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광복’을 향한 남북연합 논의의 필요성
이 무 철 (통일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강조한 ‘진정한 광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체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 모색과 함께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통일대비 차원에서 심도 있는 남북연합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남북연합을 일차적으로 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화로 잠정적인 통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최종적인 통일국가(연방제/단일제)를 추구해 나가는 남북한의 결합방식으로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연합을 하나의 완성된 체제로 보지 않고 현실적인 공존과 협력의 안정적 틀을 만드는 정치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의 확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 전망을 연합/연방 또는 분단/통일(분리/통합)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두지 않고, 기존의 시공간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형태의 공존과 통합이 가능하다는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9년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및 10월 실무회담 결렬 이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중단, 그리고 올해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관계도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있다. 2018년의 평화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고, 남북관계는 ‘개선→정체 및 중단→악화’ 라는 패턴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75주년 경축사에서 방역협 력, 공유하천의 공동관리, 보건의료와 산림협력 등을 거듭 제안하면서, “평화공동체, 경제공 동체와 함께 생명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상생과 평화의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북한은 분단과 전쟁 이후 지금까지 갈등과 대립을 통한 적대적 공존을 해왔다. 남북한은 이러한 적대적 공존, 불안정한 평화 상태를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해 왔다. 만약 남북 한이 적대도 협력도 아닌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분리된 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전쟁의 위협과 공포가 지속되는 적대적 공존을 평화공존으로 전환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광복 75주년을 맞아 “남과 북이 생명과 안전의 공동체”임을 강조하고, “진정한 광복은 평화롭고 안전한 통일 한반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꿈과 삶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평화와 공동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남북연합 논의
이러한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대내외 적 조건이나 돌발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남북관계의 제도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의 지속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남북관계의 제도화 는 통일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발전 및 제도화 과정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 상정한 화해협력 단계를 넘어 남북연합 단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강조한 ‘진정한 광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체된 남북관 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 모색과 함께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통일 대비 차원에서 심도 있는 남북연합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은 이미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며, 2018년에도 2차 례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와 번영에 기초한 통일 추구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연합제나 낮은 단계 연방제는 현재의 남북한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남북연합 단계는 통일국가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 통일 의 최종방식이 아니다.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남북한은 아직까지도 상대방의 통일방안이 각각 ‘공산화통일’,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대내외적 환경 변화 속에서 남북연합을 비롯한 통일방안에 대한 재논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근 학계에서는 20세기에 제안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21세기의 변화된 대내외 환경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통일방안의 재구성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1) 대외적으로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을 통한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국제정치경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화두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 차원에서 는 북핵문제의 장기화로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리고 최근 북한은 ‘민족’보다 ‘국가’를 강조하면서 체제 및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주력해 나가고 있다. 남한도 민족의식이 과거보다 약화되면서 점차 다민족·다 문화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더구나 고착화 경향을 보이는 분단구조 속에서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남한사회에서 통일보다는 평화를 강조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변화는 불가피하게 기존 통일방안의 수정 및 보완을 강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주의(confederalism)와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 논의의 한반도 적용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변화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남북연합 재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연합의 이론적 기초인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에 대한 고찰과 보완 작업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당시 탈냉전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에 기초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신)기능주의적 접근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에서는 경제협력을 비롯한 인적 교류와 사회문화적 협력의 진전과 남북 정상의 간헐적인 정치적 결단이 정치·군 사적 문제의 해결과 함께 평화공존과 통합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통일과정을 화해협력 단계와 남북연합 단계로 구분한 것은 당시 남북한의 갈등과 대립 상태 를 고려하면서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서 설정한 첫 번째 단계인 화해협력은 일정한 시간 내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화해협력은 적대적 관계에 있던 당사자들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해협력은 그 성격이 달라지겠지만, 화해협력 단계나 남북연합 단계, 미래의 통일국가 단계에서도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의 안정성 및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의 마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현재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의 근거였던 유럽 연합의 경우, 연합적 성격과 함께 ‘초국가성’의 점진적 심화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발전 과정을 통해 연합과 연방적인 동학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연합의 제도적 발전과정에 주목하고 있는 최근의 연합주의(confederalism) 논의를 (신)기능주의 통합이론 과 결합하여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기존 남북연합 논의는 남북한이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기본적으 로 자유민주주의체제 중심의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나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 모두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나 각자의 체제 중심의 통일을 구상하고 있다. 남북한이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으나, 민족 공동체통일방안에 따르면 남북연합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완전한 통일국가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 실현을 통한 남북연합 형성은 사실상 북한의 체제와 제도가 남한의 체제와 제도에 맞춰 변화할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이러한 방식의 남북연합 형성과 관련해 흡수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교류협력이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사건의 발생이나 정치군사적 이유로 중단되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연방국가 건설 제안도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의 통일전략전술로 공산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적대와 경쟁의 분단구조 아래 남북한은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통일 실현을 위해 자신의 통일방안을 강조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북핵문제, 미‧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 들의 역학관계 등을 고려할 때, 남북 가운데 한 쪽이 폭력적 방법과 수단에 의해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는 구조이다. 즉, 한반도 통일은 폭력적 수단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흡수통 일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힘들다. 따라서 남북은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상호신뢰를 구축하면 서 갈등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협상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폭력적 갈등 상태의 평화공존 상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비교평화과정 연구의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 논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의주의는 갈등과 대 결의 교착상태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를 동등한 대화 주체로 여기고, 평화공존을 위해 상호 권력과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현재의 분단구조 및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협의주의 원칙은 남북갈등을 평화공존과 협력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남북한이 상호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연합/연방 형태에 대한 제도적 상상력 필요
셋째, 남북연합 및 통일방안 논의에 있어서 연합과 연방을 구분하고, 북한이 연방제를 주장 한다는 이유로 연방제를 북한의 전유물로,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 통일방안으로 이미 낙인 을 찍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현재 남북한의 국력 격차와 인구 구성 등을 볼 때, 남한이 연방제를 중심으로 한 통일협상을 주장하더라도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분단 이후 극심한 남북한의 체제 및 이념 갈등으로 인해 연방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유럽연합의 제도적 발전과정에서 주목받고 있는 연합적 거버넌스 논의를 보면, 통합의 구체적인 지향점을 연합 혹은 연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에는 연합과 연방에 대한 고전적 분류에 집착하지 않고 연합과 연방의 ‘하이브리드(hybridity)’적 성격과 가능성, 이를 바탕으로 한 통합국가로서의 ‘하이브리드 국가’를 논의하고 있기도 하다.2) 따라서 한반도 통일 전망을 연합/연방 또는 분단/통일(분리/통합)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두지 않고, 기존의 시공간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형태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넷째, 남북연합 논의는 남북한의 상이한 이념과 체제로 인한 이질성과 국력 격차 등을 고려해야 한다. 유사한 정치, 경제, 사회제도 등과 함께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다른 연합 사례와 달리, 남북연합은 상이한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남북한의 연대이기 때문에 합의점 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남북한의 경제격차로 인해 남북한 주민들의 교류와 협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한다면 남북한이 남북연합을 통해 평화적 공존과 정치적 연대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남북연합 초기에는 상품, 자본, 노동, 기술 등의 이동을 비롯한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에 있어 일정 정도의 제한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 남북연합 형성은 유럽연합처럼 남북한 주민들에게 이중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다. 즉, 남북한의 국민(공민)이면서 동시에 남북연합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남북연합의 시민권은 국가적 시민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은 남북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꺼릴 수밖에 없다. 체제와 이념이 다르고 경제적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현재의 시점에서 남북 주민들 사이의 접촉은 자신의 체제 내적 안정성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통제 가능한 접촉을 선호할 것이다. 남한 입장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대량 이동이 가져올 남한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북연합 형성 초기에 는 남북한의 지리적 분리를 바탕으로 자치와 협력을 제도화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점차 남북 통합의 과정으로 진입해 나가야 한다.
남북연합 ‘초국가성’의 단계적 강화: ‘한반도 이익’을 향해
다섯째, 남북연합은 둘 이상의 국가연합과 달리 남북한 양자의 연합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연합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는 회원국들이 상호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물론 일부 회원국의 이익과 국가연합의 이익이 상충할 때 브렉시트(Brexit)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탈퇴가 가능하다. 그런데 남북연합은 남북한 양자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한쪽의 탈퇴는 연합의 실패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연합의 발전과 궁극적인 통합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처럼 ‘초국가성’을 점차 강화해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의 개별 이익을 넘어 남북한 전체의 이익, 즉, ‘한반도 이익’을 추구·관 리하는 초국가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남북한 정부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남북한 정부의 권위에 종속되어 남북한 전체 이익을 위한 정책결정과 집행을 담당하는 초국가기구를 어떻게 구성 할 것인가이다. 남북연합은 유럽연합과 달리 남북한 양측의 연합이기 때문에 남북한 이익을 넘어선 남북한 전체의 이익을 담당하는 초국가기구의 구성원들도 남북한 시민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초기 협상 과정에서 초국가기구의 성격, 구성원의 선출방식, 운영방 식 등을 둘러싸고 남북의 첨예한 이해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연합적 거버넌스의 구성은 남북연합 구성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남북연합 구상 작업에 있어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로서 남북연합 구상에 남북이 합의한다면, 남북한이 상호 상대방 의 정치적 실체와 체제의 특징을 인정 및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인정 및 존중은 남북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치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남북연합을 국가연합의 형태로, 형식은 국가연합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남북한의 공존과 통합을 지향하는 국가결합 형태로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남북연합을 일차적으로는 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화로 잠정적인 통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최종적인 통일국가(연방제/단일 제)를 추구해 나가는 남북한의 결합방식으로 구상하자는 것이다.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로서 남북연합과 ‘열린 통합’ 지향
남북연합의 1차적 목표는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과 협력의 제도화로, 연합을 매개로 평화 체제의 확립과 교류협력의 활성화로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남북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통일(통합) 단계로 진입하자는 것이다. 70년 이상 상이한 이념과 체제로 대립해왔던 남북한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이 지속적인 화해협력과 연대의 강화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남북연합이 장기간 지속 될 수도 있다. 물론 남북한 주민들의 강한 열망으로 연방 혹은 단일국가로 통일이 급격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잠정적인 통일 형태로 남북연합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면서 연방국가 혹은 단일국가 추구 여부는 향후 연합체제 내에서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 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진정한 광복’이 한반도 통일을 의미한다면, 지금부터 남북의 평화공 존과 협력의 제도로서 남북연합을 논의하고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연합을 하나의 완성된 체제로 보지 않고 현실적인 공존과 협력의 안정적 틀을 만드는 정치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의 확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 전망을 연합/연방 또는 분단/ 통일(분리/통합)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두지 않고, 기존의 시공간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 한 형태의 공존과 통합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분단 고착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광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와 연합을 전제로, 통일 또는 통합의 구체적 인 지향점을 연합/연방 또는 단일국가의 선택문제가 아니라 ‘초국가성’의 강화라는 제도적 목표로 남북이 공유하는 ‘열린 통합’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KINU 2020
1) 통일부·통일연구원,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 의의와 과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 기념 학술회의 자료집, 2019.9.9.) 참조.
2) 이무철 외, 남북연합 연구: 이론적 논의와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서울: 통일연구원, 2019), p. 4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통일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통일연구원, 2021.08
진정한 광복’을 향한 남북연합 논의의 필요성
이 무 철 (통일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강조한 ‘진정한 광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체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 모색과 함께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통일대비 차원에서 심도 있는 남북연합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남북연합을 일차적으로 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화로 잠정적인 통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최종적인 통일국가(연방제/단일제)를 추구해 나가는 남북한의 결합방식으로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연합을 하나의 완성된 체제로 보지 않고 현실적인 공존과 협력의 안정적 틀을 만드는 정치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의 확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 전망을 연합/연방 또는 분단/통일(분리/통합)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두지 않고, 기존의 시공간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형태의 공존과 통합이 가능하다는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9년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및 10월 실무회담 결렬 이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중단, 그리고 올해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관계도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있다. 2018년의 평화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고, 남북관계는 ‘개선→정체 및 중단→악화’ 라는 패턴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75주년 경축사에서 방역협 력, 공유하천의 공동관리, 보건의료와 산림협력 등을 거듭 제안하면서, “평화공동체, 경제공 동체와 함께 생명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상생과 평화의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북한은 분단과 전쟁 이후 지금까지 갈등과 대립을 통한 적대적 공존을 해왔다. 남북한은 이러한 적대적 공존, 불안정한 평화 상태를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해 왔다. 만약 남북 한이 적대도 협력도 아닌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분리된 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전쟁의 위협과 공포가 지속되는 적대적 공존을 평화공존으로 전환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광복 75주년을 맞아 “남과 북이 생명과 안전의 공동체”임을 강조하고, “진정한 광복은 평화롭고 안전한 통일 한반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꿈과 삶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평화와 공동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남북연합 논의
이러한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대내외 적 조건이나 돌발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남북관계의 제도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의 지속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남북관계의 제도화 는 통일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발전 및 제도화 과정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 상정한 화해협력 단계를 넘어 남북연합 단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강조한 ‘진정한 광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체된 남북관 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 모색과 함께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통일 대비 차원에서 심도 있는 남북연합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은 이미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며, 2018년에도 2차 례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와 번영에 기초한 통일 추구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연합제나 낮은 단계 연방제는 현재의 남북한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남북연합 단계는 통일국가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 통일 의 최종방식이 아니다.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남북한은 아직까지도 상대방의 통일방안이 각각 ‘공산화통일’,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대내외적 환경 변화 속에서 남북연합을 비롯한 통일방안에 대한 재논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근 학계에서는 20세기에 제안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21세기의 변화된 대내외 환경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통일방안의 재구성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1) 대외적으로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을 통한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국제정치경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화두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 차원에서 는 북핵문제의 장기화로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리고 최근 북한은 ‘민족’보다 ‘국가’를 강조하면서 체제 및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주력해 나가고 있다. 남한도 민족의식이 과거보다 약화되면서 점차 다민족·다 문화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더구나 고착화 경향을 보이는 분단구조 속에서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남한사회에서 통일보다는 평화를 강조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변화는 불가피하게 기존 통일방안의 수정 및 보완을 강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주의(confederalism)와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 논의의 한반도 적용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변화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남북연합 재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연합의 이론적 기초인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에 대한 고찰과 보완 작업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당시 탈냉전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에 기초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신)기능주의적 접근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에서는 경제협력을 비롯한 인적 교류와 사회문화적 협력의 진전과 남북 정상의 간헐적인 정치적 결단이 정치·군 사적 문제의 해결과 함께 평화공존과 통합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통일과정을 화해협력 단계와 남북연합 단계로 구분한 것은 당시 남북한의 갈등과 대립 상태 를 고려하면서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서 설정한 첫 번째 단계인 화해협력은 일정한 시간 내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화해협력은 적대적 관계에 있던 당사자들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해협력은 그 성격이 달라지겠지만, 화해협력 단계나 남북연합 단계, 미래의 통일국가 단계에서도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의 안정성 및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의 마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현재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의 근거였던 유럽 연합의 경우, 연합적 성격과 함께 ‘초국가성’의 점진적 심화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발전 과정을 통해 연합과 연방적인 동학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연합의 제도적 발전과정에 주목하고 있는 최근의 연합주의(confederalism) 논의를 (신)기능주의 통합이론 과 결합하여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기존 남북연합 논의는 남북한이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기본적으 로 자유민주주의체제 중심의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나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 모두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나 각자의 체제 중심의 통일을 구상하고 있다. 남북한이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으나, 민족 공동체통일방안에 따르면 남북연합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완전한 통일국가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 실현을 통한 남북연합 형성은 사실상 북한의 체제와 제도가 남한의 체제와 제도에 맞춰 변화할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이러한 방식의 남북연합 형성과 관련해 흡수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교류협력이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사건의 발생이나 정치군사적 이유로 중단되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연방국가 건설 제안도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의 통일전략전술로 공산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적대와 경쟁의 분단구조 아래 남북한은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통일 실현을 위해 자신의 통일방안을 강조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북핵문제, 미‧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 들의 역학관계 등을 고려할 때, 남북 가운데 한 쪽이 폭력적 방법과 수단에 의해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는 구조이다. 즉, 한반도 통일은 폭력적 수단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흡수통 일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힘들다. 따라서 남북은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상호신뢰를 구축하면 서 갈등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협상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폭력적 갈등 상태의 평화공존 상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비교평화과정 연구의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 논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의주의는 갈등과 대 결의 교착상태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를 동등한 대화 주체로 여기고, 평화공존을 위해 상호 권력과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현재의 분단구조 및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협의주의 원칙은 남북갈등을 평화공존과 협력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남북한이 상호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연합/연방 형태에 대한 제도적 상상력 필요
셋째, 남북연합 및 통일방안 논의에 있어서 연합과 연방을 구분하고, 북한이 연방제를 주장 한다는 이유로 연방제를 북한의 전유물로,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 통일방안으로 이미 낙인 을 찍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현재 남북한의 국력 격차와 인구 구성 등을 볼 때, 남한이 연방제를 중심으로 한 통일협상을 주장하더라도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분단 이후 극심한 남북한의 체제 및 이념 갈등으로 인해 연방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유럽연합의 제도적 발전과정에서 주목받고 있는 연합적 거버넌스 논의를 보면, 통합의 구체적인 지향점을 연합 혹은 연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에는 연합과 연방에 대한 고전적 분류에 집착하지 않고 연합과 연방의 ‘하이브리드(hybridity)’적 성격과 가능성, 이를 바탕으로 한 통합국가로서의 ‘하이브리드 국가’를 논의하고 있기도 하다.2) 따라서 한반도 통일 전망을 연합/연방 또는 분단/통일(분리/통합)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두지 않고, 기존의 시공간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형태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넷째, 남북연합 논의는 남북한의 상이한 이념과 체제로 인한 이질성과 국력 격차 등을 고려해야 한다. 유사한 정치, 경제, 사회제도 등과 함께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다른 연합 사례와 달리, 남북연합은 상이한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남북한의 연대이기 때문에 합의점 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남북한의 경제격차로 인해 남북한 주민들의 교류와 협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한다면 남북한이 남북연합을 통해 평화적 공존과 정치적 연대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남북연합 초기에는 상품, 자본, 노동, 기술 등의 이동을 비롯한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에 있어 일정 정도의 제한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 남북연합 형성은 유럽연합처럼 남북한 주민들에게 이중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다. 즉, 남북한의 국민(공민)이면서 동시에 남북연합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남북연합의 시민권은 국가적 시민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은 남북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꺼릴 수밖에 없다. 체제와 이념이 다르고 경제적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현재의 시점에서 남북 주민들 사이의 접촉은 자신의 체제 내적 안정성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통제 가능한 접촉을 선호할 것이다. 남한 입장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대량 이동이 가져올 남한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북연합 형성 초기에 는 남북한의 지리적 분리를 바탕으로 자치와 협력을 제도화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점차 남북 통합의 과정으로 진입해 나가야 한다.
남북연합 ‘초국가성’의 단계적 강화: ‘한반도 이익’을 향해
다섯째, 남북연합은 둘 이상의 국가연합과 달리 남북한 양자의 연합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연합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는 회원국들이 상호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물론 일부 회원국의 이익과 국가연합의 이익이 상충할 때 브렉시트(Brexit)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탈퇴가 가능하다. 그런데 남북연합은 남북한 양자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한쪽의 탈퇴는 연합의 실패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연합의 발전과 궁극적인 통합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처럼 ‘초국가성’을 점차 강화해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의 개별 이익을 넘어 남북한 전체의 이익, 즉, ‘한반도 이익’을 추구·관 리하는 초국가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남북한 정부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남북한 정부의 권위에 종속되어 남북한 전체 이익을 위한 정책결정과 집행을 담당하는 초국가기구를 어떻게 구성 할 것인가이다. 남북연합은 유럽연합과 달리 남북한 양측의 연합이기 때문에 남북한 이익을 넘어선 남북한 전체의 이익을 담당하는 초국가기구의 구성원들도 남북한 시민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초기 협상 과정에서 초국가기구의 성격, 구성원의 선출방식, 운영방 식 등을 둘러싸고 남북의 첨예한 이해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연합적 거버넌스의 구성은 남북연합 구성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남북연합 구상 작업에 있어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로서 남북연합 구상에 남북이 합의한다면, 남북한이 상호 상대방 의 정치적 실체와 체제의 특징을 인정 및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인정 및 존중은 남북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치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남북연합을 국가연합의 형태로, 형식은 국가연합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남북한의 공존과 통합을 지향하는 국가결합 형태로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남북연합을 일차적으로는 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화로 잠정적인 통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최종적인 통일국가(연방제/단일 제)를 추구해 나가는 남북한의 결합방식으로 구상하자는 것이다.
평화공존과 협력의 제도로서 남북연합과 ‘열린 통합’ 지향
남북연합의 1차적 목표는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과 협력의 제도화로, 연합을 매개로 평화 체제의 확립과 교류협력의 활성화로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남북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통일(통합) 단계로 진입하자는 것이다. 70년 이상 상이한 이념과 체제로 대립해왔던 남북한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이 지속적인 화해협력과 연대의 강화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남북연합이 장기간 지속 될 수도 있다. 물론 남북한 주민들의 강한 열망으로 연방 혹은 단일국가로 통일이 급격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잠정적인 통일 형태로 남북연합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면서 연방국가 혹은 단일국가 추구 여부는 향후 연합체제 내에서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 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진정한 광복’이 한반도 통일을 의미한다면, 지금부터 남북의 평화공 존과 협력의 제도로서 남북연합을 논의하고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연합을 하나의 완성된 체제로 보지 않고 현실적인 공존과 협력의 안정적 틀을 만드는 정치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의 확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 전망을 연합/연방 또는 분단/ 통일(분리/통합)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두지 않고, 기존의 시공간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 한 형태의 공존과 통합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분단 고착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광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와 연합을 전제로, 통일 또는 통합의 구체적 인 지향점을 연합/연방 또는 단일국가의 선택문제가 아니라 ‘초국가성’의 강화라는 제도적 목표로 남북이 공유하는 ‘열린 통합’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KINU 2020
1) 통일부·통일연구원,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 의의와 과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 기념 학술회의 자료집, 2019.9.9.) 참조.
2) 이무철 외, 남북연합 연구: 이론적 논의와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서울: 통일연구원, 2019), p. 4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통일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통일연구원, 20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