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기도에 대하여
명상을 해도 아무런 맛을 모르겠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무도 처음부터 명상의 맛을 아는 법은 없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이 가는 것 같지만 1분이 됐을까 2분이 됐을까? 시간이 이렇게 긴가? 시간이 다 됐을까? 그런 생각 마세요. 그런 것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그건 상관 말고, 어찌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마음을 온전히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한테 바칠 수가 있을까, 하나님만을 내 마음속에 바랄 수가 있을까 하고 노력하고 있노라면 차차 명상하는 것에 거기 무슨 맛이 있다고 할까, 그런 것을 짐작하시게 될 겁니다. 쉽게는 안됩니다. 그저 되는 일은 없습니다. 늘 힘을 써야 되는 겁니다. 어린애가 공부하는 모양으로 외우고 외우고 뜻을 몰라도 자꾸만 외우노라면 어느 때 홀연히 그 뜻을 알게 되는 모양으로 사람의 믿는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때까지 잘못 배워서, 하나님의 뜻으로 되지 사람의 뜻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할 때에 그걸 잘못 배웠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손 묶고 앉았는 것이 명상인 듯 생각한 데에서, 거기서 잘못이 왔는데,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 우리 마음속에, 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습니다. 어느 산에 가면 만나는 것 아니고, 어느 물속에 들어가서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이라고 하는 데에 없습니다. 어느 곳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어느 시간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거는 시간, 공간을 다 잊어버리고 내 마음을 될수록 순수하게, 잡념을 없애고―그런다고 잡념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셨다고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건데, 그런 거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내 속이 살아서,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절대 하나님 그대로, 의심 없이 믿으려고 하는 생각에, 겸손한 마음으로 시간은 얼마나 됐을까 언제 끝이 날까, 그런 생각에 붙잡혀 버리지를 마시고 가만히 명상을 하시는 가운데 있노라면 그러면 아까 예언자가 했던 모양으로 하나님이 내 마음을 비우시고, 내속에 말씀을 넣어주셨다고 하는 그런 체험을, 경험을 조금씩은 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비로소 남에게 가서 물어본다 해도, 남의 생각은 물을 것이 없이 스스로 짐작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이 우리 속에서 자란다는 것, 그게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언가 이제까지는 앞을 내다봐도 캄캄한 것 같은데, 그러노라면 어둔 밤중에 무슨 불을 견 것도 아니지만 어딘지 방향을 알 수 있는 모양으로 짐작이 가는 그런 것이 우리 속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그런 줄을 아시고, 우리가 공부를 도무지 않해서 우리가 그럴 줄을 몰랐기 때문에 그러지, 우리보다 전에 있던 분들이 마치 이 예언자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지도해준 일없습니다. 성경을 읽어가노라면 그 속에 지금부터 수천 년 전 사람들이 걸어가신 길이 있으니까, 그런 것을 다 아시는 것 같지만 될수록 읽고 또 읽고 해서 그 속을 읽노라면 그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 보이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 우리가 몇이 모였든지 간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지금 계시다 하는 확신에 이를 때까지 해보고, 그렇게 하다 오늘 안되면 내일 해보고, 이 시간에 안되면 다음 시간에 또 해보고 그러는 게 명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보는 것, 하나님을 어느 처소에 가서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을 명상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바라면서 생각하면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적당한 때 받을 만한 때가 되면 우리 속에, 우리 분에 적당하게 조금씩 조금씩 아마 알게 되 는 거 아닐까 합니다.
1984. 9. 2.
퀘이커 서울모임 월보 17 1984.9월
저작집30; 15-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