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ᄋᆞᆯ의 소리

우리 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일부러 만든 말, 씨ᄋᆞᆯ

씨ᄋᆞᆯ의 소리 보기

(298호 씨ᄋᆞᆯ 이야기) 강진에서 시작된 새로운 모험-2 함께 배우는 가족 - 김덕영

씨ᄋᆞᆯ
2025-11-18
조회수 6

씨ᄋᆞᆯ 이야기


강진에서 시작된 새로운 모험-2

함께 배우는 가족



김덕영

전남 강진 거주, 〈희년함께〉 활동가

069f39558b371.png

 


배움을 다시 품은 부모

도시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늘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로, 부모는 일터로 향하고, 하루는 쫓기듯 지나갔습니다.

언제부턴가 교육이란 부모가 직접 하는 일이 아니라,

‘외주’로 맡겨지는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 한 켠이 허전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가보다,

그 배움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부모인 저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교육을 다시 가정 안으로 데려오자고 말입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부모로서 아이들과의 정직하고 깊은 관계 속에서

함께 배우며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홈스쿨링은 저희 가족에게 ‘가르침’ 이전에

‘관계의 복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깊은 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부모도 배우는 사람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다는 것은

부모의 부족함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서툴게 다시 배우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유로웠습니다.

부모의 태도와 열정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곧 아이들의 배움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을

매일의 삶 속에서 배웠습니다.

홈스쿨링을 한다는 것은

부모 또한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 선다는 뜻이었습니다.

잘 모를 때는 함께 책을 읽고,

서툴 때는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진심을 보았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저희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첫 번째 수업이었습니다.


강진의 학교, 그리고 우리의 선택

강진으로 이주한 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아이들의 학교 문제였습니다.

‘시골학교에 보낼까, 아니면 홈스쿨링을 이어갈까.’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습니다.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든, 집에서 배우든,

모두 우리 아이들이에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걸었습니다.

푸른 논이 펼쳐진 들판 끝에 자리한 작은 학교,

종소리 하나에도 새들이 날아오르는 곳이었습니다.

학교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며칠 동안 가족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우리끼리 배우는 것도 좋아요.”

첫째의 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미 배움의 주체로 서 있었기에

저희는 결국 홈스쿨링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선택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cbf765767c23e.png


느리게 배우는 강진의 하루

이곳에서의 아침은 새소리로 열립니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비치면

아이들은 먼저 마당으로 달려 나가 숨을 들이킵니다.

나무 아래에서 뛰어놀고,

자전거를 타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책상 대신 마당이 교실이 되었습니다.

텃밭에는 상추와 배추가 자라고,

한쪽에는 아이들이 직접 심은

무화과, 앵두, 레드향, 천혜향이 자라납니다.

비 오는 날의 흙냄새, 논두렁의 개구리 소리,

그리고 저녁노을 아래서 나누는 대화들이

아이들의 정서를 차곡차곡 채워줍니다.

“오늘은 매미가 껍질을 벗는 걸 봤어요.”

“책보다 멋진 장면이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배움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빠르지 않지만 정직한 속도로 자라나는 시간,

그것이 강진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며

“이제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요?”

시골마당에서 강아지와 함께 뛰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오랜 바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맞이하는 일에는

언제나 설렘과 함께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바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가족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매일 돌보는 일이야.”

“책임질 수 있겠어?”

“네! 제가 산책할게요.”

“제가 밥 줄게요.”

그 대화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아이들이 생명에 대해 배우는 첫 수업이었습니다.

저희는 더 깊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광주시내의 보호소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강아지들이 있었습니다.

철창 너머에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들,

아이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보호소 직원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버려졌어요.

처음엔 다들 사랑한다고 데려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진대요.”

막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깊은 침묵이 방 안을 채웠습니다.


기다림 끝의 만남

보호소를 다녀온 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강아지를 기다렸습니다.

“언제쯤 우리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우리가 진짜 준비되었을 때.”

그 후로 세 달간 가족회의가 이어졌습니다.

어떤 강아지가 좋을까,

어떤 환경이 아이와 강아지 모두에게 행복할까.

아이들은 자료를 찾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인내와 토론, 그리고 선택의 책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 가정이 키우던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어요.”

저희는 서둘러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당에서 뛰어놀던 강아지가 저희를 보자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습니다.

그 눈빛에는 낯섦보다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빌리! 희년의 ‘주빌리’처럼요.”

그 이름에는 저희의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배움, 해방,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쁨.

빌리는 우리 가족의 여섯 번째 아이가 되었습니다.

마당을 함께 달리고,

저녁이면 곁에서 잠들었습니다.

빌리를 돌보는 일은 또 하나의 배움이었습니다.

책임과 돌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

그 모든 것을 아이들은 몸으로 익히고 있습니다.


강진에서 자라는 배움의 노래

이제 저희의 하루는 빌리의 발자국으로 시작됩니다.

아침마다 논길을 함께 걷고,

저녁이면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강진의 하늘은 여전히 넓고,

아이들의 웃음은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교육을 외주로 맡기지 않겠다는 결심은

결국 사랑을 직접 가르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완벽하지 않지만,

정직하고 꾸준하며, 무엇보다 진심입니다.

오늘도 저희는 강진의 저녁을 맞으며 배웁니다.

삶의 속도는 느리지만,

배움의 리듬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새소리와 노을, 빌리의 숨결,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뢰가

저희의 교과서입니다.

저희는 여전히 배우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강진의 들녘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231c723f6bad7.png



5e5157b52ff05.png


ea94f5182b084.jpg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