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봄
무엇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가
― 남북민간교류협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통일이 우스워? 평화가 장난이야?
공짜 점심은 없다. 누구나 그 의미를 알고 있다. 당장 거저인 것 같지만 언젠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뜻이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다양하고 사뭇 ‘합리적인’, ‘이해할 만한’ 것처럼 보이는 변명들이 존재하지만(예를 들면 미국 등 강대국이나 우리의 상대인 북한의 책임 등), 변명은 변명일 뿐 전혀 위안이 될 수 없다.
세상에 쉬운 게 없다.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별 의미 없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이루기 어렵다. 세상 이치다. 남북의 지겹도록 오랜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끝장내고, 화해와 협력, 나아가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것 역시 그 어느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좌절과 환희를 반복해가며 지금껏 고군분투해왔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남북문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는 것! 국내외 자타가 공인하는, 혹은 본인과 종편만 인정하는 남북문제 전문가들이 4열종대로 연병장 두 바퀴 반이다. 하지만 그 중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적은 대다수 일반 국민들이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남북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그랬던가, 쓸 만한 것들은 이미 다 죽고 쭉정이만 남았다고. 농담이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남북, 한반도 평화, 통일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비장함에 젖어야 할까. 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그랜드 바겐’, ‘통일 대박’처럼 통일이 ‘돈 되는 장사’라고 천박하게 광고해야만 할까. 전자는 전쟁과 이산이라는 참혹한 고통, 오랜 분단의 시간 우리 내부에 각인된 분노와 회한 그리고 언제 간첩으로 몰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이 가져다 준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에 비장할 수밖에 없다. 한편 후자는 이제 ‘통일 따위 관심 없다’는 젊은 세대는 물론 우리 국민 전체를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로 인식한 결과다. 북한마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오만함이 ‘비핵개방3000’, ‘그랜드 바겐’을 만들었고, 흡수통일이 남는 장사라고 우리 국민을 다그친 것이 ‘통일 대박’아니었나. 물론 그렇다고 역대 정부 그리고 많은 대학과 기관 전문가들의 헌신과 노력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통일교육, 평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접근과 노력이 이뤄져왔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왔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통일교육원 등 정부 기관은 물론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평화의 소중함을 더 쉽고 재미있게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싸맸고, 지금도 싸매고 있다. 그 노고와 헌신을 어찌 폄하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노력하고 또 재원을 쏟아 부은 만큼의 실질적 효과를 거두었는가를 따져보면 어쩔 수 없이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만약 민간기업이었다면 분명 모조리 해고되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미미하니 말이다. 이른바 ‘제대로 된 실용’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에서의 통일교육, 평화교육은 과연 어떨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큰 기대는 없다. 아쉽지만 그들의 능력과 헌신하고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매일이 전쟁인데 무슨 통일?
매년 대학의 연구기관이나 정부 관련 기관이 시행하는 ‘통일의식조사’의 결과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 국민의 통일 의지가 약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속마음은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데 설문에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억지로 응답하는 이들의 비율까지 감안하면 대략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통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국민통일의식조사’로 검색해보면 쉽게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지금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하는 이들의 비율이 높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유를 설명해보자.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지금 당장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니, 세계 경제 10대 강국에다 군사력 5위에 빛나는, BTS와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이 세계를 사로잡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일원인 우리가 행복하지 않으면 과연 어느 누가 행복하단 말인가.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가장 최근 통계인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자.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권이고, 자살률도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상생활에서 우울과 걱정을 느끼는 수준도 매우 높다. 가족관계 만족도도 떨어지고, 사회적 고립도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단체에 소속되어 참여하는 이들의 비율도 떨어졌고, 정부, 국회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하락했다.
무엇보다 하루에 무려 40여 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공동체가 정상이라고,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는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세계 그 어느 국가를 찾아봐도 전쟁이나 내전, 자연재해가 아닌 이유로 매일 40여 명이 죽어나가는 곳은 없다. 어느새 우리에게 무관심과 혐오,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북한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지옥 같은 현실에서 통일이라니! 세금만 더 늘어나는 것 아닌가. 3대째 독재정권을 떠받들고, 굶어죽어도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과 통일을 하자니,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반기겠는가! 더군다나 북한도 이제 우리와 상종하지 않겠다 하고, ‘제발 우리 건들지 말고 너희끼리 살아라.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민족도 아닌 남남이다. 아니 남보다 더 먼 적대국이다’라고 선언한 마당에 무슨 통일 타령인가. 때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강조하며 북한과의 상생을 이야기하는 정부는 어리석인 것이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외치는 시민사회단체, 지식인, 전문가들은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재명 대통령이 “평화가 경제고, 돈”이라 말해도,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지금껏 없다. 아니,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런 것’은 ‘원래’ 없다
우리의 삶이 이처럼 고된 배경을 찾아보면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매일 치열하게 연구, 분석하고 있지만, 딱 부러지게 하나로 그 원인을 규정할 순 없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라도 필자의 기준으로 간추려보자면 잘못된 역사청산으로 비롯된 기형적인 엘리트 구조가 굳건히 자리 잡은 속에서 군사독재 잔재와 사대주의, 분단 고착화 세력의 혼연일체가 빚어낸 결정체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절대 명제 속에 사회 어느 권력 조직이든 일단 속하게 되면 철저한 집단이기주의에 묶여 공익을 애써 잊으며 사익을 과감히 취하는 전사들이 지금껏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여왔기에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석열 내란과 그 이후의 모습을 보라. 이른 바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 사법, 정치, 언론, 학계, 군, 행정 관료 어느 하나라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 국민의 희생과 용기로 내란을 신속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완전한 내란 종식이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것은 ‘썩은 부위’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 어려운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느냐는 커다란 과제 아래에는 동시에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분단 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분단의 고착화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들이 반공과 반북을 ‘절대 반지’처럼 휘두르며 사회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증오하도록 만들어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고 일상의 평화를 통해 누구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한반도를 만들고자 헌신해온 민초들의 시간이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우선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 철저한 반성과 책임이 일단 먼저다. 보통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남북문제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온 정치권과 역시 이를 권력유지와 돈벌이로 삼아 국민 내부 분열에 앞장서온 거대 언론을 꼽고는 한다. 실력도 없고 철학도 없는 ‘야매’ 학자와 전문가들도 물론 포함이다. 윤석열 정부 시기 극우 유튜버 출신 교수가 통일부 수장이 되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반공과 반북의 기치 하에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정권의 성격에 따라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태세를 전환해온 정부 관료조직도 이젠 양심적으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만 꼽아보자.
지난 2월 10일은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10년을 맞은 날이었다.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했고, 졸지에 공단에서 사업을 운영해오던 우리 국민들은 수많은 설비를 그대로 공장에 남겨둔 채, 상품 하나라도 더 가지고 나오려 차량 위에 높다랗게 짐을 쌓고 위태롭게 개성을 쫓겨나듯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개성공단 외 대북사업 기업인들의 처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저금리 대출 등의 지원 아닌 지원은 있었으나, 기업인들이 개성이나 여타 북한 지역에 남겨두고 온 장비나 원자재, 투입 자본 등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었다. 보수 정부 시기엔 그들과의 면담조차 거부했다. 분명 우리 국민이 우리 정부의 보장을 믿고 개성 등 북한에 진출해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 활동을 진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그들을 우리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통일부장관은 북측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되었다”고 주장했다. 나름 수치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국회 답변 과정에서 구체적인 근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통일부는 세금을 들여 소책자까지 만들어 개성공단 폐쇄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통일부’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주무부처인 통일부조차 폐쇄결정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또한 공단을 직접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었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전 이사장에 따르면 재단 역시 3시간 전 폐쇄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정부의 그 ‘신속한’ 결정으로 수많은 우리 기업인,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자, 그렇다면 10년 후인 지금 통일부를 살펴보자. 지난 2월 10일 통일부는 별도의 입장문을 발표해, 지난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남북 간 상호 신뢰와 공동성장의 토대를 스스로 훼손한 자해행위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공단 재개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우리 측이 아무런 상응 조치를 하지 못해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고도 지적했다. 또 공단의 재가동 의지를 피력하고, 이명박 정부 당시 취해진 독자 대북제재인 5·24조치 해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어쩔 수 없고’, ‘원래’ 그런 것이라는 답변을 흔히 듣게 된다. 그럼 앞으로도 ‘원래’ 정부의 일이라는 게, 공무원의 역할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고 또 넘어가야 할까? 그렇다면 정권에 따라 하루아침에 태세 전환이 이뤄지는 정부를 어떻게 믿고 우리 국민들이 다시 대북사업이나 협력 사업에 나설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내부 조직 정비와 제도적 준비를 체계화하겠다고 했는데, 설사 북한 당국이 재개에 동의한다 해도 섣불리 다시 사업에 뛰어들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 이것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끝내면 될까.
알고 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원래’ 공무원이라는 그리고 정부 조직 자체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의 명령과 지휘에 따라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공무원의 기본자세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공무원들의 조치 하나가, 선택 하나가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음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 하나하나의 인식까지 바꾸어놓을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대한 국민의 삶을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그런 자세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역시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히 또 바뀔 것이다. ‘개성공단은 폐쇄되는 것이 맞았다’는 소리는 부디 통일부를 통해 다시 듣지 않기를.
다시, 무엇부터 시작할까?
귀한 지면을 중구난방, 횡설수설로 어지럽게 했다. 부족한 글이지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이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 오로지 철저히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현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강화와 북러, 북중 관계 심화에 따른 우리의 대응, 북미 대화 성사를 통한 남북 관계 정상화 해법, 남북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는 혹은 관리하려 드는 미국에 대한 단호한 대처 등 우리가 현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과 과제는 산적해있다. 하지만 그런 거대하고 거창한 담론에 앞서 가장 근원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바로 우리 국민들이 힘든 일상 속에서도 가능한 한 최대한 남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위대한 대북정책이나 결정도 힘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노력은 또한 분단 고착화 세력의 약화를 이룰 수도 있다. 일부 언론의 묻지마 반북, 혐북 보도,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야매 혹은 변절한 어용 전문가들의 돈벌이용 북한 콘텐츠(혐오 또는 붕괴론), 일부 탈북자들의 역시 돈벌이를 위한 그럴듯한 ‘소설’ 자기 체험 간증, 여전히 반공을 외치고 상대방을 친북좌파라 매도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세력의 발악. 이러한 것들이 모여 젊은 세대는 물론, 일반 국민 대다수의 마음속에 북한은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혐오와 조롱의 대상은 박멸해야지, 화해하거나 협력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운명의 장난으로 대학에서 북한학이라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생소한(!) 학과에 입학한 이래 어느 새 30여 년을 남북 문제, 통일운동과 관련해 살아왔다. 대학 MT를 금강산으로 갔고,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지도 금강산이었다. 아내와 당일치기 개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장인, 장모는 내심 엄청나게 불안하셨다고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한편 직장 생활 중에는 운이 좋아 직접 금강산, 개성, 중국 등에서 남북교류협력,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북한 실무자와 만나 협상에 참여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역시 운이 좋아 북한의 전문가도 참여한 국제학술회의를 네 차례나 중국에서 진행했고, 대규모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뛰고 있다. 막힌 남북의 통로를 다시 열어내 이 땅의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북한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거나 북측 인사들과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경험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기 전세기를 타고 대규모 인원이 평양 등을 다녀온 사례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남한 인구 전체로 봤을 때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필자는 정부가 민간평화통일운동을 적극 지원하길 권한다. 단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한다. 자율성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면 된다. 더 많은 국민들이 평화 만들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민간 차원의 남북 간 통로가 다시 열린다면 당국 간 대화의 장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북한도 갑작스런 당국 간 대화 재개보다는 민간 차원의 대화가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물론 현재 북한의 모습을 보면 당장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대통령의 말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분명 길은 열릴 수 있다. 여전히 우리 민간통일운동 진영에는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참여해 귀한 성과를 만들어냈던 베테랑들이 건재하다. 그들이 다시 활약하고 동시에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중국이든 러시아든 혹은 북한이든 북측의 동의하에 만나 다시 민간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여주기식 학술세미나나 비싼 돈 들여 만드는(그러나 조회 수는 극히 미미한) 홍보용 유튜브 영상 몇 개보다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다.(이는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 그리고 산하기관들이 하고 있는 한심한 행태다. 설사 조회 수가 높다고 부처 홍보가 잘 되는 것인가? 그것이 국민의 삶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그런 쓸데없는 짓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각 부처가 저마다 주어진 제 역할에 부합하는 성과를 낼 때 홍보는 저절로 된다.)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북한’을 떠올리며 가슴 뛰었던 경험이 없다. 금강산이 닫히고 개성이 폐쇄된 이후 우리에게 북한은 그저 외면하고 싶은 혹은 단순히 한심한 집단으로 비쳐졌다. 이대로 계속 우리의 마음이 이어진다면 그 어떤 위대한 정책이 실행되어도,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을 백 번 개최한다 해도 한반도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고 통일을 떠올릴 때 가슴이 뛰어야 한다. 그 시작은 일단 다시 만나는 것이다. 정말 살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지금이지만 나의 노력이 모아져 이 땅의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북한과 협력해 사업을 해도 걱정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정권이 바뀌었지만 적어도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국가가 내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북한 사람과의 만남과 협력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단순히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만이 이익이 아님을, 남북의 평화가 진정한 경제적 가치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경험을 하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밑천은 점점 쌓이게 될 것이다. 분단 세력도 끝내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 시작은 결코 어렵지 않다. 이것이 어리석은 필자가 여전히 남북교류협력의 가능성과 힘을 믿는 이유이고, 포기하지 않은 이유이다. 여전히 가슴이 뛰는 이유이다.



돋봄
무엇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가
― 남북민간교류협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통일이 우스워? 평화가 장난이야?
공짜 점심은 없다. 누구나 그 의미를 알고 있다. 당장 거저인 것 같지만 언젠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뜻이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다양하고 사뭇 ‘합리적인’, ‘이해할 만한’ 것처럼 보이는 변명들이 존재하지만(예를 들면 미국 등 강대국이나 우리의 상대인 북한의 책임 등), 변명은 변명일 뿐 전혀 위안이 될 수 없다.
세상에 쉬운 게 없다.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별 의미 없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이루기 어렵다. 세상 이치다. 남북의 지겹도록 오랜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끝장내고, 화해와 협력, 나아가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것 역시 그 어느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좌절과 환희를 반복해가며 지금껏 고군분투해왔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남북문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는 것! 국내외 자타가 공인하는, 혹은 본인과 종편만 인정하는 남북문제 전문가들이 4열종대로 연병장 두 바퀴 반이다. 하지만 그 중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적은 대다수 일반 국민들이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남북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그랬던가, 쓸 만한 것들은 이미 다 죽고 쭉정이만 남았다고. 농담이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남북, 한반도 평화, 통일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비장함에 젖어야 할까. 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그랜드 바겐’, ‘통일 대박’처럼 통일이 ‘돈 되는 장사’라고 천박하게 광고해야만 할까. 전자는 전쟁과 이산이라는 참혹한 고통, 오랜 분단의 시간 우리 내부에 각인된 분노와 회한 그리고 언제 간첩으로 몰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이 가져다 준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에 비장할 수밖에 없다. 한편 후자는 이제 ‘통일 따위 관심 없다’는 젊은 세대는 물론 우리 국민 전체를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로 인식한 결과다. 북한마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오만함이 ‘비핵개방3000’, ‘그랜드 바겐’을 만들었고, 흡수통일이 남는 장사라고 우리 국민을 다그친 것이 ‘통일 대박’아니었나. 물론 그렇다고 역대 정부 그리고 많은 대학과 기관 전문가들의 헌신과 노력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통일교육, 평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접근과 노력이 이뤄져왔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왔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통일교육원 등 정부 기관은 물론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평화의 소중함을 더 쉽고 재미있게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싸맸고, 지금도 싸매고 있다. 그 노고와 헌신을 어찌 폄하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노력하고 또 재원을 쏟아 부은 만큼의 실질적 효과를 거두었는가를 따져보면 어쩔 수 없이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만약 민간기업이었다면 분명 모조리 해고되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미미하니 말이다. 이른바 ‘제대로 된 실용’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에서의 통일교육, 평화교육은 과연 어떨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큰 기대는 없다. 아쉽지만 그들의 능력과 헌신하고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매일이 전쟁인데 무슨 통일?
매년 대학의 연구기관이나 정부 관련 기관이 시행하는 ‘통일의식조사’의 결과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 국민의 통일 의지가 약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속마음은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데 설문에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억지로 응답하는 이들의 비율까지 감안하면 대략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통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국민통일의식조사’로 검색해보면 쉽게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지금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하는 이들의 비율이 높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유를 설명해보자.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지금 당장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니, 세계 경제 10대 강국에다 군사력 5위에 빛나는, BTS와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이 세계를 사로잡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일원인 우리가 행복하지 않으면 과연 어느 누가 행복하단 말인가.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가장 최근 통계인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자.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권이고, 자살률도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상생활에서 우울과 걱정을 느끼는 수준도 매우 높다. 가족관계 만족도도 떨어지고, 사회적 고립도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단체에 소속되어 참여하는 이들의 비율도 떨어졌고, 정부, 국회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하락했다.
무엇보다 하루에 무려 40여 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공동체가 정상이라고,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는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세계 그 어느 국가를 찾아봐도 전쟁이나 내전, 자연재해가 아닌 이유로 매일 40여 명이 죽어나가는 곳은 없다. 어느새 우리에게 무관심과 혐오,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북한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지옥 같은 현실에서 통일이라니! 세금만 더 늘어나는 것 아닌가. 3대째 독재정권을 떠받들고, 굶어죽어도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과 통일을 하자니,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반기겠는가! 더군다나 북한도 이제 우리와 상종하지 않겠다 하고, ‘제발 우리 건들지 말고 너희끼리 살아라.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민족도 아닌 남남이다. 아니 남보다 더 먼 적대국이다’라고 선언한 마당에 무슨 통일 타령인가. 때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강조하며 북한과의 상생을 이야기하는 정부는 어리석인 것이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외치는 시민사회단체, 지식인, 전문가들은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재명 대통령이 “평화가 경제고, 돈”이라 말해도,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지금껏 없다. 아니,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런 것’은 ‘원래’ 없다
우리의 삶이 이처럼 고된 배경을 찾아보면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매일 치열하게 연구, 분석하고 있지만, 딱 부러지게 하나로 그 원인을 규정할 순 없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라도 필자의 기준으로 간추려보자면 잘못된 역사청산으로 비롯된 기형적인 엘리트 구조가 굳건히 자리 잡은 속에서 군사독재 잔재와 사대주의, 분단 고착화 세력의 혼연일체가 빚어낸 결정체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절대 명제 속에 사회 어느 권력 조직이든 일단 속하게 되면 철저한 집단이기주의에 묶여 공익을 애써 잊으며 사익을 과감히 취하는 전사들이 지금껏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여왔기에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석열 내란과 그 이후의 모습을 보라. 이른 바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 사법, 정치, 언론, 학계, 군, 행정 관료 어느 하나라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 국민의 희생과 용기로 내란을 신속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완전한 내란 종식이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것은 ‘썩은 부위’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 어려운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느냐는 커다란 과제 아래에는 동시에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분단 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분단의 고착화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들이 반공과 반북을 ‘절대 반지’처럼 휘두르며 사회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증오하도록 만들어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고 일상의 평화를 통해 누구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한반도를 만들고자 헌신해온 민초들의 시간이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우선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 철저한 반성과 책임이 일단 먼저다. 보통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남북문제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온 정치권과 역시 이를 권력유지와 돈벌이로 삼아 국민 내부 분열에 앞장서온 거대 언론을 꼽고는 한다. 실력도 없고 철학도 없는 ‘야매’ 학자와 전문가들도 물론 포함이다. 윤석열 정부 시기 극우 유튜버 출신 교수가 통일부 수장이 되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반공과 반북의 기치 하에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정권의 성격에 따라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태세를 전환해온 정부 관료조직도 이젠 양심적으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만 꼽아보자.
지난 2월 10일은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10년을 맞은 날이었다.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했고, 졸지에 공단에서 사업을 운영해오던 우리 국민들은 수많은 설비를 그대로 공장에 남겨둔 채, 상품 하나라도 더 가지고 나오려 차량 위에 높다랗게 짐을 쌓고 위태롭게 개성을 쫓겨나듯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개성공단 외 대북사업 기업인들의 처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저금리 대출 등의 지원 아닌 지원은 있었으나, 기업인들이 개성이나 여타 북한 지역에 남겨두고 온 장비나 원자재, 투입 자본 등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었다. 보수 정부 시기엔 그들과의 면담조차 거부했다. 분명 우리 국민이 우리 정부의 보장을 믿고 개성 등 북한에 진출해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 활동을 진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그들을 우리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통일부장관은 북측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되었다”고 주장했다. 나름 수치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국회 답변 과정에서 구체적인 근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통일부는 세금을 들여 소책자까지 만들어 개성공단 폐쇄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통일부’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주무부처인 통일부조차 폐쇄결정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또한 공단을 직접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었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전 이사장에 따르면 재단 역시 3시간 전 폐쇄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정부의 그 ‘신속한’ 결정으로 수많은 우리 기업인,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자, 그렇다면 10년 후인 지금 통일부를 살펴보자. 지난 2월 10일 통일부는 별도의 입장문을 발표해, 지난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남북 간 상호 신뢰와 공동성장의 토대를 스스로 훼손한 자해행위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공단 재개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우리 측이 아무런 상응 조치를 하지 못해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고도 지적했다. 또 공단의 재가동 의지를 피력하고, 이명박 정부 당시 취해진 독자 대북제재인 5·24조치 해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어쩔 수 없고’, ‘원래’ 그런 것이라는 답변을 흔히 듣게 된다. 그럼 앞으로도 ‘원래’ 정부의 일이라는 게, 공무원의 역할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고 또 넘어가야 할까? 그렇다면 정권에 따라 하루아침에 태세 전환이 이뤄지는 정부를 어떻게 믿고 우리 국민들이 다시 대북사업이나 협력 사업에 나설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내부 조직 정비와 제도적 준비를 체계화하겠다고 했는데, 설사 북한 당국이 재개에 동의한다 해도 섣불리 다시 사업에 뛰어들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 이것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끝내면 될까.
알고 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원래’ 공무원이라는 그리고 정부 조직 자체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의 명령과 지휘에 따라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공무원의 기본자세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공무원들의 조치 하나가, 선택 하나가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음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 하나하나의 인식까지 바꾸어놓을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대한 국민의 삶을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그런 자세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역시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히 또 바뀔 것이다. ‘개성공단은 폐쇄되는 것이 맞았다’는 소리는 부디 통일부를 통해 다시 듣지 않기를.
다시, 무엇부터 시작할까?
귀한 지면을 중구난방, 횡설수설로 어지럽게 했다. 부족한 글이지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이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 오로지 철저히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현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강화와 북러, 북중 관계 심화에 따른 우리의 대응, 북미 대화 성사를 통한 남북 관계 정상화 해법, 남북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는 혹은 관리하려 드는 미국에 대한 단호한 대처 등 우리가 현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과 과제는 산적해있다. 하지만 그런 거대하고 거창한 담론에 앞서 가장 근원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바로 우리 국민들이 힘든 일상 속에서도 가능한 한 최대한 남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위대한 대북정책이나 결정도 힘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노력은 또한 분단 고착화 세력의 약화를 이룰 수도 있다. 일부 언론의 묻지마 반북, 혐북 보도,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야매 혹은 변절한 어용 전문가들의 돈벌이용 북한 콘텐츠(혐오 또는 붕괴론), 일부 탈북자들의 역시 돈벌이를 위한 그럴듯한 ‘소설’ 자기 체험 간증, 여전히 반공을 외치고 상대방을 친북좌파라 매도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세력의 발악. 이러한 것들이 모여 젊은 세대는 물론, 일반 국민 대다수의 마음속에 북한은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혐오와 조롱의 대상은 박멸해야지, 화해하거나 협력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운명의 장난으로 대학에서 북한학이라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생소한(!) 학과에 입학한 이래 어느 새 30여 년을 남북 문제, 통일운동과 관련해 살아왔다. 대학 MT를 금강산으로 갔고,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지도 금강산이었다. 아내와 당일치기 개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장인, 장모는 내심 엄청나게 불안하셨다고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한편 직장 생활 중에는 운이 좋아 직접 금강산, 개성, 중국 등에서 남북교류협력,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북한 실무자와 만나 협상에 참여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역시 운이 좋아 북한의 전문가도 참여한 국제학술회의를 네 차례나 중국에서 진행했고, 대규모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뛰고 있다. 막힌 남북의 통로를 다시 열어내 이 땅의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북한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거나 북측 인사들과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경험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기 전세기를 타고 대규모 인원이 평양 등을 다녀온 사례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남한 인구 전체로 봤을 때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필자는 정부가 민간평화통일운동을 적극 지원하길 권한다. 단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한다. 자율성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면 된다. 더 많은 국민들이 평화 만들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민간 차원의 남북 간 통로가 다시 열린다면 당국 간 대화의 장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북한도 갑작스런 당국 간 대화 재개보다는 민간 차원의 대화가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물론 현재 북한의 모습을 보면 당장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대통령의 말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분명 길은 열릴 수 있다. 여전히 우리 민간통일운동 진영에는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참여해 귀한 성과를 만들어냈던 베테랑들이 건재하다. 그들이 다시 활약하고 동시에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중국이든 러시아든 혹은 북한이든 북측의 동의하에 만나 다시 민간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여주기식 학술세미나나 비싼 돈 들여 만드는(그러나 조회 수는 극히 미미한) 홍보용 유튜브 영상 몇 개보다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다.(이는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 그리고 산하기관들이 하고 있는 한심한 행태다. 설사 조회 수가 높다고 부처 홍보가 잘 되는 것인가? 그것이 국민의 삶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그런 쓸데없는 짓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각 부처가 저마다 주어진 제 역할에 부합하는 성과를 낼 때 홍보는 저절로 된다.)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북한’을 떠올리며 가슴 뛰었던 경험이 없다. 금강산이 닫히고 개성이 폐쇄된 이후 우리에게 북한은 그저 외면하고 싶은 혹은 단순히 한심한 집단으로 비쳐졌다. 이대로 계속 우리의 마음이 이어진다면 그 어떤 위대한 정책이 실행되어도,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을 백 번 개최한다 해도 한반도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고 통일을 떠올릴 때 가슴이 뛰어야 한다. 그 시작은 일단 다시 만나는 것이다. 정말 살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지금이지만 나의 노력이 모아져 이 땅의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북한과 협력해 사업을 해도 걱정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정권이 바뀌었지만 적어도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국가가 내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북한 사람과의 만남과 협력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단순히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만이 이익이 아님을, 남북의 평화가 진정한 경제적 가치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경험을 하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밑천은 점점 쌓이게 될 것이다. 분단 세력도 끝내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 시작은 결코 어렵지 않다. 이것이 어리석은 필자가 여전히 남북교류협력의 가능성과 힘을 믿는 이유이고, 포기하지 않은 이유이다. 여전히 가슴이 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