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봄
12·3 비상계엄의 사회경제적 배경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1.
12·3 내란(친위 쿠데타)의 직접적 원인에 대해 여러 시각들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2월 4일에 (민주당 주도의)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 예정이었는데 이것이 12·3 내란의 촉발제였다고 한다. 사실, ‘김건희 특검법’은 내용상 ‘김건희-윤석열’을 겨냥한 것으로, 그간 누적된 윤-김 부패·비리를 총체적으로 폭로할 판이었다.(“이채양명주”) 또 다른 유력한 설로, 명태균 ‘황금폰’ 내지 ‘다이아몬드폰’으로 상징되는, 국힘당 내 불법 공천과 여론 조작(“명태균 게이트”) 문제가 있었다. ‘김건희 특검법’이 폭탄급이라면 ‘명태균 게이트’는 핵폭탄급일지 모른다.
물론, 윤석열이 12월 3일 ‘계엄의 밤’(밤 10시 반경)에 TV 생중계를 하며 선포한 비상계엄의 명분에는 ‘야당의 국회 독주’나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이 마비되었으며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민주당 주도의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12월 4일 새벽 1시)를 한 뒤(새벽 4시)에 발표한 윤석열의 계엄 해제 선포문이나 그 뒤의 사과문 또는 변명문(12월 7일)에도 없었던 ‘선관위 부정 혐의’가 12월 12일의 담화문에서 계엄의 실질적 배경인 것처럼 ‘뒷북치듯’ 등장했다.
그런데 이 ‘부정선거론’은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 세력들이 꾸준히 제기한,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사태의 진실은 ‘명태균 게이트’로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국힘당 내 경선 과정이나 대선 국면에서 불법여론조작이 밥 먹듯이 행해진 것이었다. 이렇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국힘당 내 부패한 풍토(예, 여론조작)를 오히려 민주당 등 야당에게 덮어씌우려 한 것을 나는 ‘정치적 투사(political projection)’라 한 바 있다. ‘투사’란 자신의 불쾌한 감정이나 책임, 평판 등을 타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자기를 방어하는 행위다.
요컨대, 12·3 내란(친위 쿠데타)의 직접적 원인이 ‘김건희 특검법’이건 ‘명태균 게이트’이건 아니면 ‘야당의 독주’ 또는 ‘선거 부정’이건, 결국 그것은 윤석열-김건희와 국힘당 내부의 문제를 야당 내지 ‘종북 반국가세력’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마비된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고자 계엄이라는 무리수를 감행한 ‘정치적 투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편에서 이번 내란 사태의 저변에 한국 자본주의의 자본증식 위기가 깔려 있음을 본다.1) 원래 자본의 가치증식은 ‘사회 안정’을 바탕으로 노동과 경제가 잘 맞물려 돌아갈 때 ‘화양연화(花樣年華)’, 즉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자본 입장에서는 가치(증식)의 토대인 인간 노동력이 혼신을 다해 노동할 때 최고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지배 시스템에 그 어떤 세력도 위협을 가하지 않고, 또 자본의 몸집을 성실하게 불려주는 노동의 세계가 평화로울 때(“산업평화”), 자본증식은 순풍에 돛단배처럼 잘도 진행된다. 그리고 여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나눠 먹는 세력들이 있다. 즉, 자본증식의 측면지원자들인 권력자들이나 사익 추구형 엘리트들은 ‘여기가 참 살기 좋은 곳’이란 노래를 부르며 해외여행과 골프, 육식, 맛집 기행 등을 즐긴다. 이들에게 불평등과 양극화, 빈곤의 세계화, 도농 격차 심화, 자원 고갈, 자연 파괴, 기후 위기 같은 건 “니들이나 실컷 걱정해! 우린 죽을 때까지 먹고 즐겨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야. 그런 걸 걱정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워!”라 할 정도로 귀찮고 불편한 걸림돌일 뿐이다.
이런 시각에서 쿠데타 이전의 한국에서 전개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살핀다. 하나는 25년 전 ‘IMF 사태’의 성격 규정이고, 그 다음은 최근 한국의 사회경제 상황이다.
1) 이 글은 원래 시민언론 《민들레》 기고문, 〈내란 극복 후 만들어야 할 ‘새 세상’〉(2025. 1. 24.)을 대폭 보완한 것임.
2.
우선, 우리가 되짚어야 할 것은 1997년 말에 시작된 이른바 ‘IMF 사태’ 또는 ‘IMF 외환위기’의 성격이다. 흔히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제2의 국치일’ 정도로 생각하고, 전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이나 ‘30분 일 더하기 운동’ 등을 통해 3~4년 만에 IMF 등으로부터 빌린 긴급 구제금융(부채)을 모두 갚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속임수다.
왜 속임수인가? ‘IMF 외환위기’의 본질은 ‘제2의 국치일’이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였다. 당시 사태의 진실을 ‘민족 경제’의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미 세계자본은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를 외치며 각국의 경제 규제를 완화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금융자본을 주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세계에 돌아다니는 외환의 95%는 투기성이고 단 5% 정도만이 무역 등 실물 거래에 사용되는 돈이라 한다.[한스 페터 마르틴·하랄트 슈만, 《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 2003) 참조] 이들 자본은 각국 정부에 개방화와 탈규제를 요구한다.
한국의 경우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특히 금융개방과 투자 자유화)를 외치며 예외적으로 금융기관에 단기 외채 도입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일단 문이 열리자 금융기관들은 금리가 낮은 일본 등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렸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해외에서 단기로 외채를 갖고 와 국내 기업들에 고율 이자로 장기 대출했다. 그러나 기업 수익률이 지속 하락하던 터에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부실기업에 대한 지급 보증과 금융 지원을 더 이상 않겠다고 선언하자 줄도산이 이어졌다. 실제로 1997년 1월부터 한보그룹,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대농·한신, 7월 기아, 11월 해태·뉴코아, 12월 고려증권·한라 등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자본은 지불 기한 연기 없는 엄격한 부채 상환을 요구했고 이에 ‘부도 사태’가 확대됐다. 동시에, 세계자본이 대대적으로 한국을 이탈하면서 ‘국가 부도’ 위험이 커졌다. 코너에 몰린 국가의 응급책은 곧 ‘IMF 구제금융’이었다!
말이 좋아 ‘구제금융’이지 실은 IMF를 매개로 한 세계자본의 한국 기업 사냥 놀이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에 ‘구제금융 이행조건’을 통해 IMF는 세계자본의 입장에서 자본증식에 유리하도록 온갖 개혁 조치를 요구했다. 그것이 곧 ‘IMF 식 구조조정’이다. 그 구체적 내용은 규제 완화, 민영화, 정리해고, 노동 유연화, 글로벌 스탠더드 정착 등이었다.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대통령 선거 2주일 전(12월 3일)에 각 후보들에게 ‘이행 각서’에 서명하도록 사실상 강요했다. 즉, 대선 이후에 ‘딴소리’하는 경우가 없도록 모든 유력 후보들에게 미리 각서까지 받아 놓았던 것이다! 자본은 그렇게 치밀하다. 그 뒤 구제금융이 들어왔고, 마침내 2주일 뒤(12월 18일)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식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 저항을 예방하기 위해 한편에서는 ‘노사정 위원회’를, 다른 편에선 ‘생산적 복지(welfare 아닌 workfare)’ 정책을 가동시켰다. 노사정 위원회는 정리해고제를 법제화했는데, 이는 해고를 예방하기보다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할 때,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자본이 ‘IMF 식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데 매우 적합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김대중 대통령을 “IMF의 한국 지사장”이라 표현할 정도였다. 왜 그런가?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수십 년간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됨으로써 한국 민중에게 큰 신뢰를 얻은 상태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뢰가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 된 상태에서 ‘IMF 식 구조조정’을 나름 힘차게 밀고나갈 중심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즉, 사실상 세계자본이 한국을 수탈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IMF 식 구조조정’을 정부 주도로 강행하되, 김대중이라는 존재 자체가 행여 있을지도 모를 노동운동 등 사회적 저항을 적절히 무마할 수 있는 ‘완충 장치’ 역할을 했다. 달리 말해, 노동자나 노동조합, 농민회 등 노동 진영은 ‘IMF 식 구조조정’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음에도, 민주화운동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가진 김대중 정권을 상대로 (기존의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것과는 달리) ‘감히’ 적대적 저항을 전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런 점에서 세계자본의 시각에서는 ‘국민의 정부’를 내건 김대중 체제가 ‘IMF 식 구조조정’을 관철하기에 매우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웬만한 한국 기업들은 죄다 세계자본의 소유로 넘어갔다. 가장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국민은행, 외환은행, 제일은행 등은 주식 구조상 ‘한국’ 기업이 아니다. 명실상부 세계자본의 것이다. 세계자본의 입장에서는 재벌 가족들이 봉건적 승계까지 하면서 ‘억지로’ 황제경영을 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해 ‘재벌 해체’까지 이뤄내고 완전한 세계자본의 품속으로 포섭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여전히 재벌 내지 족벌 체제가 잔존하나 사실상 이미 세계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했던 서글픈 독백은 자본이 세상을 좌우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잠시 그 당시 환율을 회상해 보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환율은 1달러 당 1,700원까지 치솟은 걸로 돼 있다. 암시장에서는 2,000원까지 올랐다 할 정도였다. IMF 사태 이전에 비해선 환율이 약 2배 올랐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한국 돈의 가치가 ‘똥값’이 되었다는 얘기이고, 다른 편으로는 세계자본이 한국 기업이나 자산을 ‘헐값’에 득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세계자본 내지 투기자본의 운동 원리가 정리된다. 즉, 투기성 세계자본이 대대적으로 일국에 들어갔다가 대대적으로 자본 이탈을 감행함으로써 그 나라의 외환 보유고(부채 상환 능력, 유동성 확보)를 바닥낸다면 ‘국가 부도’ 사태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IMF나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고, IMF나 세계은행 등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에 가혹한 ‘구조조정’(특히 대대적 정리해고)을 강요한다. 이제 세계자본이 해당 나라의 기업이나 은행, 부동산과 공기업 등을 ‘똥값’에 매입하거나 인수 및 합병(M&A)하기 쉽다. 이런 식으로 세계자본은 해당 나라에 빨대를 꽂아 놓고 달콤한 이윤을 해마다 빨아들인다. 바로 이것이 25년 전 ‘IMF 사태’의 진실이다.(1980년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각국의 부채 위기 역시 원리는 동일했다.)
3.
이제 가장 최근의 한국 자본주의 상황을 보자. 단적으로 말하면, 오늘날도 (그 이유야 다양하지만) 자본의 평균 이윤율, 즉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진다. 세계경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신기술 혁신이 가속화하되, 노동-상품-화폐-자본이 맞물리며 돌아가는 자본주의 경제의 수익성은 의도치 않게 지지부진하다. 그 와중에 국내 재벌들은 GDP 대비 매출액이나 자산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이나 자영업자, 그리고 중하층 가계들은 파산과 부채, 실업과 빈곤으로 내몰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노동자 조직화나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화폐물신 또는 권력물신에 중독된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물론, 사회 변화를 위한 적극적 투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은 삶의 불평불만을 ‘종북 반국가세력’에 덮어씌우려 한다. 이를 악용하는 자들은 (백골단, 반공청년단, 그리고 전광훈 식 광신도 등의 1·19 서부지방법원 침탈 사례에서 보듯) 극우파들을 선동, 동원하기 바쁘다. 이를 세 측면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한국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경향적으로 떨어진다. 강원대 유원근 교수 등에 따르면 “1970년에 33%였던 이윤율은 2017년에 15%, 2018년에 14%로 점점 저하하였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내내 12%에 머물고 있다.” 또, “2021년의 산업 부문별로 평균 이윤율을 보면, 제조업 부문 8%, 광업 18%, 전기 가스 수도 2%, 건설업 3%, 도소매숙박업 15%, 금융보험업 41%”이었다. 이를 자세히 보면, 잉여가치를 생산 않는 비생산 부문의 이윤율을 제외한 생산 부문의 이윤율은 아주 저조하다. 한편, 산업개발연구원의 박훈덕 연구원은 “2007~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윤율의 변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면서 “이러한 변화는 자본생산성이 둔화되는 한편, 임금분배율은 증가하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추론된다.”고 했다. 즉, 노동 진영의 임금 압박은 강화하되, 자본의 이윤율이 저하되는 경향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경상국립대 김덕민 교수의 한 논문은 “97년 이후 자본축적률은 (지대, 이자, 세금 등) 지불 후 이윤율로 수렴”했다고 보며, “지불 후 이윤율과 자본축적률은 모두 하락”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이 모든 연구들을 종합할 때, 한국 자본주의의 이윤율 또는 수익성이 경향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국가나 자본 입장에서 볼 때, 획기적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거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자본과 권력의 안정적 재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민주노총 위원장, 촛불행동 대표, 비판언론 대표, 야당 대표들과 주요 인사들, 나아가 매우 껄끄러운 여당 대표나 비교적 양심적인 판사들 등이 12·3 내란에서 ‘긴급 체포 및 암살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둘째, 설상가상으로 재벌 집중이 갈수록 심화한다. “삼성, 에스케이(SK), 현대자동차, 엘지(LG), 롯데, 한화, 지에스(GS), 현대중공업, 신세계, 씨제이(CJ) 등 10대 재벌 매출이 2021년에 1,209조 원으로 국내총생산(명목 GDP 기준)의 58.3%를 차지한다.” 350만 개 정도의 기업들이 움직이는 대한민국 자본 생태계에서 단 10대 재벌들의 매출액이 GDP의 60% 가까이 되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 꼴이다. 또 이를 “5대 재벌로 폭을 좁히면, 이들의 2022년의 매출액은 973.6조 원으로 GDP(2,161.7조 원)의 45%, 2022년 기준 총자산은 1,324.8조 원으로 GDP의 61%를 차지한다. 이 5대 재벌이 소유한 2022년 기준 부동산은 토지 장부가액으로 71.7조 원에 이른다.” 5대 재벌의 매출과 총자산이 각기 GDP의 45%, 61%라는 것은 일국의 경제가 가히 독과점 지배 아래 있음을 재차 입증한다. 이는 전경련과 경총 중심의 ‘재벌-국가 복합체’가 사실상 경제는 물론 정치와 언론, 사회, 문화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얘기다. 10%의 부자가 90%의 자원을 차지하는 ‘10대 90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극단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사회 불만과 저항을 부르는 배경이다. 국회 앞은 물론 대통령실 인근, 그리고 서초동 법원, 나아가 전국 각지의 시청이나 군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거나 농성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리고 울산, 거제 등 전국 곳곳의 산업단지나 공장지대에서 때로는 일인 시위나 천막 농성으로, 때로는 파업과 집회로 노동자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인간적 요구를 내걸고 외치는 모습을 보라. 그 중에는 온갖 산재나 과로사, ‘갈비법칙’(아래로 ‘갈’구고 위로 ‘비’벼야 생존이 보장되는 냉혹한 노동 현실) 등의 위험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망가지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호소하는 장면이 포함된다.
이렇게 노동자와 민중이 저항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윤석열은 2022년 5월 취임 직후부터 “건폭” 또는 “노조 카르텔” 같은 용어를 써가면서 민주노총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반국가세력”이라 낙인찍었다. 윤석열과 국힘당이 추진하려던 ‘노동개혁’이란 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척결하고 주 60~70시간 말없이 노동하는 ‘노동기계’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던 ‘개악’에 불과했다. 아마도 이번 계엄을 통해 그런 식의 파쇼적 발상을 하룻밤 사이에 구현하려 한 듯하다.
지금도 독일에 가면 그 옛날 집단노동수용소(KZ)들이 역사적 유물로 남아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 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 정문마다 이런 구호가 붙어 있다.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즉,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물론, 그렇게 일을 실컷 시킨 뒤 더 이상 쓸모없는 노동력 소유자들은 가스실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갔다. 그렇게 죽은 유대인 등이 6백만 이상이다.
12·3 윤석열 쿠데타는 바로 그런 세상을 원했던 것일까? 자본과 권력을 위해 뼈골이 상접할 정도로 일하다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만드는 그런 세상을, 자본에겐 화양연화이나, 사람과 자연에겐 극한지옥인 그런 세상을 말이다.
셋째, 무한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억지 연명한다는 것은 부채나 투기 경제의 증가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2023년에 국가 채무는 1,126조 7,000억 원으로 이는 GDP의 50.2%에 달한다.” 또, 한국은행 자료도 “가계부채는 2024년 3분기에 1,913조 8,000억 원에 이른다.”라고 했다. 2022년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인 108.1%(전세대금을 포함하면 156.8%)에 달한다. 〈조선비즈〉 역시 “기업부채는 작년(2023년) 말 기준 2,734조 원으로 집계됐다. ……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17년 말 92.5%에서 2023년 말 122.3%로 높아졌다.”라고 했다. 국가부채, 기업부채, 가계부채 등을 합한 국가 총부채(macro leverage)는 5,743조 5천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80.6%에 이른다. 갓난아이까지 포함한 한국 국민 5,200만 명이 1인당 1억 원 이상의 부채를 짊어지고 사는 꼴이다.
이런 세상에서 ‘2030 세대’의 미래는 어떤가? 가정과 학교에서는 열공하라 하고,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조차 낭만과 지성의 빛나는 대학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열공해서 취업 시험에 응시해도 합격은 쉽지 않다. 어렵사리 합격한들, 내 소망이나 꿈과 전혀 다른 자본의 자기증식을 돕는 부속품밖에 되지 않는 ‘노동기계’, 과연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최고 책임자나 여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극도로 한심하다. 그러니 저항에 나서는 청년들이 차츰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부 2030 남성들이 극우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니 ‘극우 선동’에 휘말려 ‘백골단’ 또는 ‘1·19 법원 폭동’ 등 엉뚱한 짓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대다수 2030 남성들은 내심 불안한 구석은 많지만 (극우 선동에 쉽사리 휘말리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다. 내란 사태 이후 윤석열 탄핵 광장에 나온 남녀 청년들을 보면 희망이 있다. 특히 ‘남태령대첩’(12월 21~22일)으로 불리는 농민 트랙터 시위대와 2030 여성들의 연대, 그리고 폭설이 내린 한남동 관저 앞에서의 ‘키세스 시위대’(1월 5~6일)는 눈물겨운 역사의 한 장면들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청년들이 서서히 정치적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시위나 저항에 동참하는 걸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비상계엄을 통한 정국 전환, 그리고 섬뜩한 ‘암살 대상자 명단’ 같은 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계엄의 성격을 종합하면 이렇다. 그것은 잘못된 자본의 가치증식 운동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상태에서, 나아가 철학도 전략도 없는 경제 운용 및 국가 경영에 대한 참된 반성 없이 오로지 문제 제기자들을 “종북 반국가세력”이라 낙인찍어 제거하면 사태가 해소될 것으로 착각한, 매우 어리석은 자살 행위에 불과했다. 그것은 마치 자본의 죽음 충동(증식을 위해 효율 경쟁을 하지만 본의 아니게 총체적 파국으로 치닫는 경향)을 흉내 내는 것과 유사하다.(안젤름 야페, 《파국이 온다》 참조)
4.
만일 우리가 이번 사태를 위와 같이 정리한다면, 단지 계엄 세력들을 단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나아가 민주당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4생의 세상’(생존, 생활, 생명, 공생)에 대해 깊이 고민, 소통하고 토론해 나가야 한다.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체계적 토론이, 다른 편에서는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실천적 고뇌(예, 생태전환 교육)가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인 (세계 자본주의 안에서) 후발 주자이면서 반주변부 자본주의 성격을 띤다는 점, 그리하여 노동자 대중을 사회적으로 통합할 물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즉, 서양을 흉내 낼 일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탈(脫) 자본, 진(進) 생명’이라는, 생태민주주의 구호가 절실하다. 나아가 이런 제안에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부담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예, 우리 내면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와 폭력의 경험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둘러앉아 열린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런 고뇌가 없다면, 그리하여 내면이 참으로 자유로운 새 주체(씨ᄋᆞᆯ들)의 탄생 없이는, 아무리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 봐야 또다시 비슷한 오류를 반복하며 허송세월할지 모른다. 특히 민주당 등 야당들이 더 분발하고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단순히 내란 사태를 바로잡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개혁 정도에 국한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즉, 자본이 만든 상품사회의 근본 원리를 넘어 참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새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화폐·상품·노동·가치·시장·국가 물신이라는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뒤 남게 될 폐허의 시·공간을 과연 무엇으로 채워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삶’이 가능해질 것인가? 이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긴요한 또 하나의 질문이다.

씨ᄋᆞᆯ의소리 후원 계좌
834-01-0058-841(국민은행,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소리 #함석헌 #비약의새해
돋봄
12·3 비상계엄의 사회경제적 배경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1.
12·3 내란(친위 쿠데타)의 직접적 원인에 대해 여러 시각들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2월 4일에 (민주당 주도의)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 예정이었는데 이것이 12·3 내란의 촉발제였다고 한다. 사실, ‘김건희 특검법’은 내용상 ‘김건희-윤석열’을 겨냥한 것으로, 그간 누적된 윤-김 부패·비리를 총체적으로 폭로할 판이었다.(“이채양명주”) 또 다른 유력한 설로, 명태균 ‘황금폰’ 내지 ‘다이아몬드폰’으로 상징되는, 국힘당 내 불법 공천과 여론 조작(“명태균 게이트”) 문제가 있었다. ‘김건희 특검법’이 폭탄급이라면 ‘명태균 게이트’는 핵폭탄급일지 모른다.
물론, 윤석열이 12월 3일 ‘계엄의 밤’(밤 10시 반경)에 TV 생중계를 하며 선포한 비상계엄의 명분에는 ‘야당의 국회 독주’나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이 마비되었으며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민주당 주도의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12월 4일 새벽 1시)를 한 뒤(새벽 4시)에 발표한 윤석열의 계엄 해제 선포문이나 그 뒤의 사과문 또는 변명문(12월 7일)에도 없었던 ‘선관위 부정 혐의’가 12월 12일의 담화문에서 계엄의 실질적 배경인 것처럼 ‘뒷북치듯’ 등장했다.
그런데 이 ‘부정선거론’은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 세력들이 꾸준히 제기한,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사태의 진실은 ‘명태균 게이트’로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국힘당 내 경선 과정이나 대선 국면에서 불법여론조작이 밥 먹듯이 행해진 것이었다. 이렇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국힘당 내 부패한 풍토(예, 여론조작)를 오히려 민주당 등 야당에게 덮어씌우려 한 것을 나는 ‘정치적 투사(political projection)’라 한 바 있다. ‘투사’란 자신의 불쾌한 감정이나 책임, 평판 등을 타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자기를 방어하는 행위다.
요컨대, 12·3 내란(친위 쿠데타)의 직접적 원인이 ‘김건희 특검법’이건 ‘명태균 게이트’이건 아니면 ‘야당의 독주’ 또는 ‘선거 부정’이건, 결국 그것은 윤석열-김건희와 국힘당 내부의 문제를 야당 내지 ‘종북 반국가세력’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마비된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고자 계엄이라는 무리수를 감행한 ‘정치적 투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편에서 이번 내란 사태의 저변에 한국 자본주의의 자본증식 위기가 깔려 있음을 본다.1) 원래 자본의 가치증식은 ‘사회 안정’을 바탕으로 노동과 경제가 잘 맞물려 돌아갈 때 ‘화양연화(花樣年華)’, 즉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자본 입장에서는 가치(증식)의 토대인 인간 노동력이 혼신을 다해 노동할 때 최고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지배 시스템에 그 어떤 세력도 위협을 가하지 않고, 또 자본의 몸집을 성실하게 불려주는 노동의 세계가 평화로울 때(“산업평화”), 자본증식은 순풍에 돛단배처럼 잘도 진행된다. 그리고 여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나눠 먹는 세력들이 있다. 즉, 자본증식의 측면지원자들인 권력자들이나 사익 추구형 엘리트들은 ‘여기가 참 살기 좋은 곳’이란 노래를 부르며 해외여행과 골프, 육식, 맛집 기행 등을 즐긴다. 이들에게 불평등과 양극화, 빈곤의 세계화, 도농 격차 심화, 자원 고갈, 자연 파괴, 기후 위기 같은 건 “니들이나 실컷 걱정해! 우린 죽을 때까지 먹고 즐겨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야. 그런 걸 걱정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워!”라 할 정도로 귀찮고 불편한 걸림돌일 뿐이다.
이런 시각에서 쿠데타 이전의 한국에서 전개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살핀다. 하나는 25년 전 ‘IMF 사태’의 성격 규정이고, 그 다음은 최근 한국의 사회경제 상황이다.
1) 이 글은 원래 시민언론 《민들레》 기고문, 〈내란 극복 후 만들어야 할 ‘새 세상’〉(2025. 1. 24.)을 대폭 보완한 것임.
2.
우선, 우리가 되짚어야 할 것은 1997년 말에 시작된 이른바 ‘IMF 사태’ 또는 ‘IMF 외환위기’의 성격이다. 흔히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제2의 국치일’ 정도로 생각하고, 전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이나 ‘30분 일 더하기 운동’ 등을 통해 3~4년 만에 IMF 등으로부터 빌린 긴급 구제금융(부채)을 모두 갚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속임수다.
왜 속임수인가? ‘IMF 외환위기’의 본질은 ‘제2의 국치일’이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였다. 당시 사태의 진실을 ‘민족 경제’의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미 세계자본은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를 외치며 각국의 경제 규제를 완화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금융자본을 주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세계에 돌아다니는 외환의 95%는 투기성이고 단 5% 정도만이 무역 등 실물 거래에 사용되는 돈이라 한다.[한스 페터 마르틴·하랄트 슈만, 《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 2003) 참조] 이들 자본은 각국 정부에 개방화와 탈규제를 요구한다.
한국의 경우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특히 금융개방과 투자 자유화)를 외치며 예외적으로 금융기관에 단기 외채 도입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일단 문이 열리자 금융기관들은 금리가 낮은 일본 등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렸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해외에서 단기로 외채를 갖고 와 국내 기업들에 고율 이자로 장기 대출했다. 그러나 기업 수익률이 지속 하락하던 터에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부실기업에 대한 지급 보증과 금융 지원을 더 이상 않겠다고 선언하자 줄도산이 이어졌다. 실제로 1997년 1월부터 한보그룹,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대농·한신, 7월 기아, 11월 해태·뉴코아, 12월 고려증권·한라 등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자본은 지불 기한 연기 없는 엄격한 부채 상환을 요구했고 이에 ‘부도 사태’가 확대됐다. 동시에, 세계자본이 대대적으로 한국을 이탈하면서 ‘국가 부도’ 위험이 커졌다. 코너에 몰린 국가의 응급책은 곧 ‘IMF 구제금융’이었다!
말이 좋아 ‘구제금융’이지 실은 IMF를 매개로 한 세계자본의 한국 기업 사냥 놀이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에 ‘구제금융 이행조건’을 통해 IMF는 세계자본의 입장에서 자본증식에 유리하도록 온갖 개혁 조치를 요구했다. 그것이 곧 ‘IMF 식 구조조정’이다. 그 구체적 내용은 규제 완화, 민영화, 정리해고, 노동 유연화, 글로벌 스탠더드 정착 등이었다.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대통령 선거 2주일 전(12월 3일)에 각 후보들에게 ‘이행 각서’에 서명하도록 사실상 강요했다. 즉, 대선 이후에 ‘딴소리’하는 경우가 없도록 모든 유력 후보들에게 미리 각서까지 받아 놓았던 것이다! 자본은 그렇게 치밀하다. 그 뒤 구제금융이 들어왔고, 마침내 2주일 뒤(12월 18일)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식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 저항을 예방하기 위해 한편에서는 ‘노사정 위원회’를, 다른 편에선 ‘생산적 복지(welfare 아닌 workfare)’ 정책을 가동시켰다. 노사정 위원회는 정리해고제를 법제화했는데, 이는 해고를 예방하기보다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할 때,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자본이 ‘IMF 식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데 매우 적합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김대중 대통령을 “IMF의 한국 지사장”이라 표현할 정도였다. 왜 그런가?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수십 년간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됨으로써 한국 민중에게 큰 신뢰를 얻은 상태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뢰가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 된 상태에서 ‘IMF 식 구조조정’을 나름 힘차게 밀고나갈 중심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즉, 사실상 세계자본이 한국을 수탈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IMF 식 구조조정’을 정부 주도로 강행하되, 김대중이라는 존재 자체가 행여 있을지도 모를 노동운동 등 사회적 저항을 적절히 무마할 수 있는 ‘완충 장치’ 역할을 했다. 달리 말해, 노동자나 노동조합, 농민회 등 노동 진영은 ‘IMF 식 구조조정’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음에도, 민주화운동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가진 김대중 정권을 상대로 (기존의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것과는 달리) ‘감히’ 적대적 저항을 전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런 점에서 세계자본의 시각에서는 ‘국민의 정부’를 내건 김대중 체제가 ‘IMF 식 구조조정’을 관철하기에 매우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웬만한 한국 기업들은 죄다 세계자본의 소유로 넘어갔다. 가장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국민은행, 외환은행, 제일은행 등은 주식 구조상 ‘한국’ 기업이 아니다. 명실상부 세계자본의 것이다. 세계자본의 입장에서는 재벌 가족들이 봉건적 승계까지 하면서 ‘억지로’ 황제경영을 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해 ‘재벌 해체’까지 이뤄내고 완전한 세계자본의 품속으로 포섭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여전히 재벌 내지 족벌 체제가 잔존하나 사실상 이미 세계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했던 서글픈 독백은 자본이 세상을 좌우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잠시 그 당시 환율을 회상해 보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환율은 1달러 당 1,700원까지 치솟은 걸로 돼 있다. 암시장에서는 2,000원까지 올랐다 할 정도였다. IMF 사태 이전에 비해선 환율이 약 2배 올랐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한국 돈의 가치가 ‘똥값’이 되었다는 얘기이고, 다른 편으로는 세계자본이 한국 기업이나 자산을 ‘헐값’에 득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세계자본 내지 투기자본의 운동 원리가 정리된다. 즉, 투기성 세계자본이 대대적으로 일국에 들어갔다가 대대적으로 자본 이탈을 감행함으로써 그 나라의 외환 보유고(부채 상환 능력, 유동성 확보)를 바닥낸다면 ‘국가 부도’ 사태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IMF나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고, IMF나 세계은행 등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에 가혹한 ‘구조조정’(특히 대대적 정리해고)을 강요한다. 이제 세계자본이 해당 나라의 기업이나 은행, 부동산과 공기업 등을 ‘똥값’에 매입하거나 인수 및 합병(M&A)하기 쉽다. 이런 식으로 세계자본은 해당 나라에 빨대를 꽂아 놓고 달콤한 이윤을 해마다 빨아들인다. 바로 이것이 25년 전 ‘IMF 사태’의 진실이다.(1980년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각국의 부채 위기 역시 원리는 동일했다.)
3.
이제 가장 최근의 한국 자본주의 상황을 보자. 단적으로 말하면, 오늘날도 (그 이유야 다양하지만) 자본의 평균 이윤율, 즉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진다. 세계경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신기술 혁신이 가속화하되, 노동-상품-화폐-자본이 맞물리며 돌아가는 자본주의 경제의 수익성은 의도치 않게 지지부진하다. 그 와중에 국내 재벌들은 GDP 대비 매출액이나 자산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이나 자영업자, 그리고 중하층 가계들은 파산과 부채, 실업과 빈곤으로 내몰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노동자 조직화나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화폐물신 또는 권력물신에 중독된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물론, 사회 변화를 위한 적극적 투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은 삶의 불평불만을 ‘종북 반국가세력’에 덮어씌우려 한다. 이를 악용하는 자들은 (백골단, 반공청년단, 그리고 전광훈 식 광신도 등의 1·19 서부지방법원 침탈 사례에서 보듯) 극우파들을 선동, 동원하기 바쁘다. 이를 세 측면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한국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경향적으로 떨어진다. 강원대 유원근 교수 등에 따르면 “1970년에 33%였던 이윤율은 2017년에 15%, 2018년에 14%로 점점 저하하였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내내 12%에 머물고 있다.” 또, “2021년의 산업 부문별로 평균 이윤율을 보면, 제조업 부문 8%, 광업 18%, 전기 가스 수도 2%, 건설업 3%, 도소매숙박업 15%, 금융보험업 41%”이었다. 이를 자세히 보면, 잉여가치를 생산 않는 비생산 부문의 이윤율을 제외한 생산 부문의 이윤율은 아주 저조하다. 한편, 산업개발연구원의 박훈덕 연구원은 “2007~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윤율의 변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면서 “이러한 변화는 자본생산성이 둔화되는 한편, 임금분배율은 증가하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추론된다.”고 했다. 즉, 노동 진영의 임금 압박은 강화하되, 자본의 이윤율이 저하되는 경향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경상국립대 김덕민 교수의 한 논문은 “97년 이후 자본축적률은 (지대, 이자, 세금 등) 지불 후 이윤율로 수렴”했다고 보며, “지불 후 이윤율과 자본축적률은 모두 하락”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이 모든 연구들을 종합할 때, 한국 자본주의의 이윤율 또는 수익성이 경향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국가나 자본 입장에서 볼 때, 획기적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거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자본과 권력의 안정적 재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민주노총 위원장, 촛불행동 대표, 비판언론 대표, 야당 대표들과 주요 인사들, 나아가 매우 껄끄러운 여당 대표나 비교적 양심적인 판사들 등이 12·3 내란에서 ‘긴급 체포 및 암살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둘째, 설상가상으로 재벌 집중이 갈수록 심화한다. “삼성, 에스케이(SK), 현대자동차, 엘지(LG), 롯데, 한화, 지에스(GS), 현대중공업, 신세계, 씨제이(CJ) 등 10대 재벌 매출이 2021년에 1,209조 원으로 국내총생산(명목 GDP 기준)의 58.3%를 차지한다.” 350만 개 정도의 기업들이 움직이는 대한민국 자본 생태계에서 단 10대 재벌들의 매출액이 GDP의 60% 가까이 되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 꼴이다. 또 이를 “5대 재벌로 폭을 좁히면, 이들의 2022년의 매출액은 973.6조 원으로 GDP(2,161.7조 원)의 45%, 2022년 기준 총자산은 1,324.8조 원으로 GDP의 61%를 차지한다. 이 5대 재벌이 소유한 2022년 기준 부동산은 토지 장부가액으로 71.7조 원에 이른다.” 5대 재벌의 매출과 총자산이 각기 GDP의 45%, 61%라는 것은 일국의 경제가 가히 독과점 지배 아래 있음을 재차 입증한다. 이는 전경련과 경총 중심의 ‘재벌-국가 복합체’가 사실상 경제는 물론 정치와 언론, 사회, 문화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얘기다. 10%의 부자가 90%의 자원을 차지하는 ‘10대 90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극단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사회 불만과 저항을 부르는 배경이다. 국회 앞은 물론 대통령실 인근, 그리고 서초동 법원, 나아가 전국 각지의 시청이나 군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거나 농성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리고 울산, 거제 등 전국 곳곳의 산업단지나 공장지대에서 때로는 일인 시위나 천막 농성으로, 때로는 파업과 집회로 노동자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인간적 요구를 내걸고 외치는 모습을 보라. 그 중에는 온갖 산재나 과로사, ‘갈비법칙’(아래로 ‘갈’구고 위로 ‘비’벼야 생존이 보장되는 냉혹한 노동 현실) 등의 위험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망가지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호소하는 장면이 포함된다.
이렇게 노동자와 민중이 저항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윤석열은 2022년 5월 취임 직후부터 “건폭” 또는 “노조 카르텔” 같은 용어를 써가면서 민주노총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반국가세력”이라 낙인찍었다. 윤석열과 국힘당이 추진하려던 ‘노동개혁’이란 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척결하고 주 60~70시간 말없이 노동하는 ‘노동기계’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던 ‘개악’에 불과했다. 아마도 이번 계엄을 통해 그런 식의 파쇼적 발상을 하룻밤 사이에 구현하려 한 듯하다.
지금도 독일에 가면 그 옛날 집단노동수용소(KZ)들이 역사적 유물로 남아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 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 정문마다 이런 구호가 붙어 있다.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즉,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물론, 그렇게 일을 실컷 시킨 뒤 더 이상 쓸모없는 노동력 소유자들은 가스실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갔다. 그렇게 죽은 유대인 등이 6백만 이상이다.
12·3 윤석열 쿠데타는 바로 그런 세상을 원했던 것일까? 자본과 권력을 위해 뼈골이 상접할 정도로 일하다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만드는 그런 세상을, 자본에겐 화양연화이나, 사람과 자연에겐 극한지옥인 그런 세상을 말이다.
셋째, 무한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억지 연명한다는 것은 부채나 투기 경제의 증가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2023년에 국가 채무는 1,126조 7,000억 원으로 이는 GDP의 50.2%에 달한다.” 또, 한국은행 자료도 “가계부채는 2024년 3분기에 1,913조 8,000억 원에 이른다.”라고 했다. 2022년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인 108.1%(전세대금을 포함하면 156.8%)에 달한다. 〈조선비즈〉 역시 “기업부채는 작년(2023년) 말 기준 2,734조 원으로 집계됐다. ……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17년 말 92.5%에서 2023년 말 122.3%로 높아졌다.”라고 했다. 국가부채, 기업부채, 가계부채 등을 합한 국가 총부채(macro leverage)는 5,743조 5천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80.6%에 이른다. 갓난아이까지 포함한 한국 국민 5,200만 명이 1인당 1억 원 이상의 부채를 짊어지고 사는 꼴이다.
이런 세상에서 ‘2030 세대’의 미래는 어떤가? 가정과 학교에서는 열공하라 하고,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조차 낭만과 지성의 빛나는 대학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열공해서 취업 시험에 응시해도 합격은 쉽지 않다. 어렵사리 합격한들, 내 소망이나 꿈과 전혀 다른 자본의 자기증식을 돕는 부속품밖에 되지 않는 ‘노동기계’, 과연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최고 책임자나 여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극도로 한심하다. 그러니 저항에 나서는 청년들이 차츰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부 2030 남성들이 극우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니 ‘극우 선동’에 휘말려 ‘백골단’ 또는 ‘1·19 법원 폭동’ 등 엉뚱한 짓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대다수 2030 남성들은 내심 불안한 구석은 많지만 (극우 선동에 쉽사리 휘말리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다. 내란 사태 이후 윤석열 탄핵 광장에 나온 남녀 청년들을 보면 희망이 있다. 특히 ‘남태령대첩’(12월 21~22일)으로 불리는 농민 트랙터 시위대와 2030 여성들의 연대, 그리고 폭설이 내린 한남동 관저 앞에서의 ‘키세스 시위대’(1월 5~6일)는 눈물겨운 역사의 한 장면들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청년들이 서서히 정치적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시위나 저항에 동참하는 걸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비상계엄을 통한 정국 전환, 그리고 섬뜩한 ‘암살 대상자 명단’ 같은 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계엄의 성격을 종합하면 이렇다. 그것은 잘못된 자본의 가치증식 운동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상태에서, 나아가 철학도 전략도 없는 경제 운용 및 국가 경영에 대한 참된 반성 없이 오로지 문제 제기자들을 “종북 반국가세력”이라 낙인찍어 제거하면 사태가 해소될 것으로 착각한, 매우 어리석은 자살 행위에 불과했다. 그것은 마치 자본의 죽음 충동(증식을 위해 효율 경쟁을 하지만 본의 아니게 총체적 파국으로 치닫는 경향)을 흉내 내는 것과 유사하다.(안젤름 야페, 《파국이 온다》 참조)
4.
만일 우리가 이번 사태를 위와 같이 정리한다면, 단지 계엄 세력들을 단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나아가 민주당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4생의 세상’(생존, 생활, 생명, 공생)에 대해 깊이 고민, 소통하고 토론해 나가야 한다.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체계적 토론이, 다른 편에서는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실천적 고뇌(예, 생태전환 교육)가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인 (세계 자본주의 안에서) 후발 주자이면서 반주변부 자본주의 성격을 띤다는 점, 그리하여 노동자 대중을 사회적으로 통합할 물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즉, 서양을 흉내 낼 일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탈(脫) 자본, 진(進) 생명’이라는, 생태민주주의 구호가 절실하다. 나아가 이런 제안에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부담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예, 우리 내면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와 폭력의 경험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둘러앉아 열린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런 고뇌가 없다면, 그리하여 내면이 참으로 자유로운 새 주체(씨ᄋᆞᆯ들)의 탄생 없이는, 아무리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 봐야 또다시 비슷한 오류를 반복하며 허송세월할지 모른다. 특히 민주당 등 야당들이 더 분발하고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단순히 내란 사태를 바로잡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개혁 정도에 국한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즉, 자본이 만든 상품사회의 근본 원리를 넘어 참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새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화폐·상품·노동·가치·시장·국가 물신이라는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뒤 남게 될 폐허의 시·공간을 과연 무엇으로 채워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삶’이 가능해질 것인가? 이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긴요한 또 하나의 질문이다.
씨ᄋᆞᆯ의소리 후원 계좌
834-01-0058-841(국민은행, 함석헌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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