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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그림 없는 그림 이야기)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에밀 졸라와 강요배를 잇다 - 최광열

씨ᄋᆞᆯ
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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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그림 이야기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에밀 졸라와 강요배를 잇다



최광열

인문지식소매점 〈구멍가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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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방해하는 것들

  어느 여름, 진실과 거짓이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너무 더웠던 터라 길가에 우물을 발견한 그들은 잠시 땀을 식히기로 하고 옷을 벗고 우물에 들어갔다. 그렇게 더위를 피하고 있는데 거짓이 슬그머니 일어나 우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진실이 벗어놓은 우아한 옷을 입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진실은 거짓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 우물 밖에 남아있는 것은 거짓의 찢어지고 낡은 옷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진실은 거짓의 옷을 걸칠 수밖에 없었다. 거짓은 진실의 옷을 입고 진실을 흉내 내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다. 사람들은 거짓이 하는 말을 믿어 주었다. 박수 치며 환대하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하지만 뒤쫓아 온 낡은 옷을 입은 진실에 대하여서는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배척하였다. 진실의 말은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진실은 울면서 다시 우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를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과 에두아르 드바퐁상(1847~1913)이 캔버스에 담았고, 에스파냐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도 이 주제를 중히 여겨 판화로 남겼다.1)

  고야는 자신의 판화집 《전쟁의 참화》 연작 79번 〈진실의 죽음〉과 80번 〈그녀는 다시 살아날까?〉에서 진실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세력으로 종교와 종교인을 지적한다. 가장 순수해야 할 종교가 권력화되어 기득권을 갖기 시작하면 진실을 부정하고 진리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나사렛 예수를 죽인 것이 바로 종교 아니던가? 종교가 틀린 것이 아니라 권력화된 종교가 틀렸다. 권력은 자기 이익을 위해 진실을 숨기거나 조작할 충분한 동기를 갖는다. 누구라도 이 덫에 걸리면 악마가 된다.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선입견과 신념에 경도된 확증 편향도 진실을 호도한다. 가짜 뉴스와 잘못된 정보와 무지(또는 무관심)는 진실을 왜곡한다. 두려움과 분노와 집단적 광기, 그리고 혐오 역시 진실을 호도한다. 인간의 감정은 인간의 지성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수용하고 따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건강한 지(知)·정(情)·의(意) 세 인격 요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보편성을 가진 지성은 진실 수용의 통로다. 자기 신념을 잠시 보류하고, 낯선 정보나 관점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토양에 진실은 뿌리를 내린다. 사람들은 이성이 아니라 도덕적 직관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그 후에 이성을 이용해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2) 그러므로 진실을 수용하려면 먼저 자신의 감정적 저항을 줄이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질문은 지성의 비판적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 팩트체크를 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도 살피고, 상반된 의견도 검토하여야 한다. 둘째로 필요한 것은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진실의 다면성을 이해하게 한다. 차별과 혐오와 전쟁 등 사회적 진실을 내포한 문제일수록 공감하는 능력이 절실하다. 셋째는 의지적 용기이다. 진실이 불편하더라도 직면하는 자세와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감당하기 두려워서 외면한다. 단호한 도덕성이야말로 진실의 마중물이다. 진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법은 단순히 정보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지적 성찰과 감정에 터한 공감하는 능력과 도덕적 책임을 포함한 복합적인 과정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되기가 어렵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의 보상 구조가 정직이나 진실보다 능력과 성과를 우선하기 때문이고, 불편한 진실보다 평안한 거짓에 대하여 인간 본성이 우선 반응하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기만이라는 부패한 인간성이 사회 전반에 편만해진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시대에 역사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이들의 결기와 교훈을 살펴 자기 삶에 대입하는 일이야말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졸라

  19세기 말 프랑스는 유대계의 포병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가 독일에 군사비밀을 넘긴 간첩죄로 떠들썩했다. 프랑스 정보요원이 독일 대사관에서 입수한 문서의 필체가 드레퓌스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되어 종신형 판결을 받고 악마섬3)에 유배되었다.(1894) 보불전쟁(1870~1871)에서 진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높았던 터라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군부로서 화풀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유대계 드레퓌스는 아주 좋은 희생양이었고, 왕정 복고주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군부와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왕당파들이 환호하였고, 소수의 공화주의자와 진보 지식인들이 재심을 요구하였다. 1897년에 진짜 범인 페르디낭 에스테라가 붙잡혔지만 군부와 정부는 진실을 외면하고 무죄 석방하였다. 재심을 요구하는 양심의 소리는 묻혔다. 증거가 조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명예를 이유로 은폐하였다. 프랑스 주요 언론은 정부와 군부, 그리고 교회에 우호적이었으며 기득권 옹호적이었고 반유대주의 정서를 숨기지 않았다. 

  작가 에밀 졸라(1840~1902)는 19세기 말 프랑스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던 그는 침묵이야말로 공범이라고 생각했다. 군부의 위선과 언론의 침묵에 분개하였다. 졸라는 1898년 1월 펜을 들어 며칠 밤을 새우며 글을 썼다. 그리고 원고를 들고 《로로르(L’Aurore)》를 찾아갔다. 《로로르》는 아주 작은 신문사였다. 프랑스어로 ‘새벽’을 뜻한다. 아마도 자신의 원고를 받아줄 신문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작은 신문사여서 검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신문 이름이 갖는 상징성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졸라는 대중에게 호소하기보다는 소수더라도 양심 있는 지식인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건에 연관된 이들의 실명을 거명하며 비판하였다. 《로로르》의 주필은 조르주 클레망소(1841~1929)였다.4) 그는 출판 위험을 감수하고 1898년 1월 13일 자 신문에 에밀 졸라의 글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실었다. 


    나는 고발한다. 

    진실을 짓밟은 자들을,

    정의를 모욕한 자들을!

    오직 진실과 정의만이 프랑스를 구할 것이다!

  

  〈나는 고발한다〉가 실린 신문이 시중에 나가자 프랑스 사회는 찬반으로 나뉘어졌다. 졸라는 곧 군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명예와 생계를 포기하고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있었기에 결국 드레퓌스의 무죄를 밝혀내는 단초가 되었다. 졸라의 용기는 행위에서 침묵하지 않은 지식인의 책임과 용기를 보여준다. 드레퓌스는 1906년이 되어서야 무죄가 인정되어 석방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이자 인권유린이며 간첩 조작 사건이다. 하지만 진실의 문제는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갈등에 묻혔고, 한 개인의 무고 여부는 정치 세력의 대립과 충돌로 그 중요성을 잃었다. 진실을 생명으로 여기는 언론도 그 기능을 방기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알게 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으며 지식인의 참여와 정직한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의 중요성을 알게 하였다.

    

  제주 4·3사건과 강요배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은 위험하고 거짓은 편하다. 웅변은 위험하고 침묵은 안전하다. 거짓과 침묵이 세상을 지배할 때일수록 진실을 외치는 용기 있는 소수의 의인이 있어야 세상은 바꾸어진다.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와 한국의 화가 강요배(1952~ )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 살았지만, 억압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에밀 졸라가 이 땅에 살았더라도 〈나는 고발한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진실을 말하는 양심을 택했고, 그 선택은 역사 속에서 길이 되기 마련이다.

  강요배는 제주 출신으로 〈제주 민중 항쟁사〉 연작으로 개인전을 열었다.(1992)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의 자연과 이를 빌려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30대 후반 자신의 삶이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 ‘혹, 내 생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고 자문한다. 그때 생각한 것이 자신의 고향 제주였고, 제주 4·3이었다.5) 그것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온 주제이다. 그래서 강요배에게서 제주 냄새가 난다. 그에게서 4·3의 아픔을 읽는다. 

  제주 4·3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제주도민들이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으로, 수십 년 동안 공식적인 언급조차 금지되었던 아픈 역사였다. 1947년 3월 1일, 삼일절 행사에서 경찰의 말이 어린이를 다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도민들이 항의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이 총을 쏘아 민간인 6명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 대한 불신이 불일 듯 일어나 제주도 전체가 시위에 돌입하였다. 미군정은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였고 그 과정에서 좌익에 대한 탄압과 체포가 남발되었다. 이듬해인 1948년 5월 10일은 남한 단독 총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이는 분단으로 가는 순서였다. 제주도 주민들은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촉구하며 선거 반대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48년 4월 3일 새벽 남로당이 주도하는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올랐다. 선거는 투표율 미달로 무효화되었는데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이를 공산폭동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경 토벌전을 펼쳤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역에 거주하는 자는 폭도배로 인정해 총살에 처할 것이라고 포고문을 발표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때부터 제주도민은 무차별적 사냥 대상이 되었다. 제주도는 군·경, 그리고 서북청년단이 중심이 된 토벌대와 좌익 무장대에 의하여 죽고 죽이는 일이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졌다. 약 30,000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는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15%에 해당한다.7) 

  그 후 군사정권 아래에서 제주 4·3사건은 오랜 기간 금기시되다가 1978년 소설가 현기영(1941~ )의 〈순이 삼촌〉(1978)으로 그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점차 관련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폭력행위라며 사과하기도 하였다. 

  강요배는 제주와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제주인의 애환과 고통과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기록했다. 〈흙노래〉(1995)의 작품 과정에서 그는 한이 스며있는 제주 노동요 100여 편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느낌을 시각화하였다.8) 〈하산민〉(1989)이나 〈동백꽃 지다〉(1991)나 〈이승과 저승 사이〉(1991), 〈입산〉(1991) 등 그의 그림에는 4·3사건의 짙은 슬픔이 배어 있다.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아기를 그린 그의 작품 〈젖먹이〉(2007) 앞에 서면 가슴이 먹먹해져 어쩔 줄을 모르겠다. 〈빌레못굴의 유골〉(1992)은 마치 주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힌 폼페이의 모자 화석을 보는 듯하고, 폴란드 화가 즈지스와프 백신스키(1929~2005)의 미라 형태로 서로 얼싸안고 있는 남녀의 모습 〈무제〉(1984)가 생각나 울컥하게 한다. 〈학살〉(1992)은 일방적이어서 너무 슬프다.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1951)에서 인간을 살상하는 기계를 그렸다. 그렇더라도 죽는 자와 죽이는 자는 한 공간에 공존한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1814)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장소에 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손을 들어 항복을 표시하면서라도 ‘나는 인간이다’고 다른 인간에게 말한다. 폭력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 동물 중에도 난폭한 동물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9) 강요배의 〈학살〉에서 폭력은 극단화된다. 그림 속에 피해자는 없다. 아니 무존재로 존재한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래서 더 슬프다. 제주애(濟州愛)는 제주애(濟州哀)에서 시작하여야 하는가 싶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요배’라고 지었다. 형의 이름은 ‘거배’다. 낯설고 어색한 이름이다. 토벌대가 동명이인을 구별하지 않고 처형하는 것을 본 아버지는 흔하고 부르기 쉬운 이름은 슬픈 운명에 이른다고 판단한 듯하다. 흔치 않고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 삶을 잇는다고 믿었던 게 분명하다.10) 운명의 패러독스가 이런 걸까!

  

    슬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4



  별 같은 사람

  에밀 졸라와 강요배는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통해 진실 드러내기를 시도하였다. 그들에게는 권력에 맞서는 양심과 용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진실은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을 위한 연대의 언어였고, 하늘에 그리는 맑은 스케치였다. 길을 잃으면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문제는 물을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함석헌은 “별 수 없이 북극성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다.11) 별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로 해석한다. 에밀 졸라와 강요배는 그런 사람이지 싶다. 에밀 졸라의 소설 《삶의 환희》는 고흐(1853~1890)의 〈성경이 있는 정물〉(1885)에 등장하기도 하여 그의 진실 달음박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강요배는 아직도 그의 땅 제주에서 내면을 탐구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으니 그에게서 진실의 향 내음 맡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 

  “과연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졌는가?”

  드레퓌스 사건이 있은 지 130년이 넘었고,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지 70년도 더 지났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드레퓌스 사건이 있고, 4·3사건이 존재한다. 사실을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더욱 그렇다. 진실이 금기일 때 불이익과 고통을 감수하고 양심과 책임에 따라 행동하는 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세상은 조금 더 정의롭고 건강해진다. 

  시인 박노해는 〈진실〉에서 “큰 사람이 되고자 까치발 서지 않았지 / 키 큰 나무숲을 걷다 보니 내 키가 커졌지 // 행복을 찾아서 길을 걷지 않았지 / 옳은 길을 걷다 보니 행복이 깃들었지 //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지[………]”라고 노래했다. 

  진실이 목적이 되면 진실은 빛이 바랠지도 모른다. 진실이 특별해지면 향을 잃기 마련이다. 진실이 일반이 되고 상식이 될 때 세상은 살만해지지 않을까!


각주

1) 최광열, 〈진실과 거짓〉, 《아름다운 동행》, 2024. 1. 1., https://www.iwithjesu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39 (검색일: 2025. 10. 10.)

2) 조너선 화이트, 왕수민 역, 《바른 마음》(웅진지식하우스, 2014), 141쪽.

3) 악마섬은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 해안으로부터 대략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 개의 섬 중 최북단의 섬이다. 1852년에 프랑스령이 되어 1862년부터 1952년까지 악명 높은 프랑스의 해외 유형지가 되었다. 1973년에 개봉된 미국의 영화 〈빠삐용〉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4) 에밀 졸라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갖고 왔을 때 조르주 클레망소는 〈나는 고발한다〉로 고칠 것을 권하였다. 그는 에밀 졸라, 아나톨 프랑스 등과 함께 드레퓌스의 결백을 위해 교회와 군주와 싸웠다. 그는 후에 프랑스 총리가 되었다.

5) 강요배, 《풍경의 깊이, 강요배의 예술 산문》(돌배개, 2023), 128쪽.

6) 박찬식, 〈제주 4·3의 발발과 전개과정〉(제주4·3평화재단), 11~13쪽.

7) 현기영의 《순이 삼촌》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젊은 교사 ‘나’가 제주도에 부임하면서 ‘순이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순이삼촌은 4·3사건 당시 한라산으로 피신한 가족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토벌대에게 고문을 당해 정신적으로 파괴된 여성이다. 마을 사람들은 순이 삼촌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빨갱이로 낙인찍는다. 국가가 행한 폭력과 제주도민의 집단적 침묵 ‘나’는 기억과 증언의 의미를 되새긴다.  제주도에서는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친척 어른들은 남녀 구별하지 않고 ‘삼촌’으로 부른다.

8) 강요배, 앞의 책, 148쪽.

9) 박선균,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서로북스, 2025), 220쪽.

10) 최광열, 《클래식에서 이동파까지》(동연, 2021), 355쪽.

11) 함석헌, 《뜻으로 본 인류역사》(함석헌기념사업회, 2023), 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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