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발길에 차여서 산 함석헌 선생님의 삶
언론에 비친 함석헌
관련자료[사진은 말한다] 함석헌 옹의 서재, 1971년 12월 2일
5·16 군사정변 후에도 그의 독재 비판은 계속됐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YWCA위장결혼식사건`(1979년)을 일으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그는 국민을 노예처럼 생각하는 독재 정권에 항상 두려움 없이 저항했다.[전민조 다큐멘터리 사진가][ⓒ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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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말한다] 함석헌 옹의 서재, 1971년 12월 2일
하얀 머리에 항상 한복 차림인 선생은 의자도 아닌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당시 민주주의 파수꾼 노릇을 했던 잡지 `씨알의 소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을 많이 했다. 자택이 곧 연구실이었다.
선생의 일생은 저항의 역사였다. 일제시대부터 필화 사건(1942년)으로 2년간 복역했으며 광복 후에도 신의주학생의거(1945년)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북한 당국에 체포됐는가 하면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절에도 비판을 멈추지 않아 다반사로 투옥됐다.
5·16 군사정변 후에도 그의 독재 비판은 계속됐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YWCA위장결혼식사건`(1979년)을 일으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그는 국민을 노예처럼 생각하는 독재 정권에 항상 두려움 없이 저항했다.
[전민조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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