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추가
  • 로그인
  • 회원가입
  • 정보찾기
  • 공지사항
  • 일정안내
  • 함석헌
  • 기념사업회
  • 씨알의소리
  • 씨알사상연구원
  • 씨알들의이야기
  • 쇼핑하기
홈 > 씨알사상연구원 > 연구원소식
함석헌연구 보기
씨알사상 연구원소식
씨알의소리 보기
바보새씨알학당
씨알정기월례회
독자의소리
씨알영상교육

함석헌의 생명사상 - 김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보새 작성일18-04-05 14:09 조회38회 댓글0건

본문

함석헌의 생명사상

 

bc5ce7d97414921d6a4835aadd5949ad_1522904

김 진 (함석헌 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들어가는 말

 

요사이 나름대로 사회의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치고 생명’, ‘생태’, ‘영성등등의 말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생명은 우리 이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비단 근래에 빚어진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반생명적이고 생태적인 문화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생명사상의 중요성이 더욱 더 강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 철학, 신학 등 모든 분야의 학자들이 생명문제를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위한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가 배아복제, 생명복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에서 보듯이 같은 생명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오히려 반생명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조차 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사상을 운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관점에 생명철학을 정립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명사상에 대한 관심이 보여주는 몇 가지 흐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흐름은 생태학적 관심과 도전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가치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본래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생태학의 시작은 본래 생태계를 기능적으로 연결된 부분들로 구성된 자기 조절적인 단위를 간주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적인 관점을 선호했는데, 그들의 이런 전일주의적 관점은 당시에 사회학에서 원용하던 유기체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풍미했던 기술 유토피아적인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런 초기 생태학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60년대부터 부상한 환경사상과 연대하며 유기체적 사고나 환경주의 사상을 뒷받침하게 된다. 이런 흐름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보다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을 두었다는데 그 장점이 있다.

둘째 흐름은 인문학에 바탕을 둔 생명사상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삶과 가치, 그리고 인간존재 그 자체가 지니는 생명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관계, 자연과의 관계, 나아가는 신적 존재와의 관계 모두 생명으로 엮어져야 한다는 생명주의 사상이 그것이다. 특히 서구가 오래 잃어버리고 있었던 생명사상을 동양종교나 철학에서 찾으려는 많은 학문적이고 실천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생명사상의 두 흐름은 상보적이어야 한다. 과학적 연구나 그 결과를 무시하지 않지만 그것에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종교나 인문학의 생명에 대한 종교적이고 철학적 연구 또한 중요하다. 전자의 뒷받침 없이는 생명사상은 자칫 추상적일 수 있으며 후자 없이 생명사상의 가치혼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함석헌의 생명사상은 안에는 이 두 흐름이 다 흐르고 있다. 그는 자신이 과학적 사고와 결과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추구했으며 동시에 동양의 생명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적 생명사상을 토대로 자신의 생명이해를 형성해 나갔다. 그래서 그의 생명사상은 단순히 환경친화적인 삶을 위한 환경운동의 범주에 있지 않고 인간, 사회, 국가, 민족, 종교 전 분야 걸쳐 펼쳐지고 적용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모든 사상과 실천은 이 생명사상의 펼침과 적용, 실천이다.

 

생명의 원리

 

함석헌은 생명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원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생명은 생물학적 관점을 넘어서 생명현상에 대한 그의 이해이다.

 

1. ()과 다()의 원리

 

일과 다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인류 사상사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이다. 함석헌은 생명운동 그 자체가 일이면서 다이고, 다이면서 일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음을 간파한다. “무생물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인격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모든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한 이상한 경향은 그저 많으려 하는 일이다. 물질의 분자. 원자, 나무의 잎 세포, 동물, 식물의 종류 하는 모든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듯 많으려 하면서도 또 한편 그 많은 것이 될수록 하나 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함석헌은 그것이 생명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하나이면서 여럿이 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러한 그의 생명이해는 개체와 전체의 상호관계성으로 발전한다. 개체 없는 전체가 있을 수 없듯이 전체 없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의 생명력 획득은 전체에서 가능하하다고 말한다. “어떤 생명의 운동도 직선으로 올라가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톱니 같은 오르내리는 굴곡을 그으며 올라갑니다. 모든 운동은 점점 줄어들고 내려가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떻게 위대했던 종교도 정치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차차 그 생명력이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가 나가기 위해서는 자주자주 부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전체에 돌아가서만 됩니다. 정말 생명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체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단체는 아무리 잘하노라 해도 개체이기 때문에 전체에서 떠나 수밖에 없고, 받은 생명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적 단체적 모든 생명체는 다 때때로 전체의 발전소에 들어가 다시 충전을 해서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상에서 보면 로서 ’(개체적 씨알)는 하나님(전체) 속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다. 은 하나의 씨이자 동시에 열매를 품고 있으며, 열매는 씨을 품고 있다. 개체와 전체와 관계는 상호 유기적 생명적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생명이 많음으로 분화 발전하려는 현상과 더불어 다른 한편 하나로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즉 많음이 하나로 모여지는 현상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현상으로 볼 때 현대의 개인화된 개인적 삶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서 한편으로는 공동체적 삶으로 모아지려는 움직임도 이런 생명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2. ‘확산-수렴(收斂)의 원리

 

위에서 언급한 일과 다의 원리가 수의 측면에서 보여진다면 이 원리는 부피적 개념이 짙다. 생명스러운 기운의 확산되고 다시 모아지는 현상을 암시한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은 될수록 번져 나가려 한다. 물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나간다. 방전(放電)이 되면 빛이 사방으로 번져 나간다. 빛도 소리도 열도 그저 방사되어 나가려 한다. 크게는 본체(本体)에서부터 작게는 사람의 속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저 번져 나가려고만 하는 것이 그 근본 경향이다. 그러나 그러는 한편 또 거두어들이려는, 될수록 모르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는 창조요, 하는 안식이다. 하나에서 진보주의가 나오고 또 하나에서는 보수주의가 나온다. 보수 없이 진보도 될 수 없고 진보 없이 보수도 될 수 없다. 늘 편하지 않으려 하면서 또 돌변하려하는 것이 생명이다. 진화는 여기에서 나왔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이고 변화되는 것인데 생명기운은 자신의 생명한계를 넘어서 밖으로 펼쳐나가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활동이요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편 생명은 자신의 남의 생명력, 자신의 생명력을 다시 수렴하는 운동을 펼친다. 무한대로 확산만 하려 든다면 곧 시들고 말 것이고, 무조건 수렴만 하려 한다면 썩고 말 것이다. 생명의 확산과 수렴원리는 생명의 들숨날숨 운동이다.

 

3. 자유와 통일의 원리

생명체는 결코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실재가 아니다. 생명다움은 그 생명의 주체성에 있다. 그 주체성은 스스로 함에서 나온다. 함석은 그래서 생명()스스로 따로 함”(自別)이라 이름지었다. “무한대의 우주에 대하여 나는 난다. 나은 너의 한 부분만은 아니다 하고 맞섬으로 생명은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저마다 스스로 함에만 머문다면 생명계는 혼돈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생명의 혼돈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2 열역학에서 주자하듯이 생명현상은 무작위, 혼돈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외적으로 혼돈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스스로 함 속에서도 생명은 통일을 이루려는 운동력이 있다. 스스로함이 자유요 혼돈의 생명력이라면 통일은 코스모스, 즉 질서의 생명력이다. “모든 존재가 각각 저는 려 하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될수록 하나로 통일되려는 것이 만물의 밑을 흐르는 원리이다. 원자에서부터 벌써 그 성질을 볼 수 있지만 인간에 있는 정치라는 현상도 이 원리의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하자는 면에서 하면 저는 될수록 독특(獨特)하려하나 또 통일되자는 면에서 하면 독특한 가운데서도 또 어디까지나 보통적(普通的)이려는 성질이 있다. 이것은 영원의 쌍둥이의 한 쌍이다.”

생명의 통일은 단순한 숫자로서의 하나나 정략적인 통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화로운 일치감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생명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화()이다.

 

4. ()과 사()의 원리

 생명체는 태어나고 생명력이 다하면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태어남이 생명현상이듯 죽음 생명의 부작용이나 끝이 아니라 생명활동 그 자체이다. 만약 생명체가 죽지 않는다면 이 생명세계는 그 자체로 죽음의 세계가 될 것이다. 함석헌은 이 생과 사의 반복되는 세계를 하나의 신비로 보았다.

 

생명은 나지만 또 반드시 죽는다. 왜 살면서 또 죽을까? 죽으면서 또 날까? 왜 생이면 그저 직선적 평명적인 생 하나가 있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생 사, 생 사, 생 사의 연속으로 되어 있을까? 왜 서로서로 원인 결과의 연쇄를 이루어 가지고 서로 얼크러져 있게 됐을까?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관찰하고 관찰할수록 끝이 없는 것은 이것이다. 그 신비는 우리 이성에는 영원이 못 들어가는 비원(秘苑)인지 모른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모든 정신의 세계란 것이 이 때문에 있게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물결 없는 강을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는 생사 없는 생명계, 존재계를 알 수 없다

 

때에 따라 죽어야 될 존재가 죽지 않으려고 생명을 조작하거나 죽음을 포장하려는 행위는 생명계나 진리계에서 볼 때 불협화음만 낳을 뿐이다. 종교에서는 오히려 살림을 위해 기꺼이 죽을 때 영원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과 사가 생명의 근원적인 현상임을 인정할 때 생명은 더욱 옹골차게 될 것이다.

 

5. 의식(意識)과 몰아(沒我)의 원리

 

생명에는 의식하는 능력이 있다. 그 의식의 깊이가 각 생명체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생명에는 의식이 있다. 함석헌은 이 의식이야말로 생명이 되비치는 현상으로 보았다. “의식은 생명의 반사(反射). 생명은 쏘아 나가기도 하지만 또 되돌아온다. 물질에 있는 반사작용이나 정신에 있는 반사는 한 가지 운동이라 할 것이다. 소위 정신이라는 것, 생각이란 것은 생명의 반사 혹은 반성이다. 하나님의 마음의 방사선의 끄트머리가 다시 저 나온 근본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 마음이란 것, 생각이란 것이다.”

 그 의식의 처음이 하나님이요 그 끝에 있는 것이 자아의식이다. 이 자아는 의식의 절대자인 하나님께 가면 사라진다. 몰아는 자기초월을 의미 한다. 우리가 현재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의식하는 존재이지만 그 생각과 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욕구는 생명체의 기본 욕구이다. 인간의 인격, 종교성은 바로 그런 자기초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격의 본질은 자기초월이다. 제가 저를 아는 것이 긍정이면서도 자기부정이 된다. 내 지식의 내용으로 된 것이 나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격은 자기반성으로 자기부정을 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순간 자기는 자기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쉬임없이 자기 초월을 해 가는 것이 인격이다

 

마치는 글

  이상에서 함석헌이 생명현상을 통해 발견한 생명원리를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함석헌의 생명이해는 인간론에서는 씨알사상으로 발전시켜 나아감으로서 씨과 역사, 우주, 그리고 하나님과 생명적 연결을 강조한다. 씨알 그 자체가 생명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체적 실재이다. 박재순은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생명의 자발성, 무궁성, 개체성과 전체성, 평등성, 그리고 생명의 어울림과 서로울림(共鳴), 강인함을 읽어 낸다. 

 

함석헌의 생명사상이 종교와 만났을 때에는 생명력 있는 종교의 모습으로 새종교론이 펼쳐진다. 새종교론은 하나 되는 종교’, ‘합리적인 종교’, 그리고 총체적인 종교로서 나타난다 또한 그의 생명사상이 역사와 사회를 만났을 때에는 반()생명적인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비폭력 평화사상으로 열매를 맺는다. 함석헌은 생명 그 자체의 특성이 거부, 저항에 있다는 자신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생명은 환경 속에서 적용되고 맞추어가는 측면이 있지만 더욱 본질적인 것은 대듦이다. “생명은 대듦(拒否)이다.”

맞춰감으로만 보면 생명은 순전히 수동적이다. 그러나 생명은 결코 수동이 아니다. 맞추어 가려는 성질 밑에는 힘 있는 능동적인 것이 늘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전한 받아들임 만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무생물밖에 있을 수 없다. 맞추어 간다는 것은 사실은 밖에서 오는 힘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힘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생명은 대듦이라고 보아야 옳다

이처럼 함석헌의 생명사상은 단순히 소극적, 수동적인 생명주의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저항적인 동력으로 사회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인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