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 시론
사회적 참사 연대자에서 운동의 주체가 되면서 본 몇 가지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목사

1.
2025년 새해가 열렸다. 신선한 새해의 감흥이 누구에게나 있기를, 특별히 예기치 않은 일을 겪고 한숨과 눈물짓는 분들에게 따스하게 살포시 내리길 소망한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된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2년이 되고, 작년 6월 아리셀 리튬 배터리 공장 참사가 해결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의 산재는 7년, 언론노동자 이한빛 피디의 산재가 9년이 된다. 쿠팡에서는 지난 5년간 21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이 안타까운 참사와 산재를 계속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인 유족들과 함께 살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고 이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불운한 희생자가 아니라 권리를 선언할 주체이며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개신교 목사로서 참사 유족들과 여러 계기들을 통해서 만났던 경험이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대인에서 참사 운동의 주체로 함께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있다. 연대인으로 듣고 배운 것도 특별했지만 운동의 주체가 되면서 조금 더 볼 수 있었던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이 지면에서 나눠보고자 한다.
2.
먼저, 유족들과 만난 경험 중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20년 12월.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마련되었던 단식농성장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20대 청년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님과 이한빛 피디 아버지 이용관 님께서 그곳에서 단식을 하고 계셨다. 당시 나는 교단 총회 임원들과 지지 방문을 갔었다. 속옷을 많이 껴입고 따끈한 차를 마셔도 춥고 헛헛한 겨울인데, 이 분들은 그 엄동설한에 단식을 하면서 산재의 고통을 몸으로 증언하고 계셨다. 유가족들의 단식농성과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이 모아져 2021년 1월26일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후에 김미숙 님을 몇 차례 만났다. 김미숙 님이 나와 비슷한 동년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으니 그 고통과 상실감이 어떨지 가슴이 아렸다. 게다가 어두운 작업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원통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매년 2천 명씩 하루에 6명꼴로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어보고자,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보고자 2019년에 김용균재단을 만들고 이사장을 맡아서 활동하고 계신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 질문하니, 이 땅의 청년들이 다시는 자신의 아들과 같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몸이 잘려지고 죽어가는 현실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주부였지만, 김용균재단 이사장으로 대표 자격도 당당히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3.
참사의 현실을 증언하며 사회를 바꾸어가는 어머니가 또 있었다. 재작년 2023년 봄, 사순절 기간에 영등포산업선교회 회관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간담회가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 임현주 님께서 그날의 사건과 지금의 과제에 대해서 증언을 했다. 특별히 자신의 아들 ‘의진’은 성경 말씀 중에, ‘의’와 ‘진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지은 이름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고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없는데 교회는 왜 소리를 내지 않는가?’, ‘교회는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서 진리를 외치는 사명을 왜 다하지 않는가?’, 그리고 ‘문제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잘못된 프레임에서 전환과 해방을 선언해야 할 공적인 역할과 책임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물어왔다. 이 질문은 나에게 오랫동안 메아리쳤고 활동과 성찰의 기준이 되었다.
4.
위의 두 어머니에 이어 작년에는 쿠팡 산재 노동자의 유족들과 만났다. 작년 5월 말 뉴스에서는, 한 명의 택배 노동자 사망사건을 보도했다. 플랫폼 대기업 쿠팡에서 심야 노동을 하던 분이 사망했는데, 보도 화면 하단에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카카오톡 문자가 대문짝만하게 걸렸다. 이것은 새벽 시간 쿠팡 자회사 업무 지시자의 재촉에 답한 문자였다. 그는 모두가 잠든 새벽,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그 시간에 왜 개처럼 뛰어야 했을까? 이 분은 41세의 정슬기 님이다. 그는 밤 8시 30분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6일을 택배노동을 했다. 그는 이 일을 한 지 1년 2개월 만에 숨지고 말았다.
이 노동자의 죽음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문득 문득 생각나곤 했는데, 8월 어느 날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님의 페북을 통해 고 정슬기 님이 내가 속한 교단의 성도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특별한 신호로 느껴졌고 곧 남 소장님도 만났고, 고인의 부친이신 정금석 님을 만나게 되었다. 부친은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10년을 일하신 분이셨다. 아버지는 급히 귀국하여 장례를 치른 후, 아들이 기업의 업무지시를 받으면서 일한 노동자인데도 아들이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되어 있는 현실에 의문을 품었다. 과로사가 분명한데도 산업재해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노무사와 상담을 하고 택배노동조합을 찾아갔다고 한다. 내가 만났을 때는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산업재해 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진행이 잘 되지 않고 있어서 답답해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장로님과 협력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고 남 소장님과 함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함께할 수 있는 교회와 선교기관과 시민노동단체들을 만났다. 9월 4일은 정슬기 님이 사망한 지 딱 100일 되는 날이었는데, 20여 개 교회와 단체들의 대표들이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모였다. 우리는 이날 〈쿠팡택배노동자고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시민사회대책위〉를 결성했다.
우리는 이날부터 본사 앞에서 매일 한 시간씩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여러 교회에 찾아가서 간담회를 했다. 이 산재 문제는 우리 한국 교회 성도와 가족의 문제이며 동시에 생명을 살려야 하는 교회의 역할임을 공동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9월 24일엔 공식 출범식을 가지면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 무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한 세계교회협의회 국제담당 피터 프루브 국장과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도 함께 만나서 간담회를 열었다. 피터 프루브 국장은 유족들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연대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10월 중순부터는 쿠팡 본사 앞에서 추모기도회를 열었다. 정슬기 님이 다닌 수원성교회 안광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다.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문으로, 강도 만난 이웃에게 다가가서 치료를 돕는 것과 함께 강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이 악한 현실을 바꾸어가야 함을 강조하셨다. 여러 교회와 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예배를 드렸다. 이 과정에서 10월 10일 산재 승인이 되었다.
5.
정슬기 님에게는 어린 네 자녀가 있는데, 한 아이는 학교에서 ‘너희 아빠가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이런 편지글을 썼다.
“우리 아빠는 죽었다. 일하다 돌아가셨다. 남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고 싶었을 것이다. 쿠팡은 대한민국 국민을 노예로 길들이고 있다. “쿠팡의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아빠를 죽였다.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이리도 힘든 건지 몰랐다.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 천국에선 아프지 마세요. 일하지도 말고 푹 쉬세요.”
유족들의 고통이 이러한데도 쿠팡은 유족들에게 아직 사과하지 않고 있다. 쿠팡 대표는 이 환경이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라고 하고, 정부 행정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다. 정슬기 님 외에도 쿠팡에서는 지난 4년 사이에 21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이 슬픔과 고통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국회 청문회 개최를 촉구하는 온라인 국민청원운동을 10월 10일에 시작하였다. 유가족 3인이 공동 발의했다. 이 국민청원운동은 한 달 동안 5만 명을 모아야 하는 것인데, 한 달이 되기도 전인 11월 7일에 조기 달성되었다. 5만 명의 청원자가 모집된 후, 세 유가족들이 모였다. 4년 전에 아들 장덕준을 잃은 어머니 박미숙 님은 남은 자녀들이 겪는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상상할 수 없이 크다고 했다. 4년 전 자신이 제대로 재발 방지 운동을 펼쳤더라면, 지난 4년 사이에 20명이 더 죽는 비극이 없었을 텐데, 올해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유가족들이 안 나왔을 텐데 하시며 자책을 했다. 4년 전에는 못했지만, 올해는 반드시 재발방지책을 만들어서 더 이상은 이런 고통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다.
6.
대책위 활동을 하는 중에 노동자 민중 사건 속에서 영적 치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았다. 정슬기 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처음에는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려 했단다. 그러나 도무지 문밖을 나가는 것이 무섭고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더 있을 수 없어서 얼른 다시 선교지로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활동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이 머물렀던 신앙의 세계가 너무나 협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정슬기 님 아내도 남편의 괴로움을 얼른 캐치하고 그 일을 그만두게 하지 못한 자신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마음이 컸는데 함께 관심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만났는데도, 당사자들은 이런 자책과 죄책감 속에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나는 이 모습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왜 병고침과 죄사함을 함께 선포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죄책감에서 벗어날 것을 선언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에 매인 그 사슬에서 해방되고 치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들의 죽음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계처럼 조이고 돌리며 이윤을 뽑아내는 데 혈안이 된 경제제일주의 시스템과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인의 가족들은 죽음의 진짜 이유와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기업에게 책임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나 저항하고 싸울 용기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아가 이것은 희생자에서 타자의 해방에 참여할 사명자라는 인식과 고백으로 이끄는 것을 보았다.
7.
2023년 3월 20일에 여러 사회적 참사 가족들이 함께 모여 만들고 발표한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의 권리 선언문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정슬기 님 어머니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이 피해자 권리 선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권리 선언문을 다 싣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열 가지 항목만 싣는다.
1)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가족의 생사와 이동경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와 원인, 향후 수습과정 등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습니다.
2)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들이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고 국가나 기업이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3)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신속하게 구조 받을 권리가 있음은 물론, 유가족들은 시신과 유류품을 조속하고 인도적으로 인계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4)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피해자들끼리 만나고 위로하며 연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5)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언론과 정부, 온라인, 타인 등의 2차 가해와 인권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6)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다친 마음과 몸을 충분히 치료받고 필요한 법률적 지원을 받는 등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7)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사고의 원인조사와 재발방지대책 수립, 피해지원책 마련 등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8)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할 권리가 있습니다.
9) 국민들은 참사 피해자가 되었을 때, 합당한 배․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로 인해 혐오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10) 국민들과 참사 피해자들은 지역사회나 일터 등 소속 공동체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상호 연대하고 국가와 그 공동체의 회복 노력과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8.
2023년 9월 28일 사회적 참사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국민동의 청원에 5만 명이 참여하여 이뤄졌다. 작년 2024년 하반기에도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각계 각층에서 힘을 모으기 위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법 제정 추진 의지를 밝힌 상태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5당으로 구성된 국회 생명안전포럼이 작년 7월에 출범했다. 오지원 변호사(법무법인 법과 치유)는 “기업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인 국민에게는 ‘사고는 운이 없어 당하는 것’이라는 무력감을 주는 문화가 지속된다”며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법 제정은 사회문화와 관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은 참사 유가족들과 국민의 오래된 요구이다. 생명안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깨어서 많은 관심과 연대활동을 해나가야 한다.
9.
앞서 언급되었듯 계속 이어지는 참사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불운의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적극적인 권리선언의 주체가 되고 더 나아가 생명운동의 주체이자 연대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놀랍고 희망찬 변화이다. 작년 9월부터 쿠팡 택배 노동자 고 정슬기 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나도 활동의 주체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내게도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연대인으로 머무를 때와는 달리 많은 고민과 시간과 애를 써야 하지만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그 길이 결코 막연하게 막혀 있지 않다는 것과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모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피해 당사자들과 연대인들이 이 추운 겨울, 다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함께 피해자 권리를 당당히 선언하며, 생명운동의 적극적인 주체로 일어서자고 제안하고 싶다. 참사를 일으키는 구조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주체로 나서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한 발만 걸치고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생명과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씨ᄋᆞᆯ의소리 후원 계좌
834-01-0058-841(국민은행, 함석헌기념사업회)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생명운동 #참사 # 사회적참사 #연대 #주체
씨알 시론
사회적 참사 연대자에서 운동의 주체가 되면서 본 몇 가지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목사
1.
2025년 새해가 열렸다. 신선한 새해의 감흥이 누구에게나 있기를, 특별히 예기치 않은 일을 겪고 한숨과 눈물짓는 분들에게 따스하게 살포시 내리길 소망한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된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2년이 되고, 작년 6월 아리셀 리튬 배터리 공장 참사가 해결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의 산재는 7년, 언론노동자 이한빛 피디의 산재가 9년이 된다. 쿠팡에서는 지난 5년간 21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이 안타까운 참사와 산재를 계속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인 유족들과 함께 살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고 이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불운한 희생자가 아니라 권리를 선언할 주체이며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개신교 목사로서 참사 유족들과 여러 계기들을 통해서 만났던 경험이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대인에서 참사 운동의 주체로 함께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있다. 연대인으로 듣고 배운 것도 특별했지만 운동의 주체가 되면서 조금 더 볼 수 있었던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이 지면에서 나눠보고자 한다.
2.
먼저, 유족들과 만난 경험 중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20년 12월.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마련되었던 단식농성장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20대 청년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님과 이한빛 피디 아버지 이용관 님께서 그곳에서 단식을 하고 계셨다. 당시 나는 교단 총회 임원들과 지지 방문을 갔었다. 속옷을 많이 껴입고 따끈한 차를 마셔도 춥고 헛헛한 겨울인데, 이 분들은 그 엄동설한에 단식을 하면서 산재의 고통을 몸으로 증언하고 계셨다. 유가족들의 단식농성과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이 모아져 2021년 1월26일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후에 김미숙 님을 몇 차례 만났다. 김미숙 님이 나와 비슷한 동년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으니 그 고통과 상실감이 어떨지 가슴이 아렸다. 게다가 어두운 작업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원통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매년 2천 명씩 하루에 6명꼴로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어보고자,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보고자 2019년에 김용균재단을 만들고 이사장을 맡아서 활동하고 계신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 질문하니, 이 땅의 청년들이 다시는 자신의 아들과 같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몸이 잘려지고 죽어가는 현실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주부였지만, 김용균재단 이사장으로 대표 자격도 당당히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3.
참사의 현실을 증언하며 사회를 바꾸어가는 어머니가 또 있었다. 재작년 2023년 봄, 사순절 기간에 영등포산업선교회 회관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간담회가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 임현주 님께서 그날의 사건과 지금의 과제에 대해서 증언을 했다. 특별히 자신의 아들 ‘의진’은 성경 말씀 중에, ‘의’와 ‘진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지은 이름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고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없는데 교회는 왜 소리를 내지 않는가?’, ‘교회는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서 진리를 외치는 사명을 왜 다하지 않는가?’, 그리고 ‘문제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잘못된 프레임에서 전환과 해방을 선언해야 할 공적인 역할과 책임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물어왔다. 이 질문은 나에게 오랫동안 메아리쳤고 활동과 성찰의 기준이 되었다.
4.
위의 두 어머니에 이어 작년에는 쿠팡 산재 노동자의 유족들과 만났다. 작년 5월 말 뉴스에서는, 한 명의 택배 노동자 사망사건을 보도했다. 플랫폼 대기업 쿠팡에서 심야 노동을 하던 분이 사망했는데, 보도 화면 하단에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카카오톡 문자가 대문짝만하게 걸렸다. 이것은 새벽 시간 쿠팡 자회사 업무 지시자의 재촉에 답한 문자였다. 그는 모두가 잠든 새벽,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그 시간에 왜 개처럼 뛰어야 했을까? 이 분은 41세의 정슬기 님이다. 그는 밤 8시 30분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6일을 택배노동을 했다. 그는 이 일을 한 지 1년 2개월 만에 숨지고 말았다.
이 노동자의 죽음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문득 문득 생각나곤 했는데, 8월 어느 날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님의 페북을 통해 고 정슬기 님이 내가 속한 교단의 성도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특별한 신호로 느껴졌고 곧 남 소장님도 만났고, 고인의 부친이신 정금석 님을 만나게 되었다. 부친은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10년을 일하신 분이셨다. 아버지는 급히 귀국하여 장례를 치른 후, 아들이 기업의 업무지시를 받으면서 일한 노동자인데도 아들이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되어 있는 현실에 의문을 품었다. 과로사가 분명한데도 산업재해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노무사와 상담을 하고 택배노동조합을 찾아갔다고 한다. 내가 만났을 때는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산업재해 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진행이 잘 되지 않고 있어서 답답해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장로님과 협력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고 남 소장님과 함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함께할 수 있는 교회와 선교기관과 시민노동단체들을 만났다. 9월 4일은 정슬기 님이 사망한 지 딱 100일 되는 날이었는데, 20여 개 교회와 단체들의 대표들이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모였다. 우리는 이날 〈쿠팡택배노동자고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시민사회대책위〉를 결성했다.
우리는 이날부터 본사 앞에서 매일 한 시간씩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여러 교회에 찾아가서 간담회를 했다. 이 산재 문제는 우리 한국 교회 성도와 가족의 문제이며 동시에 생명을 살려야 하는 교회의 역할임을 공동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9월 24일엔 공식 출범식을 가지면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 무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한 세계교회협의회 국제담당 피터 프루브 국장과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도 함께 만나서 간담회를 열었다. 피터 프루브 국장은 유족들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연대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10월 중순부터는 쿠팡 본사 앞에서 추모기도회를 열었다. 정슬기 님이 다닌 수원성교회 안광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다.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문으로, 강도 만난 이웃에게 다가가서 치료를 돕는 것과 함께 강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이 악한 현실을 바꾸어가야 함을 강조하셨다. 여러 교회와 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예배를 드렸다. 이 과정에서 10월 10일 산재 승인이 되었다.
5.
정슬기 님에게는 어린 네 자녀가 있는데, 한 아이는 학교에서 ‘너희 아빠가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이런 편지글을 썼다.
“우리 아빠는 죽었다. 일하다 돌아가셨다. 남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고 싶었을 것이다. 쿠팡은 대한민국 국민을 노예로 길들이고 있다. “쿠팡의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아빠를 죽였다.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이리도 힘든 건지 몰랐다.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 천국에선 아프지 마세요. 일하지도 말고 푹 쉬세요.”
유족들의 고통이 이러한데도 쿠팡은 유족들에게 아직 사과하지 않고 있다. 쿠팡 대표는 이 환경이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라고 하고, 정부 행정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다. 정슬기 님 외에도 쿠팡에서는 지난 4년 사이에 21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이 슬픔과 고통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국회 청문회 개최를 촉구하는 온라인 국민청원운동을 10월 10일에 시작하였다. 유가족 3인이 공동 발의했다. 이 국민청원운동은 한 달 동안 5만 명을 모아야 하는 것인데, 한 달이 되기도 전인 11월 7일에 조기 달성되었다. 5만 명의 청원자가 모집된 후, 세 유가족들이 모였다. 4년 전에 아들 장덕준을 잃은 어머니 박미숙 님은 남은 자녀들이 겪는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상상할 수 없이 크다고 했다. 4년 전 자신이 제대로 재발 방지 운동을 펼쳤더라면, 지난 4년 사이에 20명이 더 죽는 비극이 없었을 텐데, 올해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유가족들이 안 나왔을 텐데 하시며 자책을 했다. 4년 전에는 못했지만, 올해는 반드시 재발방지책을 만들어서 더 이상은 이런 고통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다.
6.
대책위 활동을 하는 중에 노동자 민중 사건 속에서 영적 치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았다. 정슬기 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처음에는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려 했단다. 그러나 도무지 문밖을 나가는 것이 무섭고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더 있을 수 없어서 얼른 다시 선교지로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활동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이 머물렀던 신앙의 세계가 너무나 협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정슬기 님 아내도 남편의 괴로움을 얼른 캐치하고 그 일을 그만두게 하지 못한 자신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마음이 컸는데 함께 관심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만났는데도, 당사자들은 이런 자책과 죄책감 속에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나는 이 모습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왜 병고침과 죄사함을 함께 선포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죄책감에서 벗어날 것을 선언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에 매인 그 사슬에서 해방되고 치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들의 죽음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계처럼 조이고 돌리며 이윤을 뽑아내는 데 혈안이 된 경제제일주의 시스템과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인의 가족들은 죽음의 진짜 이유와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기업에게 책임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나 저항하고 싸울 용기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아가 이것은 희생자에서 타자의 해방에 참여할 사명자라는 인식과 고백으로 이끄는 것을 보았다.
7.
2023년 3월 20일에 여러 사회적 참사 가족들이 함께 모여 만들고 발표한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의 권리 선언문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정슬기 님 어머니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이 피해자 권리 선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권리 선언문을 다 싣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열 가지 항목만 싣는다.
8.
2023년 9월 28일 사회적 참사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국민동의 청원에 5만 명이 참여하여 이뤄졌다. 작년 2024년 하반기에도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각계 각층에서 힘을 모으기 위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법 제정 추진 의지를 밝힌 상태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5당으로 구성된 국회 생명안전포럼이 작년 7월에 출범했다. 오지원 변호사(법무법인 법과 치유)는 “기업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인 국민에게는 ‘사고는 운이 없어 당하는 것’이라는 무력감을 주는 문화가 지속된다”며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법 제정은 사회문화와 관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은 참사 유가족들과 국민의 오래된 요구이다. 생명안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깨어서 많은 관심과 연대활동을 해나가야 한다.
9.
앞서 언급되었듯 계속 이어지는 참사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불운의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적극적인 권리선언의 주체가 되고 더 나아가 생명운동의 주체이자 연대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놀랍고 희망찬 변화이다. 작년 9월부터 쿠팡 택배 노동자 고 정슬기 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나도 활동의 주체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내게도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연대인으로 머무를 때와는 달리 많은 고민과 시간과 애를 써야 하지만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그 길이 결코 막연하게 막혀 있지 않다는 것과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모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피해 당사자들과 연대인들이 이 추운 겨울, 다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함께 피해자 권리를 당당히 선언하며, 생명운동의 적극적인 주체로 일어서자고 제안하고 싶다. 참사를 일으키는 구조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주체로 나서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한 발만 걸치고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생명과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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