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살기
다시,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
황보윤식
편집위원
들어가며 한마디
함석헌/함자(咸子)1) 의 지고한 무지개 사상/철학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은 씨ᄋᆞᆯ사상과 ‘같이살기’입니다. 씨ᄋᆞᆯ사상이 곧 같이살기입니다.1) 함자의 같이살기 사상 속에는 반국가주의, 반민족주의, 반권력주의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함자가 말하는 평화공존, 곧, ‘다 같이 행복’의 논리가 같이살기입니다. 함자의 같이살기는 1970년에 주창됩니다. 함자가 같이살기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시기는 음흉한 미국에 의해 우리 땅이 ‘분단해방’을 당한 시기인 1945년부터로 보입니다. 함자는 분단해방을 보면서 우리 땅, 우리 민족의 다툼/싸움의 불행이 연속적으로 오리라는 것을 예견합니다.
함자는 분단해방 당시 평안북도 용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38 이북에 조선공산당 주도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됩니다.(1946. 2. 8.) 이에 함자는 우리 땅 남북이 평화공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지적 예언’을 합니다. 그러던 차,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주도로 38 이북에서 먼저 ‘일제 식민지시대 적폐청산’(탄백제, 토지개혁)이 한 겨울 세찬 바람처럼 일어납니다. 함자는 아버지가 물려준 땅 2만 평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주로 몰려,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강권으로 38 이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1947. 3. 17.)
함자의 예견처럼 우리 땅 남북은 쉬지 않고 38선에서 크고 작은 투닥거림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끔찍한 ‘6·25국제이념전쟁’(6·25전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민족의 비극을 몰고 옵니다.(1950. 6. 25.) 그리고 휴전선 이남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반공독재, 5·16군사반란, 박정희의 군부독재를 만나는 수난을 당합니다. 비정상적인 현실 속에서 함자는 심적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 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무렵 박정희의 군부독재는 자본가/부자 중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정책을 실행합니다. 이 탓으로 대한민국의 씨ᄋᆞᆯ 민중들은 물신의 노예로 전락됩니다. 그리고 갈등의 모순을 만들어냅니다. 빈부간 갈등, 지역간 갈등, 도농간 갈등, 노사간 갈등입니다. 게다가 박정희는 ‘권력의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하면서 민중정치를 우롱하는 짓거리들로 나라 안 전체를 도배질해 나갔습니다.
결국, 갈등의 모순이 터져 나옵니다. 서울에서 있었던 ‘남가좌동 사건’입니다.(1964. 1.) 남가좌동 사건은 어떤 가난한 아버지가 생활고에 쪼들리다 못해 비관하고 제 손으로 빵에 독약을 넣어 세 어린 자녀를 먹여 죽게 만들고, 자녀들이 죽은 것을 본 자신도 산으로 가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죽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함자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래서 당시 《조선일보》에 소감을 발표합니다. 함자는 박정희 권력에 대한 반대 인물인 함자를 미국으로 초청합니다.(1962. 2.) 그러나 함자 입장에서는 미국에 포로로 잡혀가는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함자는 구도 여행을 한다는 심정으로 여러 나라를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군정 연장을 한다는 소식에 놀라 여행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을 합니다.(1963. 6. 23.) 귀국한 뒤 당시 대한민국 시국에 대한 시평(時評)(〈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습니다.(《조선일보》, 1963년 7월 13~17일) 이 글 중에, 1964년 남가좌동 사건에 대한 아픈 소감을 씁니다. 그리고 평소 가지고 있던 ‘같이살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피력을 하게 됩니다.4)
부자/부유충 계급 중심의 경제정책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며 사회적 약자가 속출되고 있는데도 권력의 노예 박정희는 1960년대 말부터 ‘영구총통제’를 음모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구총통제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인재들을 고문 폭력과 사법 농단을 통해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 정치적 인재가 하나도 없이 윤석열처럼 더럽고 파렴치한 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박정희에 의해 많은 인재들이 감옥5) 에서 죽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함자는 여기서 1)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가는 현실, 2) 연속된 천재지변/자연재해에 대한 대응, 3) 잘못된 정치 현실에서 발생하는 빈부 갈등,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같이살기를 주창합니다. 이때가 1970년입니다.
같이살기의 목적
이제 함자가 같이살기를 주창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함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식민 시기를 ‘정치악’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모습(1972년의 박정희 철권독재)은 과학시대요 기술 문명의 시대인데도 정치악이 더 지독하게 번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계속 가다가는 “민족의 이름조차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민족의 이름이 없어질 때 인간의 이름도 없다.”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 민족 남북의 평화공존/같이살기가 말살되면 씨ᄋᆞᆯ의 상호 평화공존도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함자가 같이살기운동을 주창한 함축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함자는 “씨ᄋᆞᆯ이 자기 속에 무진장으로 가지고 있는 그 걸 스스로 자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개개인으로는 사회악을 당해낼 수 없지만 같이살기운동은 손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이겨낼 수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낳는 믿음이 같이살기운동이다.”라고 같이살기를 주창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6) 그러면서 “그 멸망의 정치 화재에서 빠져나와서 자유의 살길로 가는 것이 이 같이살기운동이다.”라고 그 목적도 설명합니다. 이 말에서 ‘정치 화재’라는 말은 박정희와 같은 정치도둑에 의해 대한민국의 공공성과 평화공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치 현실을 말합니다. ‘자유의 살길’이라는 말은 나와 남이 함께 살아가는 ‘평화공존’이 살아 움직이는 자유의 나라, 양심의 나라, 도덕의 나라를 만드는 길을 말합니다. 함자가 말하는 평화공존의 세상은 민족공동체의,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권력자와 씨ᄋᆞᆯ 민중의, 경상도와 전라도의, 금수저와 흙수저의 씨ᄋᆞᆯ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너와 나 구별을 하지 않는 ‘하나인 세상’을 말합니다. ‘닫힌 이웃’이 아닌 ‘열린 이웃’7) 이 되는 세상을 말합니다. 씨ᄋᆞᆯ 인류가 오직 하나로 열린 이웃임을 깨닫는 길이 같이살기입니다.
함자는 같이살기의 근원을 그리스도교 성경(〈마태복음〉 10장 42절)의 예수가 한 말에서 찾아옵니다. 이 성경 구절에는 사회적/도덕적 계급주의와 차별주의를 타파하고 씨ᄋᆞᆯ이 하나 되는 살림을 하자는 뜻이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함자는 철저히 같이살기를 한 사람은 예수라고 말합니다. 함자는 그러면서 오늘날(박정희시대)의 “압박적인 정치 때문에 타락하고 멸망에 빠”져 들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씨ᄋᆞᆯ이 하나가 되어 사랑과 참을 지키며 공공성/평화공존을 지켜내는 것이 같이살기라는 명제를 답니다.
함자는 전체주의/세계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같이살기는 전체가 하나가 되는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전체가 하나 될 때 공공성의 원리, 평화공존의 원리가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함자의 수제자인 박선균(목사)에 의하면 씨ᄋᆞᆯ운동은 같이살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같이살기는 씨ᄋᆞᆯ의 집터운동이요, 만세반석을 이루는 운동이라고 하였습니다.8) 이 증언에 의하면 씨ᄋᆞᆯ이 가야 하는 길이 같이살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자는 상호부조 정신을 통해 공존하는 생물의 진화와 관습법에 바탕을 둔 인간의 발전이 같이살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씨ᄋᆞᆯ의소리》 창간 2주년 기념호인 1972년 4월호에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는 글을 싣습니다. 이 글에서 함자는 공식적으로 ‘같이살기’라는 용어를 처음 씁니다. 그리고 ‘같이살기’를 주창(主唱)하는 이유와 목적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끝장으로 치닫는 정치악과 싸우기 위함이다. 둘째, 민족의 성격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셋째, 사경을 헤매는 민족정신을 살려내기 위함이다. 넷째, 세계 전체 구원의 길로 가기 위함이다.”라 하였습니다.
함자는 같이살기운동이 새마을운동에 가려 그 실천력이 살아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다시 1975년 말엽에 씨ᄋᆞᆯ에게 보내는 편지를 씁니다. 〈씨ᄋᆞᆯ 교육을 하라〉라는 글입니다.9) 여기서 함자는 “진정한 교육자는 씨ᄋᆞᆯ만이 할 수 있다”는 교육풍토 개선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씨ᄋᆞᆯ의 실천 강령을 구상하게 됩니다. 이것이 1976년 “우리(씨ᄋᆞᆯ의소리)의 내세우는 것” 9조입니다.10) 이에서 보면, 8조에 “씨ᄋᆞᆯ의소리는 같이살기운동을 펴 나가려고 힘씁니다.”라고 밝힙니다. 그러면 이제 함자가 같이살기운동을 주창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좀 더 설명해 보기로 합니다.
첫째, “끝장으로 치닫는 정치악과 싸우기 위함”이라는 말은 1970년대 초, 대한민국 땅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직시한 말입니다. 당시 함자는 독재권력의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길은 같이살기를 통한 공공성 회복과 평화공존뿐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함자는 대동주의와 평화공존을 말살하고 있는 정치악을 제거하는 혁명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폭력으로 하는 거짓 혁명이 아니라 참 혁명, 글자 그대로 명(命)을 새롭게〔革〕하는 운동”이 같이살기운동이라는 뜻입니다. 함자는 ‘4·19시민혁명’이 바로 같이살기의 참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그것은 4·19시민혁명으로 봄의 싱그러운 새싹처럼 자유정신과 민주정신이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막 행복과 희망을 품고 피어나는 새싹을 사악한 군부세력들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서 말하는 5·16군사반란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독재권력이 씨ᄋᆞᆯ 민중의 삶과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사상적 강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함자는 정치인과 정치꾼을 구별합니다. 정치인은 같이살기를 지향하지만, 정치꾼은 사익을 추구하는 사기꾼과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사기꾼의 정치가 정치악입니다. 그래서 정치꾼을 ‘정치도둑’이라고 했습니다. 함자는 미쳐가는 정치도둑(박정희와 그 일당들)들의 정치를 바로 잡는 길은 씨ᄋᆞᆯ 민중의 “정의와 평화의 정신”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정의와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같이살기를 한다면 필연적으로 정치도둑의 짐승적인 발광도 사라지고 이 나라의 정신은 살아날 것을 확신한다는 ‘의지적 예언’을 합니다. 함자의 이러한 ‘의지적 예언’은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발현이 되었다고 봅니다.
둘째, 함자는 “우리가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민족의 성격을 바로잡기 위함이요,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그 목적을 말합니다. 함자는 우리 민족에 대하여 분열주의/이기주의(함자는 이를 당파심이라 했다)의 성격이 강하다고 평했습니다. 그리고 남을 존중할 줄 모르고 개인적/사당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이기심, 당파심, 병이 골수까지 전염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는 아픔의 말을 합니다. 그래서 “민족을 고치지 않는 한 악한 정치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일갈합니다.11) 함자는 늘 귀납법적 사고로 사물과 현실을 설명합니다. 씨ᄋᆞᆯ이 제대로 선한 의지(같이살기)를 간직하고 지키고 있을 때는 (사익에 노예가 된) 사악한 권력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연역법적 사고로는 권력자들의 악한 정신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엘리트 권력자들은 자기네만 선한 것처럼 말하고 씨ᄋᆞᆯ 민중은 악한 것처럼 말합니다. 억지입니다. 거꾸로입니다. 권력은 사익(私益)/사욕(私慾)입니다. 사익/사욕으로는 같이살기를 전혀 할 수 없습니다. 정치꾼의 사욕은 분열주의입니다. 계급주의입니다. 함자는 분열주의 정치/계급주의 정치를 당파정치라고 했습니다. 계급주의/차별주의 정치는 상호부조정신, 같이살기/공공성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당파/분열 정치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를 정확히 보았습니다. 나라 팔아넘김〔賣國〕, 분단국가, 독재권력의 빨갱이몰이 등 비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씨ᄋᆞᆯ이 깨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씨ᄋᆞᆯ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셋째, 함자는 “지금 시들고 숨 막혀 거의 죽게 된 정신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같이살기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민족정신을 살려내자는 뜻입니다. “정말 문제는 정신에 있다. 전술을 고쳐 정치악과 싸우는 일도, 민족 스스로의 성격을 고치는 일도, 정신에 있다. 최후에 믿을 것은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바탈이다. 그것만이 스스로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는 것만이 자기를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다.”라고 민족정신의 깨침을 강조합니다.12) 이어서 함자는 5·16군사반란 이후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보고 큰일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정신의 썩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적 성격 개조”부터 해야 정신이 고쳐진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민족성 개조가 같이살기를 주창하는 목적 중 하나가 됩니다.
넷째, 함자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운동을 부르짖는 것은 이것이 우리만 아니라 세계 전체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함자는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당파의 역사, 식민지 역사, 분단의 역사, 독재의 역사라는 험난한 ‘정치 역사’의 체험을 가지고 있는 유일 민족이라고 사평(史評)을 합니다. 여기서 세계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알고 있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 권위주의/계급주의가 배제되는 같이살기가 꼭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함자의 이러한 사고는 지금 사회가 옛날과 달라 개인적인 단계는 지나고 모든 게 하나로 되는 유기적 사회라고 보는 그의 역사철학 인식에서 비롯합니다.
함자가 ‘세계 전체의 구원’을 제창하는 이유는 지금 세계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생존경쟁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천연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자연개발과 산업공장의 우후죽순식 건설로 환경파괴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미래 씨ᄋᆞᆯ 세대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현세대의 이기심은 끝내 인간 파멸의 길로 갈 것이라는 ‘의지적 예언’을 합니다. 함자의 예언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입니다. 이상기후 현상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지구상 개별 나라들은 발전의 한계에 왔기 때문에, 서로의 싸움을 멈추고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어 몰락해 가는 지구/전체를 살려내야 할 때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의 씨ᄋᆞᆯ 민중도 이제 세계 역사의 대세, 인류의 운명에 대해, 함께 생각을 할 때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면서 정치 협잡꾼들은 결코 이러한 발상을 할 수 없고 씨ᄋᆞᆯ 민중만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씨ᄋᆞᆯ 민중만이 할 수 있는 운동은 물질운동인 새마을운동이 아니고 정신운동인 같이살기입니다.
본질이 다른 같이살기와 새마을운동
함자가 상호부조주의에 바탕한 같이살기/공공성 되살리기 운동을 주창하고 있을 때입니다. 박정희가 (1972년부터) 위로부터 새마을운동을 강제합니다. 박정희 독재권력은 같이살기가 새마을운동을 반대하는 운동이라는 해괴망칙한 이유를 들어 탄압합니다.13) 이에 함자는 잠시 같이살기운동을 접습니다. 함자는 “같이살기는 권위주의가 전혀 없는 운동이지만 새마을운동은 독재권력의 권위주의에 바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같이살기는 “새마을운동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잘라 말합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의 독재권력을 유지시켜 줄 전위부대 형성 목적의 사적(私的) 운동이지만, 같이살기는 정치 협잡과는 전혀 다른 순수 목적의 자발적인 공적(公的) 운동입니다.
나는 여기서 새마을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악한 유신독재자 박정희는 영구권력/영구총통제로 가기 위해 ‘유신체제’(1972. 10.)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유신체제의 성공을 위해 물질운동으로 친일적 ‘새마을운동’을 본격화합니다.(1973) 새마을운동은 일제 괴뢰 만주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농총진흥운동’과 조선총독부의 조선농촌진흥운동을 그대로 모방/답습한 제국주의식 국민총동원 체제입니다. 곧 박정희의 제제화(帝制化)를 위한 전방위적인 음모에서 나온 국민총동원 체제가 새마을운동입니다.14)
함자는 같이살기와 새마을운동을 봄비와 소낙비로 비교합니다. “새마을운동은 소낙비이고 같이살기는 봄비다. 봄비는 새싹을 틔우지만, 소낙비는 새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비유입니다. 나는 새마을운동이 강제될 때부터 그 실체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1972년 충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새마을운동을 ‘농촌파괴 운동’이라고 비판하였다가 빨갱이로 몰려 충남 금산경찰서에서 일주일간(1972. 5. 15.~5. 23.)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자는 새마을운동을 “무지한 지배자의 사나운 정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이살기의 알파는 씨ᄋᆞᆯ 민중 속에 있는 ‘선의 씨’를 살리는 길이고, 오메가는 죽지 않는 ‘선한 씨’로 무한대의 가능성에 있다고 하였습니다.15)
같이살기운동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매몰되어 침체기를 걷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격살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가자(1979. 10. 26.) 1980년에 다시 같이살기 불을 지핍니다. 함자의 글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에서입니다.16) 1980년대 같이살기는 평화공존이 핵심 내용을 이룹니다. 함자는 “타는 가뭄에 말라가는 웅덩이에 큰 고기, 작은 고기들이 서로 살겠다고 야단을 하면서 혼자서 많이 차지하겠다 남을 떠밀고 쫓”고 하는 〈웅덩이의 물고기〉를 비유로 듭니다. 이 글에서 씨ᄋᆞᆯ 민중이 살아가는 목적은 같이살기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가뭄의 웅덩이는 한국 땅이요, 말라가는 웅덩이는 남북의 현실입니다. 북은 혈통 세습주의, 남은 유신총통제로 통일의 공공성, 평등의 공공성, 균산의 공공성, 문화의 공공성을 상실한 채 저만이 살겠다고 남북이 서로 떠밀어 대는 정치가 오늘 우리 땅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메말라가는 현실에 상호부조 정신에 바탕한 공공성을 심어주는 운동이 같이살기입니다. 같이살기는 사익을 멀리하고 공익의 대동사회를 건설하자는 운동입니다. 운동이란 유영모의 표현에 의하면 꿈틀거림입니다. 함자는 “꿈틀이란 꿈을 틔우는 것, 깨치는 것”라 했습니다. 따라서 같이살기는 공공성/상호부조 정신을 깨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같이살기 꿈틀거림’이라 하였습니다. ‘같이살기 꿈틀거림’은 유럽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상을 극복한 제3의 이데올로기, 곧 우리식 이데올로기입니다.17)
끝맺으며 한마디
함자는 유럽식 이데올로기와 제도(권력/법률/기구)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그 제도가 인간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념과 제도에 의한 통제가 인간/씨ᄋᆞᆯ을 갈등과 분쟁으로 몰아넣으면서 같이살기를 파괴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귀납법적 사고와 대동주의 원리로 갈등과 분쟁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씨ᄋᆞᆯ은 개체의 씨ᄋᆞᆯ(독립된 존재=자유로운 존재)이기 이전에 전체의 씨ᄋᆞᆯ(집합의 존재=평등의 존재)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전체=집단의 평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인간을 존재시키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인간도 동물군에 속하지만, 동물과 차이가 집니다. 동물은 생존질서만 존재하지만, 인간은 생존질서와 함께 가치질서/같이질서를 더 가지기 때문입니다.18) 가치질서/같이질서는 “공동가치를 생산해 내기 위한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를 말합니다. ‘밑으로부터 합의체제’란 상호부조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가치질서’/같이질서의 창조를 말합니다. 국가주의/권력주의자들은 인간의 가치질서를 국가 제도와 기구, 조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국가 제도와 기구는 공동체 구성원의 도덕적 책임성을 무감각하게/무디게 만듭니다. 국가주의자들은 국민의 도덕적 책임감이 무디게 될수록 국가/사회 질서 유지라는 명분을 붙여 제도와 조직을 더욱 복잡하고 강도 높게 구축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 가치는 더욱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법을 포함한 국가 제도/조직/기구는 공동체 구성원의 전체 함의(含意)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같이살기는 씨ᄋᆞᆯ의 개체와 전체가 함께 하는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를 말합니다. 같이살기라는 합의체제에서만이 씨ᄋᆞᆯ의 개체는 상호부조 속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열린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열린 이웃이 곧 같이살기/가치살기입니다. 같이살기는 전체입니다. 전체라는 말은 씨ᄋᆞᆯ과 씨ᄋᆞᆯ 개체 간의 관계를 말합니다. 관계는 소통(자유와 평등)입니다. 그래서 씨ᄋᆞᆯ은 독립된 존재이면서 남과 소통의 관계를 가지면서 전체로 나아갑니다. 열린 이웃/같이살기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상호부조 정신입니다. 같이살기/열린 이웃은 ‘물질적 나눔’이 아닌 ‘생명의 나눔’을 본질로 합니다. 그래서 같이살기/열린 이웃은 생명운동입니다.
함자는 ‘생명 변증법’을 주장하였습니다. 변증법은 유럽 중심의 사고입니다. 유럽에서 나온 변증법은 인종차별주의, 물질주의, 계급주의를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합리적인 변증법에서 유물론의 입장만을 반영한 마르크스·엥겔스의 ‘모순 변증법’이 나옵니다. 함자의 생명 변증법은 모순 변증법과 바탕이 다릅니다. 모순 변증법은 투쟁과 파괴, 그리고 사실에 대한 부정을 법칙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 변증법은 우주의 법칙에 바탕을 둡니다. 우주의 법칙은 상호부조의 원리입니다. 적자생존, 우승열패가 아닙니다. 우주 법칙에서는, 인간 소유 개념으로서 산천초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소유의 자연 그대로입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더럽고 사악한 트럼프처럼 남의 지하자원까지 독점하려는 짓거리는 그가 ‘물질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존재하는 미국은 ‘말살된 이웃’, ‘닫힌 이웃’입니다. 소유되지 않는 자연 그 자체 속에서 인간이 생존할 때 같이살기는 꽃을 피우게 됩니다.
지금 세계는 유럽식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 제도에 의하여 정치질서와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이데올로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기구/조직들이 인간의 기본권(생존권, 자유권, 자율권)을 침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기본권 침해는 상대적으로 권력자들의 권위주의, 책임 은폐, 제도의 사유화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인간 사회의 가치질서/같이질서는 점차 축소되고 국가의 제도는 우상화되면서 이익집단/정치도둑의 소유물이 됩니다. 정치도둑이 곧 ‘이익 기득권’ 세력입니다. 이익 기득권 세력의 기승으로 인간의 같이살기 정신, 가치질서는 처절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익 기득권 세력을 위한 제도와 조직/기구 탓으로 인간이 ‘기계적 인간’/제도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도적 정치권력, 경제권력, 교육권력, 문화권력이 협잡하여 씨ᄋᆞᆯ의 공동가치로서 합의체제=상호부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같이살기/가치질서도 유실되고 있습니다. 상호부조 정신의 파괴는 우주법칙/자연질서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상호부조라는 공동가치를 위하여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인 같이살기/가치살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모든 이웃/씨ᄋᆞᆯ이 ‘닫음의 인간’이 아닌 ‘엶의 인간’/열린이웃의 정신을 일깨우자는 운동이 같이살기/가치질서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함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참고문헌〉
함석헌.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 《씨ᄋᆞᆯ의소리》 1972년 4월호(통권 제10호).
함석헌. 〈씨ᄋᆞᆯ 교육을 하라〉. 《씨ᄋᆞᆯ의소리》 1975년 11월호(통권 제48호).
함석헌·김동길. 〈씨ᄋᆞᆯ의 소리·씨ᄋᆞᆯ의 사상―씨ᄋᆞᆯ이 던져준 역사 창조의 의미〉.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9월호(통권 제57호).
함석헌.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 《씨ᄋᆞᆯ의소리》 1980년 5·6월호(통권 제94호).
강춘근. 〈왜 다시 같이살기운동인가〉.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황헌식. 《열린 이웃을 위하여》. 한빛문화사, 1985.
황보윤식. 〈새마을운동의 실체〉. 《후광학, 김대중의 정치철학》. 행동하는 양심, 2025.
1) 함자(咸子): 옛 성현들에게 존경의 표지로 ‘子’를 붙여 경칭하였다. 나도 ‘무지개 사상’을 창시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에게 존경의 표시로 ‘子’를 붙여 경칭하고자 한다.
2) 같이살기 관련 글은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 특집(왜 다시 같이살기운동인가?) 등으로 실린 적이 있다.
3)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 《함석헌저작집》 4권(한길사, 2009), 165~185쪽.
4)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59쪽.
5) 감옥(監獄): 감옥과 교도소는 다르다. 감옥은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이 가는 곳이지만 교도소는 악하고 잘못이 있는 자들이 가는 곳이다. 민주화운동가들이 가는 곳은 감옥이고 윤석열 같은 놈들이 가는 곳은 교도소다. 잘못된 행동과 마음을 교정 받는 곳이 교도소다.
6) 함석헌·김동길 대담, 〈씨ᄋᆞᆯ의 소리·씨ᄋᆞᆯ의 사상〉,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9월호(통권 제57호), 28쪽.
7) ‘열린이웃’이라는 말은 영주의 단곡 출신으로 《조선일보》 기자를 지낸 문학평론가 황헌식(黃憲植, 1942~2023)이 사용한 말이다. 황헌식은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하여 언론자유를 주장하였다. 이에 박정희 외양간지기들의 압력에 의해 조선일보사에서 해직당했다.(1975) 이후 조선일보사에서 해직된 31명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황헌식)를 결성하고 언론자유를 위하여 힘차게 활동하였다.
8)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60쪽.
9) 함석헌, 〈씨ᄋᆞᆯ 교육을 하라〉, 《씨ᄋᆞᆯ의소리》 1975년 11월호(통권 제48호), 3~7쪽.
10) 〈우리의 내세우는 것〉,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1·2월호(통권 제50호).
11) 함석헌,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 《씨ᄋᆞᆯ의소리》 1972년 4월호(통권 제10호), 12~31쪽 참조.
12)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60쪽.
13) 함석헌·김동길 대담, 〈씨ᄋᆞᆯ의 소리·씨ᄋᆞᆯ의 사상〉,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9월호(통권 제57호), 19쪽;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53쪽.
14) 황보윤식, 〈새마을운동의 실체〉, 《후광학, 김대중의 정치철학》(행동하는 양심, 2025), 114~115쪽 참조.
15) 함석헌,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 《씨ᄋᆞᆯ의소리》 1972년 4월호(통권 제10호), 29쪽.
16) 함석헌,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 《씨ᄋᆞᆯ의소리》 1980년 5·6월호(통권 제94호), 4~7쪽.
17) 함석헌, 위의 책, 5~6쪽.
18) 황헌식, 《열린 이웃을 위하여》(한빛문화사, 1985). 황헌식은 인간의 제3의 존재양식으로 이웃을 설정하고 열린 이웃과 닫힌 이웃으로 구분하였다. 황헌식이 말하는 열린 이웃이 곧 같이살기다.



같이살기
다시,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
황보윤식
편집위원
들어가며 한마디
함석헌/함자(咸子)1) 의 지고한 무지개 사상/철학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은 씨ᄋᆞᆯ사상과 ‘같이살기’입니다. 씨ᄋᆞᆯ사상이 곧 같이살기입니다.1) 함자의 같이살기 사상 속에는 반국가주의, 반민족주의, 반권력주의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함자가 말하는 평화공존, 곧, ‘다 같이 행복’의 논리가 같이살기입니다. 함자의 같이살기는 1970년에 주창됩니다. 함자가 같이살기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시기는 음흉한 미국에 의해 우리 땅이 ‘분단해방’을 당한 시기인 1945년부터로 보입니다. 함자는 분단해방을 보면서 우리 땅, 우리 민족의 다툼/싸움의 불행이 연속적으로 오리라는 것을 예견합니다.
함자는 분단해방 당시 평안북도 용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38 이북에 조선공산당 주도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됩니다.(1946. 2. 8.) 이에 함자는 우리 땅 남북이 평화공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지적 예언’을 합니다. 그러던 차,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주도로 38 이북에서 먼저 ‘일제 식민지시대 적폐청산’(탄백제, 토지개혁)이 한 겨울 세찬 바람처럼 일어납니다. 함자는 아버지가 물려준 땅 2만 평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주로 몰려,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강권으로 38 이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1947. 3. 17.)
함자의 예견처럼 우리 땅 남북은 쉬지 않고 38선에서 크고 작은 투닥거림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끔찍한 ‘6·25국제이념전쟁’(6·25전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민족의 비극을 몰고 옵니다.(1950. 6. 25.) 그리고 휴전선 이남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반공독재, 5·16군사반란, 박정희의 군부독재를 만나는 수난을 당합니다. 비정상적인 현실 속에서 함자는 심적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 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무렵 박정희의 군부독재는 자본가/부자 중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정책을 실행합니다. 이 탓으로 대한민국의 씨ᄋᆞᆯ 민중들은 물신의 노예로 전락됩니다. 그리고 갈등의 모순을 만들어냅니다. 빈부간 갈등, 지역간 갈등, 도농간 갈등, 노사간 갈등입니다. 게다가 박정희는 ‘권력의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하면서 민중정치를 우롱하는 짓거리들로 나라 안 전체를 도배질해 나갔습니다.
결국, 갈등의 모순이 터져 나옵니다. 서울에서 있었던 ‘남가좌동 사건’입니다.(1964. 1.) 남가좌동 사건은 어떤 가난한 아버지가 생활고에 쪼들리다 못해 비관하고 제 손으로 빵에 독약을 넣어 세 어린 자녀를 먹여 죽게 만들고, 자녀들이 죽은 것을 본 자신도 산으로 가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죽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함자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래서 당시 《조선일보》에 소감을 발표합니다. 함자는 박정희 권력에 대한 반대 인물인 함자를 미국으로 초청합니다.(1962. 2.) 그러나 함자 입장에서는 미국에 포로로 잡혀가는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함자는 구도 여행을 한다는 심정으로 여러 나라를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군정 연장을 한다는 소식에 놀라 여행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을 합니다.(1963. 6. 23.) 귀국한 뒤 당시 대한민국 시국에 대한 시평(時評)(〈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습니다.(《조선일보》, 1963년 7월 13~17일) 이 글 중에, 1964년 남가좌동 사건에 대한 아픈 소감을 씁니다. 그리고 평소 가지고 있던 ‘같이살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피력을 하게 됩니다.4)
부자/부유충 계급 중심의 경제정책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며 사회적 약자가 속출되고 있는데도 권력의 노예 박정희는 1960년대 말부터 ‘영구총통제’를 음모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구총통제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인재들을 고문 폭력과 사법 농단을 통해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 정치적 인재가 하나도 없이 윤석열처럼 더럽고 파렴치한 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박정희에 의해 많은 인재들이 감옥5) 에서 죽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함자는 여기서 1)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가는 현실, 2) 연속된 천재지변/자연재해에 대한 대응, 3) 잘못된 정치 현실에서 발생하는 빈부 갈등,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같이살기를 주창합니다. 이때가 1970년입니다.
같이살기의 목적
이제 함자가 같이살기를 주창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함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식민 시기를 ‘정치악’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모습(1972년의 박정희 철권독재)은 과학시대요 기술 문명의 시대인데도 정치악이 더 지독하게 번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계속 가다가는 “민족의 이름조차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민족의 이름이 없어질 때 인간의 이름도 없다.”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 민족 남북의 평화공존/같이살기가 말살되면 씨ᄋᆞᆯ의 상호 평화공존도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함자가 같이살기운동을 주창한 함축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함자는 “씨ᄋᆞᆯ이 자기 속에 무진장으로 가지고 있는 그 걸 스스로 자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개개인으로는 사회악을 당해낼 수 없지만 같이살기운동은 손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이겨낼 수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낳는 믿음이 같이살기운동이다.”라고 같이살기를 주창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6) 그러면서 “그 멸망의 정치 화재에서 빠져나와서 자유의 살길로 가는 것이 이 같이살기운동이다.”라고 그 목적도 설명합니다. 이 말에서 ‘정치 화재’라는 말은 박정희와 같은 정치도둑에 의해 대한민국의 공공성과 평화공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치 현실을 말합니다. ‘자유의 살길’이라는 말은 나와 남이 함께 살아가는 ‘평화공존’이 살아 움직이는 자유의 나라, 양심의 나라, 도덕의 나라를 만드는 길을 말합니다. 함자가 말하는 평화공존의 세상은 민족공동체의,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권력자와 씨ᄋᆞᆯ 민중의, 경상도와 전라도의, 금수저와 흙수저의 씨ᄋᆞᆯ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너와 나 구별을 하지 않는 ‘하나인 세상’을 말합니다. ‘닫힌 이웃’이 아닌 ‘열린 이웃’7) 이 되는 세상을 말합니다. 씨ᄋᆞᆯ 인류가 오직 하나로 열린 이웃임을 깨닫는 길이 같이살기입니다.
함자는 같이살기의 근원을 그리스도교 성경(〈마태복음〉 10장 42절)의 예수가 한 말에서 찾아옵니다. 이 성경 구절에는 사회적/도덕적 계급주의와 차별주의를 타파하고 씨ᄋᆞᆯ이 하나 되는 살림을 하자는 뜻이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함자는 철저히 같이살기를 한 사람은 예수라고 말합니다. 함자는 그러면서 오늘날(박정희시대)의 “압박적인 정치 때문에 타락하고 멸망에 빠”져 들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씨ᄋᆞᆯ이 하나가 되어 사랑과 참을 지키며 공공성/평화공존을 지켜내는 것이 같이살기라는 명제를 답니다.
함자는 전체주의/세계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같이살기는 전체가 하나가 되는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전체가 하나 될 때 공공성의 원리, 평화공존의 원리가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함자의 수제자인 박선균(목사)에 의하면 씨ᄋᆞᆯ운동은 같이살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같이살기는 씨ᄋᆞᆯ의 집터운동이요, 만세반석을 이루는 운동이라고 하였습니다.8) 이 증언에 의하면 씨ᄋᆞᆯ이 가야 하는 길이 같이살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자는 상호부조 정신을 통해 공존하는 생물의 진화와 관습법에 바탕을 둔 인간의 발전이 같이살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씨ᄋᆞᆯ의소리》 창간 2주년 기념호인 1972년 4월호에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는 글을 싣습니다. 이 글에서 함자는 공식적으로 ‘같이살기’라는 용어를 처음 씁니다. 그리고 ‘같이살기’를 주창(主唱)하는 이유와 목적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끝장으로 치닫는 정치악과 싸우기 위함이다. 둘째, 민족의 성격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셋째, 사경을 헤매는 민족정신을 살려내기 위함이다. 넷째, 세계 전체 구원의 길로 가기 위함이다.”라 하였습니다.
함자는 같이살기운동이 새마을운동에 가려 그 실천력이 살아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다시 1975년 말엽에 씨ᄋᆞᆯ에게 보내는 편지를 씁니다. 〈씨ᄋᆞᆯ 교육을 하라〉라는 글입니다.9) 여기서 함자는 “진정한 교육자는 씨ᄋᆞᆯ만이 할 수 있다”는 교육풍토 개선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씨ᄋᆞᆯ의 실천 강령을 구상하게 됩니다. 이것이 1976년 “우리(씨ᄋᆞᆯ의소리)의 내세우는 것” 9조입니다.10) 이에서 보면, 8조에 “씨ᄋᆞᆯ의소리는 같이살기운동을 펴 나가려고 힘씁니다.”라고 밝힙니다. 그러면 이제 함자가 같이살기운동을 주창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좀 더 설명해 보기로 합니다.
첫째, “끝장으로 치닫는 정치악과 싸우기 위함”이라는 말은 1970년대 초, 대한민국 땅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직시한 말입니다. 당시 함자는 독재권력의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길은 같이살기를 통한 공공성 회복과 평화공존뿐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함자는 대동주의와 평화공존을 말살하고 있는 정치악을 제거하는 혁명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폭력으로 하는 거짓 혁명이 아니라 참 혁명, 글자 그대로 명(命)을 새롭게〔革〕하는 운동”이 같이살기운동이라는 뜻입니다. 함자는 ‘4·19시민혁명’이 바로 같이살기의 참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그것은 4·19시민혁명으로 봄의 싱그러운 새싹처럼 자유정신과 민주정신이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막 행복과 희망을 품고 피어나는 새싹을 사악한 군부세력들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서 말하는 5·16군사반란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독재권력이 씨ᄋᆞᆯ 민중의 삶과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사상적 강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함자는 정치인과 정치꾼을 구별합니다. 정치인은 같이살기를 지향하지만, 정치꾼은 사익을 추구하는 사기꾼과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사기꾼의 정치가 정치악입니다. 그래서 정치꾼을 ‘정치도둑’이라고 했습니다. 함자는 미쳐가는 정치도둑(박정희와 그 일당들)들의 정치를 바로 잡는 길은 씨ᄋᆞᆯ 민중의 “정의와 평화의 정신”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정의와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같이살기를 한다면 필연적으로 정치도둑의 짐승적인 발광도 사라지고 이 나라의 정신은 살아날 것을 확신한다는 ‘의지적 예언’을 합니다. 함자의 이러한 ‘의지적 예언’은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발현이 되었다고 봅니다.
둘째, 함자는 “우리가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민족의 성격을 바로잡기 위함이요,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그 목적을 말합니다. 함자는 우리 민족에 대하여 분열주의/이기주의(함자는 이를 당파심이라 했다)의 성격이 강하다고 평했습니다. 그리고 남을 존중할 줄 모르고 개인적/사당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이기심, 당파심, 병이 골수까지 전염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는 아픔의 말을 합니다. 그래서 “민족을 고치지 않는 한 악한 정치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일갈합니다.11) 함자는 늘 귀납법적 사고로 사물과 현실을 설명합니다. 씨ᄋᆞᆯ이 제대로 선한 의지(같이살기)를 간직하고 지키고 있을 때는 (사익에 노예가 된) 사악한 권력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연역법적 사고로는 권력자들의 악한 정신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엘리트 권력자들은 자기네만 선한 것처럼 말하고 씨ᄋᆞᆯ 민중은 악한 것처럼 말합니다. 억지입니다. 거꾸로입니다. 권력은 사익(私益)/사욕(私慾)입니다. 사익/사욕으로는 같이살기를 전혀 할 수 없습니다. 정치꾼의 사욕은 분열주의입니다. 계급주의입니다. 함자는 분열주의 정치/계급주의 정치를 당파정치라고 했습니다. 계급주의/차별주의 정치는 상호부조정신, 같이살기/공공성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당파/분열 정치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를 정확히 보았습니다. 나라 팔아넘김〔賣國〕, 분단국가, 독재권력의 빨갱이몰이 등 비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씨ᄋᆞᆯ이 깨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씨ᄋᆞᆯ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셋째, 함자는 “지금 시들고 숨 막혀 거의 죽게 된 정신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같이살기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민족정신을 살려내자는 뜻입니다. “정말 문제는 정신에 있다. 전술을 고쳐 정치악과 싸우는 일도, 민족 스스로의 성격을 고치는 일도, 정신에 있다. 최후에 믿을 것은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바탈이다. 그것만이 스스로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는 것만이 자기를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다.”라고 민족정신의 깨침을 강조합니다.12) 이어서 함자는 5·16군사반란 이후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보고 큰일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정신의 썩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적 성격 개조”부터 해야 정신이 고쳐진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민족성 개조가 같이살기를 주창하는 목적 중 하나가 됩니다.
넷째, 함자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운동을 부르짖는 것은 이것이 우리만 아니라 세계 전체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함자는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당파의 역사, 식민지 역사, 분단의 역사, 독재의 역사라는 험난한 ‘정치 역사’의 체험을 가지고 있는 유일 민족이라고 사평(史評)을 합니다. 여기서 세계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알고 있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 권위주의/계급주의가 배제되는 같이살기가 꼭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함자의 이러한 사고는 지금 사회가 옛날과 달라 개인적인 단계는 지나고 모든 게 하나로 되는 유기적 사회라고 보는 그의 역사철학 인식에서 비롯합니다.
함자가 ‘세계 전체의 구원’을 제창하는 이유는 지금 세계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생존경쟁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천연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자연개발과 산업공장의 우후죽순식 건설로 환경파괴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미래 씨ᄋᆞᆯ 세대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현세대의 이기심은 끝내 인간 파멸의 길로 갈 것이라는 ‘의지적 예언’을 합니다. 함자의 예언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입니다. 이상기후 현상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지구상 개별 나라들은 발전의 한계에 왔기 때문에, 서로의 싸움을 멈추고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어 몰락해 가는 지구/전체를 살려내야 할 때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의 씨ᄋᆞᆯ 민중도 이제 세계 역사의 대세, 인류의 운명에 대해, 함께 생각을 할 때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면서 정치 협잡꾼들은 결코 이러한 발상을 할 수 없고 씨ᄋᆞᆯ 민중만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씨ᄋᆞᆯ 민중만이 할 수 있는 운동은 물질운동인 새마을운동이 아니고 정신운동인 같이살기입니다.
본질이 다른 같이살기와 새마을운동
함자가 상호부조주의에 바탕한 같이살기/공공성 되살리기 운동을 주창하고 있을 때입니다. 박정희가 (1972년부터) 위로부터 새마을운동을 강제합니다. 박정희 독재권력은 같이살기가 새마을운동을 반대하는 운동이라는 해괴망칙한 이유를 들어 탄압합니다.13) 이에 함자는 잠시 같이살기운동을 접습니다. 함자는 “같이살기는 권위주의가 전혀 없는 운동이지만 새마을운동은 독재권력의 권위주의에 바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같이살기는 “새마을운동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잘라 말합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의 독재권력을 유지시켜 줄 전위부대 형성 목적의 사적(私的) 운동이지만, 같이살기는 정치 협잡과는 전혀 다른 순수 목적의 자발적인 공적(公的) 운동입니다.
나는 여기서 새마을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악한 유신독재자 박정희는 영구권력/영구총통제로 가기 위해 ‘유신체제’(1972. 10.)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유신체제의 성공을 위해 물질운동으로 친일적 ‘새마을운동’을 본격화합니다.(1973) 새마을운동은 일제 괴뢰 만주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농총진흥운동’과 조선총독부의 조선농촌진흥운동을 그대로 모방/답습한 제국주의식 국민총동원 체제입니다. 곧 박정희의 제제화(帝制化)를 위한 전방위적인 음모에서 나온 국민총동원 체제가 새마을운동입니다.14)
함자는 같이살기와 새마을운동을 봄비와 소낙비로 비교합니다. “새마을운동은 소낙비이고 같이살기는 봄비다. 봄비는 새싹을 틔우지만, 소낙비는 새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비유입니다. 나는 새마을운동이 강제될 때부터 그 실체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1972년 충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새마을운동을 ‘농촌파괴 운동’이라고 비판하였다가 빨갱이로 몰려 충남 금산경찰서에서 일주일간(1972. 5. 15.~5. 23.)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자는 새마을운동을 “무지한 지배자의 사나운 정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이살기의 알파는 씨ᄋᆞᆯ 민중 속에 있는 ‘선의 씨’를 살리는 길이고, 오메가는 죽지 않는 ‘선한 씨’로 무한대의 가능성에 있다고 하였습니다.15)
같이살기운동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매몰되어 침체기를 걷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격살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가자(1979. 10. 26.) 1980년에 다시 같이살기 불을 지핍니다. 함자의 글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에서입니다.16) 1980년대 같이살기는 평화공존이 핵심 내용을 이룹니다. 함자는 “타는 가뭄에 말라가는 웅덩이에 큰 고기, 작은 고기들이 서로 살겠다고 야단을 하면서 혼자서 많이 차지하겠다 남을 떠밀고 쫓”고 하는 〈웅덩이의 물고기〉를 비유로 듭니다. 이 글에서 씨ᄋᆞᆯ 민중이 살아가는 목적은 같이살기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가뭄의 웅덩이는 한국 땅이요, 말라가는 웅덩이는 남북의 현실입니다. 북은 혈통 세습주의, 남은 유신총통제로 통일의 공공성, 평등의 공공성, 균산의 공공성, 문화의 공공성을 상실한 채 저만이 살겠다고 남북이 서로 떠밀어 대는 정치가 오늘 우리 땅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메말라가는 현실에 상호부조 정신에 바탕한 공공성을 심어주는 운동이 같이살기입니다. 같이살기는 사익을 멀리하고 공익의 대동사회를 건설하자는 운동입니다. 운동이란 유영모의 표현에 의하면 꿈틀거림입니다. 함자는 “꿈틀이란 꿈을 틔우는 것, 깨치는 것”라 했습니다. 따라서 같이살기는 공공성/상호부조 정신을 깨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함자는 ‘같이살기 꿈틀거림’이라 하였습니다. ‘같이살기 꿈틀거림’은 유럽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상을 극복한 제3의 이데올로기, 곧 우리식 이데올로기입니다.17)
끝맺으며 한마디
함자는 유럽식 이데올로기와 제도(권력/법률/기구)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그 제도가 인간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념과 제도에 의한 통제가 인간/씨ᄋᆞᆯ을 갈등과 분쟁으로 몰아넣으면서 같이살기를 파괴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귀납법적 사고와 대동주의 원리로 갈등과 분쟁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씨ᄋᆞᆯ은 개체의 씨ᄋᆞᆯ(독립된 존재=자유로운 존재)이기 이전에 전체의 씨ᄋᆞᆯ(집합의 존재=평등의 존재)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전체=집단의 평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인간을 존재시키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인간도 동물군에 속하지만, 동물과 차이가 집니다. 동물은 생존질서만 존재하지만, 인간은 생존질서와 함께 가치질서/같이질서를 더 가지기 때문입니다.18) 가치질서/같이질서는 “공동가치를 생산해 내기 위한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를 말합니다. ‘밑으로부터 합의체제’란 상호부조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가치질서’/같이질서의 창조를 말합니다. 국가주의/권력주의자들은 인간의 가치질서를 국가 제도와 기구, 조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국가 제도와 기구는 공동체 구성원의 도덕적 책임성을 무감각하게/무디게 만듭니다. 국가주의자들은 국민의 도덕적 책임감이 무디게 될수록 국가/사회 질서 유지라는 명분을 붙여 제도와 조직을 더욱 복잡하고 강도 높게 구축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 가치는 더욱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법을 포함한 국가 제도/조직/기구는 공동체 구성원의 전체 함의(含意)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같이살기는 씨ᄋᆞᆯ의 개체와 전체가 함께 하는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를 말합니다. 같이살기라는 합의체제에서만이 씨ᄋᆞᆯ의 개체는 상호부조 속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열린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열린 이웃이 곧 같이살기/가치살기입니다. 같이살기는 전체입니다. 전체라는 말은 씨ᄋᆞᆯ과 씨ᄋᆞᆯ 개체 간의 관계를 말합니다. 관계는 소통(자유와 평등)입니다. 그래서 씨ᄋᆞᆯ은 독립된 존재이면서 남과 소통의 관계를 가지면서 전체로 나아갑니다. 열린 이웃/같이살기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상호부조 정신입니다. 같이살기/열린 이웃은 ‘물질적 나눔’이 아닌 ‘생명의 나눔’을 본질로 합니다. 그래서 같이살기/열린 이웃은 생명운동입니다.
함자는 ‘생명 변증법’을 주장하였습니다. 변증법은 유럽 중심의 사고입니다. 유럽에서 나온 변증법은 인종차별주의, 물질주의, 계급주의를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합리적인 변증법에서 유물론의 입장만을 반영한 마르크스·엥겔스의 ‘모순 변증법’이 나옵니다. 함자의 생명 변증법은 모순 변증법과 바탕이 다릅니다. 모순 변증법은 투쟁과 파괴, 그리고 사실에 대한 부정을 법칙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 변증법은 우주의 법칙에 바탕을 둡니다. 우주의 법칙은 상호부조의 원리입니다. 적자생존, 우승열패가 아닙니다. 우주 법칙에서는, 인간 소유 개념으로서 산천초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소유의 자연 그대로입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더럽고 사악한 트럼프처럼 남의 지하자원까지 독점하려는 짓거리는 그가 ‘물질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존재하는 미국은 ‘말살된 이웃’, ‘닫힌 이웃’입니다. 소유되지 않는 자연 그 자체 속에서 인간이 생존할 때 같이살기는 꽃을 피우게 됩니다.
지금 세계는 유럽식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 제도에 의하여 정치질서와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이데올로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기구/조직들이 인간의 기본권(생존권, 자유권, 자율권)을 침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기본권 침해는 상대적으로 권력자들의 권위주의, 책임 은폐, 제도의 사유화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인간 사회의 가치질서/같이질서는 점차 축소되고 국가의 제도는 우상화되면서 이익집단/정치도둑의 소유물이 됩니다. 정치도둑이 곧 ‘이익 기득권’ 세력입니다. 이익 기득권 세력의 기승으로 인간의 같이살기 정신, 가치질서는 처절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익 기득권 세력을 위한 제도와 조직/기구 탓으로 인간이 ‘기계적 인간’/제도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도적 정치권력, 경제권력, 교육권력, 문화권력이 협잡하여 씨ᄋᆞᆯ의 공동가치로서 합의체제=상호부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같이살기/가치질서도 유실되고 있습니다. 상호부조 정신의 파괴는 우주법칙/자연질서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상호부조라는 공동가치를 위하여 밑으로부터의 합의체제인 같이살기/가치살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모든 이웃/씨ᄋᆞᆯ이 ‘닫음의 인간’이 아닌 ‘엶의 인간’/열린이웃의 정신을 일깨우자는 운동이 같이살기/가치질서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함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참고문헌〉
함석헌.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 《씨ᄋᆞᆯ의소리》 1972년 4월호(통권 제10호).
함석헌. 〈씨ᄋᆞᆯ 교육을 하라〉. 《씨ᄋᆞᆯ의소리》 1975년 11월호(통권 제48호).
함석헌·김동길. 〈씨ᄋᆞᆯ의 소리·씨ᄋᆞᆯ의 사상―씨ᄋᆞᆯ이 던져준 역사 창조의 의미〉.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9월호(통권 제57호).
함석헌.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 《씨ᄋᆞᆯ의소리》 1980년 5·6월호(통권 제94호).
강춘근. 〈왜 다시 같이살기운동인가〉.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황헌식. 《열린 이웃을 위하여》. 한빛문화사, 1985.
황보윤식. 〈새마을운동의 실체〉. 《후광학, 김대중의 정치철학》. 행동하는 양심, 2025.
1) 함자(咸子): 옛 성현들에게 존경의 표지로 ‘子’를 붙여 경칭하였다. 나도 ‘무지개 사상’을 창시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에게 존경의 표시로 ‘子’를 붙여 경칭하고자 한다.
2) 같이살기 관련 글은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 특집(왜 다시 같이살기운동인가?) 등으로 실린 적이 있다.
3)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 《함석헌저작집》 4권(한길사, 2009), 165~185쪽.
4)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59쪽.
5) 감옥(監獄): 감옥과 교도소는 다르다. 감옥은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이 가는 곳이지만 교도소는 악하고 잘못이 있는 자들이 가는 곳이다. 민주화운동가들이 가는 곳은 감옥이고 윤석열 같은 놈들이 가는 곳은 교도소다. 잘못된 행동과 마음을 교정 받는 곳이 교도소다.
6) 함석헌·김동길 대담, 〈씨ᄋᆞᆯ의 소리·씨ᄋᆞᆯ의 사상〉,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9월호(통권 제57호), 28쪽.
7) ‘열린이웃’이라는 말은 영주의 단곡 출신으로 《조선일보》 기자를 지낸 문학평론가 황헌식(黃憲植, 1942~2023)이 사용한 말이다. 황헌식은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하여 언론자유를 주장하였다. 이에 박정희 외양간지기들의 압력에 의해 조선일보사에서 해직당했다.(1975) 이후 조선일보사에서 해직된 31명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황헌식)를 결성하고 언론자유를 위하여 힘차게 활동하였다.
8)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60쪽.
9) 함석헌, 〈씨ᄋᆞᆯ 교육을 하라〉, 《씨ᄋᆞᆯ의소리》 1975년 11월호(통권 제48호), 3~7쪽.
10) 〈우리의 내세우는 것〉,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1·2월호(통권 제50호).
11) 함석헌,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 《씨ᄋᆞᆯ의소리》 1972년 4월호(통권 제10호), 12~31쪽 참조.
12)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60쪽.
13) 함석헌·김동길 대담, 〈씨ᄋᆞᆯ의 소리·씨ᄋᆞᆯ의 사상〉, 《씨ᄋᆞᆯ의소리》 1976년 9월호(통권 제57호), 19쪽; 박선균, 〈같이살기운동과 함석헌 선생〉, 《씨ᄋᆞᆯ의소리》, 2023년 1-2월호(통권 제282호), 53쪽.
14) 황보윤식, 〈새마을운동의 실체〉, 《후광학, 김대중의 정치철학》(행동하는 양심, 2025), 114~115쪽 참조.
15) 함석헌, 〈같이살기운동을 일으키자〉, 《씨ᄋᆞᆯ의소리》 1972년 4월호(통권 제10호), 29쪽.
16) 함석헌, 〈같이살기 꿈틀거림을 부른다〉, 《씨ᄋᆞᆯ의소리》 1980년 5·6월호(통권 제94호), 4~7쪽.
17) 함석헌, 위의 책, 5~6쪽.
18) 황헌식, 《열린 이웃을 위하여》(한빛문화사, 1985). 황헌식은 인간의 제3의 존재양식으로 이웃을 설정하고 열린 이웃과 닫힌 이웃으로 구분하였다. 황헌식이 말하는 열린 이웃이 곧 같이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