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발길에 차여서 산 함석헌 선생님의 삶

글 - 저서, 시, 글

글믿음과 행동의 자리

믿음과 행동의 자리
아무래도 사람이란 서로 접촉해보는 것이 좋은 건데, 저 학생들도 누가 지도하는 이가 있어야겠는데, 참 문제로군요. 그런 의미에서는 요새 그들을 학교에서 만난다는 것이 참 좋다 그러고 싶고, 또 그러면 그럴수록 뭘 부족한 걸 자꾸 느껴요. 이대로만 가지곤 안되겠는데……하는.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인가 어제 신문인가, 홍콩의 어느 신문 기자가 한국 현실을 놓고 우리 학생문제에 대해서 평을 했다고 하는 걸 간단하게 보도했어요. 그런데 거기 소리가 그게 좀 주의를 해 들을만해요. 내가 듣기에 생각나는 건 우리는 감히 못하는데, 그 사람은 외국사람이니까 그런지 말을 했어요. “잘못된 행동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그만두지도 못하고, 계속하자니 더 하기도 어렵고……그렇다는, 어느 정도 그런 의미의 말이에요. 행동주의가 나쁘다고 그렇게까진 아닌데, 행동하려면 자기의 하는게 뭣이 분명히 확실한 게 있어야겠는데, 말하자면 그렇지를 못하고 그저 그만두지도 못하고 신통하게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는 하는 말인데,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봐요.
그렇다면 참 문제예요. 나 자신은 물론 행동의 사람은 아니고 행동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 될 수 있으면 했으면 좋지만 그렇게 못된다 하는 그런 마음이 있고 그렇지만 노자, 장자를 이날까지 그렇게 해오면서도 Actionism에 대해서 깊은 비판을 하질 못하는 거, 그게 내 잘못이랄까 결점이지, 잘못이지. Actionism이 미국에서 날 때도 퀘이커 청년들 속에서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벌써 몇 해 전에 갔을 때에 보니까 굉장한 기세를 가지고 일어났는데, 좀 하다 보니까 뭐 그저 흐지부지, 미국에선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별 신통한 것 없다 그랬어요. Actionism이란 결국엔 그럴 거요. 사람이니까 보통말로 하면, “말만 해선 뭘해, 생각만 해서 뭘해, 실지로 해야지……” 그렇지만, 그런 의미에서 행동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건 주로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거고, 사람이 그럼 아주 행동주의로 해결이 되느냐 그러면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 동안도 그런 생각을, 우리 학생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거 좀 이제 행동도 하지만 깊이 생각을 해 들어가는 면을 파고 들어가야겠는데 그런 면이 부족하다……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 사람도 그런 말을 했단 말이에요.
요새 학생을 만나는데서도 그런 얘기를 좀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나 자신 역시 내가 과연 충고하는 확신이 있다고 그럴 수가 없어요. Actionism이냐 아니냐 이러는 거는 마음에 확신이 없는데서 나오는 소리지, 행동이라면 행동이고, 일해야 되니까 행동해야 되는 건 옳은 거지만, 행동하면 그게 반드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되고 좋은 결과가 올거다 ……한다면 그건 그렇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정적인, 내적인 면을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소위 말하는 행동주의에만 빠져선 못쓰지요. 거기에 들어가만 놓으면 아까 말한 대로 그만두지도 못하고 좋은 성과를 내자는 목적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마지막엔 교착상태에 들어간다는 말이 그런데서 나온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은 젊은이의 문제라 하겠지만 젊은이만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의 문젠데, 그런건 속의 생명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내가 속에서 진실되이 찾는 게 무언가. 그런 게 있으면 거기서는 행동이냐 사색이냐 그런 게 갈려 있진 않은 자리에요. 신앙이라는 건 참 자리엘 들어가면 생각하는 그게 곧 행동이고 그렇지.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만하고 있느냐, 깊이 알지도 못하고 하기만 하자고 덤비느냐, 그런 게 갈라지는 거예요.
그런 걸 학생들을 접촉해 보면서 느껴왔어요. 앞으로도 벌써 약속을 해놓은 곳이 여러 곳 있어요. 그런데 처음엔 나도 의심을 했지요. “학생들이 나보고 오라고 할 것 같지가 않은데……” 하고서. 나는 내 주의 대로 내 무엇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지만, 학생들은 아무래도 주로 행동편으로, 그러니까 그걸 잘 이해할까……? 요새 나 보고 뒤졌다든지 그런 평을 들을 수 있는……그렇지 않은가 그랬는데, 의외로 그렇질 않아요. 그건 학교 안에서도 생각을 하는 그런 점도 있고, 또 아주 극렬하게 행동을 하자고 하는 그런 주의의 사람은 아마 강연장엔 안 왔을런지도 몰라요.
만일 그런 사람은 안 왔다 그런다면 거기에도 또 생각할 만한 점이 있지요. 그것도 행동을 하면서도 역시 자기네도 생각은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 아닐까? 자기네도 나하고 생각이 맞지 않은 줄 아니까, 간댔자 자기넨 말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소용이 없는 거니까 안 온다고 혹 그럴 수 있지만 그래 두 편이 다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접촉해 보니까 좋다……” 의외로 내가 느끼기에 그런 점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참 문제되는 점이 사실 있다……그렇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으로 지금의 이 되어가는 일을 생각할 때 그런 걸 옆에서 그저 강 건너 불 모양으로 방관만 하고 있는 게 옳은 거냐. 그건 틀려먹은 거고, 그럴 수가 없지 않아요?
정부에서 하는 방책이 잘못된 것은 물론이고, 그건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이 수십 년을 두고 계속해 오는데, 뭐 계속해 오거나 한번을 하거나 간에, 거기 대한 방법이 그저―그걸 보면 아주 기분이 참 나빠져요―자기네는 마스크를 쓰고 페퍼포그를 쏘고 그러는데 그것밖에 방법이 없을까? 말은 “그렇게 하면 사회 질서를 문란 시키게 되니까 그런다” 하지만, 정말 나라를 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학생들이 정부를 배제해서 비판적이고, 행동을 하고 그럴 때의 방책이 그것 만일까?
그러니까 도무지 뭘 나라를 위한다는 그런 입장에 선 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네 권력을, 권력안보를 위해서지. 주로 그게 돼서 그러니까 그렇게 거기 아주 감정이 맥혔어. 그런데 요번에는 조금 다르지요? 학원내엔 절대 들어가지 않더군요.
또 한편으로 페퍼포그를 지독히 쏘고 그러니까 그러겠지만, 학생들도 또 참 너무하는 점도 있고, 부근에 있는 돌을 주워서 하는 건 또 몰라. 어제는 외대(外大)엘 갔더니 학교 담을 헐어가지고 그걸 부숴서 냅다 던지고 있어. 물론 화가 나니까 그러긴 하겠지만. 그러는 걸 그대로 좋다고 그럴 수도 없고, 그래 그런거를 그런다고 강 건너 불처럼 보고만 있어야 하느냐?
우린 이게 종교가 도대체 무슨 종교야. 노자에게는 혹 그런지 몰라. 그렇지만 그들도 가만히 있었느냐 하면 말은 했어요.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태도가 아니지요. 구경하는, 나는 초연해서 “난 거기 안 들어간다” 하는 최악의 경우에 나가면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예수님의 태도를 보면 그건 아니에요. 하는 데까지 하다가 자기 몸으로, 자기가 희 생이 되더라도 그냥 자기 할 만큼은 하는 거, 그러셨지.
그러니까 남의 일로 보질 않아요. 구경을 하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암만해도 지금의 양쪽이 다, 국민도 그렇고 학생도 그렇고, 정부는 또 정부대로 그렇고, 크게 잘못된 거예요. 남의 일처럼! 하는 사람은 또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이기적인 생각에, 자기 일을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그건 사사로운 마음이지, 그래 그런 거에요
1984. 5. 20
퀘이커 서울모임 월보11 1984.6월
저작집30; 15-135
전집20;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