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말한다
어둠의 심연을 건너 새벽을 연 지성의 기록,
그 아름다운 서사시
김영, 《저항과 성찰》(청아출판사, 2026)
백승종
역사학자, 전 서강대 교수
묵향(墨香)을 버려두고 아스팔트의 거친 바람 앞에 서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심정으로, 그리고 지난 3년의 엄혹한 시절 거리에서 비바람을 함께 맞았던 동지로서 선배인 김영 교수의 역작 《저항과 성찰》을 마주한다. 이 책은 시국 비평집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 뜨겁고, 한 개인의 회고록이라 하기에도 그 무게가 태산처럼 무겁다. 이 책은 민주공화국이 벼랑 끝에 섰던 절체절명의 순간, 한 양심적인 지식인이 온몸으로 쓴 피와 땀의 비망록이자 시대의 증언이다. 저자 김영 교수는 평생 강단에서 고전의 향기를 맡으며 지냈고, 은퇴 후에는 ‘자락서실(自樂書室)’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던 그야말로 천생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퇴행과 민주주의의 파괴를 목격한 나머지 서재의 안락한 의자를 잠시 떠나 광장의 거친 바닥으로 나서는 결단을 내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그가 삼켜야 했던 참담함과 분노, 그리고 그 칠흑 같은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낸 희망의 언어들을 전율하듯 오감으로 느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지식인에게 독서란 한갓 지식을 쌓는 유희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실천의 칼날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22년 봄, 상식과 공정이 무너져 내린 선거 결과를 목도(目睹)하게 되자 그는 깊은 침잠에 빠졌다. 그러나 곧 그 절망을 행동의 연료로 승화시켰다.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제주의 바람 속에서 마음을 추스른 그는, 서울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끄고 스스로 시대의 등불이 되기로 결심한다. 구한말 매천 황현 선생의 비통한 절규를 떠올리게 하는 일대 사건이다. 붓을 꺾고 거리로 나섰던 옛 선비들의 서릿발 같은 기개와 저자의 결단은 맞닿아 있다. 특히 1980년 광주, 처참한 피의 현장에 가 있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저자 자락당을 움직인 것일까. 자신을 “늙은 청년”이라 자칭하며, 저자는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현재의 불의와 맞서는 실존적 투쟁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낭만적 저항의 서막, ‘네 게바라’의 탄생
이 장엄한 투쟁의 서사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대목은 바로 ‘네 게바라’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윤석열 검찰 독재라는 거대한 괴물에 맞서기 위해 의기투합한 네 명의 지식인과 종교인—저자 김영, 박충구, 정종훈, 김근수—을 일컫는 낭만적인 별칭이 바로 그것이다. 2021년 겨울,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민주 진영의 위기를 감지하며 만난 이들은, 0.73% 포인트 차이의 패배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하였으나 곧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연대의 길을 택했다. 인천 계양구의 민주당 선거 사무실을 찾아가 서로의 손을 맞잡았을 때, 그들은 장난처럼 서로를 혁명가 ‘체 게바라’에 빗대어 ‘네 게바라’라 부르기 시작했다. 농담 속에 뼈가 있고 웃음 속에 눈물이 있듯, 이 이름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자 어둠을 가르는 깃발이 되었다.
저자는 2022년 여름, 프랑스 파리로 떠난 휴가길에서도 다가올 투쟁의 계절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파리시청 옆 베아슈베 백화점에서 프랑스 국기 색인 파랑, 하양, 빨강이 섞인 머플러를 여러 장 구하였다. 귀국 후 동지들과 함께 이 삼색 머플러를 두르고 검은 베레모를 쓰면 집회 현장에서 ‘폼’이 날 것이라는, 지극히 낭만적이고도 예술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 낭만은 곧 비장한 현실의 무기가 되었다. 2022년 9월, 그들은 파리의 가을을 닮은 머플러를 두르고 청계천 광장에 섰다. ‘네 게바라’는 그렇게 광장의 촛불이 되었고, 그들의 유쾌하면서도 결기 어린 퍼포먼스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던 시절, 시민들에게 한 줄기 바람 같은 위로와 희망을 선사했다.
이 ‘네 게바라’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우정을 넘어선 시대적 연대의 상징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다. 네 명의 온라인 친구로 시작된 이 작은 날갯짓은 매주 태평로 거리 집회를 거치며 최자웅 신부, 유정현 목사, 조성민 교수 등 시대를 고민하는 원로들과 결합해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민사네)’라는 거대한 태풍으로 확장되었다. 저자가 이끄는 민사네는 매주 시국 논평과 포럼을 통해 대중의 잠든 의식을 깨우는 나침반이 되었다. 지식인들이 상아탑의 벽을 허물고 현실의 진흙탕 속으로 들어올 때,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감동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병든 시대를 향한 정밀한 진단과 해부
저자는 윤석열 정권의 본질을 ‘검찰 권력에 기반한 사당화’와 ‘민주주의의 파괴’로 규정하고, 예리한 수술칼을 든 외과 의사처럼 시대의 환부를 정밀하게 도려낸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국가를 자신의 전리품인 양 사유화하고, 법(法)이 정의의 저울이 아닌 기득권을 수호하는 흉기로 전락한 현실에 그는 전율한다. 저자는 이를 다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그토록 경계했던 법 적용의 편파성이 극단에 달한 아수라장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러한 ‘검찰 독재’의 민낯을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권력이 사유화될 때 민주주의라는 공든 탑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반면교사의 슬픈 이야기로 책의 상당 부분을 채우게 된다.
특히 이 책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지점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시험능력주의’라는 망령이다. 저자는 후배 김동춘 교수의 통찰을 빌려, 오직 시험 점수로만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이 낳은 괴물들을 고발한다. 9수 끝에 합격한 대통령의 사례는, 정답만 찾는 기계적인 인간이 복잡다단한 세상의 고통을 이해할 인문적 소양과 공감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저자는 교육이 사적 출세의 사다리가 아닌 공적 가치를 함양하는 광장이 되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고 일갈한다.
또한 저자는 이태원 참사의 비극과 채 상병 사건, 그리고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려던 역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의 반생명적이고 반역사적인 야만성을 통렬하게 꾸짖는다. 159명의 꽃다운 청춘이 서울 한복판에서 스러져갔음에도 진정한 사과 한마디 없었던 그 비정함에 저자는 피를 토하듯 분노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음을,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자는 탄핵되어 마땅함을 그는 역설한다. 굴욕적인 대일 외교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폭거 역시 저자의 매서운 붓끝을 감히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강조하며, 시민언론을 옹호하고 진실을 향한 등불을 밝혔다.
12·3 내란의 밤과 촛불시민이 쏘아 올린 빛의 승리
이 책의 정점이라면 단연 ‘12·3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파괴의 밤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저자는 민심을 잃은 정권이 최후의 발악으로 감행한 친위 쿠데타를 ‘내란’으로 규정한다. 법적 요건도 없이 한밤중에 선포된 계엄은 국민의 가슴에 총구를 겨눈 범죄였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밤에 별은 가장 밝게 빛나는 법.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의 장갑차 앞을 저자는 동료 시민들과 함께 맨몸으로 막아선다. 70대 부부인 저자 내외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며 육군 버스를 막아선 장면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민주시민의 용감한 저항이 ‘남태령 대첩’과 ‘한남동 대첩’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2024년 한겨울에 투쟁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응원봉 세대’에게 저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과거의 비장하고 엄숙한 시위와 달리,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와 발랄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독재와 맞선 청년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본다. 또, 트랙터를 몰고 멀리서 올라온 투박한 농민들과 최신 유행의 응원봉을 든 청년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만나 서로를 얼싸안고 귤과 떡을 함께 나누는 장면은 ‘연대의 미학’ 그 자체였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민주혁명이자 돌봄과 나눔의 사랑의 혁명”이라 명명했으니, 이는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은 국민적 저항이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마침내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와 함께 광장은 환희로 물들었다. 저자는 이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기록하며, 헌법 질서를 파괴한 자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대에 선다는 진리를 재확인한다. 183일간의 치열했던 기록은 죽은 줄 알았던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날아올랐음을 증언한다.
영원한 파수꾼으로 남을 지식인의 다짐
그러나 지금도 저자 김영 교수는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대신, 차분한 어조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내일을 이야기한다. 그는 내란 세력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검찰·언론 개혁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승자 독식의 야만적인 경쟁을 끝내고, 노동자와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사람〔民〕뿐만 아니라 만물〔物〕까지 아우르는 ‘물민(物民)’ 사상은 촛불집회에서 만난 다양한 존재들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깊은 성찰의 결과물이다.
“가지고 배우고 나이 든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는 그의 신조는 우리 시대의 모든 어른이 가슴에 새겨야 할 죽비소리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영원한 야당’으로 남겠노라 다짐한다.
《저항과 성찰》은 암흑의 터널을 건너온 우리 모두의 일기장이자, 새로운 새벽을 여는 장엄한 선언문이다. 파리에서 사 온 머플러를 두르고 ‘네 게바라’가 되어 거리에 섰던 그 낭만과 결기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토록 길었던 어둠을 이겨낼 수 있었다. 동료 학자이자 역사가로서, 이토록 아름답고도 치열한 기록을 남겨준 김영 교수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바친다. 이 책은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박제한 기록이자, 다시는 그런 야만의 시대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맹세다. 저자가 몸과 마음을 바쳐 쓴 이러한 기록이 있기에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주름진 모습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성찰이 있었기에 우리는 또다시 길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말한다
어둠의 심연을 건너 새벽을 연 지성의 기록,
그 아름다운 서사시
김영, 《저항과 성찰》(청아출판사, 2026)
백승종
역사학자, 전 서강대 교수
묵향(墨香)을 버려두고 아스팔트의 거친 바람 앞에 서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심정으로, 그리고 지난 3년의 엄혹한 시절 거리에서 비바람을 함께 맞았던 동지로서 선배인 김영 교수의 역작 《저항과 성찰》을 마주한다. 이 책은 시국 비평집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 뜨겁고, 한 개인의 회고록이라 하기에도 그 무게가 태산처럼 무겁다. 이 책은 민주공화국이 벼랑 끝에 섰던 절체절명의 순간, 한 양심적인 지식인이 온몸으로 쓴 피와 땀의 비망록이자 시대의 증언이다. 저자 김영 교수는 평생 강단에서 고전의 향기를 맡으며 지냈고, 은퇴 후에는 ‘자락서실(自樂書室)’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던 그야말로 천생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퇴행과 민주주의의 파괴를 목격한 나머지 서재의 안락한 의자를 잠시 떠나 광장의 거친 바닥으로 나서는 결단을 내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그가 삼켜야 했던 참담함과 분노, 그리고 그 칠흑 같은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낸 희망의 언어들을 전율하듯 오감으로 느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지식인에게 독서란 한갓 지식을 쌓는 유희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실천의 칼날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22년 봄, 상식과 공정이 무너져 내린 선거 결과를 목도(目睹)하게 되자 그는 깊은 침잠에 빠졌다. 그러나 곧 그 절망을 행동의 연료로 승화시켰다.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제주의 바람 속에서 마음을 추스른 그는, 서울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끄고 스스로 시대의 등불이 되기로 결심한다. 구한말 매천 황현 선생의 비통한 절규를 떠올리게 하는 일대 사건이다. 붓을 꺾고 거리로 나섰던 옛 선비들의 서릿발 같은 기개와 저자의 결단은 맞닿아 있다. 특히 1980년 광주, 처참한 피의 현장에 가 있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저자 자락당을 움직인 것일까. 자신을 “늙은 청년”이라 자칭하며, 저자는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현재의 불의와 맞서는 실존적 투쟁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낭만적 저항의 서막, ‘네 게바라’의 탄생
이 장엄한 투쟁의 서사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대목은 바로 ‘네 게바라’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윤석열 검찰 독재라는 거대한 괴물에 맞서기 위해 의기투합한 네 명의 지식인과 종교인—저자 김영, 박충구, 정종훈, 김근수—을 일컫는 낭만적인 별칭이 바로 그것이다. 2021년 겨울,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민주 진영의 위기를 감지하며 만난 이들은, 0.73% 포인트 차이의 패배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하였으나 곧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연대의 길을 택했다. 인천 계양구의 민주당 선거 사무실을 찾아가 서로의 손을 맞잡았을 때, 그들은 장난처럼 서로를 혁명가 ‘체 게바라’에 빗대어 ‘네 게바라’라 부르기 시작했다. 농담 속에 뼈가 있고 웃음 속에 눈물이 있듯, 이 이름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자 어둠을 가르는 깃발이 되었다.
저자는 2022년 여름, 프랑스 파리로 떠난 휴가길에서도 다가올 투쟁의 계절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파리시청 옆 베아슈베 백화점에서 프랑스 국기 색인 파랑, 하양, 빨강이 섞인 머플러를 여러 장 구하였다. 귀국 후 동지들과 함께 이 삼색 머플러를 두르고 검은 베레모를 쓰면 집회 현장에서 ‘폼’이 날 것이라는, 지극히 낭만적이고도 예술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 낭만은 곧 비장한 현실의 무기가 되었다. 2022년 9월, 그들은 파리의 가을을 닮은 머플러를 두르고 청계천 광장에 섰다. ‘네 게바라’는 그렇게 광장의 촛불이 되었고, 그들의 유쾌하면서도 결기 어린 퍼포먼스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던 시절, 시민들에게 한 줄기 바람 같은 위로와 희망을 선사했다.
이 ‘네 게바라’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우정을 넘어선 시대적 연대의 상징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다. 네 명의 온라인 친구로 시작된 이 작은 날갯짓은 매주 태평로 거리 집회를 거치며 최자웅 신부, 유정현 목사, 조성민 교수 등 시대를 고민하는 원로들과 결합해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민사네)’라는 거대한 태풍으로 확장되었다. 저자가 이끄는 민사네는 매주 시국 논평과 포럼을 통해 대중의 잠든 의식을 깨우는 나침반이 되었다. 지식인들이 상아탑의 벽을 허물고 현실의 진흙탕 속으로 들어올 때,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감동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병든 시대를 향한 정밀한 진단과 해부
저자는 윤석열 정권의 본질을 ‘검찰 권력에 기반한 사당화’와 ‘민주주의의 파괴’로 규정하고, 예리한 수술칼을 든 외과 의사처럼 시대의 환부를 정밀하게 도려낸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국가를 자신의 전리품인 양 사유화하고, 법(法)이 정의의 저울이 아닌 기득권을 수호하는 흉기로 전락한 현실에 그는 전율한다. 저자는 이를 다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그토록 경계했던 법 적용의 편파성이 극단에 달한 아수라장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러한 ‘검찰 독재’의 민낯을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권력이 사유화될 때 민주주의라는 공든 탑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반면교사의 슬픈 이야기로 책의 상당 부분을 채우게 된다.
특히 이 책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지점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시험능력주의’라는 망령이다. 저자는 후배 김동춘 교수의 통찰을 빌려, 오직 시험 점수로만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이 낳은 괴물들을 고발한다. 9수 끝에 합격한 대통령의 사례는, 정답만 찾는 기계적인 인간이 복잡다단한 세상의 고통을 이해할 인문적 소양과 공감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저자는 교육이 사적 출세의 사다리가 아닌 공적 가치를 함양하는 광장이 되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고 일갈한다.
또한 저자는 이태원 참사의 비극과 채 상병 사건, 그리고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려던 역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의 반생명적이고 반역사적인 야만성을 통렬하게 꾸짖는다. 159명의 꽃다운 청춘이 서울 한복판에서 스러져갔음에도 진정한 사과 한마디 없었던 그 비정함에 저자는 피를 토하듯 분노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음을,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자는 탄핵되어 마땅함을 그는 역설한다. 굴욕적인 대일 외교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폭거 역시 저자의 매서운 붓끝을 감히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강조하며, 시민언론을 옹호하고 진실을 향한 등불을 밝혔다.
12·3 내란의 밤과 촛불시민이 쏘아 올린 빛의 승리
이 책의 정점이라면 단연 ‘12·3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파괴의 밤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저자는 민심을 잃은 정권이 최후의 발악으로 감행한 친위 쿠데타를 ‘내란’으로 규정한다. 법적 요건도 없이 한밤중에 선포된 계엄은 국민의 가슴에 총구를 겨눈 범죄였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밤에 별은 가장 밝게 빛나는 법.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의 장갑차 앞을 저자는 동료 시민들과 함께 맨몸으로 막아선다. 70대 부부인 저자 내외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며 육군 버스를 막아선 장면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민주시민의 용감한 저항이 ‘남태령 대첩’과 ‘한남동 대첩’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2024년 한겨울에 투쟁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응원봉 세대’에게 저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과거의 비장하고 엄숙한 시위와 달리,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와 발랄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독재와 맞선 청년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본다. 또, 트랙터를 몰고 멀리서 올라온 투박한 농민들과 최신 유행의 응원봉을 든 청년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만나 서로를 얼싸안고 귤과 떡을 함께 나누는 장면은 ‘연대의 미학’ 그 자체였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민주혁명이자 돌봄과 나눔의 사랑의 혁명”이라 명명했으니, 이는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은 국민적 저항이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마침내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와 함께 광장은 환희로 물들었다. 저자는 이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기록하며, 헌법 질서를 파괴한 자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대에 선다는 진리를 재확인한다. 183일간의 치열했던 기록은 죽은 줄 알았던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날아올랐음을 증언한다.
영원한 파수꾼으로 남을 지식인의 다짐
그러나 지금도 저자 김영 교수는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대신, 차분한 어조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내일을 이야기한다. 그는 내란 세력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검찰·언론 개혁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승자 독식의 야만적인 경쟁을 끝내고, 노동자와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사람〔民〕뿐만 아니라 만물〔物〕까지 아우르는 ‘물민(物民)’ 사상은 촛불집회에서 만난 다양한 존재들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깊은 성찰의 결과물이다.
“가지고 배우고 나이 든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는 그의 신조는 우리 시대의 모든 어른이 가슴에 새겨야 할 죽비소리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영원한 야당’으로 남겠노라 다짐한다.
《저항과 성찰》은 암흑의 터널을 건너온 우리 모두의 일기장이자, 새로운 새벽을 여는 장엄한 선언문이다. 파리에서 사 온 머플러를 두르고 ‘네 게바라’가 되어 거리에 섰던 그 낭만과 결기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토록 길었던 어둠을 이겨낼 수 있었다. 동료 학자이자 역사가로서, 이토록 아름답고도 치열한 기록을 남겨준 김영 교수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바친다. 이 책은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박제한 기록이자, 다시는 그런 야만의 시대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맹세다. 저자가 몸과 마음을 바쳐 쓴 이러한 기록이 있기에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주름진 모습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성찰이 있었기에 우리는 또다시 길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