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발길에 차여서 산 함석헌 선생님의 삶

글 - 저서, 시, 글

글중국인의 지혜

중국인의 지혜
차원을 뛰어넘어 생각할 줄 아는 중국인의 지혜
오늘 아침에 내가 동경고사 때 배운 모로하시 선생님의『중국인의 지혜』라는 조그만 책자를 받았는데 그 내용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그분은 북경대학을 나왔고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분인데……
중국 사람은 이긴 일도 이겨보려고 한 일도 없다. 중일전쟁이 시작됐을 때에 NHK에서였는지 4,5인의 학자들을 모아놓고 말을 시킨 일이 있다.
나도 그때 출석했는데, 그때에 시라토리 구라키치 박사라는 분이 “중국 민족은 옛날로부터 이날까지 외국과 전쟁을 해서 이긴 일이 없는 민족입니다. 또 이겨보려고 생각했던 일도 없습니다” 하는 말이 있었다.
과연 그대로이다. 그야말로 동양사의 대가이니만큼 명언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또 여기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아는 국민을 상대로 하고 전쟁을 해서 어떻게 그 국민을 이길 수가 있을까. 노자의 말에 씨알들이 죽기를 두려워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을 가지고 그들을 겁나게 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말이 있다. 죽어도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죽인다고 하는 말이 아무런 협박이 될 수 없다. 전쟁을 해서 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을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는가?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처럼 헛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다음에「빨개진 중국의 빨갱이」란 대목이 있다.
오늘날 중국은 공산주의를 향해서 나가고 있다고들 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전 국민이 그렇게 됐다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된 것일까? 빨간 잉크가 지금 여기 들어왔다 하자. 조그마한 일본 같은 나라라면 전력을 다해서 그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만 중국 사람들은 그런 식으론 아니한다. 좋다, 올 테면 와봐라. 그러면 우린 온 전체가 다 거기 동조하자, 빨간 잉크 한 병에다가 한 탱크의 물을 들이붓는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소련의 빨간 잉크가 왔다고 해도 7억 6천만의 중국인이 거기 다 동조 했을 때 그것은 벌써 소련에서 하는 그런 빨간 잉크는 못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러는 동안에 중국 사람들은 공산당의 정략이라든지 무기라든지 당장에 필요한 무슨 그런 것을 취할 만큼 취하긴 하겠지만, 그 뒤에 언제까지나 소련에 추종한다는 그런 짓은 아니 할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숙지하고 있던 일이었다. 거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차원을 뛰어넘어서 사물을 생각하는 데에 그들의 한 가지 큰 특성이 있고 지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이런 걸 읽다가 ‘중국 사람은 크다’는 생각을 하다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은 크시다’ ‘우리 아버지는 크시다’는 생각이 났고, 여기 크다는 건 결국은 무한한 걸 말하는 건데, 중국 사람의 국민성에서 그런 걸 본다면, 우리들은 너무 속이 작은 것 아닐까.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려는데 누가 오셔서 일부러 나한테 알려 주시려고 오셨는데, 우리나라 싸워가는 신앙인들 속에 무슨 변인가가 좀 일어나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내가 속으로 기뻤다는 건, 내게는 처음부터 그런 게 분명한 거에요. 내 태도와 말이 본래부터 옳았다 그런 생각에 감히 뭐 내노라고 그럴 수는 없지만, 스스로 맘에 고맙게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왜 그러냐 그러면 당초에 근본이 없으니까 그래요. 근본 되는 게 무언지를 알아서 그걸 딱 거기다 마음을 바친 다음에야 그 형편 따라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갈라졌다 하나 됐다, 그럴 리가 있어요?
차원을 뛰어넘어서 생각을 한다고 하는 건 중국 민족의 놀라운 점인데, 그러기만 한다면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 우리 모임 생각도 좀 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정말 훈련을 좀 해야겠다. 차원을 뛰어넘어서 생각할 줄을 알아야겠다. 이 세상의 지금 있는 이해시비(利害是非)에 걸려서, 이러는 게 유리할까 저러는 게 유리할까 하다가는 결국은 아마 실패하고 말거라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1984. 8. 19
퀘이커 서울모임 월보 15 1984.8월
저작집30; 15-151
전집20; 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