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ᄋᆞᆯ 시론
이스라엘의 가자 대량학살과 붕괴하는 시온주의
박일란
독립기고가
2023년은 나크바[팔레스타인 인종청소와 대재앙] 75주년이 아니다. 나크바는 75년째 지속되고 있다.―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
우리는 화해의 문을 두드렸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늪에서 우리를 구출할 모든 방법을 시도했지만 길을 찾지 못했다.―10월 7일의 기습공격 얼마 전 하마스 간부의 외신 인터뷰
지금 목표는 단 하나, 나크바이다! 48년의 나크바를 덮을 나크바―이스라엘 의회 아리엘 칼너 의원
10월 7일에 저지른 일 때문에 하마스가 해체돼야 한다면 이스라엘 정부는 10배는 더 해체돼야 한다.―저명한 홀로코스트 연구 학자 노먼 핀켈스타인
1년 3개월 넘게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대량학살은 ‘제2의 나크바(대재앙)’를 넘어선 ‘최악의 나크바’였다. 벌써 4만 5,000여 명이 죽었다. 대부분이 아이와 여성들이었다. 이미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희생자의 40배도 훌쩍 넘어섰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은 실종자와 심각한 부상자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면 2024년 6월 중순까지 가자 인구의 7.9%인 18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추정치를 발표했고, 그 추세대로면 2024년 연말까지 14만 9,000여 명이 추가 사망할 것이라는 계산도 나온다.
1년이 훨씬 넘도록 우리가 가자에서 본 것은 ‘하마스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이, 여성, 학교, 병원, 구호기관에 대한 폭격이었다. 가자의 거의 모든 학교와 병원이 파괴됐고, 언론인과 유엔난민구호기관 직원에 대한 표적 공격이 있었다. 생지옥으로 변한 가자에서 끝없이 피난 가고, 죽고, 돌아오고, 다시 죽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생중계로 보여졌다. 이것은 SNS를 통해서 피해자들 자신에 의해서 24시간 생중계된 대량학살이었다.
우리는,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나서 죽고 나면 부모가 찾아내지 못할까 봐 자기 팔과 다리에 이름을 써넣는 아이들을 지켜봤다. 가까스로 찾아낸 죽은 아들의 신체 일부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어딘가로 걸어가는 부모를 지켜봤다. 폭격으로 머리와 몸이 사라지고 남은 딸의 발에 마지막 입맞춤을 하는 아버지를 지켜봤다. 이것을 지켜 본 많은 이들이 1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울고 있고, 머릿속까지 피에 젖은 느낌과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이 2023년 10월 7일에 하마스가 기습 공격으로 1,200명의 이스라엘 시민을 죽여서일까? 그날 벌어진 일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긴 비극이었고, 하마스의 책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하마스의 공격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원인과 뿌리는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내쫓으며 이스라엘을 건국한 과정과 75년간의 끝없는 ‘나크바’에 있다.
‘10월 7일’의 배경과 뿌리―점령과 억압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석유가 풍부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역사의 저주에 걸렸다. 이 지역의 석유를 통제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원’이 필요했던 영국과 미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다. 팔레스타인인 75만여 명이 자기 땅에서 쫓겨났고, 남은 이들도 ‘서안’과 ‘가자’ 두 지역으로 찢겨졌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고 툭하면 전기, 음식, 물까지 차단하고 전투기로 폭격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잡혀갔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 22%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고 유아 사망률은 이스라엘보다 7배나 높다. 유엔 통계에 따르더라도 지난 15년 동안 ‘테러’로 죽은 이스라엘인이 1이라면 총격과 폭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인은 20이다.
결국 10월 7일에 하마스가 보여준 폭력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비극적 열매였다. 75년이 넘게 다른 민족을 점령하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옥처럼 가둬놓고서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10월 7일을 통해서 명백해졌다. 아무리 그 방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날 벌어진 것은 이스라엘의 식민 점령에 대한 분노의 분출이었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분노에 찬 저항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게 됐고, 하마스에 들어가 총을 잡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납치를 하기 전에,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시민에 대한 무차별 총격과 체포가 있었다. 10월 7일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경험한 충격과 공포에 앞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75여 년 동안 느낀 충격과 공포가 있었다.
더구나 10월 7일에 벌어진 참극의 진실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미 초기부터 한 이스라엘 생존자(야스민 포랏)가 ‘격렬한 총격전 속에서 이스라엘군이 죽인 자국민들’에 대해 증언했다. 나아가 그 후에 이스라엘 유력 언론들조차 그날 이스라엘 시민 중에 일부가 이스라엘군 전투헬기의 총격과 탱크의 포격으로 죽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즉, 하마스의 기습에 당황한 이스라엘군이 무차별적으로 반격하다가 이스라엘 시민들까지 죽였다는 말이었다. 그래 놓고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며 “우리는 동물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이스라엘 갈란트 국방장관)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하마스는 순수하고 완전한 악”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들은 ‘아이까지 참수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시체를 불태웠다’는 확인되지 않는 자극적 소문을 퍼뜨리며 하마스를 극단적으로 악마화했다. 이것은 가짜뉴스로 밝혀지거나, 아직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방식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면서 엄청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군은 양심의 가책을 덜면서 ‘살인면허’를 받은 듯 부담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버튼을 누르며 총을 쏘고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쌓여가는 시쳇더미에 죄책감이 아니라 만족감을 느끼게 되면서, 10월 7일 이스라엘 희생자의 40배가 훌쩍 넘는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만들어낸 대학살은 이렇게 가능해졌다.
폭격으로 학교, 병원, 종교 시설만이 아니라 기지국과 통신망도 파괴했다. 가자의 참상을 알리는 언론인과 난민구호 유엔 직원도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가자 주민들은 도움을 받을 수도, 구급차나 소방차를 부를 수도, 어떤 상황인지 세상에 알리기도 어려웠고, 이스라엘군은 세상의 눈을 피해 더욱더 마음 놓고 폭격하고 파괴할 수 있었다.
끔찍한 제노사이드의 전개와 그 공범들
전기가 끊기고 연료와 식량뿐 아니라 물이 고갈되면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생지옥 속에 가자 주민들은 산 채로 말려 죽어갔다. 문제는 하마스가 인질을 풀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인질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도 없다는 데 있었고, 하마스가 가자 주민을 ‘인간 방패’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가자 주민을 ‘인간 표적’으로 여기는 데 있었다.
폭격과 대학살 속에서 인종주의의 위험도 커졌다. 서방 정부와 언론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해 보인 분노와 슬픔은 그 후 1년 넘게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과 대학살 앞에서 희미해졌다. 이것은 아랍인, 무슬림의 생명은 백인과 같은 값어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었고, 따라서 이것은 인종차별적인 대학살이기도 했다.
죽음과 학살도 그 주체와 대상이 백인이냐 유색인이냐, 미국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이었다. “지금 아랍 세계가 듣고 있는 메시지는 크고 분명하다.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은 이스라엘인의 생명보다 덜 중요하다. 국제법의 적용은 선택 사항이다. 인권은 국경, 인종, 종교에 따라 다르다.’”(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그러면서 미국과 그 동맹 정부와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뿐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제도적 인종차별) 체제가 문제라는 모든 비판을 ‘반유대주의’라고 낙인찍어서 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반유대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이번에 미국 등에서 “아이에게 폭탄을 투하하고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유대인의 가치가 아니다”라면서 반대 투쟁에 가장 앞장선 유대인과 유대인 단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21세기 최악의 대량학살의 책임자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극우 시온주의 연립정부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승리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면서 가장 강력한 지원을 보내온 미국 바이든 정부다. 영국·독일 등 서방의 이스라엘 동맹국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자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외면한 서방의 주류 언론들도 책임이 있다. 이들은 21세기 최대의 전쟁범죄자들과 그 공범들이다.
한미동맹에 매달리며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지속한 윤석열 정부나, 서방 언론들을 따라서 이스라엘 편향적 보도를 지속한 한국 족벌언론들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사기꾼이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초기에는 “우리는 휴전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마스를 이롭게 할 뿐”이라며 앞장서서 학살을 응원했다. 바이든은 스스로 “나는 시온주의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학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마지못해 휴전 협상을 중재하고 나섰다. 그러나 휴전 협상은 매번 이스라엘이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결렬됐다. 미국 정부는 1년이 넘도록 ‘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협상 타결이 눈앞에 있다’라고 하면서 희망 고문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는 ‘휴전하라’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전쟁을 위한 무기와 돈,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런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을 비판해 왔지만, 사실 중국은 미국 다음에 가장 큰 이스라엘의 무역 파트너이고,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계속 공급되는 석유와 석탄이 있기에 이스라엘 경제가 유지되고 전쟁 수행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아랍 지역의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UAE 등의 정부들도 말로만 팔레스타인과 연대했다. 이 정부들은 겉으로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 외교관계 단절, 무기 공급에 이용되는 미군기지 사용 제한 등의 조치들을 외면했다. 이 나라들은 대부분 친미 국가이거나 권위주의적 왕정이나 독재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폭격과 학살을 진행하면서 가자 연안에서 가스 및 석유 탐사를 위한 다국적 에너지 회사의 면허를 발급했고, 이스라엘 부동산 회사는 가자의 폐허 위에 고급 주택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미국 군수기업들의 수익도 올라갔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월리엄 로빈슨은 이것을 ‘학살을 통한 축적’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세계 전쟁 경제의 상징이다……. 가자 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와 국제 무기 거래상들로부터 수십억 달러가 이스라엘로 흘러 들어가면서 군비 축적을 위한 새로운 자극제가 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초국적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대량학살은 폭력을 통해 새로운 축적의 기회를 여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구식 정착민 식민주의를 넘어 유혈, 비인간화, 고문, 학살을 통해서만 재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얼굴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회복력과 생존 의지
하지만, 우리가 가자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비극과 야만만이 아니다. 우리는 동시에 폭력과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은 용기를 보고 있다. 끝없는 폭격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죽어가는 엄청난 대재앙 속에서도 가자 민중은 결코 포기하거나 무릎 꿇지 않고 있다. 아무리 죽이고 쫓아내고 겁을 줘도 그들은 자리를 지켰고, 피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무너진 집과 학교를 다시 건설하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가자의 의료인들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발버둥쳤고, 가자의 언론인들은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교사들과 학생들은 천막을 치고서 책을 읽고 교육을 이어갔다. 가자 주민들이 이집트 국경이나 바다를 건너서 대대적 탈출을 할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마스 대원들을 지역에서 몰아냈다거나, 하마스 대원이 있는 곳을 이스라엘군에 밀고했다는 그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가자 주민들은 패배하지 않았고, 그 주역은 하마스라기보다는 주민들, 언론인들, 의료인들이었다.
팔라스타인계 미국 학자 투픽 하다드는 이스라엘이 1년 동안이나 학살을 지속한 이유를 분석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팔레스타인 사회의 끈질긴 회복력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둘 다 압도적인 압력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자지구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용기와 결단력이다.”
이 용기와 회복력은 전 세계인들의 양심과 여론을 움직였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학살에 반대하는 수천수만 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시위와 행진이 끝없이 벌어졌고 국제적 연대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얼마 전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1%, 민주당 지지자의 77%, 중도층의 63%, 30세 미만의 77%, 흑인의 75%, 여성의 66%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에 반대했다.
이런 국제적 여론은 유엔을, 국제형사재판소를, 국제사법재판소를 움직였다. 2024년 5월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전쟁범죄자로 규정해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결국 발부되었다. 202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계속 존재하는 것은 불법이며 세계 각국은 그것을 빨리 종식시킬 의무가 있다’라고 판결했다.
2024년 9월 18일에 유엔 총회에서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불법 점령을 12개월 이내에 중단하라”라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편을 든 미국과 동맹국들은 국제사회에서 소수파가 됐다. 국제기구들의 이런 판결과 결의는 이스라엘에 심대한 타격이다.
동 트기 전의 어둠과 시온주의 붕괴의 과정
결국, 지난 1년여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랍인들을 내쫓고 배타적인 유대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다. 지금 이스라엘에 남은 것은 1년 전에 목표로 내세웠던 ‘하마스의 제거’도 ‘돌아온 인질’도 아니다. 파산한 경제와 안보, 증가한 부채, 국제적 고립, 나라를 떠나는 국민, 사회의 총체적 혼란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어페어즈》는 〈하마스가 이기고 있다―적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이스라엘의 실패한 전략〉이라는 글에서 “하마스는 10월 7일보다 오늘날 더 강해졌다”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도 뒤늦게 “하마스는 이념이자 정당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는 실토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경제 지표는 재앙적 수준이다. 5만여 개의 기업이 파산했고, 관광업은 중단됐고, 신용등급은 추락했다. 이스라엘 국채는 ‘정크본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국가 부채는 두 배로 증가했다. 《하레츠》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4분의 1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일란 파페는 몇 가지 지표를 통해 “우리는 시오니즘의 몰락으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은 역사적 과정, 그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의 분열/ 심각한 경제 위기/ 군대가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의 소멸/ 국제적으로 버림받은 국가/ 시온주의에서 이탈하는 전 세계 젊은 유대인들의 지각변동 등이다.
“동이 트기 전이지만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는 끝났다……. 가자지구의 이 비인간적인 파괴는 시오니즘의 정착민 식민지 프로젝트의 실패를 드러내고 있다……. 냉철한 전문적 검토를 바탕으로 나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끝났고 그것은 폭력적인 끝이다……. 희생자는 항상 유대인과 함께 팔레스타인인이다. 따라서 붕괴의 과정은 희망의 순간일 뿐만 아니라 어둠 뒤에 찾아올 새벽이며, 터널 끝의 빛이다.”(일란 파페, 《동트기 전의 어둠》)
이것은 폭격과 학살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반전 평화 운동의 등장과 함께 한 과정이었다. 이 운동은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반환점을 넘어섰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국제적 운동과 여론의 힘으로 실제로 학살 전쟁을 끝내는 일이다. 가자의 민중이 포기하지도 무릎 꿇지도 않듯이 폭격과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씨ᄋᆞᆯ의소리 후원 계좌
834-01-0058-841(국민은행, 함석헌기념사업회)
#제노사이드 #이스라엘 #시온주의 #가자지구 #박일란
씨ᄋᆞᆯ 시론
이스라엘의 가자 대량학살과 붕괴하는 시온주의
박일란
독립기고가
1년 3개월 넘게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대량학살은 ‘제2의 나크바(대재앙)’를 넘어선 ‘최악의 나크바’였다. 벌써 4만 5,000여 명이 죽었다. 대부분이 아이와 여성들이었다. 이미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희생자의 40배도 훌쩍 넘어섰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은 실종자와 심각한 부상자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면 2024년 6월 중순까지 가자 인구의 7.9%인 18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추정치를 발표했고, 그 추세대로면 2024년 연말까지 14만 9,000여 명이 추가 사망할 것이라는 계산도 나온다.
1년이 훨씬 넘도록 우리가 가자에서 본 것은 ‘하마스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이, 여성, 학교, 병원, 구호기관에 대한 폭격이었다. 가자의 거의 모든 학교와 병원이 파괴됐고, 언론인과 유엔난민구호기관 직원에 대한 표적 공격이 있었다. 생지옥으로 변한 가자에서 끝없이 피난 가고, 죽고, 돌아오고, 다시 죽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생중계로 보여졌다. 이것은 SNS를 통해서 피해자들 자신에 의해서 24시간 생중계된 대량학살이었다.
우리는,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나서 죽고 나면 부모가 찾아내지 못할까 봐 자기 팔과 다리에 이름을 써넣는 아이들을 지켜봤다. 가까스로 찾아낸 죽은 아들의 신체 일부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어딘가로 걸어가는 부모를 지켜봤다. 폭격으로 머리와 몸이 사라지고 남은 딸의 발에 마지막 입맞춤을 하는 아버지를 지켜봤다. 이것을 지켜 본 많은 이들이 1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울고 있고, 머릿속까지 피에 젖은 느낌과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이 2023년 10월 7일에 하마스가 기습 공격으로 1,200명의 이스라엘 시민을 죽여서일까? 그날 벌어진 일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긴 비극이었고, 하마스의 책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하마스의 공격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원인과 뿌리는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내쫓으며 이스라엘을 건국한 과정과 75년간의 끝없는 ‘나크바’에 있다.
‘10월 7일’의 배경과 뿌리―점령과 억압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석유가 풍부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역사의 저주에 걸렸다. 이 지역의 석유를 통제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원’이 필요했던 영국과 미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다. 팔레스타인인 75만여 명이 자기 땅에서 쫓겨났고, 남은 이들도 ‘서안’과 ‘가자’ 두 지역으로 찢겨졌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고 툭하면 전기, 음식, 물까지 차단하고 전투기로 폭격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잡혀갔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 22%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고 유아 사망률은 이스라엘보다 7배나 높다. 유엔 통계에 따르더라도 지난 15년 동안 ‘테러’로 죽은 이스라엘인이 1이라면 총격과 폭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인은 20이다.
결국 10월 7일에 하마스가 보여준 폭력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비극적 열매였다. 75년이 넘게 다른 민족을 점령하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옥처럼 가둬놓고서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10월 7일을 통해서 명백해졌다. 아무리 그 방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날 벌어진 것은 이스라엘의 식민 점령에 대한 분노의 분출이었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분노에 찬 저항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게 됐고, 하마스에 들어가 총을 잡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납치를 하기 전에,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시민에 대한 무차별 총격과 체포가 있었다. 10월 7일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경험한 충격과 공포에 앞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75여 년 동안 느낀 충격과 공포가 있었다.
더구나 10월 7일에 벌어진 참극의 진실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미 초기부터 한 이스라엘 생존자(야스민 포랏)가 ‘격렬한 총격전 속에서 이스라엘군이 죽인 자국민들’에 대해 증언했다. 나아가 그 후에 이스라엘 유력 언론들조차 그날 이스라엘 시민 중에 일부가 이스라엘군 전투헬기의 총격과 탱크의 포격으로 죽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즉, 하마스의 기습에 당황한 이스라엘군이 무차별적으로 반격하다가 이스라엘 시민들까지 죽였다는 말이었다. 그래 놓고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며 “우리는 동물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이스라엘 갈란트 국방장관)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하마스는 순수하고 완전한 악”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들은 ‘아이까지 참수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시체를 불태웠다’는 확인되지 않는 자극적 소문을 퍼뜨리며 하마스를 극단적으로 악마화했다. 이것은 가짜뉴스로 밝혀지거나, 아직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방식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면서 엄청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군은 양심의 가책을 덜면서 ‘살인면허’를 받은 듯 부담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버튼을 누르며 총을 쏘고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쌓여가는 시쳇더미에 죄책감이 아니라 만족감을 느끼게 되면서, 10월 7일 이스라엘 희생자의 40배가 훌쩍 넘는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만들어낸 대학살은 이렇게 가능해졌다.
폭격으로 학교, 병원, 종교 시설만이 아니라 기지국과 통신망도 파괴했다. 가자의 참상을 알리는 언론인과 난민구호 유엔 직원도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가자 주민들은 도움을 받을 수도, 구급차나 소방차를 부를 수도, 어떤 상황인지 세상에 알리기도 어려웠고, 이스라엘군은 세상의 눈을 피해 더욱더 마음 놓고 폭격하고 파괴할 수 있었다.
끔찍한 제노사이드의 전개와 그 공범들
전기가 끊기고 연료와 식량뿐 아니라 물이 고갈되면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생지옥 속에 가자 주민들은 산 채로 말려 죽어갔다. 문제는 하마스가 인질을 풀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인질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도 없다는 데 있었고, 하마스가 가자 주민을 ‘인간 방패’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가자 주민을 ‘인간 표적’으로 여기는 데 있었다.
폭격과 대학살 속에서 인종주의의 위험도 커졌다. 서방 정부와 언론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해 보인 분노와 슬픔은 그 후 1년 넘게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과 대학살 앞에서 희미해졌다. 이것은 아랍인, 무슬림의 생명은 백인과 같은 값어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었고, 따라서 이것은 인종차별적인 대학살이기도 했다.
죽음과 학살도 그 주체와 대상이 백인이냐 유색인이냐, 미국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이었다. “지금 아랍 세계가 듣고 있는 메시지는 크고 분명하다.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은 이스라엘인의 생명보다 덜 중요하다. 국제법의 적용은 선택 사항이다. 인권은 국경, 인종, 종교에 따라 다르다.’”(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그러면서 미국과 그 동맹 정부와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뿐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제도적 인종차별) 체제가 문제라는 모든 비판을 ‘반유대주의’라고 낙인찍어서 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반유대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이번에 미국 등에서 “아이에게 폭탄을 투하하고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유대인의 가치가 아니다”라면서 반대 투쟁에 가장 앞장선 유대인과 유대인 단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21세기 최악의 대량학살의 책임자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극우 시온주의 연립정부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승리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면서 가장 강력한 지원을 보내온 미국 바이든 정부다. 영국·독일 등 서방의 이스라엘 동맹국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자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외면한 서방의 주류 언론들도 책임이 있다. 이들은 21세기 최대의 전쟁범죄자들과 그 공범들이다.
한미동맹에 매달리며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지속한 윤석열 정부나, 서방 언론들을 따라서 이스라엘 편향적 보도를 지속한 한국 족벌언론들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사기꾼이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초기에는 “우리는 휴전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마스를 이롭게 할 뿐”이라며 앞장서서 학살을 응원했다. 바이든은 스스로 “나는 시온주의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학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마지못해 휴전 협상을 중재하고 나섰다. 그러나 휴전 협상은 매번 이스라엘이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결렬됐다. 미국 정부는 1년이 넘도록 ‘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협상 타결이 눈앞에 있다’라고 하면서 희망 고문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는 ‘휴전하라’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전쟁을 위한 무기와 돈,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런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을 비판해 왔지만, 사실 중국은 미국 다음에 가장 큰 이스라엘의 무역 파트너이고,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계속 공급되는 석유와 석탄이 있기에 이스라엘 경제가 유지되고 전쟁 수행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아랍 지역의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UAE 등의 정부들도 말로만 팔레스타인과 연대했다. 이 정부들은 겉으로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 외교관계 단절, 무기 공급에 이용되는 미군기지 사용 제한 등의 조치들을 외면했다. 이 나라들은 대부분 친미 국가이거나 권위주의적 왕정이나 독재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폭격과 학살을 진행하면서 가자 연안에서 가스 및 석유 탐사를 위한 다국적 에너지 회사의 면허를 발급했고, 이스라엘 부동산 회사는 가자의 폐허 위에 고급 주택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미국 군수기업들의 수익도 올라갔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월리엄 로빈슨은 이것을 ‘학살을 통한 축적’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세계 전쟁 경제의 상징이다……. 가자 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와 국제 무기 거래상들로부터 수십억 달러가 이스라엘로 흘러 들어가면서 군비 축적을 위한 새로운 자극제가 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초국적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대량학살은 폭력을 통해 새로운 축적의 기회를 여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구식 정착민 식민주의를 넘어 유혈, 비인간화, 고문, 학살을 통해서만 재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얼굴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회복력과 생존 의지
하지만, 우리가 가자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비극과 야만만이 아니다. 우리는 동시에 폭력과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은 용기를 보고 있다. 끝없는 폭격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죽어가는 엄청난 대재앙 속에서도 가자 민중은 결코 포기하거나 무릎 꿇지 않고 있다. 아무리 죽이고 쫓아내고 겁을 줘도 그들은 자리를 지켰고, 피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무너진 집과 학교를 다시 건설하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가자의 의료인들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발버둥쳤고, 가자의 언론인들은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교사들과 학생들은 천막을 치고서 책을 읽고 교육을 이어갔다. 가자 주민들이 이집트 국경이나 바다를 건너서 대대적 탈출을 할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마스 대원들을 지역에서 몰아냈다거나, 하마스 대원이 있는 곳을 이스라엘군에 밀고했다는 그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가자 주민들은 패배하지 않았고, 그 주역은 하마스라기보다는 주민들, 언론인들, 의료인들이었다.
팔라스타인계 미국 학자 투픽 하다드는 이스라엘이 1년 동안이나 학살을 지속한 이유를 분석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팔레스타인 사회의 끈질긴 회복력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둘 다 압도적인 압력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자지구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용기와 결단력이다.”
이 용기와 회복력은 전 세계인들의 양심과 여론을 움직였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학살에 반대하는 수천수만 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시위와 행진이 끝없이 벌어졌고 국제적 연대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얼마 전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1%, 민주당 지지자의 77%, 중도층의 63%, 30세 미만의 77%, 흑인의 75%, 여성의 66%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에 반대했다.
이런 국제적 여론은 유엔을, 국제형사재판소를, 국제사법재판소를 움직였다. 2024년 5월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전쟁범죄자로 규정해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결국 발부되었다. 202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계속 존재하는 것은 불법이며 세계 각국은 그것을 빨리 종식시킬 의무가 있다’라고 판결했다.
2024년 9월 18일에 유엔 총회에서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불법 점령을 12개월 이내에 중단하라”라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편을 든 미국과 동맹국들은 국제사회에서 소수파가 됐다. 국제기구들의 이런 판결과 결의는 이스라엘에 심대한 타격이다.
동 트기 전의 어둠과 시온주의 붕괴의 과정
결국, 지난 1년여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랍인들을 내쫓고 배타적인 유대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다. 지금 이스라엘에 남은 것은 1년 전에 목표로 내세웠던 ‘하마스의 제거’도 ‘돌아온 인질’도 아니다. 파산한 경제와 안보, 증가한 부채, 국제적 고립, 나라를 떠나는 국민, 사회의 총체적 혼란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어페어즈》는 〈하마스가 이기고 있다―적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이스라엘의 실패한 전략〉이라는 글에서 “하마스는 10월 7일보다 오늘날 더 강해졌다”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도 뒤늦게 “하마스는 이념이자 정당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는 실토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경제 지표는 재앙적 수준이다. 5만여 개의 기업이 파산했고, 관광업은 중단됐고, 신용등급은 추락했다. 이스라엘 국채는 ‘정크본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국가 부채는 두 배로 증가했다. 《하레츠》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4분의 1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일란 파페는 몇 가지 지표를 통해 “우리는 시오니즘의 몰락으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은 역사적 과정, 그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의 분열/ 심각한 경제 위기/ 군대가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의 소멸/ 국제적으로 버림받은 국가/ 시온주의에서 이탈하는 전 세계 젊은 유대인들의 지각변동 등이다.
“동이 트기 전이지만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는 끝났다……. 가자지구의 이 비인간적인 파괴는 시오니즘의 정착민 식민지 프로젝트의 실패를 드러내고 있다……. 냉철한 전문적 검토를 바탕으로 나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끝났고 그것은 폭력적인 끝이다……. 희생자는 항상 유대인과 함께 팔레스타인인이다. 따라서 붕괴의 과정은 희망의 순간일 뿐만 아니라 어둠 뒤에 찾아올 새벽이며, 터널 끝의 빛이다.”(일란 파페, 《동트기 전의 어둠》)
이것은 폭격과 학살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반전 평화 운동의 등장과 함께 한 과정이었다. 이 운동은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반환점을 넘어섰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국제적 운동과 여론의 힘으로 실제로 학살 전쟁을 끝내는 일이다. 가자의 민중이 포기하지도 무릎 꿇지도 않듯이 폭격과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씨ᄋᆞᆯ의소리 후원 계좌
834-01-0058-841(국민은행, 함석헌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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