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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새 씨알학당’ 부산 인문학강좌 4강
글쓴이 : 바보새 날짜 : 2012-08-07 (화) 15:09 조회 : 3083

‘바보새 씨알학당’ 부산 인문학강좌 4강

7월 5일-4강:『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이 강조한 교훈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영일(전 공주사범대 교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이 강조한 교훈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문에서 따옴

1. ‘뜻’

∙∙∙∙∙∙의인(義人). 죄인(罪人). 문명인(文明人). 야만인(野蠻人)을 다 같이 구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유신론자. 무신론자가 다 같이 믿으며 살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그래서 한 소리가 ‘뜻’이다. 하나님을 못 믿겠다면 아니 믿어도 좋지만 ‘뜻’은 아니 믿을 수는 없지 않느냐? 긍정해도 뜻은 살아있고 부정해도 뜻은 살아 있다. 져서도 뜻만 있으면 되고, 이겨서도 뜻이 없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뜻이라고 한 것이다. 이야말로 만인의 종교다. 뜻이라면 뜻이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고 생명이라 해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저 하나라 해도 좋다. (1983. <<함석헌 전집>>1. <뜻으로 본 한국역사>19쪽. 이하 <<전집>>1)

여럿인 가운데서 될수록 하나인 것을 찾아보자는 마음, 변하는 가운데서 될수록 변하지 않는 것을 보자는 마음,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서 될수록 무슨 차례를 찾아보자는 마음, 하나를 찾는 마음, 그것이 뜻이란 것이다. (1983.<<전집>>1. 38쪽)

하나님은 절대적 가치의 본체요, 그것을 아는 것이 뜻이요, 그 뜻의 방향으로 운동하는 것이 역사다. (1983.<<전집>>1. 45쪽)

본래 성경은 현실 세계를 설명하자는 과학이 아니고 뜻의 세계를 말하자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상계로 하면 무한히 변천해 갈 것이지 종말이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뜻으로 할 때는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이 세계의 뒤에 뜻을 믿는 자는 이 자연 속에서 어느 순간 천지의 창조를 보고 어느 순간 또 우주의 끝을 본다. 그에 게 있어 모든 현상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말씀이다. (1983.<<전집>>1. 47쪽)

2. ‘고난(苦難)’

고난의 역사라니 고난 전에 또 무엇이 있고 고난 후에 또 무엇이 온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고난의 역사가 스스로 나타났을 뿐이다. 제가 제 까닭이다. 제(自)가 곧 까닭(由)이다. 그러므로 자유(自由), 곧 스스로 함이다. 그러므로 고(苦)는 생명의 근본 원리다. 고(苦)를 통해 자유에 이른다. (1983.<<전집>>1. 21쪽)

∙∙∙∙∙∙인류의 길은 고통의 길이요, 역사의 나감은 수난의 과정이다. 세계 역사를 배우는 자의 첫째 공과는 그것이 터벅이는 찾음의 기록이라는 일이다. 황금시대보다는 어지러운 때에, 영화보다는 떨어짐에, 이긴 자보다는 진자에, 평안보다는 고통에, 즐거움보다는 죽음에 보다 더 귀히 여기고 보람 있게 여기고 존경할 것이 들어 있으며, 참으로 영원한 감격이 될 보화가 들어있다. (1983.<<전집>>1. 53쪽)

고난의 역사 한국 역사의 밑에 숨어 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이 사람도, 큰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상도,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자. (1983.<<전집>>1. 72쪽)

그러나 성경은 그러는 가운데서 진리를 보여 주었다. 나를 건진 것은 믿음이었다. 이 고난이야말로 한국이 쓰는 가시 면류관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역사를 뒤집고 그 뒷면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 전체가 인류의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라 깨달았을 때 여태껏 학대받은 계집종으로만 알았던 그가 그야말로 가시면류관의 여왕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마찌니와 한가지로 ‘그녀의 할 일은 아직 이다.’ 라고 용기를 낼 수 있다. 과연 그녀의 일은 이제부터다. (1983.<<전집>>1. 73쪽)

우리가 고난의 짐을 지게 된 것은, 안 그럴 것 같던 우리 역사가 중간에 변경이 된 것은, 하나님이 이 병(저를 잊어버린 것 - 앞에서 (96쪽) 나왔던: 필자 주)을 고쳐 주시기 위해 취한 방법이라고 나는 본다. ‘사어안일(死於安逸)’이라 하지 않던가? 일 없이 무사히 있음은 죄악의 온상이다. 낙천적이고 인후하며 그리고 심각성이 없는 평화의 민족을 따스한 중용적 지리의 반도 안에 그냥 두면 썩어서 사람 노릇을 못할 것은 정한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으로 짐을 지워 생각을 하게 한다. 고난은 인생을 심화한다. 고난은 역사를 정화한다. 평면적이던 호호야(好好爺)도 이를 통하고 나면 입체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고, 더럽던 압박과 싸움의 역사도 눈물을 통하여 볼 때는 선으로 가는 힘씀 아닌 것이 없다. 중국의 교만, 만주의 사나움, 일본의 영악, 러시아의 음흉이 다 견디기 어려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면 언제 망했을는지 모른다. 우리가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살고자 하기 때문이요, 살아 있음은 살려 주시기 때문이다. 살려두시는 것은 할 일이 있는 증거다. 우리가 맡은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고난의 초달(楚達)을 견디어야 한다. (1983.<<전집>>1. 97쪽)

3.섭리사관

역사적 필연이란 다른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명령이란 말이다. 예수는 자기 말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를 보내신 이가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보내신 이란 보통 말로 하면 역사요, 종교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 역사의 아들이라 하나 다른 말이 아니다. (1983.<<전집>>1. 32쪽)

우주·인생 속에 있으면서도 우주·인생을 뛰어 넘자는 것은 종교다. 그러므로 참 역사는 종교적인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1983.<<전집>>1. 40쪽)

성경의 사관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는 일은 곧 성경의 근본 뜻이 무엇이냐를 찾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 진리를 모르고는, 다시 말하면 성경의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는, 성경이 말하는 사관을 알 수는 없을 것이요, 반대로 만일 역사를 보기를 성경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태도로 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벌써 성경의 근본 뜻을 안 사람이다. ·〮·〮·〮 그 까닭은 성경의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 인생의 근본 몸인 영원한 생명을 붙잡게 하자는 것이요, 성경이 역사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결국 그 목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듯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종교가 인생의 구원을 목적하는 사실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생각에만 의한 것이 아니요, 실인생(實人生)·활역사(活歷史)에 의하여 인생의 깊은 뜻, 우주를 꿰뚫은 생명, 그 자체를 붙잡게 하는 일이다. 역사를 낳는 것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대 우주의 생명의 흐름이 활동사진을 보듯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성경이 생명 있는 우주사이기 때문이다. (1983.<<전집>>1. 42쪽)

성경 예순여섯 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라는 한 말에 요약된다. 곧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 안에 뛰놀고,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간 다는 것이 성경의 근본 주장이다.∙∙∙∙∙∙ 이 역사를 낳는 이는, 즉 역사의 근원이 되고, 그 원동력이 되고, 그 원리가 되는 이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1983.<<전집>>1. 43쪽)

<성경>은 정신이나, 물질이나, 인생이나, 자연이나, 존재라는 존재, 또 그 존재들이 하는 변천이란 변천이 다 한 뜻인 하나님에서 나왔고, 그 하나님의 뜻 없이는 한 물건, 한 일도 없다고 본다. (1983.<<전집>>1. 43쪽)

그러나 역사의 근본이 하나님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불완전하다. 그 하나님에는 인생과 인격적으로 교섭하는 하나님이라는 설명을 붙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생명의 진화에 있어서 가장 높은 단계가 인격이라면, 그 인격과의 교섭은 역시 인격으로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인격신이라고 단언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으나 우리가 아는 우리와의 의미적인 교섭을 하는 하나님은 인격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1983.<<전집>>1. 44쪽)

4. 역사가 지시하는 우리의 사명

∙∙∙∙∙∙거짓 세계 사명도 능히 한 때 민중을 속여 총동원하여 놀랄만한 활동을 하게하거든, 하물며 진리에 근거하고, 하나님에 의하여 보장이 되는 우주사적 사명으로써 한다면 얼마나 더 위해한 일이 나올 것인가?.......... 한 민족이 만일 잔패민족(殘敗民族)이라는 더럽고 불쌍한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거든 이제라도 어서 세계적 사명에 지각해야 한다. (1983.<<전집>>1. 323쪽)

우리가 하늘에서 받아가지고 온,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흥안령을 넘기 전부터 가슴 속 깊이 간수하고 길러온 이 착한 바탕이 미래에 세계역사에 있어서 하려고만 한다면 큰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1983.<<전집>>1. 32

∙∙∙∙∙∙사람으로서는 능치 못하나 하나님께서는 능히 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민족을 살리는 길은 믿음을 일으키는 데 있다. 상식을 가지는 사람이면 아무도 한국을 가지고 세계적 사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은 못할 것이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실로 모든 판단의 표준이 바뀌는 일이 있다.

그것이 신앙의 세계다.∙∙∙∙∙∙ 이제 생각하여 보라. 한 행렬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데, 중간에 가서 이때까지 목표로 알았던 것이 정말 목표의 그 반대쪽 공중에 비쳐 보인 허상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떠하겠나? 그리하여 전군에 향하여 “우로 돌아, 앞으롯!”하는 구령을 내린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나? ∙∙∙∙∙∙

이제 우리 보기에는 인류 역사위에 그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아니다. “때가 오려니와 지금이 그때라.” 벌써 일어나고 있다. ∙∙∙∙∙∙이 때까지 약육강식을 근본 원리로 삼고 나오던 문명이 차차 그 목표가 허상인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이제 장차 역사의 방향을 180도로 변할 것인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세계는 파멸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까지의 역사는 폭력으로 하는 쟁탈의 역사였으나, 인류가 망하기를 자취하지 않는 한, 이 앞으로의 역사는 도덕적 싸움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1983.<<전집>>1. 324∼135쪽)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거냐 우리가 한거냐 물을 것 없지. 물을 것 없이 이 내버리고 싶은 역사에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 우리는 불의의 값을 지는 자다.∙∙∙∙∙∙ 불의도 의도 역사의 것, 인류의 것이지, 네 것도 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계의 짐을 진다. (1983.<<전집>>1. 326쪽)

동서 양양(兩洋)의 문명은 그 찌꺼기를 이리로 미는 듯하다.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교가 아름다운 점이 많되 압록강을 건너서는 그 가장 나쁜 폐해만을 남겼고, 구주의 사상, 미주의 문명이 혜택을 주는 점은 많되 부산항에 올라올 때는 그 제일 무서운 독만을 끼쳤다. 동양 문명의 폐는 퇴영적 ·보수적 ·형식적인 데 있는데, 그 쓴 물은 우리 혼자 받은 듯하고, 서양 문명의 해는 물욕적 ·약탈적· 외면적인 데 있는데, 그 독한 이빨은 우리만이 만난 듯하다. 먹고 남는 더러운 찌꺼기를 쓰레기통같이, 남들이 향락하고 이용하고 그 결과로 남는 온갖 해독을 우리 약한 등에 다 졌다. 삼천리강산은 불행의 박물관이요, 삼천만의 생명은 죄악의 실험관이다. 세계의 온갖 불행과 죄악의 결과를 보려는 자는 여기에 오면 볼 수 있다. 유교의 폐가 여기 있고 불교의 해가 여기 있으며, 군국주의의 표본이 여기 있고 자본주의의 노예가 여기 있다. (1983.<<전집>>1. 327쪽)

4천년 역사는 우리의 위대에서 나왔다기보다 우리가 져야 하는 짐의 중대성에 있다.∙∙∙∙∙∙ 우리 사명은 여기 있다. 이 불의의 짐을 원망도 않고 회피도 않고 용감하게 진실하게 지는데 있다. ∙∙∙∙∙∙ 그것을 짐으로써 우리 자신을 건지고 또 세계를 건진다. 불의의 결과는 그것을 지는 자 없이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을 위하여, 또 하나님을 위하여 이것을 져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자진하여 택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못하였으므로 우리에게로 왔다. 그러나 또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였다. (1983.<<전집>>1. 327∼328쪽)

4천년 역사를 가지며, 여태껏 우리는 세계사의 무대에서 이렇다 할 만 한 것을 한 일이 없이 기다렸다. 한편 구석에서 학대받고 있는 동안에 이 밤이 다 새는가 하였다. 그러나 이제 때가 왔다. 세계의 불의를 담당함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도덕적으로 한층 높이 올리는 일이다. 그것이 역사의 하수구 아닌가? 낮은 일은 높은 마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고, 작은 일은 큰마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고, 더러운 것을 치우려면 무엇으로도 더러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죄를 처분하려면 어떤 죄로도 상하지 않는 거룩한 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착함’이다.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인’이다. (1983.<<전집>>1. 328쪽)

하수구는 보이는 위에서는 받는 구멍이 있는 대신 보이지 않는 밑에 이 무한의 바다에 통하는 길이 있어야 한다. 모든 불의를 받아서는 하나님께로 돌려야 한다. 그것이 절대의 신앙이다. 세계사의 하수구가 되었거든, 나와 세상을 건지는 사명을 다 하려면 내 속을 깊이 뚫어 하나님께 직통하는 지하도를 어서 파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이 세대에서 보면 지극히 더럽고 불행하나, 오는 세기에서 보면 말할 수 없이 영광이요 기쁨이다. 이것을 하기 위하여 비상한 용맹과 비상히 높은 도덕으로 싸우는 힘이 필요하다. (1983.<<전집>>1. 329쪽)

새 전쟁이 우리를 부른다. 영웅들이 싸우는 쟁탈이 전쟁이 아니요, 진리의 전쟁이다. 그 부름에 대하여 일어날 것은 강철의 총검이 아니요, 참의 정(情) 의(意)다. 세계의 역사는 이제 전환을 하려하고 있다. 장차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현대의 대국가들이 구식의 이 쟁탈질을 하느라고 눈이 벌건 이때에 우리는 이따가 올 새 싸움을 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초대 기독교인이 로마 제국에 대하여 용감했던 것 같이, ‘그같이 우리도 현대 문명에 대하여 싸움을 돋우지 않으면 안된다. ∙∙∙∙∙∙ 수난은 결코 약한 자의 일이 아니요 강한 자의 일이다. 자기 안에 보다 더 위대한 힘을 믿는 것이 수난의 도다. (1983.<<전집>>1. 329쪽)

다윗의 한 몸 위에 온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렸던 것같이, 우리의 이기고 짐에 전 세계의 장래가 달렸다. ∙∙∙∙∙∙다윗이 목동이므로 위대하였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으므로 위대하였다. 그것은 또 옛날 일이라 안 믿어도 좋다. 돌 하나도 아니 가지고 한 거인을 이긴 것이 아니라 백만 군대를 이긴 것을 보려나? 인도를 해방시킨 간디다. 우리가 인류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섭리가 그렇게 명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필연이라는 말이다. (1983.<<전집>>1. 330쪽)

지난날에 있어서도 새 역사의 싹은 언제나 쓰레기통에서 나왔지만 이제 오는 역사에서는 더구나도 그렇다. 그러므로 한국 ∙ 인도 ∙ 유대 ∙ 흑인 이들이 그 덮어 누르는 불의의 고난에서 이기고 나와서, 제 노릇을 하면 인류는 구원을 얻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이 세계는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 물질의 종 아닌 것이 우리에 의하여 증명 되어야 한다. 권력이 정의 아닌 것, 종내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로 인하여 증명 되어야 한다. 사랑으로써 사탄을 이기고 고난당함으로 인류를 구한다는 말이 거짓 아님을 증거 하여야 하고, 죄는 용서함으로만 없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천하 앞에 증거 하여야 한다. 온 인류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렸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83.<<전집>>1. 330쪽)

그러나 사람이 있고서 말이다. 사람이 없이 만주가 무슨 소용 있으며, 조선이 무슨 소용이 있나? 산사람, 곧 진리의 사람이 있고서 볼 일이다. 하나님이 미래의 인류사를 위하여 우리에게 다시 없이 큰 사명을 지웠다면, 그것을 다하기 위하여 이 민족이 용감히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거목이 자라려 할 때 우선 그 알맹이가 있는 것이요. 민중이 깨려 할 때 그 핵심 단체가 있는 것이다. 이 핵심체 될 자가 누구일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역사는 종교적인 믿음의 눈을 가진 자가 아니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미래의 싸움은 진리로 싸우는 싸움이요, 믿음으로 이기는 싸움이다. 유교도 저 할 일을 하려다가 채 못하였고 불교도 저 할 일을 하려다가 채 못하였고, 기독교도 저 할 일을 하려다가 채 못하고,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모든 문명 모든 종교의 찌꺼기를 다지고 새날을 위하여 준비를 하려는 우리에게는 새 종교가 필요하다. 뜻 있는 자는 싸움 준비를 할 때다. (1983.<<전집>>1. 331쪽)

그러므로 용사들아, 옷을 팔아 칼을 사라. 세대는 보통이 아니다. 낡은 고정관념의 옷, 제도의 옷, 의식의 옷을 팔아 좌우에 날 선 진리의 검을 사라. 낡은 종교, 낡은 세계관, 낡은 역사 철학, 낡은 인간 의식, 지상의 도덕, 지상의 사람을 모두 팔아라. 팔아서 영원의 풀무간에서 거룩한 대장장이가 다듬어낸, 정금보다 더 순수한 진리의 검을 사라. 이제부터 소용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학교 교실에서만 위엄이 있고 그 밖에만 나가면 아무 힘이 없는 그리고 전쟁판에만 나가면 반대가 되어 버리는 그런 따위 도덕은 이 앞의 역사에서는 소용이 없다. 성당 ∙ 법당 안에서만 경건하고 눈물 나고, 나오면 곧 말라 버리는 그런 믿음, 우주 하나를 찢어 열 개 스무 개로 만드는 종교, 몇 사람을 행복스럽게 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불쌍한 사람을 영원히 가두어 두려고 지옥을 마련하는 종교, 그런 따위 귀족주의 종교는 이 앞의 역사에는 소용이 없다. 생존경쟁 철학위에서는 애국심은 이 앞의 세계에서는 배척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함은 소위 조국애에서 부터가 아니다. 여기를 묵이고는 하늘나라를 임하게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민중을 사랑함은 소위 동포애에서 부터가 아니다. 이 사람들을 내놓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잊고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제 노릇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생존권의 주장이 아니라 진리의 주장이다. 한민족이 못사는 것은 온 우주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슬픔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심장 위에 이 진리의 무장이 완비되는 날 저는 새 시대의 용사다. (1983.<<전집>>1. 332쪽)

5. 우리 민족의 理想

씨의 가슴 속에 나침반같이 제 방향을 늘 꼭 지키는 뜻이 있고 머리 위에 높이 바라는 크고 높은 뜻이 있으면 그 시대, 그 시대의 나갈 길이 거기서 자연 밝아질 것입니다.∙∙∙∙∙∙ 하늘 뜻 찾는 맘이 있으면 하늘 깊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고, 하늘 뜻 알아보면 내 뜻 자연히 밝아지는 것입니다. (1983.<<전집>>1. 354쪽)

그런데 이제 지질 시대의 커다란 파충류 같은 큰 나라라는 것들을 보고 세상이 늘 그것들의 세상이려니 해서 그 다리 그늘 밑에서만 꿈지럭거리고 있는 것은 어리석고 가엾은 일입니다. 새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1983.<<전집>>1. 358쪽)

∙∙∙∙∙∙이 앞의 사람의 문명은 점점 더 민중의 것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오던 문명의 테두리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불편한 것이 돼 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란 다른 것 아니고 곧 사람마다 나도 나를 위해 직접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1983.<<전집>>1. 359쪽)

개인은 전체의 구체적인 나타남입니다. 선도 전체의 것, 죄도 전체의 것, 삶도 죽음도 전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앞은 사람, 사람 사이에 돕고 하나로 되는 것을 더 힘써 갈 것입니다.∙∙∙∙∙∙글쎄 씨의 시대라니, 씨 이기 때문에 전체입니다. 사회입니다. (1983.<<전집>>1. 360쪽)

∙∙∙∙∙∙앞으로는 점점 더 과학적이 되어갈 것입니다. 살림을 우연한 기회에 맡겨서 하는 것이 아니라 또박또박 원리와 법칙을 따져 계획적으로 해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가슴을 향해 사뭇 대드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종교에서 보면 교만 같겠지만 아닙니다. 과학이야말로 종은 못하고 아들만이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 뜻을 알자는 것입니다. 믿음 뿐 아니라 또 이해도 하자는 것입니다. (1983.<<전집>>1. 360쪽)

새 철학을 한 번 못 내봐요? 이날까지 모든 철학이 아직 사람을 둘로 찢어 놨지 하나로 살린 것이 없습니다. 이원이니 일원이니 하지만 몸은 몸이고 맘은 맘이고 얼은 얼이고 살은 살대로 있으며 이 때문에. 이 인격의 찢어진 것 때문에 인간의 고민인데 그것을 누가 한 번 합창을 못 시켜요? (1983.<<전집>>1. 361쪽)

새 정치를 한 번 못 해봐요? 다스린다. 다스림을 받는다. 그런 따위 소리 말고 네 나라니 내 나라니 그런 밤알 다투는 어린애 소리 말고 정말 세계를 하나로 하는 정치 꿈을 꾼 지는 오래지 않습니까?∙∙∙∙∙∙ 세계 정부는 반드시 꿈이 아닐 것입니다. (1983.<<전집>>1. 361쪽)

∙∙∙∙∙∙동서 문명의 통일을 한 번 못 해봐요? 지금 이 소리는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힘있게 나선 것은 없습니다. ∙∙∙∙∙∙동양도 별것 아니고 서양도 잘못이 많겠지만, 그것을 조화 하느라 힘쓰노라면 제3의 문명이 혹 아니 나올까요? 지금 이 시대가 막다른 골목에 든 것만은 사실인 듯한데 그것을 뚫는 길은 거기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그 자격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1983.<<전집>>1. 362쪽)

새 종교를 한 번 못 받아와요? 지금 인류가 가장 원하는 것은 새 종교가 아닐까요?∙∙∙∙∙∙ 죽게 된 놈 이야만 정말 약을 찾을 것이고, 찾는 놈만이 얻어 낼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만일 죽게 된 놈만이 전체의 살아날 수 있는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오늘 우리에게 더 죽게 된 겨레가 어디 있습니까? (1983.<<전집>>1. 362쪽)

∙∙∙∙∙∙동남아 연방의 주장도 한 번 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 중공이라지만 공산주의는 무섭지 않습니다.∙∙∙∙∙∙ 그 8억 넘는 민중의 민족주의가 무섭지,∙∙∙∙∙∙ 중국 사람으로 하여금 민족주의를 가지고 역사를 거꾸로 끌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1983.<<전집>>1. 363쪽)

정치인 보다는 도리어 비교적 생각이 앞서고 바르게 하는 문화인 사이에 참 교통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거기는 우리가 앞장을 못서느냐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잘못이랄 것이 없이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아직도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달린 채 있는데 이것이 힘 있는 말 할 자격이 아니야요? 도둑을 맞고도 찾아 달란 말 못하는 것은 참 못난 것 아닙니까? 당당히 국제적인 강도를 만났고 까닭 없이 제물이 됐는데 잘만 한다면 세계의 마음을 한 번 찌르지 못한단 말입니까? 중국에도 일본에도 필리핀∙태국∙베트남에도 참으로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를 원하고 인류의 내일을 위해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숨어 헤어져 있으니 그러지, 서로 통한다면 반드시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983.<<전집>>1. 363쪽)

∙∙∙∙∙∙한 마디로, 이 나라는 아름다움의 나라입니다, 시의 나라요, 그림의 나라요, 음악의 나라가 될 것이지 정치의 나라, 군사의 나라가 될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슬기가 있을 나라 지. 힘을 주장할 나라는 아닙니다. 여기는 생각할 곳이지 바삐 떠들 곳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현실계를 떠나 영원 무한에 접해 보려는 신선 사상이 있었고 중국 사람이 삼신산(三神山)이 여기 있고 죽기 않는 약이 여기 있다고 찾은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1983.<<전집>>1. 365쪽)

∙∙∙∙∙∙우리 민족의 성격의 고갱이는 나는 착함이라고 합니다. 평화의 사람입니다. 본래 현실주의와 폭력주의가 한 가지로 짝해 다니듯이 신비주의와 평화주의도 짝해 다닙니다. 신비사상의 노자는 평화주의입니다. 인도에서 평화운동이 일어난 것은 거기가 또한 신비주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그것을 말하는 것이 바보온달 얘기요, 처용(處容)의 이야기입니다. 그 둘과 같이 옛날 대표적인 한 사람 성격을 표시하는 또 하나는 검도령입니다. (1983.<<전집>>1. 365쪽)

어쨌든 우리 사람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역사 있는 이래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쳐들어간 일이 없고 전쟁을 늘 내 집에서 겪고 막는 싸움이었지 날도둑질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 그 압박을 받았어도 지금 일본 배척하는 감정이 없고 6.25에 중공군에게 그 사나운 침략을 당했어도 반드시 원수 갚자는 마음을 누구도 먹지 않았습니다. 참 착한 백성이 아닙니까? 이것 때문에 생존 경쟁이 살림의 철학으로 되어 있고 침략주의가 정의로 되어 있는 시대에 우리는 못 견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시대가 옵니다. 우리가 낡은 시대의 철학, 종교에 마비된 마음을 씻어서 우리 속에 스스로 밝아진 새 종교, 새 철학으로 말을 하면 그 순간에 이세계가 죽는 동시에 그 좁은 문 저쪽에 이때까지 알지도 못했던 새 나라가 열릴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못합니다. 믿음은 내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 그 자신이 내 속에 말하실 것입니다. 내가 믿는다는 건 기독교란 말도, 불교란 말도, 마호메트란 말도 그 밖의 어느 종교란 말도 다 아닙니다. 믿음이란 말입니다. 무얼 믿느냐고요? 무엇이 아닙니다. 누구를 믿느냐고요? 누가 아닙니다. 누구도 무엇에 향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스스로 믿음입니다. (1983.<<전집>>1. 366∼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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