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ᄋᆞᆯ의 소리

우리 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일부러 만든 말, 씨ᄋᆞᆯ

씨ᄋᆞᆯ의 소리 보기

(292호 함석헌 사상 연구) 사실보다 관점, 함석헌 역사관의 밑힘 - 민대홍

씨ᄋᆞᆯ
2024-12-12
조회수 299

함석헌 사상 연구

함석헌의 역사, 우리의 역사-1

사실보다 관점, 함석헌 역사관의 밑힘


민대홍

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서로교회 목사

b8de638f1f599.jpg



들어가며―역사 전쟁

오늘 우리는 역사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친일,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을 국가 요직에 임명했다. 윤 정부는 친일 역사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앉혔는데, 그는 1945년 8·15를 광복절이 아닌 패전일로 간주하는 등의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또한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 등에도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에게 주요 직책을 맡겼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김좌진 등 독립운동가의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폄하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육군사관학교 측은 이들의 학교 건학 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씨ᄋᆞᆯ은 이를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지우려는 시도’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반대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역사 왜곡을 경고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그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정부, 이에 반대·저항하는 학계와 씨ᄋᆞᆯ의 움직임. 이 갈등은 다름 아닌 일제강탈기(1910~1945)로부터 비롯된다.

당시 오산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함석헌(1901~1989)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성서조선》에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역사 쓰기’를 시도한다. 그 내용을 통해 일제의 역사 왜곡에 저항한 함석헌의 삶과 생각을 살피고자 한다. 특히 그가 사실보다 관점을 더 중요하게 여긴 이유를 톺아보고, 오늘 우리 시대의 역사 전쟁의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식민사관’을 씨ᄋᆞᆯ 정신으로 극복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조선사편수회의 역사 왜곡

역사 왜곡의 뿌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데 그 일환으로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한다. 구성원 대부분은 동경제국대학 출신으로 조선총독부는 일본 최고의 엘리트들을 총동원한다. 그 시작은 1916년 1월 중추원 산하에 둔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이고, 이 위원회가 1925년 6월 조선사편수회로 개명된다.

조선사편수회의 주요 과업은 《조선사》 편찬이었는데, 24,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며 총 37권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일본 최고의 지성들이 온 힘을 모아 십수 년에 걸쳐 제작한 《조선사》는 100만 엔이라는 거금이 투자된다. 일제가 물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조선 역사를 연구하고 책을 낸 이유, 무엇보다 그 이유가 중요하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일본 제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하여,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사, 곧 고조선 연구부터 시작한다.

《조선사》는 고조선을 부족 국가로 설정하며, 그 기원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이를 통해 조선의 고대 문명과 정치 체제가 일본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묘사하고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부족 국가 수준의 고조선은 고대 중국의 침략으로 식민 통치를 받았으며, 삼한 시대가 되어서야 국가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점에 힘을 주어 조선은 그 태생부터 외세 의존적이었고, 그 역사를 당시 현실로 끌고 와서 일제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미개한 상태에서 시작된 부족 연합체”, 이것이 일본이 본 고조선이다. 조선은 그 후손이며, 일제의 통치를 받아 미개의 상태에서 개화되어야 하는 존재로 설정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다. 아직 《조선사》가 완성되기 전, 일제의 식민사관은 먼저 역사 교과서에 스며들었다. 다음은 당시 보통학교 국사 교과서의 일부이다.


옛날 조선반도의 북부는 기자라는 사람이 중국에서 와서 이곳을 다스렸다고 한다. [……] 남부는 마한, 진한, 변한 3개로 나누어지고 모두 많은 소국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나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바다를 건너서 내지와 왕래했다. 변한의 나라들은 신라 때문에 자주 괴로워하고 있어서 스진 천황 때 그 중에 임나(任那)라는 나라가 사자를 보내와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신라는 원래 진한의 한 나라였지만 점점 진한의 땅을 합병하여 스진 천황 때 박혁거세왕이 되자 내지에서 건너온 호공(瓠公)을 등용하여 나라를 다스렸다.―조선총독부 편, 《보통학교국사 상권 아동용》(1922), 15~17쪽. 필자가 한글로 고쳐 씀.


이 글에서는 조선사의 지정학적 위치를 반도로 축소하고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는 점이 강조된다. 


역사를 가르치다, 역사를 쓰다

이 시기에 함석헌은 일본 유학 중이었다.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일부에서 공부하면서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문하에서 성서를 배운다. 그의 문하생 중 조선인들이 모여 ‘조선성서연구회’를 결성하고, 1927년 《성서조선》을 일본에서 창간한다. 창간 동인은 바로 우치무라 간조 조선인 문하생 6명으로 함석헌, 김교신,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류석동이다. 20대 젊은이들의 성서 연구는 진지했다. 성서를 원어로 읽기 위해 헬라어, 히브리어를 익히기까지 했다. 이 시기에 함석헌은 ‘성서적 관점으로 역사 보기’의 내공을 길렀다.

이듬해 함석헌은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역사와 수신을 가르친다. 역사 교과서는 이미 일제에 의해 오염되었다.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역사 전쟁이 일어났지만, 일본인이 직접 통치하고 있던 조선 안에서는 그 자료들을 마음껏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나아가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저술이 함석헌에게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본의 역사 서술을 바로잡고자 했지만, 함석헌은 사실보다 관점(해석)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앞 부분에 상당히 긴 지면을 할애하여 사관을 설명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당시 함석헌의 심정은 해방 후 엮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1950)의 머리말에 잘 드러나 있다. 


외적 압박, 내적 비탄으로 말이 자유롭지 못한 그때에 쓰디쓴 입에 붙이어 우리의 온 길, 갈 길을 이야기 해 본 것이 이 고난의 역사다.


이후 1960년대에 성서를 뜻으로, 조선을 한국으로 고쳐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내면서는 당시 상황을 더 자세히 풀어 설명했다.


지도 교수가 있는 대학도 아니지, 도서관도 참고서도 없는 시골인 오산이지, 자료라고는 중등학교 교과서와 보통 돌아다니는 몇 권의 참고서를 가지고 나는 내 머리와 가슴과 씨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파리한 염소 모양으로 나는 씹는 것이 일이었다. 지푸라기 같은 다 뜯어먹고 남은 생선 뼈다귀 같은, 일본 사람이 쓴 꼬부려 댄 모욕적인, 또 우리나라 사람이 쓴 과장된 사실의 나열을 나는 씹고 또 씹어 거기서 새끼를 먹일 수 있는 젖을 내 보자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주 없는 것을 한도 많이 하였고, 공부 못한 것을 후회도 많이 하였다. 또 30년 전 일이다. 문장을 다듬어 보자는 어리석은 생각도 아직 있었고, 더구나 일본 시대에 말의 자유가 없는 때라 당당히 할 말도 많이 스스로 깎아야 하는 때이므로 더욱 어려웠다.


일제의 검열이 기승을 부리고, 다양한 자료를 비교하며 연구할 수 없는 상황. 역사를 쓰는 이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때 함석헌의 역사 쓰기의 밑힘이 되었던 것이 성서였다. 성서는 함석헌의 삶과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기독교 경전이다. 그는 《성서조선》 동인들과 귀국 후에도 계속해서 잡지를 냈다. 때때로 독자 모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1933년 12월 31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총 6박 7일간의 독자회에서 함석헌이 주 강연자가 되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강의한 것. 강의 내용은 같은 해 2월부터 《성서조선》에 연재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에서 ‘역사 쓰기’로 삶이 전환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앙생활은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함석헌,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7쪽. 인용 글은 정현필 님이 함석헌 선생의 글을 모아 《신천옹함석헌문집》(미간행, 총 42권)으로 엮은 책의 제2권에서 가져왔다.] 여기에서 함석헌이 제시한 근거는 성서다. 다만 성서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생활 경험”(윗글, 12쪽)을 반영하여 해석한 ‘성서’다. 함석헌과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 경험이란 일제강탈기의 고난일 터. 참혹한 역사 속에서 성서를 다시 해석하고, 그것을 신앙생활의 근거로 삼자는 거다. 하여, 함석헌은 고난의 눈으로 성서를 보기 시작한다. 성서 속 무수한 고난 이야기들을 이제-여기의 삶으로 초청한다. 그리고 고난으로 본 성서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읽고 쓴다.

함석헌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제의 서술에 ‘사실’로 대응하지 않는다. 문제는 왜곡된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현재 필요’, 즉 식민 통치의 정당성 확보에 있었기에 그렇다.


역사서를 쓰는 사람에나 읽는 사람에나 역사라면 일기록인 줄 알고 역사를 안다면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인 줄로 생각하는 이가 다수지만 이는 오해다. [……] 역사는 결코 과거가 아니다. 정말 과거라면 현재의 우리와는 하등 관계가 없을 것이오 따라서 기록의 필요도 이해의 필요도 없다. [……] (역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 있는 것이다. 현재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완전히 구결(句結)된 것이 아니오 계속 중에 있는 것이다.―윗글, 14쪽.


현재를 위한 역사 쓰기, 현재를 위한 성서 읽기. 역사든 성서든 함석헌에게 주어진 텍스트는 현재적 상황 속에서 읽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와 상관없는 성서는 교리서로 전락하며, 현재와 상관없는 역사는 죽은 역사라고 믿었다. 

역사를 가르치는 것과 쓰는 것은 분리된 행위가 아니다. 역사 교육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역사 교육은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작업이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역사 쓰기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고민하는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었다. 


나가며―다시 우리의 현재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서문에서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있다”고 말했다. 과거는 현존 질서와 체제의 뿌리이다. 하라리는 그 체제가 ‘고통’을 유발할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역사 해방으로부터 찾았다. 함석헌도 마찬가지다. 3·1운동, 동경대진재, 일제의 문화통치·민족말살통치의 시기를 오롯이 보내며 그는 우리 민족의 고난의 뿌리를 찾아 해방시키고자 했다.

함석헌은 조선인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뿌리를 성서와 역사 속에서 찾았다. 그가 뿌리를 찾은 이유는 현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현실의 고난은 온당하지 않으며, 그 온당치 못한 역사가 반복되어 왔음을 역사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단순한 관찰이 아닌, 깊은 통찰로 이어졌다.

1960년대 이후, 함석헌은 ‘씨ᄋᆞᆯ 정신’을 말했다. 벌거벗겨진 채 갓길로 내몰린 씨ᄋᆞᆯ의 삶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에게 있어 씨ᄋᆞᆯ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였다. 그는 씨ᄋᆞᆯ의 고난을 통해 역사의 진보를 보았고, 그들의 저항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발견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 전쟁의 한가운데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철거되고, 친일 행적을 미화하는 인사들이 역사 관련 기관의 수장이 되는 현실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100년 전 조선사편수회가 심었던 식민사관의 씨앗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서른네 살 청년 함석헌은 “새 사관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고쳐 읽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인생을 지리멸렬(支離滅裂)에서 구원하라”(윗글, 14쪽)고 외쳤다. 이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단순히 사실의 진위를 따지는 것을 넘어,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함석헌이 성서적 관점으로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듯이, 우리도 현재의 고난 속에서 새로운 역사관을 발견해야 한다.

씨ᄋᆞᆯ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일, 그것은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우리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함석헌이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했듯이, 우리도 오늘의 역사 전쟁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관점의 혁명이며, 과거가 아닌 현재의 혁명이다. 이제 함석헌의 유산을 이어받아, 역사를 통해 현재를 해방시키는 일에 동참해야 할 때다.


#민대홍 #함석헌 #역사관 #뜻으로본한국역사 #씨알의소리 #역사왜곡 #식민사관

0 0