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117주년 기념 자료집에 "3.1독립선언 100년. 씨알정신을 말한다' 주제에 밎게 함선생님의 "3.1 정신"이라는 주옥같은 글을 담았습니다. 읽어보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씨알정신이 지난 촛불정신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명쾌한 글입니다. 정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
3.1정신
함석헌
정신에서 정신으로
3.1운동을 그 밖에 나타난 결과로 하면 한 개 실패한 운동이다. 만세만 부르면, 그리하여 우리가 일본 정치 아래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세계 여러 나라 앞에 표시만 하면 독립이 곧 되는 줄로 믿었는데 그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 점에서 본다면 실패다. 그러나 독립만세 부르다가 독립은 되지 않고 많은 희생자를 내고 여러 사람이 감옥살이를 하고, 한때 산천을 뒤흔들던 만세도 총칼 밑에 바람 자듯 자버리고 말았는데, 아무도 그것을 실패라 생각하고 그 한 일을 후회하고 풀이 죽어버린 사람을 하나도 없었다.
이 사실은, 이 독립운동이 실패에 돌아갔는데도 민중이 한 사람도 풀이 죽지 않았다는 이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서 크게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언제나 일의 결과는 육신의 사람에게 그때그때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고 마는 데 그치는 것이요, 그 일이 드러내는 정신은 사람의 정신 속에 길이길이 살아 작용하여 산 역사를 이루어가는 법이다.
3.1운동은 민중의 가슴 속에 정신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것이 물결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사회에 낙심,낙망의 기분이 돌지 않고 도리어 머리를 들고 올라가려는 여러 가지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을 일으킨 것은 그 자체가 또 산 정신에서 나온 증거다. 정신은 정신에서만 나온다. 정신은 정신을 일으키고야 만다.
우주, 인생을 꿰뚫는 정신
그럼 무슨 정신인가? 무슨 정신이라는 것이 없다. 정신은 그저 하나 산 정신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흔히 3.1정신이라고 떠드는 소리를 듣지만 3.1정신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 아니다. 있다면 우주 인생을 꿰뚫는 정신이 있을 뿐이지. 해를 낳고, 달을 낳고, 천체를 낳고, 꽃을 웃게 하고, 새를 울게 하며, 사람으로 사람이 되게 하는 그 정신이 31운동을 일으켰지, 그밖에 또 무슨 조작이 있을 수 없다.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민중 앞에서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은 민중이 이미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이 정신을 빼앗아 다시 팔아먹으면서 사사로이 이익을 얻으려는 협잡꾼의 하는 소리다.
알고 모르고가 문제 아니다. 가졌나 못 가졌나가 문제다. 그리고 아는 자가 반드시 가지는 것이 아니요, 가진 자가 반드시 아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에 참으로 가진 자는 도리어 가진 줄 알지도 못하는 법이요, 입으로 공교히 설명을 하는 자는 사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아노란 말은 모르노란 말이요, 했다는 소리는 아니했다는 소리다. 3.1정신은 스스로 가진 줄 알지도 못하는 민중의 것이다.
3.1절만 되면 보기 싫은 것은 서로 3.1정신 팔아먹으려 드는 꼴이다. 이 큰 정신의 꿈틀거림이 어느 단체나 몇몇 개인이 꾸며낸 일이나 되는 것처럼 서로 제가 먼저 했다는 거요, 제가 잘 안다는 것이다. 민중이 입이 없다고 업신여기는 이들 협잡꾼을 쓸어버리라 해라! 3.1운동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산 정신이 드러난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할 것이 이 운동은 돌발적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란 말이다. 전부터 무슨 사상단체나 조직체가 있어서 이 운동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요, 이 운동 후에 또 무슨 일정한 체계의 사상이나 단체가 깉어1)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운동은 백두산이 그런 것처럼, 한라산이 그런 것처럼, 갑자기 혼자서 터져 나와 천하를 진동시킨 것이다.
3.1운동의 주인이 될 인물도 단체도 없고, 그 지도 원리와 방법이 되는 사상도 조직도 없다. 이것은 누가 가지고 주인이 되기에는, 누가 그 공로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큰 운동이다. 너무도 평범한, 너무도 광범한 정신의 나타남이다. 마치 바람에 주인 없고, 비에 시킨 이 없는 것같이.
주인은 민중
다시 말하면,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일어난 생명의 일이요, 진리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돌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것은 사실은 그 힘이 언제나 어디나 준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는 돌발할 수가 없다. 화산이 갑자기 터지는 것은 지구 속에 불이 본래 늘 있기 때문이다. 화산을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것이라면 그 터질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러면 화산이 아니다. 3.1운동은 민중의 가슴 속에 본래 언제나 있는 정신이 기회를 타 터져 한때 화산처럼 불길을 뿜은 것이다. 화산의 주인이 지구라면 3.1운동의 주인은 민중이다. 화산의 불이 우주 자연의 불이라면 3.1운동의 정신은 우주 본연의 정신이다.
우리도 동경에서 누가 왔다든지, 상해에 누가 연락을 했다든지, 서울에 누구누구가 모였다든지, 33인이 어쨌다든지, 그것을 모르는 것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기회에 그 심부름은 했는지 모르나, 그 정신에 이르러는 아무도 터럭끝 만큼도 이러구저러구 할 것이 못된다. 태극기를 만들고 선언서를 찍어 사람들의 가슴에 안겨줄 때 누구라고 알고, 누구를 골라서 주었던가? 그전에 무슨 조직, 기관이 하나인들 있었던가? 실로 아무것도 없었다. 없었는데 그저 다만 민중을 하나로 보고, 전적으로 믿고 한 것뿐이다
이번 117주년 기념 자료집에 "3.1독립선언 100년. 씨알정신을 말한다' 주제에 밎게 함선생님의 "3.1 정신"이라는 주옥같은 글을 담았습니다. 읽어보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씨알정신이 지난 촛불정신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명쾌한 글입니다. 정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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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정신
함석헌
정신에서 정신으로
3.1운동을 그 밖에 나타난 결과로 하면 한 개 실패한 운동이다. 만세만 부르면, 그리하여 우리가 일본 정치 아래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세계 여러 나라 앞에 표시만 하면 독립이 곧 되는 줄로 믿었는데 그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 점에서 본다면 실패다. 그러나 독립만세 부르다가 독립은 되지 않고 많은 희생자를 내고 여러 사람이 감옥살이를 하고, 한때 산천을 뒤흔들던 만세도 총칼 밑에 바람 자듯 자버리고 말았는데, 아무도 그것을 실패라 생각하고 그 한 일을 후회하고 풀이 죽어버린 사람을 하나도 없었다.
이 사실은, 이 독립운동이 실패에 돌아갔는데도 민중이 한 사람도 풀이 죽지 않았다는 이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서 크게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언제나 일의 결과는 육신의 사람에게 그때그때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고 마는 데 그치는 것이요, 그 일이 드러내는 정신은 사람의 정신 속에 길이길이 살아 작용하여 산 역사를 이루어가는 법이다.
3.1운동은 민중의 가슴 속에 정신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것이 물결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사회에 낙심,낙망의 기분이 돌지 않고 도리어 머리를 들고 올라가려는 여러 가지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을 일으킨 것은 그 자체가 또 산 정신에서 나온 증거다. 정신은 정신에서만 나온다. 정신은 정신을 일으키고야 만다.
우주, 인생을 꿰뚫는 정신
그럼 무슨 정신인가? 무슨 정신이라는 것이 없다. 정신은 그저 하나 산 정신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흔히 3.1정신이라고 떠드는 소리를 듣지만 3.1정신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 아니다. 있다면 우주 인생을 꿰뚫는 정신이 있을 뿐이지. 해를 낳고, 달을 낳고, 천체를 낳고, 꽃을 웃게 하고, 새를 울게 하며, 사람으로 사람이 되게 하는 그 정신이 31운동을 일으켰지, 그밖에 또 무슨 조작이 있을 수 없다.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민중 앞에서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은 민중이 이미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이 정신을 빼앗아 다시 팔아먹으면서 사사로이 이익을 얻으려는 협잡꾼의 하는 소리다.
알고 모르고가 문제 아니다. 가졌나 못 가졌나가 문제다. 그리고 아는 자가 반드시 가지는 것이 아니요, 가진 자가 반드시 아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에 참으로 가진 자는 도리어 가진 줄 알지도 못하는 법이요, 입으로 공교히 설명을 하는 자는 사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아노란 말은 모르노란 말이요, 했다는 소리는 아니했다는 소리다. 3.1정신은 스스로 가진 줄 알지도 못하는 민중의 것이다.
3.1절만 되면 보기 싫은 것은 서로 3.1정신 팔아먹으려 드는 꼴이다. 이 큰 정신의 꿈틀거림이 어느 단체나 몇몇 개인이 꾸며낸 일이나 되는 것처럼 서로 제가 먼저 했다는 거요, 제가 잘 안다는 것이다. 민중이 입이 없다고 업신여기는 이들 협잡꾼을 쓸어버리라 해라! 3.1운동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산 정신이 드러난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할 것이 이 운동은 돌발적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란 말이다. 전부터 무슨 사상단체나 조직체가 있어서 이 운동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요, 이 운동 후에 또 무슨 일정한 체계의 사상이나 단체가 깉어1)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운동은 백두산이 그런 것처럼, 한라산이 그런 것처럼, 갑자기 혼자서 터져 나와 천하를 진동시킨 것이다.
3.1운동의 주인이 될 인물도 단체도 없고, 그 지도 원리와 방법이 되는 사상도 조직도 없다. 이것은 누가 가지고 주인이 되기에는, 누가 그 공로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큰 운동이다. 너무도 평범한, 너무도 광범한 정신의 나타남이다. 마치 바람에 주인 없고, 비에 시킨 이 없는 것같이.
주인은 민중
다시 말하면,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일어난 생명의 일이요, 진리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돌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것은 사실은 그 힘이 언제나 어디나 준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는 돌발할 수가 없다. 화산이 갑자기 터지는 것은 지구 속에 불이 본래 늘 있기 때문이다. 화산을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것이라면 그 터질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러면 화산이 아니다. 3.1운동은 민중의 가슴 속에 본래 언제나 있는 정신이 기회를 타 터져 한때 화산처럼 불길을 뿜은 것이다. 화산의 주인이 지구라면 3.1운동의 주인은 민중이다. 화산의 불이 우주 자연의 불이라면 3.1운동의 정신은 우주 본연의 정신이다.
우리도 동경에서 누가 왔다든지, 상해에 누가 연락을 했다든지, 서울에 누구누구가 모였다든지, 33인이 어쨌다든지, 그것을 모르는 것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기회에 그 심부름은 했는지 모르나, 그 정신에 이르러는 아무도 터럭끝 만큼도 이러구저러구 할 것이 못된다. 태극기를 만들고 선언서를 찍어 사람들의 가슴에 안겨줄 때 누구라고 알고, 누구를 골라서 주었던가? 그전에 무슨 조직, 기관이 하나인들 있었던가? 실로 아무것도 없었다. 없었는데 그저 다만 민중을 하나로 보고, 전적으로 믿고 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