. 그런 옥토, 우리보다도 더 큰 나라도 있기는 있지만, 거기 가봐야 돌이 변해 떡이 되라고 했겠다, 왜 하필이면 왜 돌이냐? 땅이 귀해 흙이 귀해서 그러는 사람들에게서 그러니깐 그랬을 것인데, “사막에 길을 내라” 한 것도 우 리는 모르지. 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 박토에, 가도가도 모래밖에 없는 그런 땅에서 산 민족이야. 거기서도 수천 년 역사를 살아왔단 말이야. 사람이 한번 살기 시작한 곳이란 떠나기가 대단히 어려워. 그러니까 우리 생각대로 하면 살기 어려우면 다른 데로 가면 그만 아니냐. 그렇지만 그렇게 안돼. 이 나라, 이 형편이 없는 나라지만 버리고 다른 데 어디 갈 데가 있나?
갈 데가 없지요. 갈 데가 없으니까 자연 사람이란 붙어사는 거고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붙어사니까 소위 한국적이라는 것도 생겼고 역사라는 것도 있고 민족의 성격이니 뭐 이런 것도 있지 않아요. 떠돌이 노릇을 한다면 문화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은 정주해 살면서부터 사람 노릇을 했는데, 또 정주해 살게 되니까 거기서부터 또 나쁜 게 나오게 됐어. 소위 문화라고 그래서 요 때꼽 같이 사람과 사람이 방해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법률이요 제도요 하는 것 모두 정주해 살면서 나온거야. 그러니 사람이 문명하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는 데 또 나쁜 게 있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이 말부터 왜 나오느냐 하니 내 속에 늘 있는 말이야. 지금은 이때까지 내려온 이 문명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됐어. 이 문명이 아니었더라면, 기차 없었다면, 자동차 없었다면, 전기도 몰랐다면, 수도도 몰랐다면, 우리가 살 수 있었겠나 생각해보시오. 이러니 저러니 그래도 굶어 죽을 염려는 없으니까 이러잖아요. 나는 어려서 났을 때는 흉년에 사람이 먹질 못해 굶어서 죽었어. 우리 촌락에서 죽었다는 말, 눈으로는 못 봤어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듣고 자라난 사람이야. 지금 사람들은 그런 거 모를거예요.
나는 십 년 전, 십 년은 더 돼. 마지막 우드브록(Woodbrook) 갔을 땐데 영국 퀘이커 대학에서 대학생들의 사회투쟁을 위해서 무슨 강연회가 있어요. 그런데 대학생 하나가 참 정직해. 나오더니 뭐라고 그러는고 하니 그날 그 사람들의 제목이 ‘헝거’(hunger) '기근을 없애자’ '기근을 퇴치하자’ 그 말인데, 그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이 “나는 사실 말이지 헝그리 (hungry)가 어떤 건지 이때까지 경험해본 일이 없습니다.” 영국 국민이니까 그럴 것 아니오. 영국은 해지는 때가 없다고 대영제국이라고 그랬다는데 세계 각국에 나가 좋은 건 다 가져다가 거들거리고 하는 살림에서 나왔으니까. “배고프다고 하는 게 어떤 건지 우리는 모르겠소. 그렇지만 지금은 모양이 이렇게 됐으니까 우리도 어떻게 이걸 체험을 해서 이런 민족이 있는 걸 건져야 하지 않소” 하는 말을 듣고 참 정직한 말이다. 그랬는데, 나는 헝그 리는 지내봤어. 우리 날 때 굶어서 사람이 죽는 걸 지내본 사람이니까.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굶는 건 모르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제까지 굶어오던 민족이 돼서, 이제 굶지 않게 되니까 이거 감지덕지해서 이것이 정치가의 덕분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천만에! 그게 정치하는 사람이 그런 거 아니에요.
 
이제는 인류문명의 대세가, 이러하니까 우리보다도 못한 정치하고 있는 놈들도 비행기 있고, 어디 기근이 났다면 양식 날라다가 먹이게 생겼지, 안 먹일 수 없어요. 그러니 그 점만은 옛날보다 조금 좋아지긴 좋아진 셈이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또 배고픈 게 어떤지를 아는 때는 사람 노릇할 가능성이 많이 있었는데 배고픈 것 어떤지를 모르게 되니까 이거 사람 노릇 못하게 된단 말이야. 왜 그런고 하니 배고프다 하는 지경에 들어가면 목숨이 끊어진다 하니까 진짜 노릇을 할 수가 있는데 밥은 다 보장이 돼. 밥 못 먹을 염려는 없고 잠자리 없어 못 잘 염려도 없고, 그 다음엔 사는 것이 심심해져요. 나는 지금 사람들 보면 그놈의 심심하다는 소리 아주 듣기 싫어. 나는 이날까지 80을 거의 다 살아와도 심심하다는 생각 안해봤어. 심심이 왜 심심하냐? 할일이 저렇게 많잖아? 그런데 심심하다고 그러냐? 적적하다고 그러냐? “요새 소일(消日)을 어떻게 하십니까?” 거 아주 못된 말이야. 소일을 왜 소일을 해.
물론 시간을 다들 잘못 쓰지. 잘못 써서 잃어버리는 것 많이 있지만 하여간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고 하는 그런 소리는 그래도 안하고 살아오는 건데, 그건 우리가 옛날부터 모든 것이 부족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게 감사해. 물 한 컵도 고마운 거, 쌀 한 줌도 그저 고마운 거, 그런 건데. 지금은 사람이 살아가는 필수품이란 흔해빠진 거야. 그래서 요전에 석유 때문으로 해서 물가공황이 온거 나는 좋다고 그래. 고맙다, 이렇게 해야 정신 좀 차릴거다, 그저 나쁜 말로 석유가 오늘날로 바짝 말라버렸으면 좋겠어. 아주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담에 많이 죽는 놈도 있긴 있겠지만 바로 될거예요. 내가 무슨 인정이나 있는 것처럼 사람 죽으면 되겠습니까? 그 따위 소리하지 말아요! 하나님이 하실 때는 죄도 없는 인간을 폭풍이 들입다 불면 배 엎질러져서 죄도 없는 사람이 잘 죽어요. 하나님이 죽인 게 아니지.
하지만 능히 그일 해요. 그런걸 내가 잘못해 한 것처럼 하면 좋은 생각은 생각이지만 어쩌면 건방지다 그 말이야. 네가 뭐여서 사람을 죽였다고 그래. 그러니 죽였다는 말 못하면 살렸다는 말못해야 옳잖아요. 죽이지 않은 것처럼 걱정을 하고, 우리가 다 이럭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혁명하는 사람이 모두 다 그런데 착각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혁명도 다 잘못되는 거예요. 가짜 혁명이야. 제가 한다고 하는 혁명은 어제 저녁 여기 썼던 말이 옳아. “천하에 무위(無爲)로 한다.” 한다는 의식이 없어야 한다 그 말이야.
 
나라의 근본문제, 기적 없다
내가 천하 바로잡는다. 이대통령이 나쁜 건, 재주가 없지 않아, 학식도 있고 하지만 “나 아니고 이 나라 어떻게 해.” 그거 틀려먹었단 말이야. 그만한 영감이 없어요, 정치의 수완에서. 하지만 틀려먹었단 말이야. “내가 아니고 어떡한단 말이냐.” 다 피투성이가 돼서 죽게 됐던 거 하나님이 살려쥐서 미국가서 공부해서 박사 돼 돌아오니까, 제가 한 줄 알고 그래. 그 영감이 그러지만 않았다면 해방 후에 이렇게는 안됐을 거요. 참 분한 일이에요.
그러는 것은 내가 그 영감을 나무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반성이 목적이오. 나도 그 영감을 나무라는 것은 나는 옳다, 그런 말인데, 그런 건 아니에요. 이게 민족의 문제인데 이 민족이 어쩌면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했겠냐? 건성에서 노는 거야. 건성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혁명하는 사람도 건성에서 노는 거야. 나는 내가 관계가 되었으니까 답답해서 그래요. 왜 이걸 못하지. 그러니까 결론이 뭔고 하니 내가 알긴 아는데 그럴만한 힘이 없는 것은 내가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그건 주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렇게밖에 판단 내릴 수 없어요. 다른 사람 욕할 것 아무것도 없어요. 이젠 누구도 욕 안하겠어. 못하겠어.
그런 소리나 하려거든 예수 이름은 팔지 말자고. 나는 예수 믿어도 그런 생각은 있어서 믿는 사람이오. 그밖에 좋은 길이 없으니까 십자가에 죽으면서까지 그거 한 사람 내가 안 따라갈 수 없잖아요? 나는 그래도 근대 사람이니까 인격의 자유라는 것이 중심인데, 내가 어떻게 예수를 보고 “내 주님!” 그러고 조르느냐? 저는 저 인격이고 나는 내 인격인데, 내가 왜 내 인격을 내버리고 “종이요” 그런단 말이냐? 그것 때문에 고민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보다 깊은 의미에서 그런 자리가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걸 통과하고 하는 생각이니까 건성으로 예수님이라고 그러고 싶지는 않고, 예수님이라고 그런다면 힘 있는 데까지 그의 가르침에 충실해야겠는데, 예수 이름 빌어가지고 우리 해방신학이라고 부르짖어도 건성으로 논단 말이야. 건성으로 놀기 때문에 속의 깊은 데는 고쳐지지 않고 자꾸 악화만 되지 않아요.
 
물론 수천 년 된 병이니까 일조일석에 고쳐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병이…… 수천 년 묵은 병이야. 내가 천안농장에 갔다가 돈 잃어버리고 한말 있지 않소. 도둑질이 오천 년 밑천 먹은 도둑질인데 그렇게 쉽게 될 줄 알아? 그랬어. 나 그때에 비로소 깨달았어. 밥해달라고, 식모로 있다가 도둑질하고 소년원에 들어갔던 애 용서받고는 나와서 아주 회개해서, 난 정말 내 딸처럼 믿고 그저 가방 안에 있는 돈 쇠도 안 잠그고 방안에 놨더니, 자고 나왔더니 “선생님, 선생님, 얘 어디 갔습니다.” 가슴이 철렁해. 아이쿠나! 그랬는데 그때 돈 오만원하고 시계랑 다 홀딱 가지고 도망갔단 말이야. 옆에 사람들이, 선생님 경찰에 가서 신고합시다. 그만 뒤, 그게 오천 년 밑천먹은 도둑질인데 이제 뭘 그래.
목사님들이 자신이 너무 지나쳐서 그래. 도둑질하는 것도 오천 년 동안 해보고 하는 거야. 그 힘이 내 속에 있단 말이야. 그랬는데 그걸 고치려면 설교 몇 개쯤 가지고 고쳐지겠어요? 적어도 몇 해가 들어. 몇 해가 들어서 되면 다행이고…….
보시오. 성신 받아가지고 병 고친다는 말은 있어도 성신 받아가지고 민족의 성격 고친다는 말은 없지 않아요! 무너지는 나라 성신 받아가지고 세웠다는 말 어디 있습디까? 어느 목 사님 있습디까? 없어요! 잠깐 동안 소화불량 났던 것 이거는 기도하면 심리적으로 해서 효과가 나니까 그럴 수 있지만, 나라의 근본문제는 성령의 무슨 기적으로 된단 말 없어. 기적으로 된단 말 없단 말이야.
 
예수님이 나라를 기적으로 고칠려면 왜 못고쳤겠소? 왜 안했겠소? 바다위로 걸어갈 수는 있어도 나라를 일조일석에 로마 사람들에게서 해방을 시키고 해서 새 것을 만든다든지 그렇게는 안되는 거란 말이야. 죄의 뿌리가 여길 들어갔으면 그거는 다른 거로 아니고 내 마음으로 뽑고 뽑아서, 하루 해 가지고 안되면 열흘하고 열흘해서 안되면 백날이라도 하고, 수백 년이 가더라도 여기서 일어나서 뽑아지는, 남이 와서 때리면서 대답을 받는 건 아니란 말이야. 그걸 아니까 평화적으로 해서 이것이 우러나서 그게 고쳐 난거니까 그걸 보느라고 하나님이 지켜 앉아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모양을 그린다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자식을 잘못 낳아놓고는 말이야, 화도 나고 밤잠도 못자고 밥을 담아놓고 먹지도 못하고 이 자식이 언제 돌아오나? 밤에 열두시가 돼도 자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그렇게 그리고 싶어. 싸구려 싸구려 그렇게 되지도 못한 혁명하지 말라우 제발!
오늘 무슨 조직이라도 해가지고 동원을 시켜서 기회로 봐서 이럭하면 일이 안된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 담엔 그걸 뜯어 고치려면 더 심한 거 있어야 돼. 오늘날까지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 혁명 아니고는 이 세상이 이렇게 못됐겠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내려온 물이 얼마나 우리에게 해독을 끼치고 있나?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로 그렇게 싸웠던 로란 부인이 모가지가 베지면서야 “자유야, 자유야, 네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이 세상에서 죄악을 저질렀나?” 그리고 탄식하지 않았어요?
 
섣부른 목사, 사람 잡아…
글을 읽는 것은, 읽어 지식을 늘이자는 것 아니라, 글은 읽은 다음에는 내 것이 돼야 하는데, 내 것이 될라거든 그 글을 가슴 속에 놓고 끓여. 용광로가 이 속에 있어야 돼. 이 속의 용광로에서 끓이고 끓여서 즉 거기는 될수록 지내가고 그것이 내 속에서 다시 새로운 결정으로, 글이 그래 좋아요. 다 살고 난 찌꺼기를 표시해 놓은 게 글이지만 거기 신비로운 힘이 있어서 그것을 내가 외우고 외워서 내 것을 만들어가지고, 이 속에 있는 내 가슴 속의 용광로에서 들입다 끓이고 끓이면 거기서 녹아가지고 바울이라는 형태도 없어지고 요한이라는 것도 없어지고 칼 마르크스고 뭐이고 그거 다 형체가 없어지고, 내 거로 여기서 다시 체험이 되면, 그 다음엔 막아낼 놈이 없다 그 말이야.
나는 그거는 예수한테서 배우는 거니까 그것은 확실히 믿어요. 그전에 못 듣던 걸 팔아먹는다면 좋겠지만 팔아먹을 생각 조금도 없어요. 내가 잘못해 못나서 이것밖에 못되니까 한탄스럽지만, 할 수 없지. 하나님이 줘서. 그런 때까지는 내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아마 이러다 죽고 말는지 몰라요. 그래도 지금까지 믿는 마음은 있어요. 어느 순간에도, 최후에 마지막 한 순간에도 될 수 있겠지. 왜? 나보다 잘나신 공자님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었으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듣기만 하면 단번에 변화가 일어나는 걸 자기가 지내봤으니깐 그런 말씀하셨는데, 그래 공자님도 뭘로 됐는고 하니, 나보다 전에 있던 주공을 보면 그이가 아주 훌륭한 정치가인데 성인이요, 그런데 그이가 이렇게 말할 때는 나 생전에 못 봤지만 그이가 거짓말 안할 거야. 주공이 날 어찌 속일 수가 있나?
 
나는 공자도 배웠지만, 더구나 예수가 나를 속일 수 있나? 어림없지. 예수를 비교한댔자 어림이 있겠소마는 속일 수 없다는 것만은 믿어요. 속일 리가 없어. 속이는 이 같으면 그랬겠어요. 그러니 그 한 사람이 속이지 않는다고 그러고 내 말로 아버지가 하늘에서 쥐서 하는 말이라고 한 건데, 건성으로 듣고 그저 된다, 안된다, 그런 소리해서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했으니까 수년 동안 철저히 해 봐야 돼, 철저히. 좌우간 해보다가 내 있는 힘까지 해야 돼. 그래 네 마음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몸을 다해서 해봐라.
그 ‘다’라는 말이 무서운 말이에요. 건성으로 다다, “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빕니다. 우리 몸과 맘을 다해서 드린 기돕니다.” 천만에! 나는 그런 기도는 못해요. 다가 어디? 다란 끝이 없어요. 맹자님도 진기심자(盡己心者)는 지기성(知其性)이라, 제 마음을 다한 사람은 바탕을 안다, 지기성(知其性)이면 지천(知天)이라, 제 성품을 알면 하늘도 안다고 그랬어. 그런거 다 굉장히 어려운 밑천이 먹은 거, 체험한 거예요. 그러니 그 진짜가 어떤 거냐? ‘다한다’는 게 어떤 거냐?
내가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남의 글만 본다면, 좋아서 좋아서 이러는 건, 내가 노력할 생각 안해 그래요. 내가 내 걸 가지고 내 집에서야 내가 만든거야 내 거니까 이걸 내가 팔아도 팔고 그럴 수가 있지. 그런 생각이 있으면 남의 글이 좋을수록, 뭐 내가 한 말도 아닌데 그걸 쉽게 팔아먹을 수 있냐 그래요. 한데 그렇지는 않고 맘에 욕심이 있으니까 좋은 말이라면 모조리 가져다가 이걸 가지고 선전하는, 그거 안돼요. 그러면 나도 못쓰게 만들고 다른 사람도 못쓰게 만들어.
 
도대체 우리나라의 결점은 깊이 파고 들려고는 않고 건성으로 놀라고 하는데서, 모방은 아주 잘해요. 그러니까 남이 건축한다더라 그러면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고 이란에 가고 들입 다 하는거야. 그럭하다가 큰 코 다쳐. 원양해업한다면 우리도 원양해업하지 그러고, 북극 가면 북극 가지. 그걸 남이 보고 곁에 있는 사람은 칭찬해. 참 의욕이 강한 민족이라고, 그러지만 건성으로 그러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아요?
자동차, 남들은 자동차를 쓸려면 이게 수백 년 동안 차차 차차 지금에 연습이 돼서 그러는 건데 이게 남의 돈 빚 내다가는 차 생겼다, 나간다, 피스톨이 뭔지 화약이 뭔지 알지도 못하던 것들이 처음에 이렇게 이렇게 해보고야, 잘났구나! 여기도 쏴보고 저기도 쏴보고 그러는 거요. 그러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게 그거예요.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데 섣부른 지식은 얼마나 사람을 잡겠나? 섣부른 목사는 얼마나 사람을 잡겠나?
이 말은 나도 그중에 한 사람으로 틀림없이 들거요. 들 줄을 알지만 이 고백을 안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이 나라가 아주 없어질까봐 물론 걱정해야지요. 하지만 그 걱정 안해도 괜찮아. 그건 나보다도 하나님이 으례 걱정할 것, 나 같은 건 못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수천 년 밑천을 들여서 이 민족을 길렀으면 그걸 내버리겠어요. 그건 마음 놓고 어서 너 될 것이나 주의해라. 네 속에서 네 혁명이나 어서, 네가 새 사람이 되도록 어서, 그럭하면 아마 이 민족이 살 길이 있겠지. 뭣을 내가 안 나가면 천하가 어떻게 될 거냐? 건성으로 그래. 그런 소리 마.
 
씨알이 맡게 될 역사의 법칙
나이 많은 할아버지니까 옛날 그 소리만 하지 이 시대는 이해 못한다고 그럴 거예요. 그건 내가 그럴 줄 알아요. 이거 벌써 수백 년 동안 하나님 없는 문화 해가지고 있다가 그 결과에 나와서 이 벌을 받고 있는 거니까. 여기서 회개하지 않으면 이 인류의 씨 없어질 거요. 나는 없어져도 좋다고 그래. 이거 없어져도 새 거 낼 거야. 하나님의 이날까지의 역사가 그랬으니까 또 그럴 거라 그 말이야. 우리 전에 있던 네안데르탈인이라든지 크로마뇽인, 북경인, 필드타운인이라든지 뭣이라든지 다 우리와 한 인류 아니에요?
씨은 제 본래 밑천을 팔래야 팔 수가 없으니까 상처가 덜난 걸 찾을라니까 비교적, 그래 순수한 한국 사람이란 게 지방으로, 농촌에 가서야 찾지. 도시의 요것들 조약돌 같은 거 한국사람 하나도 없어요. 있을리가 있어요? 나는 그걸 수십 년 전에 가슴에 듣고 못 잊는 사람이에요.
우리 동창 중에, 내 글에도 쓰지 않았어요, 말도 잘 못하고 그래 별명을 귀신이라고 그랬어. 그후에 어떻게 돼서 오산학교 선생 노릇하느라고 가 있는 동안에 들으니까 그 사람이『동아일보』지국을 하고 국민학교를 한다고 그래. 국민학교 졸업생을 낸다고 해서 친구가 하는 거니까 가보느라고 해서 갔는데, 얘기를 하면서 “졸업생이 몇이나 되오” 그러니까 “진짜 조선놈 여섯 명” 그래. 진짜가 뭔지 주를 놓는데 아무것도 없고 그저 가난한 것들, 가난해야 진짜라 그말이야. 지식도 있고 돈냥도 있고 그러면 벌써 민족성 다 팔아먹었어. 서울 와서는 한 민족의 진짜를 하나도 못 만날거야.
 
그런 것을 감정적으로만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못난 것이니까 하나님이 동정을 하신다, 그런 말이 아니야. 그거 건성으로 노는 소리, 그러지만 말고 깊이 생각을 해. 왜 그걸 예수님도 “이것을 잘나고 훌륭한 학자들께는 어두워서 안보이게 하시고 못나고 어리석은 이런 것들에게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랬어. 이걸 왜 아버지의 뜻이라고 그랬나? 하나님의 뜻이 왜 그럴까? 그게 이제 내 말이 그거예요. 못났기 때문에 눌리워 살고, 그리고 하느라니까 제 하나님께서 줬던 밑천을 요걸 땅속에 묻어뒀는지는 모르지만 그걸 팔아먹지는 않았어. 잘난 놈들은 다 팔아먹고 없으니까 거기는 없고, 잘났기 때문에 거기는 새 시대에 못쓰게 되는 거고, 새 역사가 나올 때는 천생 묻어뒀던, 밀려 돌아가던, 그게 구약에서 늘 말하던 소수의 ‘남은자’라는 것, 잘난놈들은 다 돈만 있으면 미국으로 이민가고 프랑스로 가고 독일로 빠져나가고 의사만 돼 도 빠져나가고 간호원만 돼도 빠져나가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다 빠져나가잖아요. 또 아주 할 수 없는 것들도 빠져나가는 수도 있지. 그것도 있어요. 그것도 내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돈도 있고 지식도 있는 것들이 빠져나가고, 못생긴 것들은 못생긴 고로 이걸 앉아 지킨단 말이오.
 
그러는 것은 제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준 바탈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잘나서 제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바탈이니까, 그거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도 자랑할 줄 몰라요. 제가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민중 편을 든다는 거예요. 위에 놈은 밉고 이것만이 고와서가 아니라 사리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가 믿기도 하지만 이해하고야 된다고 하는 거야. 지식을 배우지 못했으면 몰라도 지식을 배운 사람인 다음에는 이해를 해야지. “아 그렇군.” 수긍이 되게 돼야 돼. 그래야 내가 내 마음에 체험이 되어 깊이 들어갈 수가 있어. 우리나라 사람의 결점은 그렇게 할려고 안해. 파고들어갈 생각을 깊이 해야 돼.
이렇게 하는 말은 지식을 다 배워버린 사람은 절망이라, 그런 건 아니에요. 그중에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씨의 본성을 겸손하게 해서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또 유대교인으로서 이 내 전도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들은 내 곳간 중에서 옛 날 책을 꺼내는 모양으로 그렇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더 좋은 현상, 그건 아주 쉽지 않은 일이고 보통으로 말하면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요점은 내가 하는 줄 모르게 해야 돼.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본래 하나님이 하는 거니까, 내가 할려는 생각이 앞서면 하나님이 하실려는 일에 방해를 받아 못쓰게 돼. 아까 하던 말, 오늘 이 말만 하고 맙니다마는, 어쨌거나「이사야」읽은 후에 나오는 소리니까「이사야」해석 못하더라도 괜찮은데, 해방 이후에 내가 참 좋아한 건 그거예요. 그거는 내가 그 동안에 글로도 썼지만 또 첨 듣는 분도 있을까 해서 그럽니다.
 
멋에 사냐? 뜻에 사냐?
우리 민족이 일제 말년에 지쳤단 말이야. 지친 민족이라는건 원고 하 니 사람이 자기 자존심을 잃어버린 민족이야. 육체의 피곤도 그렇지만 마음에 자존성을 잃어버리면 지친 민족이야. 꼼짝 못해요. 왜 그랬는고 하니 여기 지금 다 모를거요. 나는 그래도 보기에는 이렇지만, 다 곱게 자라난 사람이지만, 나도 내 잔등으로 쌀을 구하러 수십 리를 갔다오고 했던 사람이야. 여러 번은 안했지만 그래 본 사람이에요. 양식이 그렇게 없었다 그 말이야. 우리 집이 어떤고 하니 잘 사는 편이에요,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땅도 근 삼만 평이나 되는 땅을 가지고 있었고 했으니까. 그것도 내놓고 얘기를 해도 나쁜 일을 해서 착취를 했거나 그런 거 아니오. 그건 뭐 내 아버지라고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건데도 마지막에는 살기가 어려워 일일이 배급줬어. 지금 사람들은 가난이요 뭐요 해도 그거 몰라요. 그거 모르니깐 그래서 건성으로 노는 맛에, 또 하나는 뭔고 하니 엊그제 어느 잡지에서 글 써달라 해서 써주면서 그 얘기 했소만 “멋에 사냐? 뜻에 사냐?” 이놈들 보기 싫은 거는 모두 멋에 살겠다는데 나 아주 화나는 거예요. 멋은 무슨 멋이라고 그래. 소위 글 읽었다는 사람, 문인이라는 사람, 예술가라는 사람, 한국의 본래 그 특질은 멋을 아는 데 있다,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그래 잘 살았군! 4천년 동안 그런 소리 곧이듣지 마시오. 날보고 고집이라고 그럴는지 몰라도 멋은 해서 뭐하겠소? 아무리 잘한다 해도 멋 부려가지고 천당에 갈 수는 없겠지. 천당은 멋은 없는 곳이오. 참이 있는 곳이지. 멋이라는 것도 참이 있는 데서 물론 나와, 나오긴 나오지만, 옷 자랑, 얼굴 생긴 자랑, 목청 자랑, 솜씨 자랑, 그림에 내는 멋, 문장에 내 는 멋, 그런 따위 멋 아니오.
그래. 내 일부러 그렀어. 우리나라 본래 멋이 있다면 있어. 이런 얘기는 안 할려고 했는데 딴 얘기를 하게 됐군요. 우리나라 아주 멋쟁이가 있어요. 멋쟁이 누군고 하니 바보온달이라는 사람 멋쟁이오. 어째 멋쟁이냐 그러면 이 사람이 문과 무를 다 잘하는 사람이에요. 내돋치지 않아요. 도시 있을 때는 벼슬아치 꼴보기 싫으니까 산간에 가서 자라요. 얼마나 어려웠으면 무슨 공준지 찾아가니까 어머니가 느릅나무 껍질 벗겨다 먹겠다고 산에 간다고, 그렇게 사는 사람인데, 옷은 누더기만 입지. 그래 거리에 나오면 애들이 놀려주고 그랬을 거야. 그래 바보 바보 그런 거요.
 
그랬는데 일이 재미있게 되느라고 임금의 따님이 거길 또 찾아갔다. 찾아가니까 그럼 함께 살자, 그래 부부가 됐지. 그래 나라의 부마(사위)가 돼가지고 들어가면 재상이요 나오면 장군, 출장입상(出將入相)이라, 훌륭한 사람 아니오? 안에 들어오면 정치가고 일이 있어 나가면 유명한 군인이고 그러다가 마지막엔 죽지 않았어요. 죽어도 얼마나 정성이었던지 관이 안 떨어졌대. 그런 말은 기적 같은 얘기라고 거짓말이라고 그러진 마시오. 까닭이 있어 나왔을 거야. 그때 관이 떨어졌거나 안 떨어졌거나 간에, 우리나라에 있는 역사는 뭔고 하니 “온달이가 죽어서도 관이 안 떨어졌다” 그것이 역사의 사실이야. 전연 사실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안돼요.
쓸데없는 놈들이 선죽교의 피가 정말 핍니까? 돌입니까? 아, 그건 물론 돌이지만 말이야, “이것은 정몽주의 피다” 그럴 때는 역사가 그렇게 만든거요. 그걸 "뭘 깁니까?” 한가한 놈도 있다, 과학 그럭할려고 했더냐? 그거는 공부할 줄 모르는 마음이오.
그래 관이 안 떨어지니까 그때 가서 공주가 그러지 않았어요. “아, 이젠 다 됐는데 왜 그러시요.” 그러니까 떨어져 갔다고 했는데, 그런 게 멋이야. 그것은 명동거리에 왔다갔다 하는 그따위 멋쟁이와 아주 다른 멋쟁이야.
그담에 멋쟁이 또 누구 있는 줄 아시오. 신라의 처용이라는 사람, 이 얼마나 멋이 있던지 글 잘하는 사람이지. 그 사람 종교의 교도요. 밤에 나가 놀다가 들어와 보니 딴 놈이 들어와 잔다, 어느 놈인고 하니 천연두시키는, 마마시키는 귀신이 처용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걸 탐을 내서 슬쩍 들어가 끼고 자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 같으면, 나부터도 어디 가서 도끼부터 찾았을 거야. 두 연놈을 단번에 가서 찍을려고 그럴 터인데, 이 사람이 그러질 않고 즉흥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췄다고 그러잖아요.
 
동경 달밝은 밤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사 자리보곤 가랏이 넷이러라
둘은 내해러니와 둘은 뉘해런고
본디 내해다만은 아산을 어찌하리요.
 
우스운 소리지만 말이야. 그런 멋쟁이가 어디 있어. 이게 정말 멋인거야. 그게 멋인 거야.
또 그담에 더할까요. 을지문덕이 군인으론 몰라. 군인은 깝대기만 보는 사람, 정말 을지문덕의 놀라운 점은 군인성, 그 사람이 정말 군인이야. 수양제하고 싸움을 하는데 압록강을 건너서 삼십만이라고 그랬소. 그리고 우리나라로 쳐들어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 양반이 압록강에서부터 슬슬 쌈하단 피하고, 쌈하단 피하고 그래서 칠전칠주(七戰七走) 일곱 번 싸워서 일곱 번 도망했다고 그랬어. 그런 거를 보통은 내 어렸을 때 선생님도 잘못이야. 꾀로 살살 쫓겨가지고 쫓겨가지고 유인을 해 들어오라고 그랬다, 그게 제법 잘 안 것 같지만, 어리석은 것, 그런 게 아니에요.
을지문덕이 본래 어떤 사람인고 하니 우리나라 고유한 종교의 신자예요. 그 증거가 뭔고 하니 그 지은 글을 보면 알아. 이제 청천강가까지 온 다음엔 이 양반이 쓱 글을 한 수 지어서 적장 우문술에게다가 보냈다 그 말이야. 얼마나 멋있어요.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당신의 싱그러운 계책이 천문을 다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묘한 산 놓은 것이 지리를 다 뚫어 알았어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쌈해가지고 공이 이미 높았으니
知足頃云止(지족경운지) 이제는 족한 줄 알고 좀 그만두면 어떻소
 
지족원운지(知足康云止)라, 그거는 할아버지가 손자보고 하듯 하는 소리예요. 물론 교만한 생각이 아니지만 지족(知足)이라는 말이 도교사상이란 말이야. 우리나라 본래 있는 사상으로, 사람은 족한 줄을 알아야 한다. 평화주의예요. 족한 줄 아는 것. 그러니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는 그런데 임하면서 일곱 번을 싸워서, 될수록 싸우지 말자, 싸우면 네가 이겼거나 내가 이겼거나 사람 죽이지 않냐? 그 노릇을 할 수 없지 않냐?
 
제3의 세력이 나왔는가
여기 고보래상이 와 앉았지만 일본사람은 그런 교육에서 그런 사상으로 내려왔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교육이 절정에까지 가본 것이 대동아 전쟁 해본 것. 대동아전쟁 하다가 낭떠러지에 그저 거꾸로 박히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뜻이 있는 일본 사람은 고맙다는 거야. 만일 이러질 않고 대동아전쟁에 패전을 안했다면 일본의 교만이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패했다가도 요새 도로 교만해지는데, 얼마나 교만했는지 아세요. 중국 사백주가 유럽보다 큰 건데 말이야. 그런걸 일본 군대 몇이 가서 다 짓밟았단 말이야. 일본 사람 천하가 돼 마음대로 세계를 다 통일하자고 그랬어. 그랬는데 중국의 쿨리들, 거지들은, 북경 천안문가에 떡 앉았는 거지놈들이 “만만디캉캉” 그랬다, 만만디캉캉이 뭔고 하니 “이따 보자” 이따 보자, 그거 평화주의예요. 마음이 넓은 거야.
그래서 우리가 뭐라고 그랬나 하면, 일본군이 중국을 점령했으니 자랑하지만 고양이 소대가리 맡은 거다, 고양이가 아무리 먹어도 소대가리 다 못 먹어. 고양이 소대가리 맡은 거다, 안 먹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패전이 됐으니 말이지, 일본 민족 행복한 민족이오. 그렇게 돼서 전쟁주의로 나갔더라면 밑천도 못 남았을는지 모르겠는데 다행히 패전을 해서 고쳐 일본으로 돌아간 건데, 또 일본이 저러니 역사는 참혹한 거요. 되풀이 되풀이 어떨는지 몰라.
 
그래 그 을지문덕의 멋이 있는 걸 알아야 돼. 멋소리 알았거든 그런 걸 알고 하겠으면 하고, 그런 거 아니고 소위 되지도 못한 걸 그걸 멋이라고 할려거든 아예 민족 팔아먹는 얘기로 아시오. 못써요. 그런데도 이런 것을 소위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자랑으로 이젠 촌까지 텔레비가 들어갔다, 몇 퍼센트다. 나라는 그걸로 망치고 있는데, 일본도 결단이 만났다면 텔레비 때문에 결만이 난거고 우리나라도 결딴났다면 텔레비 때문에 결만난거요. 당초 시작은 미국에서 시작이 돼가지고 미국 놈들 물자가 너무너무 많아서 그래서 잘못해가지고 그것이 앞장을 서서 나가니까. 미국이 그처럼 못되게 구니까 흉악한 소련이 나왔지. 반대가 있는 법이오. 그러니 두 계급,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아주 재미있담 재미있는 싸움이오.
이제 그렇게 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슨 새로운 게 나와야 할 게 아니에요. 그런 걸 어디서 찾을까? 그런 건 우리 하나님의 여기 이 그릇(성경 가르키면서)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 말이야. 다른 데는 몰라. 학문이 많이 있지만 근본을 말한다면, 미국의 그런 주의도 아니고 남아서 남아서 그저 허트는, 들입다 노는 소비주의 그것도 아니고, 소련 놈들이 그저 사람 죽이고 죽이는 공산주의, 그것도 아니고. 정말 평화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이치가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이것밖에 다른 데 별 신통한 게 없지 않아?
시대가 그동안에 학자들이 옛날의 학자는 학문을 하면서도 종교적인 신앙을 버리고 하지 않으나까 학문이 종교적으로 이렇게 적응을 해갈 수가 있었는데 근래에는 종교는 내버리고 학자들만 했기 때문에, 그 학자들의 말이 우리의 약이 될 수가 없어졌어.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다시 이 학문이라는 거, 그래 문예부흥이 다시 돼야 한다는 거 난 자주 그거요. 서양이 그렇지 않소? 문예부흥 돼가지고 그 다음에 산업혁명 있고, 또 종교개혁 있고, 이럭해서야 근세가 됐고, 근세에 인도주의가 조금 발달해서 세계가 조금 밝다 하게 된 것을 고만 잘못돼가지고 이렇게 된 것인데, 이제도 또 학문의 풍이 달라져야 돼. 학문이라는 것이 종교에서 떠난 것을 자유인 것처람 생각하지만 그건 마치 어린애가 아버지 품을 떠나 제 마음대로 노니 좋다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잠깐 동안은 상쾌할는지 모르지만 어느 웅덩이에 빠져죽고 말거야. 학문의 말로가 그렇지 않을까?
내가 낡은 사람이라고 해서 구식적인 생각이라고 그렇게만 보질 말고, 나도 내딴으로는 생각을 하면서 하는 말이니까 참고해 들으시오. 그러니까 언제 그렇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 날에 있는 역사를 바른 길로 끌어가는 것은, 저 사람들에게 기다릴 수는 없고 이 못생겼다는 이런 사람들이 해야 할거다, 그러는데,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쪽 세력도 아니고 저쪽 세력도 아니고 제3세력이 나왔다는 걸 상당히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 제3세력의 국가에서 하는 것이 반드시 기독교적인 순수한 신앙이냐? 나는 그렇게 보질 못해요. 그런 것의 폐해를 우리 자신이 지금 입고 있어요. 그러니까 해방신학이라고 그러지만 해방신학이 정말 예수의 정신에 철저한 해방신학이 되겠나? 그저 이 세상 학자들의 말을 들어서 사회혁명하는 그런 이론에 너무 끌려가질 말고 성경의 순수한 입장을 가지고 하는 해방신학이 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일 거요.
그러니까 우리 하는 일에 방해가 있다면 아주 분하고 큰 방해가 있는 건 뭔고 하니 산업선교하는 것을 불순하다고 몰아치는 거요. 그건 나쁜 거요. 나쁜 거지만 이런 일이 왜 일어나나 그러면 우리더러 반성하라고 그런다 그 말이야.
 
혼자라도 항거할 줄 알아야……
너 정말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평화주의에 입각해서 산업선교하는 거냐? 그렇잖으면 적어도 만족은 아니 하더라도 풍으로 마르크스주의 혹 무슨 그런 거 영향 받지 않았냐? 안 받았다고 할 사람 많지 못 할 거야. 바로 이게 문제라 그 말이야. 그러니까 순수한 비폭력으로 하지 않고는 노사관계 바로 안된다, 이런 것을 우리더러 지금부터 깊이 반성해보라고 해서 그러는 거요. 하지만 우리 편에서 생각을 하면 그런 것을 아주 좋은 기회로 삼아서 깊이 반성할 수가 있다. 그런 게 없었던들 우리가 잘된다, 잘 된다 이래 가지고 미처 생각 못하고 불순한 생각을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 반성은 많이 할 수 있어요. 나 자신에게 관계 안된다고 범연하게 지내지 말고 어차피 이건 민족적으로 당한 문제요, 세계 인류적으로 당한 문제니까 이런 데서는 사양을 하지 마시오. 공자님의 좋은 말이 있어. 선을 행하는 데서는 선생님이라도 사양해서는 못쓴다고
처음에 되지도 못할 일에 앞장을 서서는 그건 못써. 그러진 마시오. 생각으로만 그런거 아니라 성경을,「이사야」면「이사야」를 잘 읽어가노라면 어느 때 그 확신이 올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우리도 할 일이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사람은 보람이 있어야 사는데 무엇을 하는 게 보람된 일이겠나? 멋으로 가지고는 보람된 일이 안 생겨. 거기 넘어가지 마시오. 거 나쁜 놈들이야. 그림깨나 그린다고 음악깨나 한다고 밤낮 멋이라고 그 소리 해가지고 사람 다 못쓰게 하고, 텔레비는 농촌에까지 들여보내가지고 시에미 며느리가 같이 앉아, 에미 딸이 같이 앉아 그걸 보곤 멋지다고 그러고, 그러고서 민족이 옳게 될 리 있어요!
거기 대해선 혼자라도 항거할 줄 알아야 돼. 보겠거든 스위치 껐다가 필요한 것만 딱 보든지, 보는 겸인지라 이것도 좀 볼까, 그럭하면 어느 결에 그것이 내 마음에 흘러들어서, 그럭하곤 거기 성령의 감동 안 와요. 올리가 있어요?
 
그렇게 문명의 아주 나쁜 구정물 속에 우리가 사니까 이젠 우리 자신이 맑게 하도록. 나도 이제 최근에 와서야 우리집에 정수기 갖다 달았어. 아닌게 아니라 수도물이, 다 같이 먹는 수도물이, 먹으면 죽겠는데, 거 나쁜 건데, 또 사실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신용 있다고 해서 삼만 오천 원이나 주고 정수길 갔다 끼웠는데, 또 수압이 낮으니까 나오질 않아. 새벽이나 돼야 요렇게 나와서 맑은 물이나 받아먹습니다마는 몸에 정수기를 끼우지 않고는 안되겠거든 지식의 정수기를, 마음의 정수기 으레 끼워야 돼. 다 듣지 마시오. 그러니까 다 돌아가는데 할 수 없지. 그 라디오들을 수밖에 없지 않아요. 쓸데없는 소리 하거든 꺼버리시오! 장사치의 광고 내가 왜 들어쥐! 뭣할려고. 나는 세상이 나 같다면 장사 하나도 안돼 갈 거라고 그래. 저 암만 그래도 난 까딱없어. 광고 듣지 마세요. 열 번이래도 또 나오면 꺼버려. 뉴스만 듣겠으면 뉴스만 듣고. 그건 들어, 그건 안 들을 수 없지. 그건 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니 좀 어렵지만 어렵더라도 그렇게라도 해서 좀 갈라가면서 할 생각을 해야지. 멍청하게, 물타 놓고 그럴 수는 없다 그 말이야.(중략)
 
영원히 살아 있는 시
그 다음 계속해서
한 소리 있어 명하신다. “외쳐라”
마음속에 “외쳐라” 하는 소리가 들려. 그러니까 이사야가
“무엇을 외칠까요 하고 나는 물었다.”
“하고 나는 물었다” 그렇게는 않되 있어. 요새 글로 쓰니까 그렇지. 이거 개역은 개역인데 그전보다 맘에 안드는 점이 많이 있어요. 이담 여러분이 원어 많이 배워가지고 좀 잘 번역하도록 해보시오.
“모든 인생은 한 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가는 야훼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이건 정말 영원히 살아 있는 시예요. 시를 쓸려거든 이렇게 정말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웬 시가 그렇게 많긴 많은데 시 하나도 무슨 소린지 모를 시만 많아. 그건 내가 또 도매금으로 남의 시 너무 멸시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시를 홍(興)하기 위해, “시(詩)는 흥야(興也)라.” 시는 일어나기 위해, 정신이 일어나기 위해 읽는 거지. 거저 뭐 멋지게 놀기 위해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게 옛날 사람은 “시(詩)는 언지야(言志也) 라.” 시는 뜻을 말하는 거다, 말할 뜻이 있으면 시도 쓰지만 뜻도 없이 그저 말장난으로만 “태양이 하품을 한다, 구름이 낮잠을 잔다.” 그까짓 소리는 안 들어도 괜찮아. 그건 말로 꾸미는 거예요. 사상은 없는데 말로 꾸며본다고 하는 거. 영 아무것도 뜻이 없는 미(美)를 지워 볼려고, 의미가 없는 미(美)를 만들어 볼려고, 그런 미 몰라도 괜찮아.
참은 참이기 때문에 참을 붙들면 참 그 속에 미가 있어요. 진선미(眞善美)라고 하는 그 미, 그래 아까 을지문덕이 한걸 보면 그대로 거기 멋있고 미가 있어요. 전쟁을 해 일곱번 패했는데, 시로 써 보냈는데, 그래도 안되니까 반격해라, 그래 청천강에서 모두 내리몰아서 없애버렸다고 하는 말인데, 그러는데 참을 하기만 하면 거기 미가 저절로 따르지 않아요.
 
참이 뭔지는 잊어버리고, 그럭하고 미리 만들어볼까. 세상이 얼마나 깝대기가 됐으면 미스 유니버스 내보고 미스 아시아 내고 미스 코리아 내고 미스 뭘 내자고. 그건 해 뭘하는 거야. 할 일이 너무 없어서, 할 일을 내버리니까 세계가 이렇게 답답해져서. 이제 언제 미·소전쟁이 나겠는지 모르는데, 무슨 미스 유니버스는 뽑아서 뭘 하겠단 말이야. 한국 한 구석에서 내가 그따위 욕하나 하기로서 무슨 효력이 있겠소마는 괜찮아, 하나님이 들으실 줄 알고 욕이 나가거든 욕하시오. 그런 거 욕 좀 해야 돼. 뭣이고 흉내 내느라 신문마다 신문마다 그거 하는지 왜 하는지 아시오? 독자 늘여서 돈 뽑아 낼려고 그러지 우리 사람 되라고 하는 줄 아시오? 천만에! 그런 소리 아예 듣지 마시오. 할 수 없으니까 그놈의 신문 보기는 보지만, 그놈들이 그러기 위해 하는 건 줄 알고 안 넘어갈 때는 안 넘어가야지. 이건 그저 외국 예술품 갖다가 전람회하는 데 좋다 좋다 가보고, 춤춘다고 해도 가보고, 씨름한다 해도 가보고, 그럭하느라고 내밑천 다 팔아먹고. 돈의 밑천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양심의 밑천이 다 없어지고 말아요.
 
두려워 말고 외치라!
그래 아까 하던 말 내가 중가운데 잊어버려서 지금 생각나니까 합니다만, 해방될 무렵에 우리 민족의 마음이 지쳤다 그 말이야. 왜 그런고 하니 일본사람에게서 해서는 안되는 일인 것을 내가 내 양심을 죽이면서 복종했다 그말이야. 너 이름 고쳐라, 이름고치고, 성 고쳐라, 성 고치고 그러니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이 자동적으로 안 와. 내가 왜 한국 사람인데 내 성 고친단말이야. 할 수 없이 누르는 것 무서우니까 고쳐놓고, 핑계가 애들 학교 보낼려니까 할 수 없지. 그러고는 이제 야마모또도 되고 야마다도 되고 나까야마도 되고, 모두 그랬단 말이야. 그랬으니 양심이 이게 불 맞은 쇠야. 쇠가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낙철이라 그랬어. 불 맞은 쇠 같아서 아무것도 못해. 나오라니까 군인으로 나갔지. 못할 짓을 양심에 거스리면서도 내가 살려니까 할 수 없지. 이 육체가 살려니까 할 수 없지, 그러고 이 양심이 형편이 없어졌단 말이야. 그런 민족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야. 만일 그런 역사가 계속이 됐던들 사람질 못하고 말았어. 일본 사람의 종노릇이나, 일본 사람이 고등관리는 시킬 리가 없고 그저 아랫니거나 하니까 밥은 벌어먹고 새낀 낳아 가겠지만 노예 살림이지 신통한 거 없었을 거요. 민족문화고 뭐고 없고.
아,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싸워 이긴 것도 아닌데 해방이 턱 됐다. 그러니 이게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의 무조건 용서라” 그말이야.
 
여기 지금「이사야」40장 “내 백성을 위로하고 위로하라.” 왜? 너무 지친 걸 채찍으로 치면 죽어버리지 살아갈 가망이 없으니까. 저걸 살려서 힘을 쓰도록 할려면 “야 문제없다, 내가 이제부터 말썽 안 시킬 거니까 나부터 안심해라.”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형제끼리 싸움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와 싸운 셈이지. 이 세상의 아버지와 싸웠다면 하나님과 싸운 거야. 하나님과 전쟁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 불행이 오는 건데, 예언자들은 그렇게 본 사람이야.
그러니까 문제가 해결이 될려면 어떻게? 하나님과 둘 새가 풀려야겠는데 그렇다면 무조건 용서를 선포하지 않고는 안돼.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그런 예언을 주신 거요. 그래서 이 백성이, 지치고 지쳐서 살 보람을 못 느끼던 민족이 외국에서 포로로 됐다가 거기서 오면서도 노래 부르면서 돌아오고, 묵은 데를 다시 갈고 무너졌던 성을 다시 쌓고, 거 얼마나 소생하는 기운이 있었겠나! 우리가 해방 후에가 꼭 그런 거예요. 그래서 나는 참 좋았어요. 나는 그때 그대로 안 있고 면자치위원장, 군자치위원장, 도에선 교육부장, 이제 생각을 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 철이 없어 그랬지, 거 뭘하러 나가겠어요.(중략)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질러라.
 
두려워 말라는 소리 잘 알고 넘어가야 돼. 겁이 있어서는 못써. 겁이 없어야 해. 두려운 생각을 말아야 하는데, 사람이 왜 두려워하느냐 그러면 욕심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거. 욕심의 중심은 뭔고 그러면 나 자아라는 거예요. 자아가 요것 못 놔하면 그저 뭐 할 것도 많고, 할 것 많은 다음은 겁 많은 거. 그러게 가족이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많고 양심이 약해지기 쉽고, 학문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는 또 약해지기 쉽고, 지위 있는 사람은 물론 그렇고. 그러니까 이상은 무소유(無所有)라,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가지지 말라는 말은 그저 아무것도 없이하라, 그런 말은 아니에요. 돼오면 가질 수도 있지. 하지만 내 거로 알지는 말라 그 말이야. 집을 내가 쓰고 있다, 친구가 지어줬다, 소유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 집 안가질거야 그럭하고 거지노릇 할 거야. 그럴 생각이 있으면 그래도 좋아요. 하지만 구태여 그럴 것까지는 없고, 호의로 해서 받을 만한 거는 받아도 좋아요. 나도 친구가 지어준 집에 살아요. 하지만 그거 내거거니 하는 생각은 말라 그 말이야. 이것은 친구가 준 거니까, 하나님이 준 것이지. 이 세상에 만일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까닭도 없는 친구가 나한테 집줄리 있어요? 하나님이 시켜서 그런 거니까 그걸 내 거라고 그럴 수가 없지. 하나님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경우 그건 관리인으로 있는 것. 돈을 가져도 그렇고, 심지어는 기술까지도 학식까지도 그렇게 생각해야 옳은 거. 그걸 안 그러면 그거 언제 잃어버릴까봐 맘이 약해져.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의 하나님께서 저기 오신다.”
 
아주 구체적인 말이에요. “하나님이 저기 오신다.” 이건 상상으로 참고서를 읽어가지고 학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눈에 반드시 보였다 안 보였어도 괜찮아. “하나님이 오신다.” 지금 이 시국에 하나님이 오신다! 아주 그런 걸 실감한 사람이야. 체험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힘이 나겠나? 안 나겠나? 보시오. 요점은 너를 보지말고 이제 하나님 이 일어서서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오시는 거니까, 그러니까 용기내라! 용기낼 뿐 아니고 그 하나님 오시는데 길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
길 준비가 뭐야? 평탄해야 하지 않아? 마음의 갈피갈피, 높은 부분 낮은 부분, 어떤 것 너무 교만해 못쓰고, 어떤 건 너무 음험해서 못쓰고 그런 거 없애라 그 말이야. 여기 이 사막을 고쳐라. 결국은 여기 이 속을 설명하는 건데. 내 가슴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환히 뚫려 뵈도록 까지.
 
곡절을 알 수가 없어
이 세상에선 내 처지도 좀 생각해주시오. 이 곡절을 알 수가 없습니다. 곡절이 뭔고 하면 꼬불꼬불한 길이야. 체제가 어떻게 됐는지 곡절을 알 수가 없어. 옳지 못한 건 다 꼬불꼬불이야. 하늘에서 뜨는 해는 환하게 나요. 꼬부라진 데 어디 있어요. 하늘에 뚤린 분인데 왜 꼬부라지겠어요. 세상이 정당한 것일수록 옳은 것이 올 때에는 나는 미리 통지하고 간다, 그런단 말이야. 연애할려고 할 때는 몰래 해야 돼. 그러니까 그거 해서 소용없는 거야. 데이트할 때는 내놓고 하면 될 수가 없지 않아? 사람이니까 약해서 그럴 수 있기는 있지만, 그럴 때 그만 데이트 재미가 있어 하면 내 양심이 죽어버려. 그래 그걸 벗어버려야 하겠는데 안 벗어져. 그게 큰 문제라 그 말이야.
그래 그 힘은 이거라도 보느라면,“사막에 하나님의 길을.” 뜨끔해. 그게 무슨 소린고 하니 감추는 것 없애란 말이지. 어느 모퉁이에서만 만나지 말라는 말이지. 구구하게 편지해가지고 하지 말란 말이지. 그러는데 평안이 왜 없겠어요. 거기다 “그렇습니다. 나 숨길 것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숨길 것 없습니다. 나 안됐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게 이제 용서받는 거야.(이하 생략)
 
시간 많이, 너무 많이 갔습니다.
40장 마지막이나 읽고 그만둡시다.
이건 안 읽을 수 없어.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런 주장을 펴느냐?
“야훼께서는 나의 고생길 같은 것은 관심도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내 권리 따위, 알은 체도 않으신다.”
너희는 모르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힘이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진한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청년들도 힘이 빠져 허덕이겠고
장정들도 비틀거리겠지만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쳐 솟아 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씨알의소리 1979. 11월 89호
저작집30; 21- 49
전집20; 1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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