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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이 책을 말한다) 국가는 언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할 것인가?―《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한울회 사건으로 본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서로북스, 2025) - 홍성환

씨ᄋᆞᆯ
2025-11-18
조회수 7

이 책을 말한다


국가는 언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할 것인가?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한울회 사건으로 본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서로북스, 2025)



홍성환

강화도 〈이웃사촌〉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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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자 지음,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서로북스, 2025) 책 소개 및 구매 사진 클릭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2천 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렸지만 이 땅에서는 여전히 불의와 죄악과 억울한 일이 만연하고 있다. 이 책은 44년 전 소위 한울회 사건으로 불법구금되어 고문을 받고 거짓진술을 강요당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한 14명의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박은자 작가가 기록한 것이다. 

  한울모임은 대전과 서울에서 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 20여 명이 모여 성경공부와 독서를 하며 신앙공동체를 추구하였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재물보다 하느님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기를 바랐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는 초대교회의 모습에 감동하여 그런 신앙공동체를 추구하였다. 우리는 이런 꿈을 갖고 무소유를 실천하며 욕심뽑기운동을 하는 원경선 님의 풀무원에서 수련회를 하기도 했고, 무소유 공동체생활을 하던 문동환 님의 새벽의 집, 이스라엘의 키부츠, 떼제 공동체 등에 대해 연구했고,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을 함께 읽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규호 형제가 수련회 모임에서 졸업논문으로 쓴 현대의 공동체론을 발표하면서 여러 공동체를 소개하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공동체도 함께 소개했다. 검찰은 이것을 빌미로 신앙공동체를 추구하던 우리 모임을 공동재산·공동분배·공동소유를 주장하는 공산주의 반국가단체로 기소했다. 대법원은 아래 이유를 들어 원심을 파기했다.


  한울은 단지 신앙모임으로서 반국가단체라 볼 수 없다. 이규호 논문 ‘현대의 공동체론’은 마르크스 공동체 이론을 여러 공동체 이론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사회전복 이후 정부 형태를 구상하여 제시한 바 없다. 이를 전복을 도모한 반국가단체라고 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논문의 진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소외된 인간 상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으로 공동체 문제를 연구해 본 것에 불과하다. 한울이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앙공동체라는 점 외에 피고인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법원은 추가된 증거 없이 다시 우리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유죄판결을 내렸고 당시 《동아일보》는 “대법원은 신앙공동체 고법은 반국가단체”라는 제목으로 핑퐁판결을 했다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기소한 또 다른 이유는 수련회에서 박재순 형제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한 것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살해했다. 이런 군대는 귀신 들린 군대다.” 

  너무도 지당한 이 말을 검찰은 대한민국 군대를 해체시키고 자유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 전복시키려고 한 시도라고 기소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과오를 지적한 우리를 권력지향적인 형사 검사를 동원해 빨갱이로 몰아 기소했던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자들이 국가권력을 이용해 죄 없는 이들을 잡아다가 고문 조작하여 반국가단체로 만들어 승진하고 포상을 받은 것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울타리여야 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군사정권 시기 국가권력은 반정부적 사고와 표현을 반국가적 범죄로 간주하여 민주인사들을 고문 조작을 통해 빨갱이로 몰아 기소했습니다. 한울회 사건은 국가폭력이 저지른 대표적 사건입니다. 44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이 책에서 증언하고 있는 14명의 가슴 아픈 이야기 일부를 인용하려 한다.


  박은자: 작가

  한울회 사건, 정말 내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일까요? 그 때 국가에 붙잡혀 가고 이십여일 불법 구금되어 고문에 시달리다 국가가 불러주는 대로 거짓 증언을 해야했던 어린 고등학생들, 선생님과 선배들이 감옥에 간 것이 자신들의 거짓 증언 때문이라고 평생 자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가슴 아픕니다. 

 김종생 목사님, 보안사에 끌려가 두 무릎 사이에 몽둥이를 끼워넣고 군화발로 짓밟던  고문을 당하던 모습이 떠올라 저도 이틀 동안 허벅지 통증을 느끼고 마비되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임정묵: 당시 고3 학생

  가족들은 한 달 간 내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무슨 이유로 끌려갔는지 몰라 대전에 있는 모든 경찰서를 다  찾아 다녔다. 고문에 시달려 내 몸은 망가져 있었고 정신 또한 지하 깊은 곳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할 수도 없었고 그들이 불러주는 대로 거짓 진술을 했다.

  

  오민주: 당시 고3 학생. 불온 서클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네가 주말마다 만난 사람들은 다 빨갱이야. 너도 빨갱이 물이 들었어.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면 할수록 그들의 욕설과 협박은 심해졌다. 나는 법정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판사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일러주는 대로 거짓 진술을 했다. 민주는 법정에서 제가 진술한 것은 모두 허위이며 경찰관들이 협박해서 마지못해 한 거짓 진술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다음 공판 시까지 경찰들의 협박은 더욱 심해져 민주는 검찰이 말하는 대로 예라고 대답했다. 민주는 용서를 빌고 싶다. 그때 거짓 증언을 해선 안 되었다고.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던 민주는 그 모든 것이 국가가 자신에게 저지른 폭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민주는 국가에게 묻고 싶다. 국가는 언제 나에게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할 겁니까?


  홍성환: 당시 학생들에게 독서와 성경공부를 지도한 선생님

  우리가 꿈꾸었던 모임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는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였다. 검사는 그게 바로 공동생산·공동소유를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라며 순수한 신앙모임인 우리를 반국가단체로 기소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관들이 수시로 찾아와 전향하라고 했다. 나는 한번도 공산주의자인 적이 없는데 어디로 전향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규호: 한울모임의 주범으로 기소되어 무기징역 구형을 받음.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국가보안법과 사회안전법은 역사를 거스르는 반동적 법률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인륜마저 무시하는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에 있는 포상제도는 인간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성 법률이다. 순수한 신앙모임인 우리를 반국단체로 고문조작하여 포상을 받고 특진한 형사들과 검사는 천인공노할 범죄자들이다,

  그는 눈물이 많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평생 진리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그 진리를 몸으로 실천했다. 생전에 몸이 불편해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어떤 어려움도 그의 신앙을 이길 수는 없었다.


  장수명: 당시 대학생

  그는 억울하게 고문당하며 결심했다. 사람을 이토록 가혹하게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국가의 폭력에 대하여 끝까지 싸우겠다.

  나의 삶에서 한울모임처럼 안전하고 따듯한 곳은 없었고, 이런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경험은 없었다.


  박재순: 한울 모임의 정신적 지도자, 신학박사

  그는 한울회 여름수련회 설교에서 광주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국민을 살상했다며 이런 군대는 귀신들린 군대라고 했다. 검찰은 이것을 군대를 해산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려는 거라고 기소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조작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이것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보상도 받았다.

  일 년 여 척추 수술을 받고 몸이 약한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사십여 년 동안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


  임만연: 당시 고등학생

  나는 선생님과 선배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괴로웠다. 배신자가 된 것 같아 자신을 책망했다. 나는 어머니 모르게 단식을 했다.

  한울모임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한울모임은 언제 다시 시작될까?


  김동전: 당시 고등학생

  친구들을 만나도 그때의 선생님이나 형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서로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침묵한다. 그때 그 일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다.


  이충근: 당시 교사

  나는 참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하고 여름 수련회에 학생들을 데리고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학생들의 좋은 선생님이기만을 바랐다. 국가는 그런 나를 반국가단체 조직원으로 둔갑시켜 교사직을 박탈했다. 이런 억울한 일이 44년이 지났는데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건종: 당시 신학대학 학생

  한울모임은 나의 등불이었다. 한울모임은 신앙, 학문, 공동체, 교육을 지향하는 모임이었다. 그런 신앙모임을 반국가단체로 조작하기 위해 국가는 나에게 사정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진술서를 쓰다 졸기라도 하면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 순간 나는 짓이겨지는 연약한 꽃잎에 불과했다.


  이선종: 당시 대학생

  나는 지금도 아프다. 위대한 이상을 품은 한울모임을 해체시킨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국가는 아직도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고 재심을 개시하지도 않고 있다. 한울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교사생활을 하는 십여 년간 형사들이 끊임없이 나의 사생활을 무너뜨렸다.


  김종생: 목사, 한국기독교연합교회협의회 총무

  나는 당시 방위 신분이라 보안대에 끌려가 온갖 모욕과 수모, 폭력과 고문, 구타와 협박, 수면 박탈과 굶김을 당했다. 나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몇 번인가 자살 시도를 했다.

  한울회 사건은 단지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1980년대 한국기독교 청년운동에 대한 국가의 탄압, 신앙의 자유에 대한 억압, 사상검열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 사건의 진상이 명백히 밝혀져 국가 폭력에 가담한 당사자들은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만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세영: 한울모임대책위원회 총무

  44년 전 일어났던 국가 폭력 피해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민주화 되었다는 정부와 사법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희생자들의 무거운 멍에가 벗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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