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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함석헌 사상 연구) 함석헌식 통일방안과 남북 평화공존 - 황보윤식

씨ᄋᆞᆯ
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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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사상 연구


함석헌식 통일방안과 남북 평화공존



황보윤식

편집위원, 함석헌평화연구소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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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6일, 〈간디평화재단〉과 《인천일보》, 그리고 〈여행인문학 도서관/길위의 꿈〉이 공동으로 주최하여 “인천평화국제컨퍼런스”라는 주제로 인도와 한국의 관련자들이 모여 국제학술회의를 하였습니다. 청중이 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대성황이었습니다. 나는 첫날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간디와 함석헌의 정신”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제목도 바꾸고, 강연의 내용도 축약하였습니다.

 

1. 

오늘 이 자리는 간디와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 사상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화 문제를 여기 인천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 땅 ‘평화유전자’는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지에 대하여서도 살펴보면서 간디와 함석헌의 평화 사상에 접근을 해 보겠습니다. 

인간사에서 평화는 비폭력에서 나옵니다. 비폭력은 폭력에 대한 부정/반대 개념입니다. 그러면 비폭력은 무엇을 말함인지를 알기 위하여 먼저 폭력의 개념부터 살펴보기로 합니다. 폭력의 개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약 성경 〈마태오복음〉 5장 21~26절에 나오는 아나키 예수1)의 산상수훈(山上垂訓)입니다. 여기서 폭력의 개념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력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화해/소통의 이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화해와 소통’처럼 좋은 말은 없습니다. 화해와 소통을 협화(協和)라고도 합니다. 협화는 ‘평화공존’을 뜻합니다. 

근대에 이르러 ‘민중의 비폭력 저항/반항 사상’을 주장하고 평화를 실천한 인물은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 대한민국의 함석헌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인도의 정신문화와 간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남북의 중립주의 ‘평화공존론’을 주장한 함석헌에 집중하여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2. 

비폭력의 개념은 언제부터 생겨난 말인가. 이제까지는,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내놓은 연구자와 연구물은 없습니다. 다만 아시아에서 보면, 옛 중국의 기원전 6~4세기에 살았던 현인들, 곧 공맹자의 인의(仁義) 사상, 노장자의 무위(無爲) 사상, 묵자의 비공(非攻) 사상, 열자의 우주적 삶, 양자의 자연주의 사상에서 비폭력주의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배층의 비폭력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비폭력 저항’이라고 하면, 지배층의 폭력적 권력에 대한 피지배층의 ‘저항/반항’을 말합니다. 나는 여기서 지배 권력의 부도덕, 비양심의 폭력 정치에 대한 민중/민인의 ‘비폭력 저항’2)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보편적인 비폭력/무저항에 대하여 아나키 예수는 “오른뺨을 맞거든 왼뺨도 들이대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처럼 확실한 무저항(Non-violent resistance)/비폭력(non-violence)의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폭력의 정신은 반드시 저항/반항을 하는 사람 자신이 ‘정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비폭력 저항=정의정신이 곧 평화정신입니다. 

평화의 개념에 대하여 많은 학자/연구자들이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평화는 1) 전쟁이 없는 상태, 2) 인간 개인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직접적/물리적 폭력이 없는 자연 상태3), 3) 여기에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 같은 간접적/구조적/제도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일컫습니다.4) 평화라는 글자는 평(平, 골고루) 자와 화(和, 행복=평화) 자의 모음 글자입니다.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똑같은 평화/행복을 누린다는 뜻의 평등(平等, equality)입니다. 평등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처음 나온 용어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 ‘조건의 평등’, ‘결과의 평등’입니다. ‘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위적인 ‘법’은 처음부터 인생의 출발선 곧, 자본의 크기, 빈부의 차이 및 계급의 차이가 다르게 그어있음을 인정한 토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법 앞의 평등은 평화정신이 될 수 없습니다.

평화라는 말에는 권리의 평등, 계급의 평등, 부유의 평등이 내포되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은 순수한 자유만이 절대 평등과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절대 자유=절대 평등=절대 행복=절대 평화’입니다. 절대 평화는 상대방의 ‘자유 가치’를 인정하는 상태에서만 가능합니다. 상대방의 ‘자유 가치’를 인정하게 되면 폭력이나 전쟁 같은 사회 폭력/국가 폭력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절대 자유와 절대 평화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이념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것은 상호부조주의입니다. 민본적 상호부조주의입니다. 함석헌의 ‘같이살기’ 사상입니다. 같이살기는 열린 이웃을 말합니다. 열린 이웃이 곧 평화입니다.


3. 

그러면 우리 땅의 평화유전자(평화DNA)는 어디서 나오는지 이야기를 해봅니다.5) 한/조선반도6)에서 ‘평화유전자’가 역사적으로 생성된 곳은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마리산은 잘못된 표기다)입니다. 마니라는 말은 불교의 마니보주(摩尼寶珠)에서 나온 말입니다. 마니 구슬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신물(神物)로, 탁수(濁水)의 정화, 제악(諸惡)의 억제, 염화(炎火)의 통제 능력을 지닌 평화의 상징물입니다. 그래서 마니산은 평화유전자를 간직한 땅이요 뫼입니다. 기록7)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이러한 평화유전자를 지닌 마니산에 참성단(塹城壇. 윗단은 네모 모양, 아랫단은 둥근 모양)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땅의 탁한 기운을 몰아내고 불의한 악행들을 물리치고, 재난과 전쟁 상태가 없기를 바라는 단군왕검의 염원이었다고 봅니다. 

우리 땅 옛사람들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천지의 기운을 만들어주는 하늘(자연공간)을 원(圓)으로 이해하고, 생명을 움트게 하는 땅은 네모〔四角形〕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은 유기/순환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때로는 상호 대립(태풍과 홍수)과 갈등(가뭄)하면서 조화를 이룹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 있는 단군왕검이 마니산에 참성단을 시설한 것은 천신 신앙을 가진 이주민과 토템 신앙을 지닌 토착민이 협화한 풍류공동체가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갈망하는 실천적 결과로 보입니다. 이렇게 고조선 시기에 쌓은 참성단이 오랜 세월 잃어졌다가 우리 역사에서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큰 외적(몽골, 1231)의 침입으로 우리 사회가 혼란해져 있을 때로 보입니다. 

하늘과 땅의 조화는 끊임없이 생성/변화/발전을 통하여 지양(止揚)의 법칙을 만들어냅니다. 하늘은 알파로 생명의 창조자입니다. 땅은 오메가로 생명의 완성자입니다. 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에너지를 받아 뿌리를 내립니다. 뿌리가 곧 씨입니다. 그리고 뿌리/씨에서 나온 싹/생명이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는 ‘ᄋᆞᆯ’입니다. 뿌리와 열매의 모음 글자가 곧 씨ᄋᆞᆯ입니다. 그래서 ‘씨ᄋᆞᆯ’은 생명 자체를 말합니다. 우주의 생명 중 가장 위대한 생명이 사람입니다. 생명=사람은 곧 씨ᄋᆞᆯ입니다. 함석헌의 말대로 우주/하느님이 만들어낸 생명은 평화 자체입니다. 생명=사람=평화입니다. 마니산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씨ᄋᆞᆯ사상이 곧 우리 땅/우리 민족/우리나라의 평화유전자가 되는 동시에 세계평화의 샘물입니다. 이러한 평화유전자(맑은 마음, 깨끗한 정신)를 가지고 민족 분단의 종식, 종교 독재의 배척, 균산적 사회 조성, 지역 갈등의 해소를 통하여 평화로운 한민족사회를 만들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견인해야 한다고 봅니다.


4. 

그러면 이제 간디와 함석헌의 평화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기로 하지요. 간디와 함석헌의 평화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은 예수와 톨스토이입니다. 예수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폭력 평화사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근대 ‘비폭력 평화사상’의 주창자입니다. 톨스토이의 비폭력 논리는 세계의 많은 씨ᄋᆞᆯ 민중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여기서는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사상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간디와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사상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인도의 간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간디 사상은 인도의 전통적인 정신문화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사상입니다. 하여 먼저 인도의 전통적 정신문화인 아힘사와 범신론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인도의 전통적 정신문화에는 ‘아힘사(Ahimsa)’와 범신론이 있습니다. 아힘사는 인도 사람들의 혼을 지탱해 주는 ‘선(善)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교는 ‘아힘사’를 기본 정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힘사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해(不害)=불살생(不殺生)의 생활 태도를 본질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힘사는 인도인의 전통적인 업보(業報) 신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인도의 업보 신앙은 범신론과 연결됩니다. 인도인은 범신(梵神)을 많은 우주의 신 중에 최고의 신, 곧 우주 창조신/조물주라고 봅니다. 범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시키기도 하지만, 우주가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면 이를 파괴하고 다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 낸다는 뜻의 신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범신론은 변증법적 우주 창조 원리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우주 창조는 정(正)이요, 유지/변형은 반(反)이요, 파괴와 재창조는 지양(止揚), 곧 합(合)입니다. 

여기서 나온 인도인의 믿음이 곧 윤회설입니다. 곧 자연의 모든 생명은 전생과 현생, 내생이 거듭되는 영생적(永生的)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인도인들은 범신의 법칙, 곧 ‘지양의 법칙을 지키기 위한 그들만의 실천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초 우주 생성의 원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正道〕을 가질 때 올바른 관점〔正觀〕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리고 올바른 관점만이 올바른 실천/행동〔正行〕을 할 수 있다는 신앙 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인에게 있어서 ‘올바른 지식’은 살아있는 어떤 생명도 일체 죽이지 않는 사고와 행동입니다. 이것이 아힘사 정신입니다. 현생에서 불상생하고 착하게 살아야, 내생에 윤회를 탈피하는 생명, 곧 무형의 체(体)/(해탈의) 틀을 선택받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인도인을 ‘선한/착한 민족’이 되게 한 것으로 봅니다. 

이제 간디의 비폭력 저항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본 이름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입니다. 마하트마는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였던 간디를 추앙하기 위하여 붙인 추임말로 ‘위대한 영혼’(함석헌은 이를 ‘참지킴’이라고 했다)이라는 뜻입니다. 간디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1858)로 된 후, 인도 서부의 유명 항구도시 푸르반다르 지역의 집안(바이샤 계급)에서 태어납니다.(1869) 어머니를 따라 힌두교를 신앙으로 갖게 됩니다. 대학 공부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하게 됩니다. 변호사가 되어 인도로 돌아와 변호사 생활을 합니다. 변호사 간디는 인도에서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24세 때, 인도를 떠나 남아프리카로 가게 됩니다.(1893. 4.) 여기서 변호사 생활과 함께 영국을 상대로 식민지 민인/민중 해방운동을 하게 됩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식민지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 계급적 차별, 노예적 생활 등을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영국인의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 정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만듭니다. 여기서 간디는 인종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식민국 영국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남아프리카 나탈주(州) 의회가 인도인의 선거권 박탈을 입법화하려 할 때, 간디는 인종차별 반대 투쟁 단체인 〈나탈인도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설합니다.(1894. 5. 22.) 국민회의는 인종 차별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면서 세금 납부 거부 운동/인종 차별 반대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의 저항 방식은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비폭력 불복종)였습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은 인도인의 아힘사와 범신론, 그리고 업보 신앙에 바탕을 두고 톨스토이의 그리스도교/기독교 아나키즘이 합체되면서 나온 ‘정의 정신’이었다고 봅니다. 그의 정의 정신이 곧 ‘비폭력 저항’이라는 평화운동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봅니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저항방식에 의한 비폭력 저항운동은 트란스발, 오렌지 자유주, 요하네스버그에서 치열하게 나타납니다. 사티아그라하는 평화적인 비폭력 불복종 기의(起義)를 뜻합니다. 이러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주도하는 과정에서 간디는 체포되어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1907) 이렇게 간디는 인류 역사에서 ‘생명의 참 주체’인 민인/민중의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민중을 중심으로 한 비폭력 불복종 기의를 성공적으로 끌어낸 상징적인 인물이 간디입니다. 간디와 인도 민중들의 비폭력 불복종 저항운동을 통한 ‘대영 반항’의 결과는 인도의 독립, 민족해방을 가져다줍니다.(1947. 8. 15.)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은 동포요 힌두교 신도인 사람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1948. 1. 30.)

함석헌은 역사에서 “간디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함석헌은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사상을 ‘비폭력 저항’으로 해석하고, 비폭력은 ‘사나운 힘’=권력을 쓰지 말자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폭력은 물리적 힘에서 나오고, ‘비폭력 저항’은 ‘혼의 힘’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모든 폭력(옳지 않음)과 싸워 이기는 힘은 ‘혼의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혼의 힘이란 ‘정의정신’을 말합니다. 따라서 정의정신에서만이 비폭력 저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의정신이 없으면, 비폭력 저항은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폭력’은 곧 ‘정의정신’입니다. 비폭력 저항=정의정신=평화정신입니다. 함석헌은 투쟁이라는 말 대신, 저항이라는 말을 주로 썼습니다. 투쟁이라는 말은 싸움, 폭력의 개념을 갖지만, 저항/반항은 폭력의 뜻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저항은 정의, 양심, 자유정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5. 

이제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니다. 함석헌의 비폭력/평화 사상은 예수의 산상수훈에 바탕을 둡니다. 여기에다 톨스토이의 ‘그리스도교/기독교 아나키즘’과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정신, 그리고 퀘이커의 비폭력주의를 합체한 사상입니다. 지금 우리 땅은 ‘분단의 모순’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분단의 모순은 일제 식민지라는 기본 모순 위에 물리적 모순과 민족적 모순이 겹쳐 있습니다. 물리적 모순은 미국에 의해 강제된 분단해방입니다. 민족적 모순은 반통일적 분단 권력입니다. 이러한 분단 모순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함석헌은 우리나라 처음으로(1972)8) ‘중립주의 평화통일론’을 내놓았습니다. 함석헌의 평화통일론은 ‘평화공존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자유정신, 다솜정신9), 자주정신 이 세 가지가 한국인이 가져야 할 평화공존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평화공존이 곧 평화통일이라는 뜻입니다. 

함석헌은 평화공존론에 바탕하여 중립주의 평화통일론을 이야기합니다.10) 함석헌은 중립이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사상적으로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정책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상적으로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 두 이념이 대결하는 태도를 버리고, 대립의 지양(止揚)을 통한, 보다 높은 자리를 찾자는 말이다. 이데올로기 싸움의 의미는 보다 높은 사상을 찾아 둘의 대립이 자연 해소가 되는 자리에 가야만 된다.”라는 설명과 함께 앞에 오는 시대는 이데올로기 시대가 아니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정책적인 중립주의는 두 이념 정권이 “전쟁을 아주 내 버리고 평화의 나라로 설 것을 선언”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군비 강화, 전쟁 연습은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전쟁 준비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먼저 전쟁 준비(무기 증강, 전쟁 연습)를 포기하는 것이 정책적 주도권을 갖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적 주도권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통일 준비를 위한 ‘세 단계의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첫 단계는 남북이 불가침조약을 맺는 일이요, 두 번째 단계는 군비 축소요, 세 번째 단계는 남북이 처음부터 중립노선을 택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남북이 불가침조약을 맺고 군비 축소를 하게 되면 당연히 두 정권이 국시를 평화로 삼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 세 단계의 성공은 “처음부터 중립노선 이외에 살길이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함석헌의 ‘평화 중립주의’는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 운동이 주변 강대국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민족의 통일은 국가주의 이념인 ‘노예혼’에서 해방된 민족혼을 지닌 민중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민중이 가져야 할 평화통일 정신은 ‘평화 중립주의’라고 말합니다. 평화 중립주의는 반공의 노예혼과 반미의 노예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민족혼’을 말합니다. ‘민중에 의하여, 민중을 위하여, 민중이 이끄는’ 평화 중립주의에 바탕한 평화통일만이 진정한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함석헌의 생각입니다. 


6. 

끝으로 이제까지 이야기한 평화의 개념과 함께 우리 땅 평화유전자, 인도와 간디의 평화정신, 함석헌의 중립주의 평화통일론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우리 땅, 우리 민족의 ‘평화공존론’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우리 땅 남북은 이제까지 생각하고 있는 남북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함석헌식의 중립주의에 바탕한 평화공존의 개념으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중립주의 평화공존=민족통일이라는 사고의 전환입니다. 함석헌의 말대로, 이제 우리 시대는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두 형제가 한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 한솥밥을 먹을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새로운 통일 개념, 곧 중립주의 평화공존=평화통일이라는 개념은 ‘우리 민족문화 동질성’의 회복을 통한 평화공존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남북은 서로 우리 민족문화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라고 봅니다. 곧, 1) 남북이 헌법상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를 떨쳐내고 이적단체를 ‘동일 민족’으로 바꿔야 합니다. 2) 한 민족 두 국가를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3) 평화협정을 맺고,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4) 국경선의 안정과 함께 두 국가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정치, 경제, 문화(예체능 포함) 방면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민족동질성=민족문화 동질성을 회복하는 정책을 펴는 일입니다. 5) 민족동질성 회복이 곧 ‘새로운 개념’의 중립주의 평화공존을 통한 평화통일이 됩니다. 

이렇게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두 국가가 국경을 허물고 인적/물적/문화적 교류를 한다면, 이게 새로운 통일 개념, 곧 평화공존=평화통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하나의 영토, 하나의 국가로 되는 게 통일이라는 개념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평화공존=평화통일이라는 분위기’를 만들게 되면 자본주의/공산주의라는 이념은 낡은 우상이 됩니다. ‘체제 철조망’을 ‘뻥 뚫린 국경선’으로 바꾸어 남북이 서로 왕래를 한다면 굳이 하나의 영토,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요즈음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의 원수인 일본과도 국경을 열고 모든 교류를 다 하면서, 같은 민족인 우리가 우리 등에 금을 그어놓고 여기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초등학교 아이들의 유치한 행동을 정치권력들이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각주

1) 박홍규, 《내 친구 예수는 아나키스트》(비공, 2025) 참조.

2) 비폭력 저항: 함석헌은 비폭력 무저항이 아닌 비폭력 저항이라는 용어를 썼다.

3) 김대식, 《함석헌의 평화론》(모시는사람들, 2018), 78쪽 참조.

4) 이재봉·문정인·정세현 외, 《평화의 길, 통일의 꿈》(메디치미디어, 2019)에 나와 있으나 이재봉 교수와 통화하면서 정리한 것이다.

5) 이 부분은 원본에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지면상 축약하여 적는다. 

6) 우리 땅에 대하여 분단 용어인 한반도와 조선반도라는 용어를 가급적 지양하고 조선의 근대 시기 일부 지식인들이 썼던 동아반도와 혼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7) 고려시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1277~1281년경)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1287).

8) 함석헌, 《함석헌저작집》 12권 《평화운동을 일으키자》(한길사, 2009), 58~82쪽 참조.

9) 다솜: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성경에서 쓰이고 있는 ‘사랑’이라는 용어는 원래우리말의 다솜을 뜻한다. 다솜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애뜻함을 나타나는 말이다. 함석헌이 쓴 사랑이라는 말을 글쓴이가 다솜으로 고쳐 썼다.

10) 임헌영, 〈함석헌의 평화사상 재조명 필요성〉, 《함석헌과 왕양명 그리고 오늘의 한국사회》(동연, 2020), 204~206쪽 참조; 김대식, 앞의 책, 49~53쪽 참조. 


〈참고문헌〉

《함석헌저작집》 1권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한길사, 2009.

《함석헌저작집》 5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한길사, 2009.

《함석헌저작집》 12권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한길사, 2009.

김대식. 〈함석헌의 평화사상-비폭력주의와 협화주의를 중심으로〉. 《통일과 평화》 제8권 제2호.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 2016.

김대식. 《함석헌평화론》. 모시는 사람들, 2018.

박재순. 〈동아시아와 함석헌의 평화사상〉. 《日本思想》 제16호. 한국일본사상사학회, 2009. 

이만열. 《역사의 길, 현실의 길》. 푸른역사, 2021.

임헌영. 〈함석헌 평화사상의 재조명 필요성〉. 《함석헌과 왕양명 그리고 오늘의 한국사회》. 동연, 2020.

정지석. 〈함석헌의 평화사상〉. 함석헌기념사업회 씨ᄋᆞᆯ사상연구원 월례발표자료. 2003. 12.

황보윤식. 〈함석헌의 세계평화운동에 대한 역사인식론적 검토〉. 《생각과 실천》. 한길사, 2012.

황보윤식. 〈가장 아름다운 이름, 평화를 생각한다〉. 《통일코리아》 2024 겨울호. 통일코리아협동조합,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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