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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새 씨알학당’ 부산 인문학강좌 6강
글쓴이 : 바보새 날짜 : 2012-08-13 (월) 11:07 조회 : 2569

‘바보새 씨알학당’ 부산 인문학강좌 5강

7월19일-6강 함석헌의 평화사상 - 뜻으로 본 한국역사
정지석( 씨알의소리 편집위원, 국경선 평화학교)



함석헌의 평화사상 - 뜻으로 본 한국역사

 

1. 서론

이 글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나타난 함석헌의 역사철학 가운데 평화사상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 함석헌의 평화사상은 그의 역사철학의 뼈대를 이룬다.

함석헌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쓴 이후 30년이 지난 후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수정 증보의 역사책을 냈다. 시대적 변화와 함께 함석헌의 평화사상도 심화되어갔다. 처음 <성서적 입장에서 조선 역사>를 쓴 시기는 함석헌 나이 32세인 1932년이었고, <뜻으로 본 한국 역사>로 개정 증보판을 낸 때는 함석헌의 사상이 원숙기에 들어선 65세에 이르러서이다. 함석헌의 평화사상의 기초가 되는 사상적 면모들은 <성서적 입장으로 본 조선 역사>에 함축적으로 담겨있으며,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거쳐 20세기 후반기의 한반도 역사와 세계 역사의 흐름을 경험하면서 함석헌의 평화사상이 원숙해 짐을 볼 수 있다. 나는 함석헌의 평화사상을 주목하여 살펴 볼 때, 두 책이 쓰여지기 전후에 함석헌에게 영향을 끼친 주요 역사적 사건과 사상적 요인들을 살펴본다.

함석헌의 평화사상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형성된 역사 사상이지만,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긴요하고, 세계사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는 사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은 함석헌의 평화사상을 고난의 평화론, 사회 개혁의 예언자적 평화, 종교간 평화, 남북한 평화의 관점에서 샆펴보고자 한다.

 

2. 함석헌의 평화사상 형성의 역사적 사상적 요인들

 

2.1.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쓰기 전 함석헌의 삶과 사상적 여정

1919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3.1운동 참가했으며,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 입학하여 평생의 스승 유영모를 만나고, 일본에 유학하여 사범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연구반에 참여하면서 무교회 복음주의 신앙에 입문하며, 한국에 돌아와 오산학교 역사 선생으로 가르치면서 한국 무교회 신앙 운동을 전개한다.

3.1운동의 민족 독립운동의 체험, 오산학교의 민족 교육, 우치무라 간조의 복음주의 신앙은 20대 젊은 함석헌의 정신사에 주요 양분으로 자리잡는다. 특히 함석헌이 오산학교와 동경 유학시절인 1920년대는 1차 세계 전쟁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도주의와 평화주의 사상이 일어나던 시기로서 함석헌은 오산학교와 동경 유학 기간동안 이런 사조들을 독서하며 깊은 영향을 받는다. 간디와 톨스토이의 사상을 만난 시절도 이때이다. 이 두 인물은 20세기 대표적인 평화 사상가요 실천가이다. 톨스토이는 대표적인 기독교 평화주의 사상가이며 간디는 비폭력 운동으로 인도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들의 영향은 당시 함석헌의 글에서 나타난다. 한국 무교회 신앙동지들의 동인지인 <성서 조선>에 기고한 함석헌의 초기 글들에는 기독교 평화주의적 면모가 나타나고 있으며 간디의 글을 애독하고 있었다고 한다.

 

2.2.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쓴 이후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수정 증보까지

이 기간 30여년 동안 함석헌은 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사상적 변화를 겪는다. 이 가운데 함석헌 평화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친 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제 2차 세계전쟁, 일본 패망과 독립, 미-소 냉전, 한국 전쟁과 남북한 분단,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군사 정권의 출현을 경험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제 말기 두 번의 감옥 체험, 신의주 학생의거와 공산당에 의한 체포 고문, 남한으로 도피, 그리고 남한 이승만 정권에 의한 체포 고문을 경험한다.

사상적으로는 종교적 신앙과 평화사상 차원에서 중요한 변화를 한다. 함석헌은 대선언(1953년)을 통해 기독교 중심주의 신앙(무교회 복음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보편주의 신앙(만인의 종교)으로 변화를 한다. 서양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각성과 새문명 사상의 탐색으로서 동양 종교로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다. 기독교 중심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함석헌은 동서양 종교의 구분을 넘어서서 전체 합일의 정신을 추구한다.

“이제 오늘은 서구 문명의 폐해가 끝에 오르게 된 때다. 이제 동양은 그 품갚음을 하여 서양을 건질 때가 되었다. 그 교만하던 서양의 입에 동양의 소리가 차차 높아가고, 동양은 그 힘든 곤학을 마칠 때가 되어 온다. 이제 당한 문제는 동서 종합을 하는데서 한 단계 높은 새 지경에 오르는 길이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80)

 

함석헌이 기독교 중심주의 신앙을 벗어나고자 한 데에는 새로운 문명 사상의 모색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데, 이 새로운 문명 사상의 핵심은 평화사상이다. 세계 2차 전쟁을 목격하면서 함석헌은 서구 제국주의와 무력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되며, 무엇보다 무력주의에 대한 서구 기독교의 동조, 협력, 묵인과 무기력을 보았고 이에대한 비판적인 종교 각성을 하게된다. 이것은 평화주의적 각성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본질적으로 국가들의 전쟁놀음을 제어할 수 없는 무기력한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각성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전쟁 이후 출현한 20세기 후반기 문명이 다시금 미-소 강대국 중심으로 갈라지고 냉전이 시작되는 것을 바라보며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인류의 문명은 전쟁으로 끝을 맺느냐, 전쟁 그것의 끝을 맺는 새 문명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나타나 보이는 것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싸움이다. 그 속에 품고 있는 역사의 먼동 틀 때의 뿌려진 정신의 씨가 덮어누르는 가시덤불을 뚫고 쑥 올라와 새 단계에 오르느냐, 그렇치 않으면 아주 질식되어버리고 지구가 가시밭이 되고 마느냐 하는 데 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가 이기느냐가 문제 아니다. 무슨 주의가 이기느냐가 문제 아니다. 인류 전체의 싸움이다. 정신적인 방향으로 결정적으로 키를 돌리지 않는 한 소망이 없는 자리에 이르렀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77-78)

 

함석헌의 평화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함석헌이 평화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은 1950년대이다. 한국 전쟁의 경험이 커다란 영향요인이었다. 이때 큰 영향을 미친 이는 간디와 퀘이커이다. 간디는 함석헌이 20대에서부터 사상적 지주로 삼아 온 사람이지만, 함석헌의 간디를 자신의 삶과 사상과 실천의 지주로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1948년 간디의 죽음을 전환점으로해서이다. 함석헌은 간디의 진리 실험 정신을 한국 사회 건설에 적용하고자 했으며, 그 자신 간디의 아쉬람을 본따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은 함석헌 평화사상의 주요한 내용이다. 함석헌은 박정희 군사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을 비폭력 운동으로 전개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이 폭력화되지 않고 끝까지 비폭력주의를 지킨데에는 함석헌의 영향이 크다.

퀘이커는 함석헌 평화주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독교 평화주의 신앙에서 그렇다. 퀘이커들이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1947년, 함석헌은 제 2차 전쟁의 와중에서 신앙 양심으로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 봉사 활동에 진력한 퀘이커들의 평화주의 신앙 실천 이야기를 듣고 평소 추구해 오던 평화 신앙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후 한국 전쟁을 계기로 평화 활동으로 한국에 온 영미권 퀘이커들과 교류를 시작했고, 1962년 미국 퀘이커 평화 영성 학교인 펜들힐에서 공부한 이래 함석헌은 한국 퀘이커 모임을 이끌었고, 세계 퀘이커 모임에 참석하면서 퀘이커로서 살았다. 퀘이커 평화 신앙과 실천은 함석헌의 평화주의 신앙에 영향을 미쳤으며, 베트남 전쟁 파병 반대 단식과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을 전개하는데 영향 요인으로 작용했다.

 

2.3.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핵심개념은 ‘뜻’이다.

‘뜻’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본래 이 책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였는데, 함석헌은 참 진리란 교파적 독단적인 것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결과 ‘뜻’이란 표현으로 제목을 바꿨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는 역사의 속을 보자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수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역사란 수없이 일어나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살아 움직이는 것, 이끌어가는 힘, 속의 움직임과 흐름, 이것이 역사이며, 이것을 짚어내고 밝혀내는 것이 역사이다. 함석헌이 ‘뜻’으로 본 역사란 이것을 의미한다. 함석헌은 이 ‘뜻’을 찾고자 했다. 왜 조선 민족은 일제 통치 아래 고난당하는가? 함석헌은 고난당하는 조선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뜻’을 묻는다. 이 질문에 여러 가지 답변이 있을 수 있다. 함석헌은 일반 역사가들의 답변들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보다 역사 현실의 궁극적 진리로서 고난당함의 ‘뜻’을 찾고자 했다. 왜 당파싸움을 하는가? 당파싸움에 대한 함석헌의 역사적 ‘뜻’ 찾기는 “자기를 잃은 결과” 그리 한다는 것이다.

“민족적으로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이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 가지 병, 백 가지 폐해의 근본 원인이 된다.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다. 민족적 큰 이상이 없기 때문에 대동단결이 되지 않는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297)

 

또하나 함석헌은 해방 후 남북한 동족 전쟁의 참화를 겪는 그 ‘뜻’을 찾았다.

“인간이 역사 진행의 뜻을 알아 저항하기를 그만두는 날 영원한 평화와 자유는 올 것이다. 그 뜻을 배우라는 것이 지금 오고 있는 우주시대요, 그 시대가 시작되는 나팔소리가 6.25다. 새 시대가 동튼 것이 38선이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423).

 

3. 고난 평화론

함석헌은 인간이 겪는 고난에 대한 적극적인 신학적 해석을 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십자가 신앙에 근거한다. 십자가는 사형에 처할만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형틀이다. 참혹한 고통의 상징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이후 고난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해석했다. 고난에는 뜻이 있다, 고난을 통한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취하는 심리와 태도들이 있다. 고난을 가한 사람에게 보복하려하고(보복), 두번다시 같은 고난을 겪지 않으려고 하며(회피), 고난을 통해 새로운 각성과 삶의 길을 찾는 것이다(각성). 역사적 현실에서는 보복과 회피가 주된 현상이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당한 아픔을 갚아주려고 한다. 1990년대 냉전 종식이후 일어난 동유럽의 인종청소 전쟁, 탈식민지 시대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일어난 대학살 전쟁은 억압의 시대 고난을 겪던 사람들이 한을 풀듯이 폭력적 보복을 행한 경우이다. 이런 보복 대응은 고난을 겪으면서 원한을 품은 결과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피하고자 한다. 고난 당한 이유를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무력 증강에 힘쓴다. 힘을 가져야 안전할 수 있다는 무력 현실주의는 오늘날 문명 사회에도 여전히 지배적인 흐름이다. 한국 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은 무력 증강-북진통일론을 정책으로 삼았고, 평화통일론을 주창하던 조봉암은 반역자로서 사형당했다. 무력 증강-안보 이데올로기는 일본 식민 통치의 고난과, 남북한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는 거의 절대적인 교리처럼 되어있어서, 이에 반하는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무력 증강론은 약소국만의 안보 논리가 아니다. 전 세계 국가들의 군사비 총액보다 많은 군사비를 쓰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무력 증강론이 판을 치고 군사비 예산은 매년 증가되고 있다. 가장 센 무력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무력 증강을 하는 흐름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최근 오바마 정부가 서민과 노인을 위한 의료개혁을 위해 군사비 예산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현직 국방부 장관과 군 장성들이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반발했다. 9.11 테러의 고난 경험은 미국의 다수 국으민들로 하여금 무력 증강론을 지지하게 하는 심리적 바탕이 되어있다. 무력이 강해야만 안전할 수 있다는 이것은 거의 무조건적인 심리현상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복과 무력증강은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고 지속시킨다.

함석헌은 고난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각성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함석헌은 일제억압으로부터 민족 해방의 길을 교육과 종교적 믿음을 통한 민중의 정신적 각성에서 찾았다. 즉, 고난으로부터 연단받은 민족 집단적 각성에서 참된 민족 해방의 길은 온다고 믿었다. 이것은 고난의 주요 요인을 무력을 통해 제거함으로서 해결하려는 무력 독립 투쟁론과는 다른 길이다. 역사 현실에서 고난당하는 자(희생자)와 고난을 주는 자(억압자) 사이의 적대적 대립 관계를 푸는 길은 폭력 전쟁뿐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부단히 일어나는 일이다. 약자는 언제나 강자의 희생물이며, 이런 약육강식의 자연 질서는 인간 사회 질서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힘없는 조선 민족이 힘 센 일본에게 식민 통치를 당하는 것은 자연 질서인가? 일제의 억압 통치 아래 고난 당하는 조선 민족은 숙명인가? 힘을 키우는 일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그 힘이란 어떤 것인가? 군사력인가? 경제력인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일제 침략으로 멸망한 조선 민족이 일제 군사력과 경제력을 능가하는 강한 무력을 가질 수 있는가? 무장 독립운동은 승패의 가능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성에서 그것만이 민족 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라고 믿기에 하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 길을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무장 독립운동을 비판하지 않는다. 길은 달라도 민족 해방의 목표는 같다.

함석헌이 취한 다른 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고난을 평화적으로 극복하는 길, 평화적인 민족 해방의 길이다. 이 길을 찾는 것, 이것이 함석헌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을 쓴 근본 이유라고 나는 본다. 평화적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일, 민족 해방을 이루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종교적 믿음을 요청한다. 나는 이런 사상적 면모를 함석헌의 ‘고난 평화 사상’이라고 보며, 이 고난 평화론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의 주제라고 본다.

 

4. 사회개혁의 예언자적 평화

함석헌의 평화 사상은 불의한 것을 바로 잡는 예언자적 평화이다. 비록 전쟁 상황이 아닐지라도 사회 불의가 존속하는 속에서 참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나타난 함석헌의 역사 철학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평화사상이다. 이율곡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 점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함석헌은 ‘이율곡의 헛수고 - 군자냐 예언자냐’라는 장에서 이율곡의 실패를 정의를 외면한 평화로 규정한다.

“그(이율곡)가 하려는 것은 국민적 회개가 아니고 조정(調停)이었다. 그의 양비 양시론이 가장 그것을 잘 증명한다. ...율곡은 양편을 어루만져 잘못을 유야무야 간에 비벼버리고 협화를 이루어 보려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는 반대였다. ...사건을 될수록 확대시키지 말고 타협하여 원만히 해결짓도록 하자는 것, 다 어진 일이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원만함을 목적으로 하는 유교식 군자의 이상으로는 그것이 어진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진실이 얻어질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타협시켜 해결하자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 함때 꿰매는 인간적인 방책을 물리치고 민족의 뇌척수 위에 철저한 수술을 더 하려는 하나님의 큰 손은 움직였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301, 304, 305, 306>

 

5. 종교간 평화: 종교 배타주의를 넘어서는 길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뜻’은 평화이다. 함석헌의 역사사상에서 ‘뜻’은 궁극적인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다같이 가는 데가 어디일까? 의인, 죄인, 문명인, 야만인을 다 같이 구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유신론자, 무신론자가 다 같이 믿으며 살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그래서 한 소리가 ‘뜻’이다. 하나님은 못 믿겠다면 아니 믿어도 좋지만 ‘뜻’도 아니 믿을 수는 없지 않느냐. 긍정해도 뜻은 살아있고 부정해도 뜻은 살아있다. 져서도 뜻만 있으면 되고, 이겨서도 뜻이 없으면 아니된다. 그래서 뜻이라고 한 것이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20)

 

여기서 우리는 함석헌의 ‘뜻’ 역사사상에 담긴 평화사상의 종교적 차원을 보게 된다. 함석헌 평화사상의 종교적 차원에서 오늘날 21세기 평화사상에서 긴요한 문제는 종교적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일이다. 이것은 21세기 지구촌 평화 실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해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진영의 갈등은 9.11 테러리즘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21세기를 시작했다. 20세기 전반기는 남과 북의 빈부 갈등으로, 후반기는 동서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지구촌으로 피로 물들였는데, 21세기는 종교 갈등으로 지구촌이 피로 물들고 있다. 종교간 갈등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배타와 포용과 다원의 세가지 태도가 오늘날 이 문제를 대처하고 해결하는 길로 제시되고 있다. 함석헌의 역사철학이 제시하는 길은 자기 초월의 길이다. 함석헌은 자신이 신봉해 온 기독교 성서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기존 입장을 버린다고 선언한다.

“내게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 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타나는 그 형식은 그 민족을 따라 그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알짬이 되는 참에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해인사에 한 달을 가 있으면서 전체에 걸쳐 크게 수정을 하여 모든 교파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없애버리고 책 이름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고쳤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18-19).

 

종교적 배타주의는 내가 믿는 종교가 가장 참된 진리라는 믿음,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그러므로 나의 종교적 진리를 절대적으로 수호하고, 이와 다른 종교(가르침)는 거부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종교들 간의 상호 배타심은 갈등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갈등을 유발하거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사회경제적 갈등은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종교적 갈등은 다른 종교가 없어지기 전에는 풀리기 어려운 갈등이므로 가장 심각한 갈등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종교적 갈등을 푸는 길은 오늘날 평화 문제의 핵심 문제이며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어있다. 함석헌은 기독교를 넘어서는 자리에서 이 길을 제시한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를 넘어서는 자리란 무엇인가? 여기에 그의 ‘뜻’ 평화사상이 있다.

“만인의 종교이다. 뜻이라면 뜻이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고 생명이라 해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저 하나라 해도 좋다. 그 자리에서 우리 역사를 보자는 말이다”.

 

만인을 하나로 아우르는 종교 평화주의 사상은 보편적 인도주의 평화사상, 세계 평화사상의 종교적 영성과 통한다. 이 당시 함석헌이 국제연합(UN)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세계 평화를 이루는 길로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전에 못 본 크게 뜻있는 일이다. 나라 사이의 문제를 세계적으로 해결한 큰 본보기이다. 이 앞의 시대를 표시하는 길이다. 유엔은 인류 이성의 표지이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430-31)

 

6. 남북한 평화: 남북한 분단과 갈등을 통일과 평화로 이루는 길

함석헌의 남북한 평화론에서 가장 주목되는 역사 해석은 3.8선과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이다. 두 사건은 민족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이 비극(고난)을 비극 그 자체로 보고 한탄하는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데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3.8선의 뜻을 묻는다. 6.25 전쟁의 뜻을 묻는다. 그래서 새 시대적 각성의 길로 삼고자 한다. 이와같은 함석헌의 역사철학은 오늘 분단 60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깊은 성찰의 자료를 제시한다. 함석헌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좋다.

 

“38선은 하나님이 이 민족을 시험하려고 낸 시험문제이다. 아마 마지막 문제인지 모른다. 이번에 급제하면 사는 것이고, 이번까지 낙제하면 영원히 망하는 것이다. ...본래 우리의 잘못은 자유와 통일을 모른데 있다. 자기를 깊이 파지 않은데 있다. 그러므로 해방을 시켜 역사의 연합운동날에 참여는 시키되, 그저 주지 않고 나라 복판에 금을 긋고 이것을 넘어보라고 한 것이다. 그만큼 학대를 받고 천대를 받았으면 자유가 귀한 줄 알았어야 할 것이다. 자유가 귀한 줄 안다면 통일한 나라 아니고는 안되는 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426)

 

“도리는 무시하는 민족은 부조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6.25이다. ...6.25가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은 미소의 대립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 새것이 무엇이냐? 중도다. 세계 문제는 둘 중 하나를 고름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한 놈이 죽고 한 놈이 이김으로 결말을 짓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장난 아닌가? 이긴 놈도 진 놈도 없어야 정말 이김이다. 두 놈이 다 실패해야 두 놈이 다 구원된다. 구원을 해주어야 정말 이김이지 대적을 죽이는 놈은 먼저 진 것이다. 소설도 그렇거늘 전능의 하나님이 시키는 우주극에 이긴 놈 진 놈이 있을리 없다. 다 져야한다. 그리고 보다 높은 제 삼자가 나와야 한다. 그보다 높은 제 삼자의 자리가 중도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432-33)

“ 참 안타까운 일 아닌가? 두 군대가 남북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는 한 민족이다’ 힘있게 선언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아. 두 놈이 맞줄을 잡고 나라 복판에 없는 금을 그을 때, 한 놈은 공산주의를 내대고 한 놈은 자본주의를 내 댈때, 우리는 공산도 자본도 아니다, 우리는 한나라다. 한 올 알 뿐이지 둘은 모른다, 한으로 죽을지언정 둘로 살지는 않는다고 하였더라면 얼마나 영광이냐? 세계에 서로 제 이상이 없노라는 국민과 그 돈과 무기 앞에서 그것을 정면으로 보고 그것을 업신여겼더라면 두 놈이 다 무안 무색하였지, 그랬다면 세계의 모든 약소민족이 만세를 불렀지. 2천년 고난의 역사에 보람을 내고 부끄러움을 단번에 지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니 그 어찌 아니 분하냐?”(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434)

 

“6.25를 겪어봤으면 무력을 아니 될 줄을 알아야 할 것이요, 전쟁 즉시로 그만두어야 할 줄 알아야 할 것이요, 국경을 없애고 세계가 한 나라가 되어야 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요, 우리의 생명이란 곧 우주적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 없이는 못할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2006: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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