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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 함석헌시와사상/김성수
글쓴이 : 바보새 날짜 : 2011-06-14 (화) 16:20 조회 : 3549
함석헌시와사상-김성수.hwp (84.5K), Down : 10, 2011-06-14 16:20:18

함석헌의 시와 사상

김성수 『함석헌평전』 저자 

함석헌은 누구인가?

20세기 한국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격동의 삶을 살다 간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 중에 함석헌(1901-1989)이라는 한 인물의 모습도 보인다. 그는 89년의 생애 중 약10년 정도의 교사생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삶을 ‘탈북자’, ‘비정규직노동자’, 심지어 ‘백수’에 가까운 생애를 살고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을 사회 범주적으로 이렇게 규정짓고 나면 아무래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자기수준만큼만 타인, 사물 혹은 예술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함석헌에 대해 이 사회의 원로 혹은 명사 중엔 그를 좀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예는 종교사상가, 평화주의자, 민주화운동가, 인권운동가 등이다. 함석헌이 전 생애를 통해 국가폭력과 독재 권력에 저항할 때에도 그는 비폭력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함석헌은 ‘한국의 양심’ 이나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함석헌의 생애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평화주의자로서 그는 순진 하리 만치 비폭력무저항운동에 앞장선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2세를 존경하였다. 1980년 대 20대 나이였던 내 방벽은 온통 함석헌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그런 내가 쌍문동 함석헌의 집을 방문하고 놀랐던 것은 80이 넘은 그의 방에는 언제나 간디와 킹목사의 사진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폭력무저항과 평화주의를 그의 삶에 한 원칙으로 너무도 중요시해서인지 군사정권시절의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로부터 ‘독설가’로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1979년과 1984년 함석헌은 한국인 최초로 서구 퀘이커들에 의해 노벨평화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 하 그리고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하에서 국가폭력과 독재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기에 함석헌은 수감, 가택연금 등의 생활을 셀 수 없을 정도로 겪어야만 했다. 사회복지가 전무한 시절에 그래서 함석헌과 그의 가족들이 감내하고 걸었던 길은 그래서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도 함석헌은 시를 쓰고 출판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소위 시인으로 ‘데뷔’를 한 것은 아주 늦은 편인데 그것은 함석헌의 나이 마흔 다섯인 194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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