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기념사업회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기념관
글쓴이 : 바보새 날짜 : 2013-02-25 (월) 17:58 조회 : 1103
ㆍ도봉구, 내년 7월 개관… 홍명희·김수영·전태일 연계 ‘문화벨트’ 조성키로

‘씨알사상’을 주창하며 반일과 반독재에 앞장서온 민중운동가 함석헌 선생(1901~1989년)의 서울 쌍문동 옛집이 그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서울 도봉구는 올 하반기 기념관 건립 공사를 시작해 내년 7월 개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도봉구는 이를 위해 최근 기념관 설립을 위한 기본 용역에 착수했다.

지난 8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함석헌 선생의 쌍문동 집. 선생이 돌아가신 지 24년이 지났지만 이곳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방과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서너평 남짓한 방에는 300여권의 책들이 꽂힌 책장과 수십년간 사용한 갈색 소파, 손때 묻은 찻잔, 멀리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코끼리 조각상 등이 세월의 공백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놓여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차남 함우용씨(82)가 이 방을 사용하면서 책장 앞에 새로 들인 침대 정도뿐이었다.

함 선생이 집 앞마당에 심었던 보리수·진달래·오죽·백동백 같은 꽃나무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함우용씨는 “아버님은 젊은 시절 북한에서 송산농사학원을 운영할 정도로 농사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 나무들은 아버님이 월남해 원효로에서 살았을 때부터 기르던 것들로 1983년 이 집으로 오시면서 모두 옮겨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함석헌 선생 옛집에서 차남 함우용씨(오른쪽)와 외손자 정현필씨가 기념관 건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도봉구 제공
 

그는 “기념관 공사 때문에 3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떠나려니 서운하지만 한편으론 아버님의 정신과 사상을 세상에 널릴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말했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한 함 선생은 고등학교 3학년인 1919년 평양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 해방 후에는 신의주반공학생사건의 배후로 몰려 투옥됐으며 1947년 월남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에서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고 1970년 진보적 평론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했다.

함석헌기념관 건립 논의는 2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동네 곳곳에 흩어진 채 잊혀지고 있는 역사문화 인물을 발굴하는 사업을 시작한 도봉구는 선생의 집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념관 건립을 구상했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돼 15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함석헌 선생은 이 집에서 1983년부터 1989년까지 거주했다. | 도봉구 제공

대지면적 331㎡, 연면적 157㎡ 규모의 단독주택은 리모델링을 거쳐 전시실과 수장고, 세미나실 등으로 다시 꾸며진다. 특히 선생이 키운 여러 꽃나무들과 온실도 최대한 보존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도봉구는 함석헌기념관이 건립되면 단순한 유물 전시 외에 선생과 관련된 강좌와 문학행사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도봉구는 특히 소설가 홍명희, 시인 김수영, 독립운동가 김병로, 청년노동자 전태일 등 지역에 옛 집터가 있는 인물들을 연계한 문화탐방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또 북한산 둘레길, 원당공원, 연산군묘, 시 문화재인 830년 수령의 은행나무 등과 엮어 문화벨트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함석헌기념관과는 별도로 김수영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을 오는 11월 방학3동에 건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외손자인 정현필 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함석헌 선생은 인도의 간디와 비슷한 비폭력 평화 사상을 강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사상은 젊은이들에게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며 “기념관이 건립되면 사업회도 힘을 보태 선생의 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한 여러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방문자 COUNT : 어제:117 오늘 :133 전체: 26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