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물과 불의 정신, 씨ᄋᆞᆯ로 다시 태어나다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서로북스, 2025)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박선균 지음,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서로북스, 2025) 도서 소개 및 구매는 책 사진 클릭
책이 태어난 배경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6년. 그의 정신을 평생 가까이에서 모신 박선균 목사(87세)가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를 출간했다. 20여 년간 《씨ᄋᆞᆯ의소리』 편집장과 편집주간을 지낸 저자가 그간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절박한 메시지다.
저자는 원래 책을 낼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함석헌을 누구보다 잘 알던 김경재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이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부족하나마 스승의 정신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책 제목은 처음 ‘함석헌 씨ᄋᆞᆯ정신운동의 긴급성’이었으나, 독자의 제안으로 ‘깊이 읽기’로 바꾸었다. ‘씨ᄋᆞᆯ정신운동’이야말로 함석헌 선생이 가장 강조한 핵심이라는 판단에서다.
세 가지 운동으로 살아온 삶
저자는 함석헌의 생애를 세 가지 운동으로 정리한다. 첫째, 항일 민족운동이다. 함석헌은 1930년 ML당 사건, 1940년 계우회 사건, 1942년 성서조선 필화 사건으로 세 차례 투옥되며 일제에 맞섰다. 둘째,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다. 잡지 《사상계》를 통해 국민을 깨우쳤고,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맨손으로 불의한 권력에 맞섰다. 셋째, 씨ᄋᆞᆯ정신운동이다. 1970년 4월 19일 창간한 《씨ᄋᆞᆯ의소리』 자체가 바로 씨ᄋᆞᆯ정신운동이었다.
저자는 《씨ᄋᆞᆯ의소리》 편집장으로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보부 검열과 싸운 생생한 현장을 증언한다. 1973년 함석헌이 쓴 〈참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글을 정보부가 “각하를 겨냥한 글”이라며 전면 삭제하려 했을 때, 저자는 기지를 발휘해 제목을 〈참 목자의 모습〉으로 바꾸어 간신히 통과시켰다. 함석헌도 씁쓸해하며 허락했다는 이 일화는, 독재 시대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검열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씨ᄋᆞᆯ정신의 세 가지 핵심
저자가 정리한 씨ᄋᆞᆯ정신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참을 찾는 정신이다. 함석헌은 1963년 세계일주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와 광화문 시민회관에서 “나는 참을 말하러 왔습니다”라고 외쳤다. 참을 말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 그것이 씨ᄋᆞᆯ의 첫 번째 정신이다.
둘째, 같이살기 정신이다. 함석헌은 이것이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라 확신했다. 나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 그것이 씨ᄋᆞᆯ이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셋째, 절대 비폭력 평화주의 정신이다. 함석헌이 특히 좋아했던 이 정신은, 폭력과 전쟁이 아닌 평화로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었다.
풀에서 배우는 씨ᄋᆞᆯ정신
함석헌이 즐겨 사용한 “풀”이라는 은유는 씨ᄋᆞᆯ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 “나는 풀이다. 들에 가도 있는 풀, 산에 가도 있는 풀…… 나는 흙을 먹고 살아 남의 밥이 될지언정 누구를 내 밥으로 하지 않는다…… 밟아도 밟아도 사는 풀, 베어도 베어도 또 돋아나는 풀.”
저자는 이 풀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가장 낮은 자리에 살면서 남을 착취하지 않는 삶이다. 둘째, 빽빽하게 살면서도 서로 싸우지 않고 같이 사는 공존의 지혜다. 셋째, 땅과 하늘만 믿고 살며 천둥 번개가 쳐도 평화를 유지하는 근원적 신뢰다.
“남을 밥으로 삼지 않는다”는 이 문장은 오늘날 착취와 경쟁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길은 가능한가?
편집장의 증언, 반세기 실천
저자 박선균은 1971년 함석헌의 부름을 받아 《씨ᄋᆞᆯ의소리》 편집장을 맡았다. 그는 정보부원 김영균과 원고를 놓고 ‘된다, 안 된다’ 싸움의 일선에 섰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잡지를 강제 폐간시키고 폭행을 가했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2020년 《씨ᄋᆞᆯ의소리》 50주년 기념호(266호)를 펴내며 “정치적, 종교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순수한 씨ᄋᆞᆯ 정신을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 그의 모습은, 반세기를 관통한 실천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함석헌을 20여 년 동안 가까이서 모신 증인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함석헌이 돌아가신 장기려 박사로부터 “함 선생님은 5백 년 후에도 빛날 인물”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 스승의 가르침과 농사짓고 글 쓰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깨달은 씨ᄋᆞᆯ의 의미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미아리 침례교회에서 25년간 목회하며 《금지된 씨ᄋᆞᆯ의 소리》(1987), 《씨ᄋᆞᆯ 소리 이야기》(2005)를 출간한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씨ᄋᆞᆯ정신의 계승을 다음 세대에게 부탁하고 있다.
오늘을 향한 질문과 희망
87세 원로 목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에 펴낸 이 책은, 증언이자 유언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대를 관통하며 씨ᄋᆞᆯ정신을 지켜온 저자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묵직하다.
저자는 함석헌 씨ᄋᆞᆯ정신운동이 잊히는 듯 보이는 오늘날에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500년이 될지 50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 빛이 날 수도 있다.” 성경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처럼, 씨ᄋᆞᆯ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함석헌기념사업회가 준비 중인 ‘함석헌 평화상 운동’이 그 증거다. 씨ᄋᆞᆯ정신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함석헌은 군사독재 시대에 “한국에서도 다 죽어가던 대지의 어머니가 다시 살아 꿈틀거릴 때가 온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빠른 성과와 이익만을 좇는 오늘, 과정 그 자체가 생명임을 되새기게 하는 씨ᄋᆞᆯ정신은 여전히 절실하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 인물을 기념하는 작업이 아니다. 함석헌이 남긴 땅의 냄새, 저자가 몸으로 살아낸 삶의 궤적 속에서, 우리는 오늘 삶의 균형과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남을 밥으로 삼지 않고, 같이 살며, 비폭력으로 평화를 일구는 길.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씨ᄋᆞᆯ의 길이다. 씨ᄋᆞᆯ은 다시 흙을 가르고 자란다. 조금씩, 그러나 반드시.


서평
물과 불의 정신, 씨ᄋᆞᆯ로 다시 태어나다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서로북스, 2025)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박선균 지음,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서로북스, 2025) 도서 소개 및 구매는 책 사진 클릭
책이 태어난 배경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6년. 그의 정신을 평생 가까이에서 모신 박선균 목사(87세)가 《함석헌의 씨ᄋᆞᆯ정신운동 깊이 읽기》를 출간했다. 20여 년간 《씨ᄋᆞᆯ의소리』 편집장과 편집주간을 지낸 저자가 그간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절박한 메시지다.
저자는 원래 책을 낼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함석헌을 누구보다 잘 알던 김경재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이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부족하나마 스승의 정신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책 제목은 처음 ‘함석헌 씨ᄋᆞᆯ정신운동의 긴급성’이었으나, 독자의 제안으로 ‘깊이 읽기’로 바꾸었다. ‘씨ᄋᆞᆯ정신운동’이야말로 함석헌 선생이 가장 강조한 핵심이라는 판단에서다.
세 가지 운동으로 살아온 삶
저자는 함석헌의 생애를 세 가지 운동으로 정리한다. 첫째, 항일 민족운동이다. 함석헌은 1930년 ML당 사건, 1940년 계우회 사건, 1942년 성서조선 필화 사건으로 세 차례 투옥되며 일제에 맞섰다. 둘째,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다. 잡지 《사상계》를 통해 국민을 깨우쳤고,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맨손으로 불의한 권력에 맞섰다. 셋째, 씨ᄋᆞᆯ정신운동이다. 1970년 4월 19일 창간한 《씨ᄋᆞᆯ의소리』 자체가 바로 씨ᄋᆞᆯ정신운동이었다.
저자는 《씨ᄋᆞᆯ의소리》 편집장으로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보부 검열과 싸운 생생한 현장을 증언한다. 1973년 함석헌이 쓴 〈참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글을 정보부가 “각하를 겨냥한 글”이라며 전면 삭제하려 했을 때, 저자는 기지를 발휘해 제목을 〈참 목자의 모습〉으로 바꾸어 간신히 통과시켰다. 함석헌도 씁쓸해하며 허락했다는 이 일화는, 독재 시대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검열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씨ᄋᆞᆯ정신의 세 가지 핵심
저자가 정리한 씨ᄋᆞᆯ정신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참을 찾는 정신이다. 함석헌은 1963년 세계일주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와 광화문 시민회관에서 “나는 참을 말하러 왔습니다”라고 외쳤다. 참을 말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 그것이 씨ᄋᆞᆯ의 첫 번째 정신이다.
둘째, 같이살기 정신이다. 함석헌은 이것이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라 확신했다. 나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 그것이 씨ᄋᆞᆯ이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셋째, 절대 비폭력 평화주의 정신이다. 함석헌이 특히 좋아했던 이 정신은, 폭력과 전쟁이 아닌 평화로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었다.
풀에서 배우는 씨ᄋᆞᆯ정신
함석헌이 즐겨 사용한 “풀”이라는 은유는 씨ᄋᆞᆯ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 “나는 풀이다. 들에 가도 있는 풀, 산에 가도 있는 풀…… 나는 흙을 먹고 살아 남의 밥이 될지언정 누구를 내 밥으로 하지 않는다…… 밟아도 밟아도 사는 풀, 베어도 베어도 또 돋아나는 풀.”
저자는 이 풀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가장 낮은 자리에 살면서 남을 착취하지 않는 삶이다. 둘째, 빽빽하게 살면서도 서로 싸우지 않고 같이 사는 공존의 지혜다. 셋째, 땅과 하늘만 믿고 살며 천둥 번개가 쳐도 평화를 유지하는 근원적 신뢰다.
“남을 밥으로 삼지 않는다”는 이 문장은 오늘날 착취와 경쟁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길은 가능한가?
편집장의 증언, 반세기 실천
저자 박선균은 1971년 함석헌의 부름을 받아 《씨ᄋᆞᆯ의소리》 편집장을 맡았다. 그는 정보부원 김영균과 원고를 놓고 ‘된다, 안 된다’ 싸움의 일선에 섰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잡지를 강제 폐간시키고 폭행을 가했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2020년 《씨ᄋᆞᆯ의소리》 50주년 기념호(266호)를 펴내며 “정치적, 종교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순수한 씨ᄋᆞᆯ 정신을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 그의 모습은, 반세기를 관통한 실천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함석헌을 20여 년 동안 가까이서 모신 증인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함석헌이 돌아가신 장기려 박사로부터 “함 선생님은 5백 년 후에도 빛날 인물”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 스승의 가르침과 농사짓고 글 쓰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깨달은 씨ᄋᆞᆯ의 의미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미아리 침례교회에서 25년간 목회하며 《금지된 씨ᄋᆞᆯ의 소리》(1987), 《씨ᄋᆞᆯ 소리 이야기》(2005)를 출간한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씨ᄋᆞᆯ정신의 계승을 다음 세대에게 부탁하고 있다.
오늘을 향한 질문과 희망
87세 원로 목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에 펴낸 이 책은, 증언이자 유언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대를 관통하며 씨ᄋᆞᆯ정신을 지켜온 저자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묵직하다.
저자는 함석헌 씨ᄋᆞᆯ정신운동이 잊히는 듯 보이는 오늘날에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500년이 될지 50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 빛이 날 수도 있다.” 성경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처럼, 씨ᄋᆞᆯ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함석헌기념사업회가 준비 중인 ‘함석헌 평화상 운동’이 그 증거다. 씨ᄋᆞᆯ정신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함석헌은 군사독재 시대에 “한국에서도 다 죽어가던 대지의 어머니가 다시 살아 꿈틀거릴 때가 온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빠른 성과와 이익만을 좇는 오늘, 과정 그 자체가 생명임을 되새기게 하는 씨ᄋᆞᆯ정신은 여전히 절실하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 인물을 기념하는 작업이 아니다. 함석헌이 남긴 땅의 냄새, 저자가 몸으로 살아낸 삶의 궤적 속에서, 우리는 오늘 삶의 균형과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남을 밥으로 삼지 않고, 같이 살며, 비폭력으로 평화를 일구는 길.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씨ᄋᆞᆯ의 길이다. 씨ᄋᆞᆯ은 다시 흙을 가르고 자란다. 조금씩, 그러나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