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발길에 차여서 산 함석헌 선생님의 삶

글 - 저서, 시, 글

감사절

감사절

창밖에 비뿌린다
차디찬 동짓달 비
오다말다 멎다가 또 오며
밤새나 낙엽과 숙덕거리는
그 소리 내 흉질하는 것 같아
나는 한잠을 못이루었노라

내 가슴 속에도 찬비 내린다
낙엽에도 맘을 다 파는
차디찬 동짓달 비같은
찬 눈물 내 눈에 넘치는 밤
울다 잠이들다 잠이들다 또 깨며
나는 홀로 이리 앉아 울었노라

창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다
오실 리 없는 줄 번히 알며
행여 긴가 스스로 속이는 맘에
스스로 속으며 내다봤을 때
저 짖꿎은 낙엽 재미있다는 듯
머리 흔들며 히히 웃고
우는 나를 버려놓고 저 멀리로
흔뜰흔뜰 꼬리치며 가버리더라

가슴을 줴뜯었노라
줴뜯어도 소용이 없더라
기대리면서도 정작에 오면
내놀 것 없어 당황하는
간난한 농부와도 같이
나는 님 생각을 하고
내 속이 텅빔을 느껴
다 찢어진 창구멍 같은
내 가슴을 안고 엎더져
다시 채워주심만 바라
차디찬 비 내리는 동짓달 긴 밤
어둠 속에 뉘우쳐 빌고 또 빌었노라

님이여 오소셔
와서 채워주소셔
이 찬비에 떠는 몸 가려주시고
저 비웃음의 원수 갚아주소셔
한 번만 보아주소셔
보고 웃어주소셔
님 한 번 웃으시면 단 번에
다 갚아질 줄 믿습니다

님은 아니 오시고
비는 그냥 그칠 길 없고
가슴 구멍에 설 설
찬바람들어 속떨리고
주룩주룩 낙숫물소리
내목의 핏대 따논 듯 저런데
밤은 발서 다 새고 뿌옇게
감사절 날이 왔다더라

오늘은 감사절
찬비만 내리네
해도 아니 나고
님도 아니 오시고
떠는 맘 떠는 손이 어디를 향해
감사를 드려야 하느냐?

아니, 아니지
생각하면 아니지
해도 하나 님도 하나
한 삶 속에 사는 삶
흐렸거나 개였거나
낙엽이나 산 꽃이나
어느 거면 그의 선물 아님 있을까?
다 기지
찬비마저 찬 눈물에
찬맘대로 감사하리라

차디찬 비 창밖에 뿌려
찬 눈물 눈에 찬 새벽
회리바람 어디선지 문듯 불어 횡
안밖 문을 다 열어제치고
쇠북을 울린 듯 쨍
귀에 들린 소리있어 하는 말
「내가 다 풀었느니라
네가 다 풀어버려라」

찬비 내릴대로 내려라
바람 흔들대로 흔들어라
짖꿎은 낙엽 웃을대로 웃어라
속없으며 있는 척 고운 낯 해
속여놓고 도리어 비웃고 가는
울긋불긋 떠서도는 너 낙엽아
너야말로 말 좋건만
몇 발걸음을 못나가
갈바람에 버림받고 떨어져
흙속에 썩을 네 운명이기로
불쌍히 여긴 마음에 너를 안으려던
이 내마음 이었건만

찬 눈물에 젖은
시름 시앗의 이불을 차던지고
진 것 지운 것을
다풀어 내던지고
일어나니 까닭 모를 기쁨
하늘에 닿는 듯지 않으냐?
밤새도록 간을 쑤시던
쑥덕거림 다 달아났구나
텅 빈 가슴 깊이 쪼개진 상처 밑에
나는 님의 뵈지 않는 약속의 씨를 묻고
오는 해를 찬 눈물로 부어기대리며
미리 감사해 살으리로다

☆ 『감사절』은 함석헌선생님이 미국에서 체류하실 때, 1962년 11월 추수감사절에 쓰신 시로,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김용준 박사에게 그해 11월30일에 보낸 편지에 함께 보내셨다.(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