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사람은 없어졌다지만
(고통이 사람 마음을 깨우는 건데)
20년 전에 영국에 갔을 때 그곳 대학생들이 기아문제와 싸우는 무슨 모임이 있었어요. 그때 사회자인 학생이 말하기를 “우리가 싸우기는 싸우지만 우리는 사실상 배고픈 게 뭔지는 모른다” 그래요. 그건 대영제국이 한때 우리 영토는 해지는 때가 없다고 하면서 잘살던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그런 말이 나왔을 테지요. 그래도 무슨 생각이 속에 있어서, 자기네는 배고픈 게 뭔지 모르면서 살아왔지만 이 세계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 싸우는 일을 해야 된다 그랬어요.
그것이 20년 전의 일인데, 요새 사람들과 얘기를 하노라면 몇 곳에서 말이 “인제 우리도 배고픈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요.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요. 사회 문제가 여러 가지 있지만, 배가 고파서 못사는 사람은 우리 눈에도 없는 것 같이 됐는데, 그럼 그건 뭣으로 그렇게 됐느냐 그러면, 물론 깊이 말한다면 안 그렇겠지만 눈에 뵈는 걸로 하면 박정희씨가 대통령이 돼서 근대화한다고 해가지고, 그때는 비판도 많았지만 그렇게 된 덕택으로 이렇게 됐다……아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럼 우리나라에도 이젠 배고픈 사람은 없다……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 생각난게, 20년 전 영국 학생들이 “우리는 배고픈 게 뭔지 모르고 자라났다. 그렇지만 세계 다른 나라에는 배고픈 사람이 많으니까 싸워야 된다”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그때에는 이 사람들이 제국주의 밑에 짓눌려서 착취당했기 때문에 그랬지만, 어쨌거나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건 아주 큰 잘못인데 사람들이 배 안 고프다는 것만 알지, 자기가 배 안 고프기 위해서 자기 입에 밥이 들어가려면 한편에서는 아직 스물도 못 된 여직공들이 공장에서 사람대접도 못 받으면서, 그것도 자꾸 왜 그런 소릴 하느냐면서 잡아가두고 하는 그런 일이 있으면서 되는 것인 줄을 생각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 말입니다.
그것도 생각 못하지만, 이제는 20년 전의 그때와도 다른 것이, 이젠 세계적으로 문제가 돼서 내 앞집이나 내 뒷집에서 굶는 사람이 없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지구촌이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아프리카라든지 남미라든지 거기 지금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그건 우리 문제다 그러고, 우리의 삶의 맥박이게까지 느껴졌어야 할 터인데, 그걸 모르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을 그래도 정칠 잘해서 이렇게 된 거지 그러는데,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살림이 커진 거예요. 그러니까 도리어 말한다면 인류문제가 깊이 들어갔다 할까. 그래 속담에 손톱 밑 곪는 것은 알면서 내 염통 밑 곪는 건 모른다 그러지 않아요? 그걸 모르는 것이 반드시 건강한 거 아니라 그 말이에요.
이 인류 전체의 병이 지금 그렇게 된거 아닌가? 그럼, 그런 거를 어떡하면 우리 마음이 깰 수 있을까 그래야겠는데 당장에 내 입에 먹을 것이 들어오니까 배가 고프다든지 그런 건 모른다 그 말이에요. 내 배가 부르니까반드시 식량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일 전체가 말하자면 모두 그런 식인데그런 문제에 정신이 가지 않으리만큼 둔해 진 다음에는 여기 열흘을 가만히 앉았어도 하나님의 소리 들릴 리 없다 그 말이에요.
그저 가만히만 앉았으면 하나님 계시는 걸 느끼게 되는 게 아니라, 가령 절간에 앉아 삼시 밥을 또박또박 먹으면서 참선을 한대도 들려올 리가 없지요. 그런 모양으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믿는다면 그저 정치문제·사회문제 생각할 것 없이 믿는 거만 열심으로 믿으면 된다 그러지만, 그러는 데서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회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이 깨자고 하는 데는 무슨 고통이 와야 하는데, 고통은 물론 불행한 거지만 고통의 덕택으로 옛날에는 하나님을 찾고 그랬는데, 지금은 고통의 성격이 아주 커져서 깊은 데로 들어갔어요. 이젠 뭐 망하게 되면 하나나 둘이 망하는 게 아니라 인류가 망하게 되리만큼 됐는데, 그것이 내게서 지금 현실적으로 멀어서 느껴지지 않는다고 모른다면, 그러면 인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1984. 9. 16.
퀘이커 서울모임 월보 18 1984.8월
저작집30; 15-165
이건 아주 큰 잘못인데사람들이 배 안 고프다는 것만 알지, 자기가 배 안 고프기 위해서 자기 입에 밥이 들어가려면 한편에서는 아직 스물도 못 된 여직공들이 공장에서 사람대접도 못 받으면서, 그것도 자꾸 왜 그런 소릴 하느냐면서 잡아가두고 하는 그런 일이 있으면서 되는 것인 줄을 생각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